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4화 (104/201)

104화 ― 신무기가 탄생하는 날.

* * *

“삼촌, 괜찮다니까? 그냥 말 해줘.”

—아니 그게……. 워낙 가난에 길든 삶을 살아와서인지, 액수만 들어도 목이 막혀서 함부로 말이 안 나오더라.

“…….”

순자 감독이 넷플렉스와 계약하면서 받은 투자 금액이 5천만 달러.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둘일 터다. 5천만 달러에 근접하는 큰 금액이든지 그게 아니라면 순자처럼 불 지르는 파이어맨도 5천만 달러의 투자 제안을 받았을 터.

뭐가 되었든 나쁜 소식은 아니다.

투자 금액을 떠나서 넷플렉스와 계약을 하게 된 것 자체가 고무적인 상황이니까.

“단풍 삼촌, 나 진짜 안 놀랄 자신 있으니까 말해 봐.”

—6천만 달러.

“뭐엇?!”

빠아아앙! 빠방! 빵빵빵!

너무 놀란 나머지 밟아버린 급브레이크에 뒷차들이 연달아 클랙슨을 올렸다. 비상등을 켜 사죄의 뜻을 전하고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풍 삼촌에게 다시 물었다.

“단풍, 단풍 삼촌. 내가 운전 중이었어서 제대로 못 들은 거 같은데. 혹시, 정말 호옥시 6천만 달러 말한 거 맞아? 6천만 원 아니고?”

—맞다.

“요즘 환율로 계산했을 때 720억 맞아?”

—맞다고! 6천만 달러! 720억!

“와…… 와하하하하!”

단풍 삼촌의 말이 뒤늦게 실감이 되면서 광소가 내뿜어졌다.

—물론 이건 총투자 금액이니까 우리한테 떨어질 금액은 얼마 안 될 거야. 알지? 정우야? 인마!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넷플렉스에서 말한 금액은 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 금액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판권료로 욕심을 낼 수 있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럼에도 내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껏 치솟은 건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내 글이 순자보다 더 높은 투자 금액을 제안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차 안이어서 그런지 세상이 떠나가라 혼자 웃음을 내뱉다가 문득 투자금보다 더 중요한 계약 조건이 뒤늦게 떠올랐다.

“삼촌? 그러면 러닝 개런티는 어떻게 됐어?”

내가 단풍 삼촌에게 별도로 요청했던 계약 조건.

그건 바로 러닝 개런티다. 러닝 개런티란 보통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들이 출연료 외에 흥행 결과에 따라 추가로 받게 되는 성과급.

넷플렉스는 한국 콘텐츠에 러닝 개런티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특히 내가 회귀하기 전처럼 넷플렉스가 OTT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한국에 출시하기도 전에 내게 연락이 왔었고 공 감독의 순자보다도 더 많은 투자금을 받은 상황.

앞으로 넷플렉스에서 상영될 한국 콘텐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러닝 개런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일 게 분명하다.

—러닝 게런티는 아쉽게도…….

하긴 전례가 없던 일인데 아무리 넷플렉스가 한국에 출시하기 전이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이…….

—됐어! 하하하! 됐다고!

“지, 진짜야?”

넷플렉스가 러닝 개런티 계약까지 용인해 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래! 언제 삼촌이 거짓말하는 거 봤니?

“와! 진짜 고생했어 삼촌! 그래서 러닝 개런티 얼만데?”

—손익분기 넘기고 순수익의 1%!

“우…… 오오. 그렇군.”

—이 간나 새끼, 벌써 배가 불렀구만 기래? 이건 연금이야, 연금! 1%로 되어있어도 수익이 얼마나 잘 나올지 모르는 거라고!

단풍 삼촌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비록 러닝 개런티 비율은 하찮기 그지없었지만, 넷플렉스와의 계약에서 러닝 개런티를 그것도 제작사나 감독, 배우도 아닌 원작자인 내가 1%를 갖게 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오케이, 알겠어 삼촌. 그럼 내가 그때 연락했었던 감독님 있지?”

—그, 누구냐. 하진성 감독? 맞지?

“응, 하 감독님한테 연락드리고 바로 제작 진행 부탁할게.”

“그래, 지금 바로 진행해주마. 크흐흐.”

자동차 오디오 스피커 너머로 단풍 삼촌의 살벌한 웃음이 가득 울려 퍼졌다.

* * *

넷플렉스에서 기분 좋은 연락을 받고 투자 계약은 빠르게 마무리 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하진성 감독 그리고 영화 제작사 등과의 계약도 완료되었고. 이제 남은 건 배우가 정해지고 크랭크 인만 시작되면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느덧 본격적인 추석 연휴를 앞둔 9월의 넷째 주 목요일이 됐다.

“작가님, 작가님? 오늘 목요일인 거 아시죠? 무슨 일이냐뇨? 추석 원고…… 네에? 무슨 소리세요? 추석엔 공휴일인데 저도 당연히 쉬죠? 내일은 추석 연휴 전날인데 저 오전 근무밖에…… 아니 작가님 회사 안 다녀 보셨어요? 당연한 소리를! 자, 작가님! 원고를! 작가님!”

‘쯧쯧, 조팟놈은 아직도 저 지랄이네.’

작가한테 원고를 미리미리 받지도 않고 조팟놈은 꼭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난리법석을 친다.

조팟놈도 인간이라면 학습 능력이 있을 텐데, 공휴일이 껴있을 때마다 매번 한 발, 아니 두세 발 뒤늦게 저러는 걸 보면 단순히 할 일을 미루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조적 성향의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파심에 여쭙는데요 파트장님이랑 건일 매니저님은 추석 연재 일정 무리 없죠?”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작가와 입씨름을 벌이는 조팟놈의 난동에 오진아 팀장이 나와 황건일 매니저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 물었다.

“네, 전 문제 없어요.”

“저도 문제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는 그때.

또다시 뒤통수 방향, 정확히 말하자면 조팟놈이 있는 판무 2팀 자리에서 또다시 높은 데시벨이 들려왔다.

“와! 뭐야 이거? 엘가 진짜 개미쳤네?”

이제 다른 팀이 되었어도 조팟놈의 확성기는 여전히 또랑또랑하게 잘 들렸다. 거기다 내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더 귀가 쫑긋 새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

“엘가? 그 새끼들 또 무슨 사고 쳤어?”

언젠가부터 엘가 그리고 정글북은 김동현 팀장의 발작 버튼이 되었고 이번에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김동현 팀장의 반응이 흡족한 듯 조팟놈은 바로 말을 이었다.

“사고 제대로 쳤죠. 팀장님 그거 기억하시죠? 엘가 얼마 전부터 인턴 뽑고 난리 치기 시작했잖아요?”

“그게, 뭐?”

“대학 후배 한 놈이 엘가 편집자 인턴 들어갔다는데 추석 선물로 한우로 받았데요! 그것도 투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우리는 참치캔 받는데?”

김동현 팀장은 괜한 걸 물었다는 듯이 혀를 찼다.

“투쁠이든 삼쁠이든 그딴 건 상관없고, 엘가 쪽 분위기는 어떻데? 후배면 이야기 들은 거 좀 있을 거 아냐?”

“흠흠, 딱히 사적으로 연락하는 후배는 아니라서 인스타로 본 건데…….”

“하아…… 일이나 합시다.”

조팟놈과 김동현 팀장의 대화를 들으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물씬 든다. 만에 하나 우리 엘가에 인턴으로 들어왔다는 직원이 조팟놈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었다면 잘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연좌제 느낌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기에 우리 엘가에 조팟 같은 불순물은 철저히 골라내야 한다.

‘뭐, 어쨌든 직원들이 인스타에 자랑할 정도면 마음에 들긴 했나 보네.’

나는 엘가의 복지를 최소 중소기업 선에선 최대한 잘 챙겨주기 위해 노력했다. 조팟놈이 본 인스타에 우리 엘가 직원이 어떻게 올렸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내가 엘가 직원들의 집 주소로 보낸 선물은 둘. 사과 배 혼합 프리미엄 과일 세트 그리고 구이용 한우 투뿔 세트다.

‘그리고 오늘 퇴근할 때 가져갈 수 있도록 프리미엄 올리브 오일과 수제 햄 세트도 양손에 두둑이 들려줄 예정이고.’

보통 직원들이 회사에서 받은 과일이나 고기 같은 경우엔 자신이 직접 먹기보다는 본가에 가져가거나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선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올리브 오일과 수제 햄 세트는 비상용 선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자취하는 직원들이 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따로 챙겨주기로 한 상황이다. 명절은 풍족해야 하니까.

—권미현 출판본부장: 출판 본부 명절 상여금 모두 돌렸습니다!

—이지연 디자인본부장: 디자인 본부도 모두 돌렸어요. 이런 건 정우 대표님이 직접 하셔야 하는데……. 괜히 제가 감사 인사 받아서 좀 민망하네요ㅜㅜ

—단풍 삼촌: 허허, 우리 대표님은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대표란 모름지기 원래 지갑만 잘 열 줄 알면 되는 거지!

엘가 본부장들 단톡방에 온 연락을 보니 명절 떡값도 모두 돌린 모양.

‘떡값으로 얼마 줬는지 알면 조팟놈이 까무러치겠네.’

명절 상여금 따윈 존재하지 않는 좋좋소 BS북과 달리 엘가는 인턴까지 모두 떡값을 챙겨줬다. 다만 정직원과 인턴 직원들이 받는 상여금엔 차등을 둘 수밖에 없었다.

정직원들과 인턴 직원들의 선물을 동일하게 줬기에 떡값마저 같은 금액으로 주는 건 정직원들에게 역차별로 느낄 수도 있다는 임원진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 본부의 본부장들이 하얀 봉투에 인턴 직원들에겐 현금 50만 원. 정직원들에겐 그 2배인 100만 원씩을 담아 건넸을 테다.

‘단풍 삼촌이 현금으로 직접 주는 거라 세금 처리하기 조금 번거롭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명절 기분은 내야지.’

—본부장님들도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 업무 마무리하시고

연휴 동안 푹 쉬세요!

일할 생각 말고!

—단풍 삼촌: 다른 회사보다 명절 휴가도 하루 더 주셔서 푹 쉬겠습니다 대표님

—권미현 출판본부장: 상여금 감사해요!

—이지연 디자인본부장: 올리브 오일이랑 수제 햄도 잘 먹을게요!

명절 전날에 보통 오전 근무만 하거나 1, 2시간 빨리 퇴근하게 하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엘가는 아예 전 직원을 추석 전날에도 쉬게 해줬다.

거기다 그동안 가장 고생을 한 본부장들에게는 떡값으로 200만 원씩 좋으니 행복 호르몬이 가득 넘쳐나는 게 카톡만 봐도 물씬 느껴진다.

‘회사는 이런 맛에 다녀야지.’

명절 선물을 준비하느라 발생한 지출이 어마어마했지만, 직원들에게 사용하는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마치 자식 새끼에게 쓰는 돈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때.

—단풍 삼촌: 대표님

내일 연차 쓸 수 있냐?

—연차야 쓸 수 있긴 한데

왜? 무슨 일 생겼어?

임원진 단톡방도 아닌 뜬금없이 개인 톡으로 연락해 대뜸 연차를 쓸 수 있냐는 말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단풍 삼촌: 마음 같아선 오늘 퇴근하고 당장 보자고 하고 싶은데, 네가 하도 야근하지 말라고 난리 쳐서 그런다 인마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큰일이야?

—단풍 삼촌: ㅎㅎ 매우 큰일이지

—단풍 삼촌: (사진)

단풍 삼촌이 틱 보낸 사진을 살펴보고선 나는 BS북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큰소리로 함성을 내지를 뻔했다. 단풍 삼촌이 보낸 사진은 다름 아닌 영문으로 만들어진 웹툰 플랫폼의 모습이었으니까.

—와! 대박이네!

언제 다 만들어진 거야?

—단풍 삼촌: ㅎㅎ 놀라기는

아직 베타 버전이야. 나 혼자서

결정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야기 할 게 많은데.

그래서 내일 연차 쓸 수 있겠냐?

그걸 말이라고.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브루나이 플랫폼 지원 사업의 베타 버전이 나왔는데?

나는 단풍 삼촌에게 답변을 하기도 전에 바로 대각선에 앉아 있는 오진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팀장님, 저 내일 연차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내일 오후 2시까지만 근무인데, 연차 사용하기 아깝지 않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조금도 아깝지 않다.

신무기가 탄생하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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