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3화 (103/201)

103화 ― 그 금액이…….

* * *

“와…… 느낌이 묘하네요.”

“뭐가요?”

“편집자일 때는 몰랐는데, 작가로서 비축분이 있냐는 말을 듣게 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네요.”

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지긋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최진혁은 옅은 감탄사를 갈무리하곤 자신의 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비축은 있습니다. 5화까지는요. 보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빠르게 확인해 볼게요.”

최진혁의 폰을 넘겨받고 날것의 원고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새 헌터들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학 야구나 프로 2군 선수들은 관심받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B급 이상의 헌터들뿐.

“야, 그래서 다른 짭새들은 언제 온대?”

“앞으로 2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쯧, 됐다. 들어가자.”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C급 이하의 헌터들에게 사람들은 관심 두지 않는다.

지금처럼 무명 가수의 지방 행사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기에 C급 이하의 헌터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애쓴다. 그건 신도준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저희만 말입니까?”

“짭새야, 같은 말 또 하게 해야 하냐?”

“하지만 저희가 들어가면 다른 헌터님들이 못 들어오지 않습니까? 민간인 게이트 진입 통제할 경찰 인력도 필요하고요.”

일반적으로 게이트가 생기면 우리 세계에서 게이트 너머의 세계로만 이동이 가능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게이트 브레이크’가 생기기 전까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입장을 시작한 후 5분이 지나면 추가 인력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게 차단된다.

A급 헌터, 아니, S급 헌터라 하더라도 무력으로 이미 닫혀 버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게이트 안을 클리어 하기 전까지는.

이어진 내용에도 조연인 게 확실한 D급 헌터에게 주인공이 당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초반부터 이런 고구마스러운 전개가 나오면 독자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조연은 게이트 안으로 이동하자고 하고, 게이트는 한 번 안으로 들어가면 틀리어 전까진 아무도 열 수 없다는 설정. 뒷부분에 사이다가 나오긴 하려나? 안 나오면 너무 갑갑할 것 같은데?’

스윽— 스으윽—

이어진 내용으로는 D급 헌터 조연 놈이 계속 주인공에게 자신들 둘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고 꼬시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D급 헌터는 어느새 가득 모여든 시민들 앞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주인공 백민혁을 형사를 반 강제로 게이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주인공이 구타를 당하네. 고구마가 너무 길어지긴 하는데…….”

스윽— 슥—

반복되는 고구마 파트를 빠르게 넘기며 뒷 내용을 살폈다. 나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이 느끼기에도 계속되는 갑갑함을 원하진 않을 테니까.

내 뺨을 툭툭 치던 신도준의 손이 다시 쥐어졌고 녀석은 살포시 쥔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툭툭 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여간 요즘 짭새란 것들, 할 일 없다고 풍근이나 존내 만들고, 쯧.”

“2분 남았습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냐?”

“게이트 닫힐 때까지 2분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내 말에 웃긴 부분이 있었는지 신도준은 허리를 젖혀가며 광소를 내뿜었다.

“푸흐흐흫! 아, 이 새끼. 너 그런 타입이구나? 조곤조곤 웃기는 스타일?”

“…….”

“그래, 뭐 2분 후면 이제 게이트 닫히겠네. 일단 안쪽으로 가자. 괴물 새끼들 잡으러.”

앞장서는 신도준을 따라 안쪽으로 이동했다.

게이트 밖에선 결코 들을 수 없는 괴수들의 기괴한 음성이 울창한 수풀 속에 점점 울려 퍼진다. 이제 때가 됐다.

“야, 짭새. 이제 슬슬 몬스터들 나올 삘이니까 너는 여기서…… 야! 지금 내가 말 하는데 어딜 보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게이트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지 정확히 5분이 지났고 우릴 안쪽으로 넘어오게 한 노란 빛이 넘실대던 문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이 새끼가 내 말 안 들……?”

뚝— 푸화악!

신도준의 어깻죽지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그대로 뜯어냈다.

다행이다.

회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사이다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서.

오른팔이 통째로 뽑혀 나오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비릿한 쇠 비린내가 코에 스며든다.

“끄아아아아악!”

놈의 몸에서 뜯어낸 오른팔이 실 풀린 인형처럼 맥없이 늘어졌다. 진득이 흩뿌려진 혈향을 맡은 괴수들이 흥분했는지 풀숲 뒤로 그르렁거리는 소음이 점점 진해진다. 덜렁이며 핏물을 튀기는 그의 팔을 어깨에 둘러메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뚜벅— 뚜벅—

“신도준 24세, 4월 18일 채팅앱을 통해 만난 29세 여성 감금 폭행 및 협박 그리고…….”

“자, 잠깐!”

내가 나직이 말을 잇기 시작하자 신도준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한쪽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여기 까지가 본편 2화가 끝나는 부분.

우선 여기서 피드백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2화까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우선 여기까지만 피드백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긴장되네요. 편집자에게 받는 피드백이란 게요.”

최진혁은 BS북 판무 1팀 팀장까지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쓴 글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기란 무척 어렵지. 자신의 주관이 들어갈뿐더러 특히 최진혁처럼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바로 설명해 드리죠. 프롤로그부터 2화까지 총 3화 분량의 전개 흐름, 캐릭터의 입체성 등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았어요. 주인공의 목적성도 조연들의 대화로 파악할 수 있었고요.”

“후우……. 다행이네요.”

최진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다만, 2화에 걸쳐 고구마스러운 부분이 너무 길어서 본편 1, 2화 분량을 합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으음…… 그렇군요.”

“작가님도 잘 아시겠지만 초반 회차에는 몰입도가 중요한데 아직 독자들이 주인공의 매력에 온전히 빠져들기 전에 조연들 중심의 서사가 너무 많이 진행되고 주인공이 당하는 고구마 파트가 너무 늘어져서 이 부분이 한 화에 압축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설명을 시작으로 나는 초반 부의 부족한 부분 그리고 최진혁의 나머지 비축분 파트를 읽으며 보완 및 수정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한 부분의 의견을 하나 하나 건넸다.

비록 글을 쓸 때엔 자신도 몰랐겠지만, 최진혁은 편집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설명을 간략히 해도 이해도가 일반 작가들 보다는 월등히 빨랐다.

“와아…… 진짜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서 설명을 들으니 정신이 어지럽네요, 하하.”

최진혁은 나와 대화를 하며 애먹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최진혁은 그간 작품 미팅을 했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밝게 웃고 있었다.

“오늘 미팅 어떠셨어요? 다른 작가님들은 저보고 막힌 혈 뚫기 전문이라고 하셨는데.”

“좋았어요, 정말 답답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네요, 하하.”

최진혁의 입가에 다시 한번 밝은 미소가 걸쳐졌다.

“특히 작가가 묻는 것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전개로 진행하려는지 확인을 하고 그에 맞춰 나오면 좋을 법한 소재들을 추천해주시는 것도 그리고 설정 부분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도 꼼꼼하게 확인해 주신 게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

“저는 편집자로서 일할 때 파트장님 같은 편집자가 되지 못했다는 게…… 정말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께 너무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게 되네요.”

또다시 이어진 자책.

자신이 한 실수를 돌이켜 보며 반성하는 행위를 나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최진혁은 계속 자책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애초에 이런 모습을 보려고 내가 컨택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진혁 씨, 회사 퇴사하실 때 그랬잖아요. 작가님들의 심정을 더 깨닫고 경험해보고 싶다고요.”

“맞아요. 저는 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고요.”

내 물음에 최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맛보기만 하셨으니, 본격적으로 반성해 보시죠?”

“……네?”

“저랑, 아니, 이제 새롭게 태어날 BS북과 계약을 부탁드린다는 말입니다.”

“……진심이세요?”

잠시 말을 멈춘 최진혁이 토끼눈을 뜨며 되물었다.

“애초에 진심이 아니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죠.”

“그렇긴 하지만…….”

사실 오늘 미팅 자리는 내가 쪽지를 보낸 후 최진혁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의 작품 피드백을 해주면서 조언을 해주는 자리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계약 이야기를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다.

“이제 완전 초반부만 써보신 거잖아요? 작가가 1권 분량을 썼을 때 100화 이상을 집필할 때 그리고 완결 파트일 때까지 저와 함께 제대로 느껴 보시죠.”

“…….”

“만약 BS북에 정체가 알려지는 게 싫으시다면 가족 명의로 계약하셔도 되시고요.”

“…….”

최진혁은 복잡한 심경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파트장님. 부족한 부분 많이 배워 보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제 계약 조건 이야기해 보시죠.”

비록 최진혁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한다고 해도 냉큼 엘가와 계약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BS북에선 엘가보다 조금 더 느슨한 기준으로 작가들과 계약을 해보려 한다.

엘가가 이상적인 출판사라면 BS북은 글도 작가의 태도도 조금은 결함이 있더라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출판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 * *

최진혁과의 미팅이 끝나고 헤어지니 어느새 저녁 7시다. 아직 퇴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도로는 꽤나 막혔다. 노래나 들으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스크린 화면에 단풍 삼촌의 전화 알림이 울렸다.

틱—

“어, 삼촌. 아직 퇴근 안 했어?”

—지금 퇴근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간나야! 어디야 지금?

“아차산역에서 좀 전에 출발했어.”

—조금 걸리겠구만 기래.

“왜? 무슨 일인데?”

되묻는 말에도 단풍 삼촌은 바로 즉답을 하지 않았다.

“삼촌? 들려? 여보세요?”

—들린다, 인마. 다른 게 아니라 답변 왔다. 넷플렉스에서.

“어 그래? 답변 상당히 빨리 왔네? 뭐라는데?”

—정우야,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아니 놀랄 거야. 무조건 놀랄 거니까 차를 아예 갓길에 새워 놓고 통화하자. 주차하면 말해라.

단풍 삼촌답지 않게 이렇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넷플렉스에서 투자하기로 한 금액이 상당한 것 같다.

‘아니면 설마…… 계약이 빠그러진 건가?’

단풍 삼촌에게 시켜 투자금 제안을 5천만 달러 이상으로 하라고 하긴 했는데, 괜한 객기를 부린 건지 불안감마저 든다.

“일단 삼촌, 먼저 하나만 물을게. 좋은 소식이지? 나쁜 소식 아니고?”

—그래, 좋은 소식이다. 그것도 보통 좋은 소식이 아니야.

순간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날숨이 절로 뱉어졌다.

“알겠으니까 말 해봐.”

—갓길에 새웠니?

“괜찮아, 안 놀랄 자신 있으니까 말해 봐.”

단풍 삼촌은 한참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 금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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