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비축분은 없으신가요?
* * *
하루가 더 지난 9월 8일 화요일 오후.
나는 작가 미팅을 위해 아차산역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정우 매니저님…….”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갈린잡초 작가님. 판무 1팀 파트장, 박정우입니다.”
“처음은요 무슨…… 어? 1팀? 파트장? 그게 무슨……? 아니, 우선 진급 축하해요! 와하하! 정말 축하해요 정우 매니…… 아니, 파트장님!”
내가 파트장이 된 것을 눈치챈 최진혁은 마치 자신이 진급한 것처럼 좋아하며 나를 축하했다.
“정말 오랜만에 봬요. 한 4달 만에 뵙는 거 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최진혁은 그간 집에서 글만 썼는지 얼굴은 전보다 더 퀭하고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의 눈빛만은 퇴사 전보다 훨씬 밝고 또렷해 보인다.
“저야 맨날 회사, 집, 회사, 집이죠. 진혁…… 아니, 작가님도 잘 지내셨죠?”
그는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 전.
나는 사두용미 아카데미 종강일 때 콘서트홀 뒤쪽에 앉아있던 최진혁을 봤었다.
‘본 것 뿐만이 아니라 대화도 했었지, Q&A 시간에.’
하지만 이를 솔직히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나는 대충 상황을 넘기기로 했다.
“저 따위가 작가님은요 무슨…….”
반면 최진혁은 내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호칭이 아직 어색한 모양이다.
“그런데 진짜 갑자기 진급은 뭐고 1팀은 뭐에요? 아니, 정우 씨가 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BS북 창립 이래로 이렇게 빠르게 진급한 평사원이 있었나 싶어서요.”
“하하, 실은 그게요…….”
BS북 내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조차 잡고 있지 못할 최진혁에게 대략적인 근황을 설명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바로 일 얘기부터 하는 건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았으니까.
“……와.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한우석 팀장, 아니, 개쓰레기 새끼였네요? 김영진 파트장도 그렇고. 하…… 아니다. 제가 누굴 욕할 처지가 아니죠. 돈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저도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건 매한가지니까요…….”
“…….”
최진혁은 내 설명을 듣고선 분노를 하다가 자책을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도 정우 씨가 파트장이 된 건 정말 축하할 일이네요. 진아 씨는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대단하네요 정말. 입사하자마자 그렇게 실적을 내기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하, 저는 정말…….”
칭찬을 하다가 자책하는 일도 반복됐다.
이대로 계속 뒀다간 땅이 꺼져라 내쉬는 그의 한숨 소리와 자책만 계속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진혁 씨도 대단해요. 퇴사하고 몇 달 안 지났는데, 벌써 이렇게 좋은 글을 뽑으시고.”
“에이…… 별말씀을요. 어제 고작 2천 자도 안 되는 프롤로그 하나 올렸는데도 가슴이 그렇게 두근거리더라고요. 제가 퇴사하기 전 정우 씨가 해줬던 조언…… 그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최진혁은 머쓱했는지 고개를 숙이며 뒷목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프롤로그를 올리고 나서 댓글이 올라온 게 없나, 조회수가 올라간 게 없나 추천 수는 얼마나 올라갔나, 이런 걸 계속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이런 사정도 모르고 제가 편집자일 때는 작가님들께 글 올리면 다음 화나 쓰시라고 너무 매몰차게 말했던 것 같아서…… 제 지난날들이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무엇을 배울 때 가장 확실하게 배우려면 남을 가르쳐 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편집자가 되려면 단편의 글이라도 소설피아 같은 곳에 올려보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최진혁처럼.
‘편집자일 때는 작가에게 받는 수십 개의 글들 중 단 하나의 회차일 뿐이지.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 글이 얼마나 고심해서 나온 결과물인지를 알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내서재도 정말 수시로 들어가 봤어요, 하하. 혹시라도 어디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그러다가 내서재 방문 기록에 파이톤이 있는 걸 보고는 진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더라고요.”
“기쁨 반, 두려움 반 그런 건가요?”
“아뇨 두려움 99%요. 혹시 판무 1팀 매니저일까? 아니면 2팀 매니저일까, 별의별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글을 아예 내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분명 제가 아는 사람 중 하나일 텐데…… 그게 너무 두렵더라고요.”
최진혁은 목이 탔는지 커피로 목을 축였다.
“쪽지가 왔다고 알람이 떴을 때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래도 쪽지를 보낸 게 정우 씨인 걸 알고서는 안심이 되더라고요.”
쪽지를 봤을 때가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최진혁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정말 놀랐어요. 갈린잡초 작가님한테 컨택을 보냈는데, 진혁 씨한테 전화가 와서요.”
“하하하, 그렇죠?”
물론 거짓말이지.
나는 진작에 갈린잡초가 최진혁인 걸 알았으니까.
능청스러운 거짓말이 걸린 것 같진 않다.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 때다.
“그럼 이제 최진혁 씨가 아닌 갈린잡초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볼 수가 있을까요? 작품 관련해서요?”
“조금 쑥스럽긴 하네요. 솔직히 프롤로그만 올렸는데 컨택을 받은 것도…….”
최진혁은 여전히 자신감 없는 표정을 내비쳤다.
이제는 내가 그를 리드할 타이밍이다.
“작가님, 아시잖아요? 저 아무 글이나 컨택하는 사람 아니라는 거.”
“그렇긴 하지만…….”
“프롤로그만 보고 컨택을 드렸지만 저는 상당히 가능성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감 없어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어진 설명에 최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우선, 그러면 예약 등록한 금일 회차 지금 막 올라갔는데, 이번 글까지 먼저 봐주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프롤로그가 아닌 본편을 보고 파트장님이 생각하시는 전개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나를 부르는 호칭이 파트장이 된 걸 보니 최진혁도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든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지금 올라온 회차부터 빠르게 읽어보도록 하죠.”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틱틱— 스으윽— 슥—
“……예. 석수역 인근 아파트에 E급 게이트 출현이요? 정확히 어디 말하시는 겁니까?”
전화를 받는 금천 경찰서 강력계 경장 최서준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아, 거참. 저희도 알죠. 갑자기 게이트 터져서 난리 난 건 알겠는데, 2단지 쪽인지 3단지 쪽인지 묻는 거잖아요. 2단지요? 거기 우리 관할 아니에요. 근린공원 안에 생긴 거면 거긴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라고요. ……아니, 법이 그런데 뭘 어쩝니까? 안양시 관할이니까 안양시 쪽에 문의하라고 해주세요. 끊습니다.”
최서준 경장은 전화를 끊고 혀를 차며 오영철 경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경감님, 민원실에서 전화 왔는데. 리버랜드 2단지 쪽에서—”
“하지 마.”
“예?”
“말하지 말라고. 우리 일도 아닌 걸 무슨 보고를 하고 있어.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조용히 있다 가자고.”
“하하하, 그렇죠.”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난데없는 괴수들의 출현과 함께 속칭 ‘헌터’라 불리는 이능력을 지닌 신인류가 등장했다.
프롤로그와 달리 본편 1화는 3인칭으로 시작됐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선 경찰서 경장의 대화를 보여주며 프롤로그에 언급됐었던 세간에서 경찰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다음 내용으로는 비리 경찰은 아니더라도 의욕 없는 경찰들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프롤로그에서 언급됐었던 세계관을 슬쩍슬쩍 보여주고 있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엄지로 계속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최 경장, 게이트 열린 곳 주소 나한테 보내놔.”
“예? 경위님이 가시게요?”
“지금 나갈 거니까, 바로 보내.”
“아니……. 우리가 광수대(광역수사대)도 아닌데 굳이 남의 관할까지 갈 게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5대 강력 범죄도 아니고 게이트 보초나 시키는 게 단데, 우리 관할이라 해도 강력반에서 나가는 게 웃기는 일 아닙니까?”
“경감님,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신입 형사 최서준 경장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냉큼 경찰서 밖으로 나서는 백민혁 경위의 뒷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투로 물었다.
“아니, 경감님. 백 경위님 왜 저러시는 겁니까? 가만 보면서 안에 가만히 계시지를 못하는 거 같은데, 어디 부업이라도 다니시나?”
“부업은 니미!”
“아악! 아니 왜 머리를 때리고 그러십니까?”
책상에 굴러다니는 딱풀을 최서준 경장의 뒤통수에 날린 오영철 경감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말조심해 새끼야. 우리야 헌터들 종노릇 하면서 월급 타 먹는 게 익숙해졌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니까.”
그리고 다른 경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찰 백 경위는 프롤로그에 나왔던 강력계 형사 백민혁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아직까진 프롤로그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보여줬던 시점보다 전인지, 후인지, 아니면 같은 시간대인지에 관한 정보는 없다.
‘슬슬 정보가 나오긴 하네. 복수물인가?’
조금 더 스크롤을 내리자 ‘시작의 날’이라고 불리는 날에 전 세계 각국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된 게이트가 생겨났다는 정보가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괴수들과 헌터들이 참혹한 싸움을 벌인 날이라는 이어진 설명. 게다가 조연으로 보이는 오영철 경감이란 사내가 주인공인 백 경위는 남들과 다르다, 시작의 날에 가족을 잃고서도 계속 경찰 생활하는 참 경찰이다 라는 대화가 이어졌다.
‘좋네. 도입부에선 조연 캐릭터들로 자연스럽게 대화로 정보를 풀면서 독자들에겐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모습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니까. 독자들로서는 주인공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어.’
그 이후엔 장소가 변경되면서 자연스럽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해 몰입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스윽— 슥—
사람들을 밀치고 게이트가 생겼다는 근린공원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노란색 빛의 파장이 넘실대는 E급 게이트가 보였고 그 앞에는 슈트 차림의 사내가 밝은 미소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신도준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이야아, 몸 좋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순서대로 사진 찍고 있으니까.”
내가 경찰인 걸 몰라봤는지, 신도준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금천 경찰서 백민혁 형사입니다.”
“아, 경찰이셨어? 여러분, 하하. 잠시만요. 저는 경찰 아저씨랑 따로 할 말이 있어서.”
D급 헌터 신도준.
내가 경찰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사진을 찍어주던 사람들에게 잠시 양해의 말을 구하곤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짭새야. 내가 콜 보낸 지가 언젠데 이제 도착해? 짭새보다 헌터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내가 D급이라 우스워?”
이어진 내용에서 주인공의 외형이 신도준 헌터라는 캐릭터로 인해 다시 한번 부각됐다. 또한 헌터라는 흔한 조연이지만 이중인격적인 면모로 인해 조연의 입체감도 살아나 있고.
‘괜찮긴 한데…… 회차의 마무리로는 좀 아쉬운걸?’
짧았던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1화나 마찬가지이기에 마무리 파트는 좀 더 임팩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별로면…… 편하게 말해주셔도 됩니다. 저도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아서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힌 게 티가 났는지 최진혁이 초조해진 얼굴로 입술을 뜯기 시작했다.
저런 얼굴을 하는 걸 보니 정말 작가가 다 된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편집자 출신이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대신 엔딩 부분이 아쉬워서 그런데, 비축분은 없으신가요?”
우리 최진혁이가 얼마나 준비가 잘 됐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진짜 작가라면 응당 비축분이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