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그럼 이제 쪽지를 보내볼까?
* * *
입봉에 목말라 있던 하진성 감독은 냉큼 내 계약을 받아들였다. 영화 제작사 물색은 단풍 삼촌이 맡기로 했고 이제 넷플렉스에 문의한 계약 조건의 답변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다.
“2팀 회의 길어지는데 이번 주 주간 회의는 소회의실에서 진행할게요.”
“네! 좋습니다!”
“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우리 1팀의 신입 매니저들이 모두 판무 2팀으로 넘어가서인지 나와 오진아가 있을 때와 달리 판무 2팀의 주간 회의가 상당히 길어지는 모양이다.
‘설마 조팟놈이 쪼잔하게 꼼수 부리는 건 아니겠지.’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10분.
11시부터는 우리 1팀이 사용해야 할 시간이지만 현재 판무 1팀의 인원은 오진아 팀장과 황건일 매니저 그리고 나까지 달랑 셋뿐.
소회의실로 들어왔지만 비좁은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단출한 구성이다.
“우선 정우 파트장님. 지난주에 건일 매니저님한테 작가님들 인계받았는데, 관리 잘 되고 있나요?”
“총 9작품 인계받았는데요. 작가님들과 통화 다 나눴고, 비축이 없으신 분들이 많아서 전개 가이드 작업 진행하고 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파트장님.”
“네? 뭐가요?”
“제가 그동안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아…….”
오진아 팀장의 물음에 답하는데 황건일 매니저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였다.
‘미안할 만하긴 하겠지.’
건일 매니저가 아직 신입인 걸 감안하더라도 솔직히 내 기준으로 보자면 개판 오 분 전의 작가 관리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 오진아에게 눈빛을 쏘아 냈다.
‘내가 뭐라고 하기보단 진아 씨가 팀장으로서 한마디 하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래야 진아 씨 위상이 더 살 테니까.’
그리고 내 눈빛을 수신한 오진아 팀장이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 매니저님, 이미 지난 일에 대한 사과는 한 번이면 돼요. 이제 앞으로 더 잘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번 주 주의 사항은…….”
새로운 판무 1팀이 시작된 지 이제 고작 2주차였기 때문에 다들 전주의 업무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주간 회의가 빠르게 끝나고 오후 5시가 되었을 무렵, 드이어 나는 담당 작품 교정과 피드백 등을 모두 정리할 수가 있었다.
‘어디…… 간만에 작품 올라온 것 좀 볼까?’
판무 1팀으로 건너오자마자 황건일 매니저의 똥처리를 하느라 담당 작품이 대폭 늘었다. 하지만 황건일 매니저가 계약한 작품들은 단지 담당 종 수를 늘리기 위한 작품들이 대부분.
작품의 독창성은 느껴지지 않고 단지 트렌드를 따라가기 급급한 작품들을 온종일 봐서인지 눈에 정화가 필요했다.
거기다 하이에나같이 내게 신작을 원하는 오진아에게 건네줄 작품도 필요하고 나 또한 추가로 계약할 만한 작품을 찾을 필요도 있었으니까.
드르륵— 드륵— 딸칵— 드르륵— 드륵—
“어?”
“파트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뇨. 그냥 작품 보고 있었어요.”
“괜찮은 작품인가요?”
1팀에 와서 내가 앉은 자리는 팀장인 오진아를 중심으로 ‘ㄷ’자 형태. 대각선에서 오진아가 마치 먹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아기새처럼, 아니,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뇨, 일단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은 작품이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어요.”
오진아 팀장에겐 덤덤히 말한것과 달리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갈린잡초…… 이제 쓰기 시작했네?’
갈린잡초란 필명을 보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쳐졌다. 이건 최진혁의 필명이었으니까.
딸칵딸칵—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의.
콘서트홀에서 진행했던 그 강의에서 나는 최진혁의 필명이 갈린잡초인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갈린잡초란 필명을 검색을 했었다. 하지만 소설피아에도 더노벨이나 웹월드, 테일랜드에서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직 집필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었고.
묘한 기분이다.
그동안 바쁜 일이 연거푸 터졌기에 나도 한동안 최진혁의 글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소설피아 신인연재 게시판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갈린잡초란 익숙한 필명이 눈에 띈 것이다. 글 제목은 더 눈에 띄었다.
‘나는 짭새다……. 제목을 왜? ……우선 진혁 씨 얼마나 잘 썼나 한번 읽어 볼까?’
썩 호감이 가는 제목은 아니었지만 지금 제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그것도 함께 매니저로 일하던 사람이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지가 정말 궁금했으니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라는 소제목이 달린 회차를 클릭했다.
번천지복(翻天地覆).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이세계와 연결된 게이트.
그곳을 통해 쏟아지는 괴수들.
그리고 이에 맞춰 나타난 이능력자들까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으아악!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괴수들의 침략에 함몰된 국가도 몇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들을 헌터라 칭하는 이능력자들의 힘에 기대 국가의 존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게이트, 괴수, 헌터. 그냥 헌터물인가?’
드르륵— 드륵—
세계관을 설명하는 초반부를 조금 더 내리자 시점이 바뀌고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내가 등장했다.
콰앙! 까가각— 콰광! 쾅!
“허어억!”
쇠로 된 문을 빠루로 찢고 들어가자 희끗희끗한 머리의 남성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나를 올려보고 있다. 한참을 도망치던 그는 거친 숨만 헐떡일 뿐이다.
“왜, 왜 이러는 거요! 돈? 아니 뭐가 되었든……?”
스윽—
두려움이 가득 깃든 눈빛으로 널브러진 사내에게 나는 말없이 손을 건넸다. 몇 초간 가만히 손을 뻗었지만, 그가 잡지 않자 나는 건조한 음성을 내뱉었다.
“악수 한번 합시다.”
“아, 악수?”
“잡으라고.”
“예에, 예.”
사내는 내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힘이 정의다. 무해하기 짝이 없는 노인을 핍박하려는 지금 내 모습처럼.
“배승철, 57세, 맞습니까?”
“하하, 사람 잘못 보셨네. 누굴 찾나 봅니다?”
“…….”
뜬금없이 악수를 청하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내의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단지 글 속의 노인을 일으켜 세우려는 게 아니라 무슨 숨겨진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드르륵— 드륵— 드르륵—
사내는 괜스레 긴장했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흥신소 손님이신가? 내가 손님 얼굴 기억을 잘 못 해서.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범인 잡듯 쫓아오는 게 어딨어? 깜짝 놀랐네, 허허. 여하튼 이 손은 좀 놓고—”
“사람 잘 본 거 같은데?”
“아니…… 이 양반이? 덩치도 산만 한 사람이 아까부터 뭘 하자는…… 끄아아악!”
천지가 개벽한 것만 같은 요즘.
경찰은 말 그대로 견찰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다. 헌터청의 따까리 짓이나 하는 진딧물, 그게 세간에서 경찰을 바라보는 시선이니까.
사람들이 경찰을 바라보는 조소 어린 그 시선 그대로 나는 사내를 응시했다. 그의 가늘고 허약한 손을 억세게 움켜쥔 채로.
노인과의 대화로 주인공의 외형이 어떤 식인지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라. 근육 경찰 같은 느낌인가? 마동석 같은?’
헌터청이라는 기관이 나오는 걸 보면 경찰청이 존재하지 않거나 경찰청이 존재하더라도 힘이 미약하다는 게 느껴진다.
“배승철, 57세,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및 살해 혐의. 맞을 텐데?”
“아아악! 난, 난 아니……아아악! 마, 맞아! 맞으니 손 좀…… 끄아아악!”
내 손아귀에서 풀려난 그는 치욕과 눈물로 벌게진 눈으로 날 쏘아 봤다.
“당신 뭐야! 내게 있는 건 혐의뿐이야 혐의! 경찰이라도 돼? 어?”
“어, 맞췄네.”
“……?”
더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내 일을 할 차례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별 의미 없을 말을 건조하게 전했다.
웃기게도 괴수가 들끓는 요즘 같은 때엔 미란다 원칙을 읊는 지금이 그나마 경찰로서의 나를 기억하게 한다.
“……경우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대답은 자유입니다.”
“다, 당신! 헌터청이 무섭지도 않아? 어디서 헌터청 따까리나 하는 경찰 놈이—”
푸욱!
“……컥?!”
왼손에 들고 있던 빠루를 오른손으로 던져 잡은 뒤 창을 던지듯 사내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아니, 경찰이…… 빠루로 가슴을 찔러?’
초반만 보더라도 흔한 헌터물에 경찰이 섞인 느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공의 성정이 경찰이라는 직업과 달리 상당히 잔혹하다.
평범한 경찰이 아니라 자신의 손을 직접 더럽히는 타락한 경찰?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드륵— 드르륵—
폐를 잘못 찔렀나?
그의 입 밖으로 핏물이 울컥거리며 쏟아져 내린다.
“……커헉 ……커으헉.”
등 뒤까지 관통한 쇳덩이를 단숨에 뽑아내자 그의 가슴 안팎으로도 핏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린다. 이대로 끝내선 안 되지.
뻐억! 까가각! 푸욱! 푹! 빠가각!
새 부리처럼 갈라진 빠루 끝으로 그의 골수가 흘러나올 때까지 뇌리를 찍어 내렸다.
띠링—
* * *
이름: 배승철
나이: 57세
죄목: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및 살해 혐의
상태: 사망(공무 집행 완료)
* * *
“다음은 또 어디야?”
띠링—
* * *
이름: 김민재(더보기)
이름: 이서준(더보기)
이름: 박수진(더보기)
이름: 황영철(더보기)
* * *
세계가 뒤집어지고 모두가 괴수와 싸울 때.
나는 여전히 인간과 싸우고 있다.
인간의 탈을 쓴 괴수들과.
내 이름은 백민혁.
강력계 형사다.
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음…… 상당히 짧은데? 프롤로그라고 쳐도 짧긴 짧은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주 나쁘진 않다.
최진혁이 문창과 출신이라고 하지만 학교 과제로 글을 몇 번 써본 것 외에는 아마 이번 글이 처음 쓴 것일 터.
기본적으론 익숙한 헌터물 골조.
하지만 일반적으로 헌터 협회로 표현하는 양판소와 달리 헌터청이라는 국가 기관으로 차별화를 두면서 익숙한 맛을 살짝 비틀었다.
‘그리고 거기에 하드보일드한 분위기. 나쁘지 않아. 아니, 잘만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비단 내가 최진혁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이 글은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상당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띠링—
—오진아 매니저님: 뭐에요? 자꾸 실실 웃는 게 좋은 작품 찾은 것 같은데?
오진아…… 확실히 감이 좋다.
내가 최진혁, 아니, 갈린잡초의 글을 유심히 보고 있던 걸 계속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카톡 이름이나 바꿔야겠네.’
—이거 민간 사찰 아니에요?
—오진아 팀장님: 진짜 괜찮은 작품 찾은 거 아니에요? 지금 표정이 딱 그런 표정이어서
—맞아요, 맞긴 한데
이 작품은 제가 컨택할게요
이 글은 내가 담당하고 싶다.
아니, 내가 담당해야만 하는 글이다.
‘일단 시작은 발도장부터.’
나는 최진혁의 내서재 게시판에 들어가서 방문 기록을 남겼다. BS북의 컨택 계정으로.
‘그럼 이제 쪽지를 보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