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0화 (100/201)

#100화 - 입봉 1년 먼저 하시죠?

단풍 삼촌이 포워드한 메일은 넷플렉스 본사에서 온 메일 원문과 그 내용을 단풍 삼촌이 부분 번역한 내용이었다.

“와…… 영화화 투자 제안! 이거 무조건 해야지!”

메일에 적힌 내용은 내가 웹월드에서 처음으로 런칭 했던 작품인 ‘불 지르는 파이어맨’에 대한 영화화 투자 제안 요청 메일이었다.

애초부터 영상화를 염두해두고 썼던 글이긴 하지만 실제로 넷플렉스에서 연락이 오다니!

찌르르한 전율이 몸을 훑듯이 지나쳤다.

—…….

“뭐야? 왜 말이 없어 삼촌?”

—아니…… 내가 아직 설명도 안 했는데 넷플렉스가 뭔지는 알고 좋다고 하는 거니? 영화화 제안이니 좋아할 거는 알고 있었지만…….

아참, 선홍빛 넷플렉스 로고만 보고 눈이 돌아가 지금이 아직 2015년인 걸 깜빡했다.

넷플렉스의 한국 출시일은 내년인 2016년 1월.

내가 넷플렉스에 관해 아는 걸 단풍 삼촌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다.

“어허, 삼촌! 나를 뭘로 보고. 나 트렌드 민감한 사람이야. 북미 시장에서 넷플렉스 인기 많은 거 잘 알고 있지.”

—그래? 다들 모르는 것 같길래…… 그아하하! 여튼! 잘 생각했다. 한국에 정식 서비스는 내년 말쯤 나올 거라고 하더라. 올해는 호주랑 뉴질랜드 시장 진출에 집중하고 있고.

‘……아니야 삼촌. 정확히 내년 초 1월 7일에 서비스 시작할 거야.’

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굳이 전하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넷플렉스가 언제 한국에 상륙하냐가 아닌 내 글이 넷플렉스에서 영화화가 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와…… 진짜 신기하긴 하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삼촌. 불지파는 원래 영상화 계획하고 쓴 글이란 거. 그런데 소설을 보고 컨택이 올 줄은 몰랐네.”

—그으흐흐. 소설이 아니라 웹툰 보고 연락준 거랜다.

“웹툰?”

되묻는 말에 단풍 삼촌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거친 코웃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글로는 내용을 바로 파악하기 어렵잖아. 그런데 그림으로는 작품 분위기 등이 쉽게 파악이 되니까. 내가 포워드한 메일엔 핵심 내용만 추려서 번역해 뒀는데, 조금 있다가 전체 내용 다 번역해서 보내줄게.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웹월드 웹툰으로 런칭한 건 지난달인 8월 14일. 고작 보름이 조금 더 지난 시간인데 웹툰을 보고 연락을 받았다는 걸 보니 다시 한번 그림 콘텐츠의 파괴력을 체감하게 된다.

‘불지파 파급력이 엄청나긴 하지. 웹월드에서 배너부터 엄청 밀어주고 있고.’

불지파가 런칭한 이튿날,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 역시 테일랜드에서 웹툰으로 런칭을 했다. 신기하게도 소설 매출과 연독으로 봤을 땐 남성천과 불지파가 비등비등했었는데 웹툰화가 되고 나서는 불지파의 매출이 압도적이다.

미리보기 특성상 다음 회차에서 액션 비중이 더 클수록 구매수가 높아진다고 하는 게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우선 회신부터 할게. 관심 의사를 보인 거니까. 그리고 하나 유의할 게 이 넷플렉스란 곳 자체가 하나의 영화관이라고 보면 돼. 보낸 메일에는 자세히 안 적어 뒀지만 넷플렉스 오리지날 콘텐츠로 제작을 하고 싶다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면…….

단풍 삼촌에게 넷플렉스뿐만이 아니라 이어서 한국에 출시될 각종 OTT 서비스에 관해 설명을 해주고 싶었으나 그냥 잠자코 들었다. 영화화 제안이 왔다는 것 자체를 단풍 삼촌 역시 무척 기뻐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대략 이런 식이지. 내가 따로 정리한 것도 원본 메일 모두 번역해서 줄 때 같이 보내줄 테니까 확인해 보고. 아, 그리고 넷플렉스에서 제작사 아는 곳 있냐고 물어보네?

“영화 제작사?”

—어, 뉘앙스가 아는 제작사가 없으면 도움을 줄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할래?

내가 아는 제작사라곤 스튜디오 해츨링뿐.

다만 스튜디오 해츨링은 드라마 제작사다.

2019년도 후반엔 중견 영화 제작사 지분을 사들여 영화사 쪽으로 발을 넓히긴 했지만 흥행한 영화는 없었지.

“제작사는 우선 고민해보겠다고 알려주고 투자 제안은 바로 승낙해줘.”

—오우케이.

BS북이라는 쓰레기통에서 한우석과 김영진이라는 썩은 이가 빠지니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 같다.

“와…… 아하하! 미쳤네 진짜. 넷플렉스라니! 넷플렉스!”

방음이 잘 안 되는 오피스텔이었기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쇼파로 달려가 쇼파 쿠션에 주먹질을 연타했다.

쇼파 쿠션 위로 몽글몽글 먼지가 올라올 때쯤 뜨겁게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달리 마음은 좀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제작사라…… 어디를 연락해 봐야 하려나? 아니지. 넷플렉스에서 직접 연락 왔으니 우선 감독부터 알아봐야겠는데?’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아름다우신 작가님에게.

* * *

넷플렉스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 다음날.

한적한 토요일 오전에 나는 이태원에 도착했다.

“스타작가 작가님! 그동안 잘 계셨어요?”

“못 말려 정말. 매번 스타작가 작가래.”

“하하, 잘 지내셨죠, 작가님?”

“물론이지. 우리 정우 씨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요즘 연애라도 하나?”

아직 영업도 하기 전인 이른 시간에 나는 스타작가 윤선미의 루프탑 바(bar)로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코끝을 찡긋거리며 다가온 그녀는 늘 그렇듯 아름답고 당당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하긴 하죠.”

“정말? 설마 일하고 연애한다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

“에이, 아니죠. 일하고 약혼했고 조만간 결혼도 하려고요.”

“어쩜 볼 때마다 능글맞아지는 것 같아. 우선 앉아요.”

“하하하. 네, 작가님.”

옆집 누나처럼 서글서글한 그녀의 성격 때문이지 윤선미와의 대화는 늘 편했다.

자리에 앉은 윤선미가 생글생글 소녀 같은 미소를 건네며 부탁했던 말에 대해 꺼냈다.

“그제 통화하고 알아보니까 의견이 좀 분분하더라고. 정우 씨도 알다시피 나는 브라운관의 요정이잖아.”

“이제 아예 대놓고 말하기로 하셨군요?”

“후훗, 뭐 어때? 우린 숨김 없이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면서?”

주위에 누가 듣기라도 했으면 심각한 오해로 몰매를 맞아 죽어도 할 말 없을 발언. 그런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었기에 나는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윤선미는 까르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이에요, 나도 영화 촬영을 몇 번 해보긴 했지만 내 필모그래피는 드라마 위주잖아? 그래서 아는 배우랑 감독들한테 좀 알아봤는데 넷플렉스에서 상영하게 되면 영화관 상영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독립 영화관 말고는.”

윤선미가 하는 말은 결국 영화관 상영을 포기해야 하기에 매출 부분이 걱정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아니다.

“그건 괜찮아요. 넷플렉스에서 투자 금액을 적게 줄 것 같진 않거든요.”

“후훗, 그래? 영화는 처음이면서 어쩜 이렇게 자신만만하실까요? 우리 대표님? 이틀 사이에 새로 배운 게 있나봐?”

윤선미가 유리잔에 담긴 물을 넘기며 요염한 미소를 지었고 나 또한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제가 감이 좀 좋은 거 아시잖아요. 스타작가 작가님 글도 대박 날 거 미리 알았고.”

“어머, 자기가 교정 봐줬다고 지금 금칠 하기야?”

“금칠이라뇨. 정말 투자 금액은 적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요.”

영화 쪽엔 무지한 내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 그건 지금 시기가 아직 2015년 9월이기 때문이다.

‘넷플렉스 한국 첫 오리지날 작품 순자가 개봉하는 건 내 후년인 2017년 6월 29일니까.’

공 감독의 순자가 한국 최초 넷플렉스 오리지널 영화였기에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제작 기간이 내년인 2016년도 4월부터 8월까지였다는 걸.

‘그리고 순자 감독이 넷플렉스와 계약하면서 받은 투자 금액이 5천만 달러였지. 요즘 환율이 1,200원 선이니 그럼 단순 계산으로도 600억이야.’

하지만 순자처럼 막대한 투자금을 받지 않더라도 이번에 넷플렉스와 계약을 성사시키면 한국에서 오리지날 콘텐츠로 가장 먼저 출시된 영화라는 타이틀 또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순자와 비슷한 시기에 런칭할지도 모르지.’

뭐가 되었든 현재 한국 시장을 향한 넷플렉스의 태도가 어떤지 훤히 알기에 넷플렉스와 계약을 맺게 되면 최대 50만 달러까지는 받을 수 있을 테다.

“저…… 안녕하십니까? 하진성이라고 합니다.”

“어머, 하 감독님이시군요? 전화드렸던 윤선미예요. 이쪽은 코즈일 작가님이시구요.”

“안녕하세요 코즈일입니다.’

넷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 와중 중년 사내가 루프탑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내는 건장한 덩치와 달리 잔뜩 긴장한, 아니, 조금은 주눅 든 모습이었다.

“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 저랑 뵌 적이 있었나요?”

놀라 묻는 윤선미의 말에 하진성 감독은 민망한 듯 뒷목을 긁적였다.

“예전에 윤선미 선생님께서 수술의 역사 촬영하실 때 연출부에 있었습니다.”

“어머머머! 수술의 역사? 그게 언제쩍인데에? 웬일이야? 너무 반가워요! 아니, 몰라봬서 죄송해요!”

“아, 아이고, 아닙니다. 조연출도 아니고 연출부에만 몇 명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다 기억하시기 어려운 일이죠.”

수술의 역사는 윤선미가 찍은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지금 시점보다 10년도 더 전에 나온 영화여서인지 윤선미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하진성 감독을 무척 반가워했다.

“아직 입봉작도 없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불러주셔서—”

“선생님 말고 선미 씨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편하거든요.”

“아하하…… 예에…….”

여전히 머쓱한 표정을 짓는 하진성 감독에게 윤선미는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부른 게 아니에요. 전화로는 제가 자세히 설명을 못 드렸지만 오늘 미팅은 코즈일 작가님께서 주선하신 거여서요.”

“아…… 그, 그렇군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꾸벅이던 하진성 감독의 시선이 내게 슬금슬금 기어왔다.

“그런데 코즈일 작가님께선 저를 어떻게……?”

“제가 소문을 많이 들어서요.”

“소문이요?”

“예, 감독님께서 느와르 쪽에 특히 재능이 많으시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제 글은 읽어보고 오셨을까요?”

“아! 예예! 물론입니다. 참혹한 세기말 분위기에 주인공은 복수를 바라보는 상당히 과묵하고 묵직한 성격이더군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조연들의 경쾌한 대사로 읽는 내내 몰입도와 재미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역시, 사람을 잘 봤다니까.’

내가 제작사를 찾기 전에 감독부터 찾은 건 이유가 있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아직 입봉을 하지 못한 15년 차 무명 감독.

‘하지만 맛깔나는 찰진 대사와 액션 기획과 연출로 한국 액션 영화에 한 획을 그은 감독이지.’

45세 무명 감독 하진성.

그는 사냥도시의 감독이었으니까.

‘사냥도시 크랭크 인 전에 제 작품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입봉 1년 먼저 하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