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팀장이라뇨?
“아, 아니. 대표님! 지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입사 반년도 안 지난 신입입니다. 파트장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바로 팀장이라뇨?”
잠시 당황하던 김동현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는 오성민 대표와 본부장들의 표정에선 놀람이나 당혹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건가? 오진아 매니저는 원래 표정이 저러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고.’
“그래, 김 팀장. 뭣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는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이제 우리 회사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어?”
오성민 대표의 말이 존대에서 하대로 바뀌었다.
제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순간이다.
“바뀌는 건 바뀌는 거지만 그래도 이건…….”
“한우석 팀장만 봐도 그래. 팀장급 중에서는 우리 회사 입사한 지 가장 오래됐잖아?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어? 믿음의 결과가 횡령이야, 횡령!”
“…….”
대표가 오진아 매니저를 팀장으로 앉히겠다고 선언하는 걸 보면 이미 오진아 매니저 그리고 본부장들과도 입을 맞췄을 터. 하지만 그런 내색은 조금도 없이 미간을 구기며 언성을 높이는 대표의 모습이 웬만한 배우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한우석 그 도둑놈뿐만이 아니지 그전의 최진혁 팀장도 연차는 높았지만 결과는 그닥이었다는 거, 김 팀장도 잘 알잖아? 이게 다들 실적이나 능력 위주가 아닌 연차만 쌓이면 진급하는 시스템 때문에 생긴 일 아니겠어?”
“…….”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일까?
대표의 말에 김동현 팀장의 입이 돌처럼 굳어졌다.
“물론 김 팀장이 판무 1, 2팀 모두 다 관리하면 좋겠지만, 지금 2팀 일만 해도 바쁘잖아? 거기다 1팀은 워낙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으니 팀장을 따로 뽑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마음에도 없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김동현 팀장은 습관처럼 하던 대답마저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뿐일테고.
‘진아 매니저, 대단하네. 아무리 진아 매니저라도 한우석이랑 김영진이 선인세로 그런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건 미리 알지 못했을 텐데……. 대체 언제 이런 일을 꾸민 거야?’
나와 비밀 계약을 한 진아 매니저가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판무 1팀에서 생긴 이번 사건에 관해선 조금도 알지 못했을 터.
그 짧은 시간에 상황을 판단하고 그걸 오성민 대표에게 연락해 팀장 자리를 달라고 구워삶은 게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거기다 오진아 매니저가 한 행동은 자신의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였기에 그녀가 속내를 숨기고 차근차근 준비한 이 모든 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하지만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진아 매니저의 실적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팀장은 한 팀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김동현 팀장은 대표의 결정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진아 매니저가 지금까지 업무적으로 실수가 있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경력은 둘째치더라도 실무 경험이 턱없이 적습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걸 재 때 대처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김동현 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잠자코 대표와 김동현 팀장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오진아 매니저가 대화에 참전했으니까.
“실무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출판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진아 매니저는 대표와 본부장 그리고 팀장 사이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한우석 팀장님은 플랫폼에서의 경력도 실무 경험도 누구보다 많으셨죠. 하지만 BS북으로 다시 돌아오신 지 단 2달 만에 우리 회사의 신뢰도를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트렸죠.”
오진아 매니저의 감정 없는 시선이 김동현 팀장에서 본부장들 그리고 오성민 대표를 향해 차례차례 옮겨 갔다.
“제 짧은 경력을 우려하시는 건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손상된 BS북의 평판과 신뢰도를 빠르게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출판 본부의 그 누구보다 빠른 실적을 낸 것처럼요.”
당돌하면서도 강단 있는 오진아 매니저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동현 팀장은 옅은 탄성을 내뱉었다.
“제가 판무 1팀 팀장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BS북의 이름을 다시 장르 문학계의 정상으로 올려놓겠습니다.”
“…….”
말문이 막힌 김동현 팀장 대신 오성민 대표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대로 진행 합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선인세 깡이라는 어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 마당에, 능력 좋고 실적 좋은 신입이 팀장 한다는 게 이상하게 볼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스윽—
김동현 팀장이 뭐라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대표는 한쪽 손을 슬쩍 올려 자신의 말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물론 김동현 팀장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야. 밑에 직원들 관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제 팀장이면 팀장급 미팅도 따로 진행하고 플랫폼과의 미팅도 별도로 진행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오성민 대표의 시선이 이번엔 나를 향했다.
“그래서 1팀 파트장으로는 진아 씨 다음으로 가장 실적이 좋은 정우 씨가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비록 엘가에 코즈일이 넘어가긴 했지만, 실적으로는 정우 매니저가 진아 매니저 다음으로 가장 높으니까.”
‘이게 뭔…….’
나도 모르게 이게 뭔 개소리냐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 오진아 이 앙큼한 여자가 내게 서포트를 해달라고 했던 말이 뇌리에 스치듯 떠오르는 그때.
“정우 매니저가 그동안 계약한 작품들이 BS북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었다는 건 부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2팀 매니저로 있는 창윤 매니저도 있고—”
“김 팀장. 내가 말 하지 않았어요? 1팀은 능력 위주! 실적 위주로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고요!”
오성민 대표는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냐는 듯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김동현 팀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정우 매니저가 1팀으로 가버리면 저희 2팀의 인원은 이제 저와 조성훈 파트장, 이창윤 매니저 셋뿐입니다. 지난달에 황건일 매니저도 1팀으로 빠졌는데 2달도 안 지나서 팀이 반 토막이 되는 게 아닙니까?”
“이번 일은 김동현 팀장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대신 이번에 1팀 신입으로 들어온 매니저 6명 모두 2팀으로 보내줄게요. 그럼 업무량도 확연히 줄어들 텐데. 어때요?”
“……6명 전부를 말입니까?”
되묻는 김동현 팀장의 목소리에서 고민이 느껴진다. 6명의 추가 인력이 더해지면 나와 오진아 매니저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가 이탈한 것을 빼고서도 추가로 3명의 인력이 더 늘어나는 거였으니까.
“그래요. 대신 한우석이랑 김영진이 마구잡이로 계약하고 망친 작품들 수습하는 데는 도움을 좀 많이 줬으면 합니다. 1팀 인력이 사실상 모두 2팀으로 넘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
김동현 팀장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때, 오성민 대표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정우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표가 짧게 던진 말에서 깊은 뜻이 느껴진다.
내 후임이었던 사람이 이제 선임이 되는데 잘 받들어 모실 수 있는지를 묻는 뜻이.
‘서포트를 원하신다면야. 제대로 해 드려야지.’
나는 속내를 감추고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진아 팀장님을 도와 BS북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긍정이 가득 담긴 말을 건넸음에도 오성민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작가와 회사를 기만하고, 창립 이래 횡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습니다. 오진아 씨와 박정우 씨의 진급과 팀 배정 역시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개할 대비책 중 하나고.”
오성민 대표는 BS북에서 최근 연달아 발생했던 일들이 떠오르는지 미간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오진아 팀장 그리고 박정우 파트장.”
““네.””
“현 상황이 회사로서는 위기지만 두 분께는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회를 주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할 거예요. 기한은 12월. 올해 말까지입니다. 과연 내 선택이 맞는지 오 팀장과 박 팀장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 셋이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표가 오진아 매니저를 향해 쏘아내는 시선은 기대를 품었다기보다 언제든 내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기한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1팀은 해체됩니다.”
“1팀이 해체된다면 어떻게……?”
김동현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오성민 대표는 짙은 콧김을 내쉬었다.
“2팀으로 통합 흡수되고 파트 체제로 변경된 상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가 대표실에서 오간 후, 기존 판무 2팀 매니저들은 모두 대회의실로 모였다.
1팀의 주축인 두 명이 하루아침에 물갈이되는 상황이었기에 김동현 팀장도 이 불편한 급보를 빨리 전달해야 했으니까.
“아니…… 말도 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어떻게 진아 매니저가…… 정우 매니저가!”
물론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게 조팟은 분개했다. 어떻게 이따위 조직 개편이 있을 수 있냐며 애처럼 눈물을 글썽였지만, 솔직히 안쓰러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조팟은 실력과 인성의 부족함을 모두 겸비한 폐기물이었으니까.
“그래도 어찌 보면 이건 기회네요. 두 분 다 축하드려요. 이제 저보다 직책은 높아지지만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요.”
갑작스러운 소식에 이창윤 매니저 또한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창윤 매니저는 이내 우리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창윤 매니저는 평소 매니저 일도 바빠 죽겠는데 파트장으로 올라가면 고작 월에 몇만 원 더 받게 되면서 회의는 부쩍 많아져서 싫다고 했던 사람이니, 그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이해되긴 했다.
‘그럼 어디……. 나도 이제 궁금증을 좀 해소해 볼까?’
판무 2팀으로서의 마지막 회의가 대회의실에서 마무리되고 나는 회사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오진아 매니저, 아니, 이제 팀장이 된 그녀와 함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일언반구도 없이?”
“서포트 잘해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물은 말에 오진아 매니저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고 나는 그녀를 가자미눈으로 흘겼다.
“정우 매니저님이 그런 표정으로 보니까 재미있네요.”
“매니저가 아니라 파트장입니다 팀장님. 졸지에 진급하게 됐는데, 진짜 말 안 해 줄 거에요?”
한적한 카페였지만 오진아는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선 슬쩍 미소를 내뱉었다.
“아버지한텐 주말에 말씀드렸었어요. 회사를 팔 때 팔더라도 제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더 비싼 값을 받고 팔지 않겠냐고요.”
“그리고요?”
“솔직히 말씀드렸죠. 지금 판무 1팀이나 2팀이나 돌아가는 꼴이 너무 개판이고 경진 오빠도 30억 유치한 것 외에는 제대로 회사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없다고요.”
웃음을 갈무리한 오진아 매니저의 표정이 다시 원래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또 제 최근 성과를 보여드리면서 만약 판무 2팀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 저한테 기회를 달라고 했죠. 물론 그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저도 몰랐지만요.”
이어진 설명으로 오진아 매니저는 경찰들이 회사에 들이닥쳤을 때, 가장 먼저 이번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오성민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주축으로 한 팀 개편을 요청했다고 하고.
‘나를 파트장으로 데리고 간 것도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라……. 재미있는 사람이네?’
남들이 겪기엔 술안주용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오진아 매니저는 자신의 혈연과 실적 그리고 능력을 토대로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듣자 내 입가엔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때요? 저랑 같은 배 탄 기분? 뱃머리는 제대로 움켜쥐고 있죠?”
“그렇긴 하네요. 그렇다고 팀장 자리로 너무 좋아하진 말죠, 우리가 손잡은 게 고작 진아 씨 팀장 자리 앉혀두려고 한 거 아니잖아요?”
장난 섞인 내 말에 오진아 팀장 또한 미소로 화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박정우 1팀 파트장님.”
“저도 잘 부탁합니다, 팀장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