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97화 (97/201)

#97화 - 그럼 편하게 말 할 수 있겠네.

“이게 무슨 헛짓거리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서로 이동해서 말씀하시죠.”

“이거 왜, 왜 이러세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우석 팀장님이! 아니 한우석 저 인간이 다 시켜서 한 일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고요!”

“김영진이! 안 닥쳐, 이 새끼야?”

“씨발 욕 하지 마 이 사기꾼 새끼야! 니가 시킨 게 맞잖아!”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닥쳐 병신아!”

먼저 조용히 서로 이동한 황건일 매니저와 달리 한우석 팀장과 김영진 파트장 사이에선 벌써부터 분열이 일어났다.

‘기가 차네. 도둑놈들도 저것보단 더 의리가 있을 텐데.’

황건일 매니저가 먼저 서로 이동한 후 경찰들은 소회의실과 대회의실에 한우석 팀장과 김영진 파트장을 따로 분리해 조사를 했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1시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한우석 팀장과 김영진 파트장은 서로 네 탓, 내 탓을 하며 고성을 지르며 경찰들과 함께 회사를 빠져나갔다.

“와, 씨! 이게 뭔 일이야? 아니 정우 매니저! 말 좀 해봐요!”

조팟놈은 경찰들이 나감과 동시에 촉새처럼 입을 나불거렸다.

“아니, 카톡으로도 계속 물어봤는데 왜 대답이 없어? 아까 정우 매니저도 조사 받았잖아요. 그런데 정우 매니저는 왜 안 가고—”

“쓰읍, 조팟!”

지원군의 등장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계속 무시하기도 귀찮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내가 다른 팀 일엔 신경 쫌 끄랬지!”

“아니…… 아니, 그래도 건일 매니저는 우리 팀 있다가 간 거니까 우리도 좀 알아도 되잖아요!”

“흠흠, 그건 그렇긴 한데……. 간만에 다들 커피나 한잔할까? 업무 진행 얘기도 좀 할 겸?”

“에이씨, 것 봐. 팀장님도 궁금했으면서. 얼른 나가요.”

김동현 팀장을 아군이라 생각했던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아니…… 적군이었냐? 주간 회의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무슨 업무 진행 얘기를 나가서 또 해?’

황건일 매니저와 했던 대화가 아직 맴돌아서인지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회사에 경찰이 들이닥친 건 회사 창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니, 이들의 궁금증을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오진아 매니저 또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하는 표정이고.

‘아니지…… 어차피 회사에 다 알려질 건데. 차라리 내가 먼저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조팟놈이 망상을 나불거리게 하는 거보다.’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나서부터 각 팀마다 수군거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괜한 오해가 눈덩이 불어들 듯이 점점 커지기만 할 터.

‘우리 2팀이 밖으로 나온 지금도 신나게 뒤땅을 까고 있겠지.’

BS북 대표 토렌트인 조팟놈이 잘못된 정보로 언제 또 촉새처럼 입을 놀릴지 모르는 일.

어차피 조팟놈 귀에 들어가면 반나절, 아니, 2시간도 안 지나 옆 팀 신입들 귀에까지 다 들어갈 테다. 그러면 차라리 선수를 치는 게 나을 테고.

‘꺼지지 않는 확성기라면 내가 직접 써먹는 게 나을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2팀은 회사와 조금 떨어져 있는 널찍하고 조용한 카페로 이동했다.

그리고 각자 주문한 음료가 다 나오기도 전에 조팟놈은 내가 경찰의 부름에 소회의실로 가 황건일 매니저와 나눈 대화를 못 들으면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아…… 이 파멸의 주둥이 새끼. 대체 이딴 놈을 누가 뽑은 거야?’

급한 불을 꺼달라는 듯 다급히 외치는 조팟의 애절한 울부짖음에 나는 천천히 황건일 매니저가 내게 했던 말을 전했다. 물론 약간의 각색을 더해서. 나는 소설가니까.

“와아…… 한우석 팀장님이랑 김영진 파트장님, 진짜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무서운 사람은 무슨! 와, 뭐 그딴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 다 있어! 아니 건일 매니저를 그렇게 겁주고 겁박하고 협박을 해? 이게 사람 새끼야 동물이야?”

내 설명을 모두 들은 조팟놈은 이걸 어떻게 퍼뜨려야 하는지 궁리하는 표정이었고 가장 성을 낸 건 김동현 팀장이었다.

“진짜, 너무하네요. 작가 돈을 함부로 쓰는 것도 그렇지만. 주머니 사정 뻔히 나쁜 거 알고 그걸로 이용해 먹은 거잖아요? 뭐 그런 악질이 다 있데요?”

김동현 팀장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창윤 매니저 또한 1팀 팀장과 파트장을 향해 강한 적개심을 보였다.

“…….”

오로지 오진아 매니저만 사철나무같이 아무런 표정의 미동이 없을 뿐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정우 매니저가 말한 게 다 사실이면 1팀은 어떻게 해요?”

“뭔 말이야? 1팀은 어떻게 하냐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아 당기던 파멸의 주둥이가 뱉은 말에 김동현 팀장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한 팀장이랑 김 팟이 짤리는 정도가 아니라 쇠고랑 차게 생겼잖아요. 그러면 1팀 팀장하고 파트장 자리가 공석일 거 아니에요?”

조팟놈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서라 조팟아. 우리 대표님 모르시냐? 1팀은 성역이야, 성역. 우리 같은 불가촉천민은 1팀 팀장 못 된다고. 이번에도 외부 인력 데려오시거나 아니면 성골이신 강경진 본부장님이 다시 맡아서 하시지 않겠냐? 그러니 생각 비우라고.”

“아니…… 웬일이에요? 팀장님답지 않게?”

“조팟님아, 내가 뭐요?”

“뭐긴요. 팀장님이 능력이 없지 야망이 없는 분은 아니셨잖아요?”

“뭐, 인마?”

오늘도 어김없이 쏘아진 조팟놈의 필터 없는 말에 김동현 팀장은 두툼한 손으로 조팟의 뺨이라도 갈길 것처럼 슬쩍 올렸다가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며 다시 팔을 내렸다.

“솔직히 판무 1, 2팀 종합 팀장 해볼까 하는 생각도 예전에는 몇 번 했었지.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 지금 자리나 얇고 가늘게 지키는 게 낫지, 계속 사건 터지는 1팀 보면 굳이 종합 팀장 한다고 골머리 썩을 필요 없어 보이더라고.”

“후……. 간만에 팀장님과 생각이 일치하네요.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팀에서만 계속 사건 사고가 나는데 괜히 1팀 팀장 자리 맡았다가 안 좋은 일 생기면 수습하기 골치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요.”

“조팟아.”

“예?”

“……아니다.”

김동현 팀장이 삼킨 말이 ‘니가 무슨 팀장이야 새끼야?’인 게 고막에 때려 박히는 듯 선명했다.

하지만 김동현 팀장도 나도 이창윤 매니저도 심지어 오진아 매니저도 고개만 주억거릴 뿐, 말을 덧붙이진 않는 그때, 김동현 팀장의 폰이 울렸다.

“예, 대표님. 잠시 팀원들이랑 밖에서 회의하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좀 어수선해서……. 예예, 지금 바로…… 예? 진아 매니저랑 정우 매니저도요? 예 알겠습니다.”

김동현 팀장이 통화 종료를 누르자마자 조팟놈의 뱁새 입술이 달싹였다.

“대표님이에요? 뭐래요? 진아 매니저님이랑 정우 매니저님은 왜요?”

연달아 몰아치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조팟님아. 네가 내 상전이세요? 무슨 보고를 하래, 쯧.”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 가지고 왜 그러세요?”

“아, 됐고. 대표님이 이번 1팀 일로 할 얘기가 있다고 부르시는 거라 나도 잘 몰라, 인마.”

김동현 팀장은 남은 음료를 먹어 없애듯 한번에 빨아들이며 자리에서 일어 섰다.

“정우 매니저, 진아 매니저도 갑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라면 가야지 우리가 뭐 별수 있나?”

“네, 알겠습니다.”

“네.”

“조팟이랑 창윤 매니저는 마저 마시고 들어와. 우리 먼저 일어설 테니까.”

그렇게 김동현 팀장 그리고 오진아 매니저와 함께 우린 대표실로 이동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경찰이 불러서 황건일 매니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눠서라고 해도 진아 매니저는 왜……?’

김동현 팀장을 뒤따라 걸으면서 나란히 걷던 오진아 매니저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폰을 보라며 손가락질했다.

—오진아 매니저님: 서포트 잘 해주세요.

—서포트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뜻인지 모를 말에 다급히 카톡을 보냈지만 오진아 매니저는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지 내 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내가 입모양만 뻥긋거리며 톡을 다시 확인하라는 제스처를 취해도 본체만체할 뿐.

‘이것 봐라?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자기 아빠 만나는 거니까 자긴 딱히 껄끄럽지도 않다는 거야 뭐야?’

“대표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 고민은 그리 길어질 수 없었다.

고민하는 사이에 김동현 팀장이 대표실 문을 열었으니까.

“어, 다들 와서 앉지. 1팀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대표실에는 오성민 대표뿐만이 아니라 이상철 출판 본부장 그리고 정병헌 운영 본부장도 함께였다.

‘이야, 대단하시네? 회사 꼴이 개판인데 다들 골프복 입고 있는 것 보소.’

라운딩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급히 온 모습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표와 본부장들의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오진아 매니저랑 닮긴 했네.’

오진아 매니저가 들었다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성민 대표와 오진아 매니저의 짙은 쌍꺼풀을 보니 외탁 100%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부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다들 무슨 상황인지 아니까 본론만 말할게요. 판무 1팀 한우석 팀장 그리고 김영진 파트장은 금일 부로 직무 유기 및 선인세 횡령으로 인해 해고 처리됐습니다. 바로 법적 조치 취해서 선인세는 회수 처리하기로 했고 형사 고소도 바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는…….”

오성민 대표의 낮은 목소리에 황건일 매니저의 이름이 나오자 괜스레 내 일이라도 된 양 긴장이 됐다.

“일단 두기로 했습니다. 1팀에 지금 신입들만 바글거리는 상황인데 당장 수습할 방법도 없으니까.”

탐탁지 않은 말투로 내뱉는 대표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은 건, 이번 1팀 팀장 그리고 파트장 자리 공석 때문입니다.”

김동현 팀장의 눈이 지난달 사 두고 잊고 있던 로또 당첨금을 이제 막 확인한 사람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상철 본부장님 그리고 정병헌 본부장님과 고심을 거듭해서 한 결정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하핫! 물론이죠 대표님! 저는 대표님 결정, 아니, 대표님과 본부장님들의 결정이 오진아 매니저를 팀장 자리에 앉히는 거라도 군말 없이 따르겠습니다.”

“오, 그래요? 그럼 편하게 말 할 수 있겠네. 안 그래도 그거 말하려고 부른 겁니다.”

“네? 지금 뭔가…….”

잘못 들었습니다만? 이 흐려지는 말꼬리와 함께 생략된 기분이다. 하지만 놀랄 새도 없이 김동현 팀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만?”

“아니, 말 잘했어요. 우리 김 팀장님이 확실히 MZ세대라 깨어 있는 분이어서 다행이야.”

오성민 대표는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오진아 매니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오늘부로 오진아 씨가 판무 1팀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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