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 선인세 카드깡.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인세를 카드깡처럼 썼다는 게?”
황건일 매니저의 말을 듣고서도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말의 진의가 어렴풋이나마 읽혔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작가님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더군요.”
아니길 바랐던 그 말이 황건일 매니저의 입에서 나오자 가슴이 철렁인다.
“어느 날 저녁……. 한우석 팀장님께서 따로 부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김영진 파트장님도 계셨고요.”
“……거기서 무슨 얘길 나눈 겁니까?”
내 물음에 황건일 매니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어진 짧은 침묵. 나는 잠자코 인내했다.
그의 마음이 준비 되기를.
“처음에는…… 평범한 일상 대화였습니다. 판무 1팀으로 들어와서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다…… 한우석 팀장님께서 슬쩍 제가 가지고 있는 거액의 빚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
“그러면서 부가 수입을 내는 게 어떻냐는 식으로 점점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선인세를 이용한 거였습니까?”
황건일 매니저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화가…… 대체 어쩌다가 그런 식으로 흘러간 건지도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팀장님과 파트장님께선…… 작가들에게 계약서에 적힌 금액보다 선인세를 덜 주고 나머지 금액을…… 착복한다고 하셨어요.”
“아니…….”
나도 모르게 흘린 옅은 탄식에 황건일 매니저의 몸이 움찔댔다.
“차, 착복이라는 말을 쓰진 않았지만, 상황 자체는 그랬습니다. 작가가 2천만 원 선인세를 받으면 천만 원을, 5천만 원 선인세를 받으면 2천 500만 원 같은 식이라고 했으니까요…….”
“…….”
내 두 귀로 직접 들으면서도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선인세란 애초에 온전히 작가의 몫이 되어야 하는 돈.
‘그걸…… 반을 가져갔다고? 아니, 애초에 그걸 나눈다는 게…….’
나눠 갖는다는 표현은 결코 선인세라는 단어와 공존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내 말문이 막힌 것과 달리 황건일 매니저는 얼었던 입이 풀렸는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엔 술자리에서 있을 법한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기려 했습니만…… 결코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
“제가 거절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건지, 정말 상세히 알려 주시더군요. 어떤 작가에겐 얼마를, 누구에겐 얼마를 받았다는 식으로요. 심지어 권당 100씩 주는 선인세도 50만 원씩 따로 챙긴다고 했고요.”
“…….”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선인세의 반이나 되는 큰 금액을 작가들이 선뜻 넘겨 줬다는 게.
“작가들이 자신에게 손해인 그런 계약을 왜 묵인했을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렇게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작가?
설명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자 황건일 매니저의 입에서 털리는 한숨이 뱉어졌다. 그리고 잠시 입술을 질끈 깨물었던 그는 한층 더 결연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기성 작가들 중에서 전업 작가. 할 줄 아는 거라면 글을 쓰는 것밖에 없지만 흥행하지 못한 작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절박한 작가. 철저히 이런 작가들로만 고르고 골랐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계약되는 작가들이 많았습니까?”
갑갑한 심경을 토하듯 물은 말에 황건일 매니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가들과 그런 이면 계약을 맺는 것을 핑계로 글을 더 꼼꼼하게 봐준다고 했습니다. 작가님들이 성공하지 못했던 글을 더욱 꼼꼼하게 봐준다는 식으로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교정과 윤문은 애초에 기본적으로 다 하는 업무잖아요?”
교정, 교열, 윤문 등은 기본적으로 모든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업무. 물론 대부분의 BS북 매니저들은 문장을 매만지고 글을 윤색하는 윤문을 하지 않는다. 많이 고민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일이니까.
‘2팀에서도 내가 교육시켰던 진아 매니저, 건일 매니저 그리고 나만 그렇게 했었지.’
굳이 물을 것도 없이 황건일 매니저는 판무 1팀으로 이동한 뒤엔 윤문까진 하지 못했을 터다. 1팀으로 건너가 계약하게 된 작품 종 수가 기존 2팀에서 그가 담당했던 작품의 수보다 훨씬 많아진 상황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들이라 하더라도 꼼꼼한 교정교열과 윤문을 덫으로 작가들과의 이면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한우석 팀장과 김영진 파트장의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단순한 교정 교열이나 윤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는 내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작가들 중에선 머릿속에 아이디어는 많은데 그게 글로 표현이 안 되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집중력이 부족해 글이 안 써지는 작가님들도 많고요.”
말없이 황건일 매니저를 응시하자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달싹이는 입술을 떼었다.
“그런 분들의 글을…… 대신 써 줬다고 합니다.”
“네?”
“…….”
믿을 수 없는 말에 나는 가빠오는 호흡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황건일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대필입니까?”
말없이 끄덕이는 그의 고개에서 답이 나왔다.
‘미친놈들. 대필을 하고 있었어?’
선인세의 반을 준다는 건 터무니 없는 액수.
만약 한우석 팀장이나 김영진 파트장이 자신에게 할당된 1억을 이미 다 이런 식으로 썼다면 그것 만으로 5천의 불로이득을 얻게 된 꼴이다.
“…….”
머리에 얼음물을 부은 것처럼 사고가 느려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황건일 매니저가 나를 불러 이런 말을 한 이유. 이제는 물어야만 한다.
“그러면…… 건일 매니저님도 이 일에 가담한 겁니까?”
“그건……!”
황건일 매니저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하지만 대답을 이어가는 것 대신 눈을 질끈 감은 황건일 매니저의 몸이 병든 닭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외면하고 싶지 않던 사실을 이제 마주해야 한다는 듯이.
“대필하는 글…… 그걸 제가…… 아니, 저도 썼습니다.”
자신이 대필 작가였다고 고하는 황건일 매니저의 말에 가슴에 통증이 인다. 마치 이전 1팀 팀장이었던 최진혁이 편집자로서, 매니저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하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처럼.
“대체 왜…….”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으려던 말을 다시 집어삼켰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빚, 그 거액의 가족 빚이 이유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처음엔 단순한 알바라고 하셨습니다.”
말문이 막힌 나 대신 황건일 매니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우석 팀장님은 종종 자신도 저처럼 젊은 시절 빚이 많아서 고생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밥을 부실하게 먹는 걸 보면 계속 눈에 밟힌다고 하셨고요.”
“…….”
조팟놈을 통해 들은 한우석 팀장의 과거와 무척 다른 말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지 않고 잠자코 듣기로 했다.
“그러면서 돈도 바로 들어오고 이중 계약에 걸릴 것도 없는 단순한 알바 일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셨죠.”
“…….”
“처음엔 좋았습니다. 퇴근한 후에 자유 시간이 없었지만…… 글 한 편을 처리하면 팀장님이 다음 날 바로 돈을 주셨으니까요.”
황건일 매니저는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 나갔다.
키워드를 전달받고 회차별 기승전결이 담긴 트리트먼트를 작성하는 건 얼마, 한 회차를 갈아엎듯이 하는 윤문은 얼마, 3천 자만 쓴 글에 살을 붙여서 5천 자로 늘리는 작업은 얼마 등 황건일 매니저에게 주어진 업무는 기괴하면서도 다양했다.
“그리고 어느 날……. 팀장님께서 제가 할당받은 선인세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시더군요. 제가 사용하지 않은 걸 다 알고 있으면서요…….”
한동안 설명을 이어 나가던 황건일 매니저는 마치 체념한 듯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할당받은 5천을 함부로 쓰지 못하겠더군요. 단지 제 돈이 아닌 것도 있지만 어찌 보면 선인세는 작가들이 받을 돈을 미리 주는 무이자 대출 같은 개념이라서인지…… 괜한 걱정으로 함부로 선인세를 드리는 계약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
“그런데 팀장님께서 제가 할당받은 선인세를 자신이 사용하면 안 되겠냐고 하시더군요. 작가 계약을 한 담당자는 제 이름으로 될 테니 작품에서 나오는 매출은 다 제 실적에 반영되리란 말과 함께요.”
황건일 매니저는 질끈 깨문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영문을 묻자 팀장님은 솔직하게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진행하는 건 안 될 것 같다고 하니 회유를 하시더군요.”
“……선인세 일부분을 주겠다고 말한 겁니까? 건일 매니저님한테요?”
황건일 매니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게 되었죠. 한우석 팀장님 그리고 김영진 파트장님이 회사에서 받은 선인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지를요.”
“지금 그 말은……. 건일 매니저님은 그전까지는 모르고 그 알바를 했다는 겁니까?”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교정하고 윤문하고 대필하던 글들이 선인세를 부당으로 이용해 계약된 글인 걸 알았다면…… 아니, 애초에 우리 회사의 글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
“팀장님께 전달 받은 원고엔 필명이나 작가의 정보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팀장님이 단지 데뷔 준비하는 신인 작가라고만 말씀하셨기에 처음엔 정말 그런 줄로만 믿고 있었습니다.”
건일 매니저가 대체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 건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제가 교정하고 대필하던 글들은 모두 런칭 예정 작들이었기에 제가 손보는 글들이 어떤 글들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돈이 되는 고수익 알바라는 생각에 어떤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글을 맡기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궁금한 것도 처음에 잠시뿐이었으니까요.”
“…….”
주먹을 움켜쥔 황건일 매니저의 손등에 핏줄이 가득 불거졌다.
“정우 매니저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하던 알바가 그런 일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선인세를 그런 식으로 악용하는 건 편집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팀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니…….”
황건일 매니저의 호흡이 가빠져 왔기에 나는 잠자코 그의 숨이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제가 알았든 몰랐든 제가 교정을 하고 대필을 했던 증거가 주고받은 증거 자료가 훤히 있는데 이제 와서 발뺌을 할 생각이냐고 협박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그래서…… 어흐흑.”
분노로 인해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다.
한우석 팀장이 더노벨로 이직할 때만 해도 알아봤지만, 놈의 지난 행보는 양아치, 아니, 쓰레기라고 불려도 부족할 정도다.
“건일 매니저님. 그럼 오늘 경찰 조사를 받는 건 뭡니까? 작가들 중 한 명이 경찰에 신고하기라도 한 건가요? 건일 매니저님의 선인세도 그렇게 악용되어서요?”
싸늘한 어조로 뱉은 내 말에 황건일 매니저는 눈가를 훔쳤다.
“아, 아닙니다. 제 선인세는 사용되지 않았어요. 그걸 막으려고 신고를 한 거고요. 제, 제가 직접이요.”
“예?”
황건일 매니저의 선인세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의 안도감보다 그가 스스로 신고를 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놀란 음성이 튀어 나왔다.
“후우…….”
황건일 매니저가 들숨과 날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위에서 실적 압박이 오든 어떤 부당한 지시가 있든 간에 편집자로의 소신을 지켰어야 했는데…… 어떤 의도가 되었든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
“이제 경찰 조사를 받으면 회사에도 다 알려지겠지만, 정우 매니저님께는 그전에…… 제가 BS북에 처음 입사 했을 때부터 정우 매니저님께 배운 대로…… 그런 편집자가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었습니다.”
“매니저님…….”
“정말…… 정말 죄송했습니다.”
황건일 매니저는 그 말을 마친 후 소회의실 문 밖에 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