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95화 (95/201)

#95화 - 회사에 웬…… 경찰이야?

“아니, 무슨 일이길래 수사 협조 요청을 회사에까지 찾아와서 하는 겁니까? 예?”

대회의실을 빠져나가니 판무 1팀 한우석 팀장이 경찰들과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한우석 팀장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잠시 따로 얘기 좀 하시죠.”

“이게 뭔…….”

“김영진 씨도 잠시 이야기 나주시죠.”

“…….”

경찰의 협조 요청에 한우석 팀장과 김영진 파트장이 끌려가다시피 대회의실로 이동했다.

“뭐야 뭐야? 이게 뭔 일이야?”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조팟놈의 남일에 참견하지 않으면 죽는 광증이 다시 발동했다.

조팟은 미어캣처럼 쭉 빼낸 얼굴로 한우석 팀장이 들어간 대회의실 그리고 판무 1팀 쪽을 번갈아 두리번거리다 1팀 쪽으로 슬쩍 다가갔다.

“건일 매니저, 이게 뭔 일임?”

“예예, 예? 저,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뭐야? 뭘 그렇게 떠는—”

“황건일 씨, 잠시 대화 나누시죠.”

“예? 예. ……예예.”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마저 다른 경찰에게 끌려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우석 팀장 그리고 김영진 파트장과 달리 황건일 매니저는 소회의실에서 따로 면담을 하는 모양새다.

“아니 이게 뭔……? 저기…… 에휴, 아니다. 신입이 뭘 알겠어.”

판무 1팀 자리에 남아있는 이들은 입사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신입 직원들.

조팟놈은 신입 사원만 보면 가오를 세우는 신입 쿨병도 있었다.

조팟놈은 판무 1팀의 신입 사원들을 보며 한숨을 내짓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목을 쭉 빼낸 도도한 모습으로.

—조팟: 아니 뭔 일임?

—조팟: 회사에 경찰이 왜 옴?

—조팟: 건일 매니저만 따로 부르는데 건일 매니저 사고라도 친 건가?

—조팟: 그게 아니면 한 팀장이랑 김 팟이 무슨 일 벌인 건가?

물론 조팟놈은 신입들 앞에서만 가오를 세우는 것이었을 뿐, 이창윤 매니저와 김동현 팀장이 있는 톡방에 온갖 억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팟님아, 제발 쪼옴! 우리도 다 같이 회의실에서 나왔는데 알긴 뭘 알아? 내가 늘 말했지? 제발 남의 팀 일에 신경 좀 끄고 살자고.”

“아…… 아니, 제가 뭘요?”

톡방에 똥 같은 말을 싸지르고선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조팟놈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하튼, 별일 아닐 테니까 신경 끄고 우리 일이나 합시다. 우리 황금손처럼.”

“쳇, 회사 분위기 딱딱해서 살지도 못하겠네.”

“뭐, 인마?”

“일한다고요.”

“어휴.”

판무 1팀 자리에 경찰들이 들이닥쳤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서도 김동현 팀장은 무덤덤해 보일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팀장님은 너무 덤덤하신데?’

조금 전, 주간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김동현 팀장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찰들을 봤을 때 놀란 표정은 꾸미지 않은 진실.

판무 1, 2팀 종합 팀장이 되는 게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 김동현 팀장은 이제 1팀 일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태도인 모양이다.

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설마……. 건일 매니저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 어?’

마치 주마등이 스치듯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판무 1팀으로 이동하고 조금씩 씀씀이가 변해가던 황건일 매니저의 모습이.

“박정우 씨,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네? 저요?”

밀려오는 상념이 마저 정리도 되지 않은 그때.

낯선 사내의 음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마포 경찰서 백민혁 경위입니다. 참고인 조사가 필요한데 잠시 동행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심장 뛰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쿵쿵댄다.

‘설마, 1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게 나를 잡기 위한 포석?’

본능을 참지 못한 시선이 옆자리의 오진아 매니저를 향했다. 그 찰나의 순간 나와 시선을 맞춘 오진아 매니저는 시선을 바로 모니터로 돌렸다.

‘아…….’

우리 일은 절대로 아니에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교정 작업을 하고 있던 오진아 매니저가 한글 프로그램 화면에 빠르게 친 글을 나만 볼 수 있을 정도로 확대시켰고 그 글을 보고서야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경찰의 소환에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은 것 같다.

“박정우 씨?”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불릴 줄은 몰라서 당황했네요.”

“아니, 이게 설명도 없이 뭡니까?”

경찰의 소환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사태를 관망하던 김동현 팀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관계자 외에는 자세히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이게 뭔……?”

“박정우 씨, 이쪽으로 오시죠.”

“팀장님, 별일 아닐 겁니다.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

“……그래. 일단 다녀와.”

오진아 매니저가 우리와 관계된 일이 아님을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럼에도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는 어려웠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만에 하나 이게 오진아 매니저나 강경진이 나를 잡기 위한 설계라면 당장이라도 엘가의 고문 변호사 그리고 단풍 삼촌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소회의실 안에 도착했다.

“……어?”

“흐흐흑. 저, 정우 매니저님.”

그리고 소회의실 안에는 홀로 흐느끼고 있는 황건일 매니저.

“황건일 씨, 부탁하신 대로 박정우 씨를 데려왔습니다. 그럼 문밖에 있을 테니 대화 끝나면 알려주시죠.”

“흐흑, 네. 가, 감사합니다.”

나를 다시금 놀라게 한 건 소회의실 안에서 울고 있는 황건일 매니저도, 참고인 조사라며 나를 부른 경찰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불러달라고 한 게 건일 매니저였어?’

풀려가는 실타래가 다시 한번 엉킨 기분.

하지만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를 부른 게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황건일 매니저라면 내가 코즈일이나 노원지귀라는 정체 그리고 엘가의 실질적인 대표가 나라는 사실이 들통난 건 아닐 테니까.

“건일 매니저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대체 뭔 일이길래…….”

황건일 매니저의 나이는 올해 스물여섯.

일반적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나이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선 그는 몇 분을 훌쩍이더니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려는 듯 억지로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후우……. 못난 꼴 보여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보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에요? 저를 부른 게 건일 매니저라는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황건일 매니저는 몇 차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정우 매니저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

“그런데 정우 매니저님 말고는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실 분이 없을 것 같았어요…….”

계속해서 늘어지는 말꼬리.

대화의 맥락을 좀처럼 잡기 어려웠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말해 보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서 도울게요.”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다시금 호흡을 고른 건일 매니저가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도움을 부탁드리려고 부른 게 아니라 지금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경찰분께도 정우 매니저님과 먼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양해를 구한 거고요.”

황건일 매니저는 목이 탔는지 책상 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선 진정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제가 판무 1팀으로 이동하고 얼마 안 지나서였어요. 정우 매니저님은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한우석 팀장님은…… 제 생각 이상으로 보통 분이 아니셨고요.”

그의 말에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황건일 매니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1팀으로 옮기게 된 이유가 기존 매니저들의 집단 퇴사 때문이었잖아요? 그래서인지 한우석 팀장님은 회사 내에서는 별말이 없으셨어요. 하지만 퇴근을 하고서도 계속 이런저런 업무를 지시하셨죠. 7월부터는 거의 매일을 그렇게 한 팀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늦은 밤이나 새벽 그리고 주말에도요.”

“…….”

한우석 팀장은 까도 까도 추문이 나오는 양파 같은 남자. 쓰레기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새끼다.

“1팀으로 옮기는 걸 더 말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건일 매니저님이 그렇게 시달리셨을 줄은…….”

“아, 아니요. 팀을 옮긴 건 결국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두서없이 말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하아…….”

황건일 매니저는 마음이 갑갑했는지 다시 물로 목을 축였다.

“한 팀장님은 퇴근 후 전화에 업무 관련 지시도 많이 하셨지만, 사적인 질문도 많이 하셨어요.”

“사적인 질문이요?”

“예……. 집은 어디냐, 가족은 몇이냐 이런 평범한 질문부터 집에 여유는 있는지, 모아둔 돈은 있는지, 빚은 없는지 같은 질문을요…….”

“…….”

“정우 매니저님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여유가 있진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천 원짜리 김밥만 사 먹었으니까요.”

결국 돈이었나?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이번 경찰 조사는 BS북 내에서 돈이 관련된 문제가 분명하다.

질끈 깨문 황건일 매니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지만 나는 잠자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본론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정우 매니저님이나 1팀 분들께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제게는 빚이 있습니다……. 학자금 같은 가벼운 빚이 아니라 가족 빚이요…….”

“가족 빚이요?”

황건일 매니저의 입꼬리에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

“예……. 아버지한테서 받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 있거든요.”

“…….”

“그리고 이런 제 상황을 한 팀장님도 아시고 계세요. 저희 파트장님도 팀장님께 들으셨고요.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선인세 관련해서 모른 척하라고 하셨던 게요.”

선인세 관련?

대체 뭐를 모른 척하라고 했던 거지?

“사랑과평화 작가님의 계약 논란 그리고 엘가 소속 작가님들의 표절 논란 등이 정글북에서 이슈가 되고 저희 판무 매니저들은 사용할 수 있는 선인세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어떤 작가든 저희 매니저가 원하면 완결 권까지 권 당 100만 원 그리고 건일 매니저님이나 진아 매니저님은 5천, 저나 다른 경력자들은 1억까지 줄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작가 계약을 할 때 선인세 금액을 정하는 건 해당 작품을 컨택한 편집자들의 재량이다. 하지만 담당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단지 금액 선정뿐.

선인세의 지급은 모두 경영 지원팀에서 이뤄지게 된다. 결국 편집자들이 선인세로 금전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뜻인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다.

“판무 1팀 내에선 카드깡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카드깡……?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짜로 물건을 산 것처럼 결제하고, 불법 수수료를 낸 뒤에 현금을 받는 카드깡처럼……. 판무 1팀은 선인세를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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