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94화 (94/201)

#94화 - 웹소계의 전원일기.

“법대로 응징한다……. 법정물이네요?”

내 핸드폰을 넘겨 받은 오진아 매니저는 회사 근처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글을 읽어 나갔다.

“1화만에 회귀. 전개는 빠르고 글도 경쾌해서 좋긴 한데……. 이것도 1화뿐인 글이네요.”

“맞아요. 저는 이 글만 계약되면 진아 매니저님이 원하는 실적은 충분히 충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거는요?”

근거라…….

하긴, 달랑 1화만 올라온 글을 보고 내가 확신에 찬 말을 하는 게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글은 확실히 돈이 될 글이긴 하다.

내가 알고 있는 글이니까.

“근거는 이번에도 감…… 이랄까요?”

“……저번에 세 작품 추천해주셨을 때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저는 감이 안 잡히네요.”

오진아 매니저는 꼴랑 1화짜리인 글을 몇 번을 돌려보고선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법대로 응징한다, 이 글도 후속 회차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면 좋을지 혹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1화만 봐서는 도통 감이 안 잡혀서요.”

“그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모르겠어요.”

“……모르시겠다고요?”

“단지 1화에 보면 주인공이 초등학생 시절로 회귀하고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얻게 되잖아요. 회귀 시점도 상당히 어리고 이능력도 얻게 되면서 나올 수 있는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할 거로 생각하거든요.”

“…….”

내가 스스로 뱉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의 뒷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연재된 내용이야 또렷이 기억하지만, 이건 말하지 않는 게 좋지. 아무래도 옴니버스 구조니까.’

법대로 응징한다의 메인 골조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능력을 가지고 매번 새로운 사건을 마주하는 식이다.

그렇기에 지난달 오진아 매니저에게 세 작품을 추천했을 때처럼 그 모든 에피소드를 다 말하기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전개로 진행할지 소재를 던져 주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조금 고민이 되긴 하네요. 정우 매니저님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시는 작품이긴 한데……. 1화만 보고선 이 작품의 진가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하죠.”

이걸 참, 나도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왜냐면 내가 법대로 응징한다를 추천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 글이 초 장편 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웹소설 역사상 가장 연재가 길게 유지된 글이기도 하고.’

내가 회귀하기 전 법대로 응징한다를 마지막으로 봤던 회차가 4,582화다.

이 글을 쓴 작가님이, 그리고 이 글이 무서운 점은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완결이 안 났다는 점이지. 무려 10년 동안이나!

하지만 법대로 응징한다가 대단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비록 연재 첫날인 오늘은 단 1화만 올렸지만 향후 3년간은 하루 2연참 3연참을 종종 하실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경이로운 점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4,582화까지 단 하루도 연재 펑크가 없었다는 점이다. 법대로 응징한다를 집필한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는 필명 값을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설명하냐 이건데…….’

내 기억이 맞다면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는 연재 둘째 날인 내일부터 미친 듯한 속도로 글을 찍어 올리기 시작할 거다.

그러니 이 작가를 잡으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내일부턴 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의 이목도 단단히 끌게 될 테니까.

“제가 진아 매니저님 교육까지 직접 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긴 한데, 저는 진아 매니저님이 절 믿고 이 작품을 계약하면 좋겠어요. 그것도 진아 매니저님이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요.”

“그렇게까지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글만먹고살지요 작가님을 반드시 계약해야만 하는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단지 감이라고 밀어 붙여보려 한다.

지난번 내 말을 믿고 계약한 세 작품 모두 대박이 났으니 진아 매니저도 내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네,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온다면 정말 매출이 꾸준히 나올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모르잖아요? 연재를 2년, 3년, 그것도 아니면 한 10년 이상 장기 연재를 하실지…….”

“푸훗, 그게 뭐예요?”

진아 매니저가 웃어?

월, 화, 수, 목, 금 매일 같은 표정인 진아 매니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게 나를 더 민망한 기분이 들게 한다.

‘진아 매니저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하겠지. 이유도 없이 좋은 계약 조건으로 해서 이 작가를 잡으라니까.’

“좋아요. 정우 매니저님 작품 보는 눈이 틀린 적도 없고, 저도 딱히 손해 볼 건 없으니 계약 제안해보도록 하죠. 그런데 정우 매니저님이 말하는 가장 좋은 조건이라면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 거세요?”

“우선 정산비는 8 대 2. 그리고 선인세는 진아 매니저님이 할당받은 금액 모두요.”

진아 매니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증발했다.

“5천 전부요?”

“네, 만약 제가 컨택한다면 간 보고 할 것 없이 처음부터 8 대 2에 5천 부를 것 같아요. 작가님이 원하신다면 거기에 권당 선인세도 별도로 지급하고요.”

“…….”

오진아 매니저는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제가 할당받은 5천 모두를 이 작가님한테 사용하면…… 권당 선인세랑 정산비 조율 말고는 올해 아무것도 더 못 하는 거 아시죠?”

결연한 표정으로 묻는 오진아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님이랑 그 조건으로 계약했다가 잘 안 되면……. 제 계획뿐만이 아니라 정우 매니저님 계획에도 차질이 있을 거란 것도요?”

“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 계약해보시라고 말씀드린 거고요.”

내 대답이 워낙 단호했기 때문일까?

오진아 매니저의 이마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도움이 필요한 얼굴이다.

“만약 작가님께서 오늘 당장 계약 하는 걸 머뭇거리시면 제 선인세도 같이 쓰시죠.”

“……네? 이 글에 그 정도까지 할 가치가 있나요?”

응, 있어요. 있고 말고.

이건 10년을 넘게 장기 연재한 글.

웹소계의 전원일기다.

물론 글만쓰고살지요 작가의 법대로 응징한다는 장장 10년 이상을 매일 꾸준히 연재한 글이기에 단점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초반 회차에 나오는 설정과 후반부에 나오는 설정 충돌 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는데, 솔직히 나보고 그렇게 글을 쓰라고 해도 10년 동안 매일도 빠짐없이, 휴재 한 번 없이 설정 오류 없이 글을 집필해 나갈 자신은 없다.

‘내게 할당된 선인세는 1억.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를 계약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금액이야.’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는 필명처럼 글만 쓰고 살았기에 회귀 전에도 작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 것은 없었다.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가 성실함의 아이콘이란 것 하나뿐. 그리고 그건 모든 작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내 선인세 1억과 오진아의 5천을 합친 1억 5천? 장담컨대 글만쓰고살지요 작가는 3달이면 그 돈은 충분히 까고도 남을 테다.

“……믿어 볼게요. 정우 매니저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면.”

“네, 대신 저처럼 냄새 맡은 다른 출판사 매니저들이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 계약 조건은 아까 제가 말했던 대로 처음부터 8 대 2에 선인세도 5천으로 말해주세요. 서울이나 서울 인근 사시는 분이시면 바로바로 직접 뵙고 계약 진행하는 걸로 하고요.”

“그렇게 해볼게요.”

이날 오진아 매니저는 끝까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정확히 한 주가 더 지난 뒤. 오진아 매니저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으아하하하하하! 와, 나! 이거이거 진짜 막내가 이렇게 잘하면 어쩌자는 거야아!”

그리고 8월 17일 월요일의 주간 회의 시간.

오진아 매니저의 얼굴에 옅은 미소 정도가 걸린 반면, 김동현 팀장은 거리낌 없이 광소를 내뱉었다.

“와, 글만쓰고살지요 이 작가님 진짜 완전 괴물이네? 연재 시작하신 지 일주일 됐는데 매일 2연참, 3연참씩 하시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본 거야? 아니, 잠깐. 정우 매니저!”

“예, 팀장님.”

“저번 주 주간 회의 끝나고 진아 매니저 모니터링 작품 봐준다고 했었잖아. 그게 이거 아냐? 그, 왜! 카페 간다고 했었을 때!”

“아아, 그거요?”

김동현 팀장의 말에 나는 이제 막 그때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그건 다른 작품이었어요. 이건 진아 매니저님이 따로 컨택한 작품이에요.”

“그래? 이거이거, 황금손이 이제 아예 진아 매니저한테로 넘어 갔구만?”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모두가 진아 매니저의 성공을 좋게 보진 않았다. 뱀심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정우 매니저, 이게 웃을 일이에요? 선배가 더 좋은 매출 뽑겠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지.”

그리고 판무 2팀의 뱀심은 늘 그렇듯 조팟놈이다. 조팟은 오진아 매니저에게 찝쩍거렸다가 호되게 당했던 내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나도 짬은 충분히 찼지.

“아~. 조팟님은 그래서 매일 얼굴 찡그리고 계시는 거세요? 매출로만 보면 조팟님이 2팀 꼴찌잖아요.”

“뭐, 뭐요?”

“아, 죄송해요. 1, 2팀 종합 꼴찌죠?”

“어허이! 씁, 황금손이 보고 계신데 어디서 목소리를 내? 조팟, 구 황금손, 여러분이 티격태격할 때가 아니야 지금!”

지난 주까지만 해도 1대 황금손이었던 내가 한 주 만에 구 황금손이라 불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조팟같이 똥손이라고 불릴 날도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공공의 이득을 위해 BS북에 더 다니게 된 이상 나도 슬슬 실력을 다시 보이긴 해야겠네.’

“우리 진아 매니저도 대단하긴 한데, 1팀 황건일 매니저도 요즘 계약 미친 듯이 하는 거 알지? 우리 황금손처럼 퀄리티 있는 작품 뽑기 어려우면 건일 매니저처럼 양으로라도 승부하자고. 특히 조팟.”

“제가, 뭘요?”

“조팟은 진짜 박리다매로 하자. 자꾸 대작 계약하겠다고 신중하게 보고 그러지 말고.”

“아니, 제가 얼마나 신중하게—”

“응, 알아. 조팟 마음 다 아는데? 이제 신중하지 좀 말자. 조팟 신중하게 계약해서 터진 작품 아직까지 뭐 없잖아. 안 그래? 조팟은 느슨하게 해, 그냥 마음을 비워 봐. 그 상태로 계약해.”

“…….”

김동현 팀장의 말이 평소보다 직설적이었기에 조팟은 마음이 상한 표정이었다. 물론 조팟의 구겨진 표정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은 없다. 조팟새낀 당해도 싼 새끼니까.

“자, 그럼 금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이번 주도 파이팅 하고…… 어? 저게 뭔 일이야?”

“……?”

주간 회의 서류를 손에 모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김동현 팀장이 대회의실 통유리창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간 내 동공 역시 크게 뜨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웬…… 경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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