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93화 (93/201)

#93화 - 찾았어요. 이 작품이에요.

아마 BS북에서 건일 매니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찾자면 그건 바로 나일 터다.

입사 후 1달간의 교육을 내가 담당했고 그 후로도 사수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며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건일 매니저 먹는 거 하나는 진짜 야무지게 잘 먹는다니까.”

“흐흐흐, 먹는 게 남는 거죠.”

“만두 나왔습니다.”

“만두도 같이 드세요. 만두는 제가 삽니다!”

“이여얼! 잘 먹을게요!”

“만두 가지고 뭘요, 하하.”

창윤 매니저, 건일 매니저와 함께 온 냉면집.

직장인들 사이에서 으레 할법한 평범한 대화였지만, 나는 이 평범한 대화에서 큰 이질감이 느껴졌다.

‘……진짜 이상하네.’

그리고 밥을 먹고 카페로 가서 음료를 마시는 상황까지. 이런 평볌한 활동을 건일 매니저와 함께한다는 게 특히 이상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김밥만 먹었었는데……. 왜 이렇게 씀씀이가 바뀌었지?’

황건일 매니저가 판무 1팀으로 옮기게 되면서 오른 건 고작 연봉 100만 원 인상. 달로 나누면 기존 월급에서 고작 몇만 원 정도 더 오르는 꼴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황건일 매니저가 매끼 나가서 밥을 사먹고 있다. 지하철 천 원짜리 김밥도 2줄 먹던 걸 1줄로 줄여서 먹던 사람이었는데? 커피까지 마신다고? 가난이 몸에 배어 있다던 그 건일 매니저가?

“어? 건일 매니저 폰 바꿨네? 와! 이거 엣지 폰!? 이거 비싸지 않아요?”

“전에 쓰던 게 많이 낡아서요. 5년 썼으니 바꿀 때 되긴 했죠, 하하.”

“아니, 월급 인상 반영 아직 안 됐을 텐데, 로또라도 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의아함을 느꼈던 건 나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에이. 로또는요, 무슨. 허리띠 졸라매면서 아껴 쓰면서 살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그렇게 사니 이제 못 버티겠더라고요. 사치는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 같이는 살고 싶어서요.”

손사래를 치는 황건일 매니저의 말에 이창윤 매니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건일 매니저도 20대 후반이잖아요. 원래 우리 나이 때 잘 먹어둬야 된대요. 그래야 나이 먹어서 골병 안 든다고 하잖아요?”

“26이면 아직 20대 중반이죠. 창윤 매니저님하고는 그래도 차이가 좀……”

“와아! 고작 두 살 차이 나는 거로 이러는 것 봐. 그래, 이제 1팀 사람이다 이거죠? 됐어! 서로 갈 길 갑시다!”

“아하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너스레를 떠는 창윤 매니저와 건일 매니저를 보니 괜히 내가 예민하게 군 걸지도 모른다.

최근 오진아 매니저에게 내 정체를 간파당했기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건일 매니저 그런데 요즘 작가 계약하는 거 장난 아니던데. 지금 실연재 몇 개예요?”

“음……. 다는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 실연재 한 스무 개는 넘을 거예요.”

“스, 스무 개? 와……. 그걸 어떻게 다 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편집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실연재란 담당하는 작품 중 실제로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작품을 뜻한다. 그리고 혼자 담당하는 게 스무 작품이 넘는다면 그건 과도하게 많은 양이다.

“하하, 어쩌다 보니까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저희 팀장님 아래서 버티려면 작품 종 수 계속 늘려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요.”

“어휴……. 그렇긴 하네. 지금은 1팀 직원들 싹 다 빠져나가서 잠잠해지긴 했지만, 한 팀장님 광증 언제 또 도질지 모르잖아요.”

“하하하…….”

커피를 넘기는 황건일 매니저의 입가에 쓸쓸함이 걸려있는 듯 보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 또한 안타깝긴 매한가지고.

‘너무 살인적인 양인데……. 더는 내가 교육시킨 방식으로 교정교열을 진행하진 못하겠네…….’

각 출판사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여도 담당 편집자에 따라 교정 스타일은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교정을 여러 번 꼼꼼하게 진행하는 순문학 출판사와 달리 웹소설 출판사들의 교정은 대개 느슨한 편. 그리고 교정 과정이 순문학 출판사와 비교해 덜 꼼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웹소설 연재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출간 전에 원고를 모두 받고 여러 번 검토하는 순문학 출판사의 시스템과 달리 웹소설 출판사에선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 유료화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1일 연재를 진행하게 된다.

‘널널하게 연재하는 작가도 최소 주에 5화 이상은 쓰지. S급 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그 정도는 연재를 해야 유의미한 수익이 생기니까.’

편집자 1명이 만약 주 7일 연재하는 담당 작가 1명만 있다면 하루에 교정을 봐야 하는 원고는 1화 분량이 5,000자 정도.

하지만 라이브 연재를 하는 작가를 20명이나 담당한다면 하루에만 최소 20화분의 교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한 화 교정 보는데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면 하루에만 400분……. 쉬지 않고 일해도 거진 7시간은 걸릴 건데…….’

물론 이것도 단순히 원고의 내용 흐름만 확인하고 오탈자만 잡는 수준일 때 가능한 시간이다.

즉, 내가 교육했던 내용처럼 그리고 우리 엘가 매니저들이 진행하는 것처럼 윤문까지 꼼꼼하게 들어가 기본 2교에서 3교씩 진행하는 식으론 결코 20분 안에 교정을 끝낼 수가 없다.

‘그것도 오탈자가 적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만약 오탈자라도 많으면 30분은 훌쩍 넘어갈 거고…….’

복병은 오탈자뿐만이 아니다.

만에 하나 스토리 전개상 이슈, 혹은 플랫폼과 약속된 수위보다 높은 내용이 나오거나 종교 이슈 등 수정해야 할 내용이 나온다면?

그걸 작가에게 바로 전달하고 그에 맞춰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문제는 그런 일이 너무 빈번히 발생한다는 거지.’

내가 담당하는 작가님들의 경우에도 가끔 전개가 산으로 가거나 내용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렇기에 한 화를 1교만 하더라도 정말 제대로 교정한다면 최소 30분 이상은 걸린다는 뜻이다.

“어유……. 건일 매니저, 진짜 밥은 제대로 챙겨 먹어야겠네요. 그 정도면 집 가서도 못 쉬고 주말에도 일할 것 같은데.”

“그렇죠. 그래서 이제는 바로 칼퇴해요. 몇 시에 퇴근하든 집 가서도 일하는데 차라리 얼른 집 가서 편한 옷 입고 일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그게 낫죠. 이 빌어먹을 회사 어차피 포괄임금제라 야근 수당도 안 나오는데. 어휴, 진짜 편집자로 밥 벌어먹기 힘들다니까.”

“하하하, 그래도 이렇게 매니저님들이랑 간만에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니까 좀 살겠네요. 저희 팀장님이랑 파트장님 안 계실 때 또 같이 먹어요.”

“좋죠. 으그으, 이제 또 일할 시간이네. 불지옥으로 다들 가시죠.”

“하하, 가시죠!”

* * *

7월이 지나고 무더운 더위와 함께 8월에 접어들었다.

8월은 다방면으로 변화가 많은 달이다.

한층 더 후끈해진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BS북 판무 1팀엔 공백을 채우기 위한 신입 매니저들이 대거 채용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변화는 오진아 매니저의 대우였다.

“진아 매니저!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야!”

“예?”

8월 10일 월요일인 오늘.

주간 회의를 진행하는 대회의실에선 김동현 팀장의 날 선 고함이 사납게 울려 퍼졌다.

“아니, 이렇게 대박 작품을 줄줄이 계약하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그것도 3 작품이나! 어허이, 이거 정우 매니저 황금 손이 진아 매니저한테 옮겨 갔나 보네!”

“감사합니다.”

‘진아 매니저…… 대단하네?’

만약 내가 그녀의 상황이었다면 머쓱한 표정이라도 지을 텐데. 하지만 오진아 매니저는 눈 하나 깜빡 않고 당당한, 아니, 특유의 냉랭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띠링—

—오진아 매니저님: 감사해요

뭐, 그래도 감사할 줄은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솔직히 말이야, 진아 매니저가 처음에 연재 회차가 1, 2화밖에 안 된 작품들 계약한다고 할 때 말릴까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선구안이 있었네, 으하하핫!”

오진아 매니저가 내 도움으로 계약하게 된 3 작품은 플랫폼을 옮기지 않고 모두 소설피아에서 그대로 연재를 진행하기로 했다.

각각 20회차 이상을 연재 중인 3 작품은 모두 소설피아 베스트 순위와 실검 순위에 오르내리며 괄목할 성적을 내는 중이다.

“아니, 초반 회차에 계약 딱 하는 선구안도 대단하긴 한데, 선인세도 따로 안 쓰고 계약 잘 마무리한 게 진짜 대단해. 매에우! 매우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선인세는 필요한 작가님께만 쓰려고 합니다.”

“아이구, 진짜 팀 막내가 이렇게 복덩이야, 복덩이!”

김동현 팀장은 딸바보가 된 사람처럼 계속해서 오진아 매니저를 칭찬했다.

“그런데, 우리 팀 말이야. 막내 빼고 다들 너무한 거 아냐? 어?”

“어후…… 팀장님. 월요일부터 왜 그러세요? 주말에 뭔 일 있으셨어요?”

“허허, 왜? 우리 조팟님 입에서 지금 왜라는 말이 나오나?”

“아, 그러니까 뭐가요!”

짜증 섞인 조팟놈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아저씨들아. 지금 우리팀 막내가 먹여 살리고 있어. 진아 매니저가 무슨 소녀 가장이야? 다들 좀 제대로 하자. 특히 정우 매니저.”

“예?”

나를 찾는 김동현 팀장의 눈빛이 매섭기 그지없다.

“믿는다.”

“……예? 무엇을?”

“제2의 코즈일. 믿어. 그래도 되지? 믿는다. 정말 믿어.”

사실 오진아 매니저에게 내 정체가 탄로 나지만 않았다면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사직서를 냈을 터. 그래서 작품 계약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때가 된 것 같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오진아 매니저와 협력을 맺고 나도 당분간은 BS북에서 더 다니게 됐으니까. BS북의 계약 조건도 많이 좋아졌고.

‘딱히 나쁠 건 없지. 강경진 놈이 쫓겨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수도 있는 플랜이니까. 먼저 나갔으면 그 꼴 못 봐서 아쉽긴 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제 나도 슬슬 다시 작품 계약에 매진할 때가 됐다. 코즈일마저 빼앗긴, 아니, 내가 엘가로 가져간 마당에 크게 비어버린 매출 공백을 메꿔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

“기억해, 정우 매니저. 이건 신뢰의 눈빛이야. 이 눈빛 그대로 계약의 눈빛으로 쓰라고. 난 믿어. 진짜 믿는다? 어?”

김동현 팀장은 내가 신작 계약에 부진을 겪는 게 신경 쓰였는지 계속해서 부담스러운 눈빛을 내게 쏘아 냈다. 그리고 내가 건넬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다들 그럼 이번 한 주도 수고하자고. 주간 회의는 여기서 끝!”

““고생하셨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때. 팀 모두가 들릴 정도의 크기로 진아 매니저를 불렀다.

“진아 매니저님, 모니터링 작품 검토해달라는 거 봐 드리려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네, 그런데 대회의실 다음 예약 걸려있네요? 소회의실도 그렇고.”

그리고 대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던 김동현 팀장은 우리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어우, 우리 2대 황금손! 그리고 1대 황금손! 카페 가서 이야기하고 와. 이걸로 마시고.”

“어? 감사합니다, 팀장님.”

“응, 영수증은 뽑아 오고! 큰 거 마셔도 돼!”

“감사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김동현 팀장에게 카드를 건네받고 1층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소설피아 앱 화면을 켜 오진아 매니저에게 보여줬다.

“찾았어요. 이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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