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오진아 매니저에게 소설피아 신인연재 작품 몇 개를 추천했고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그걸 후루룩 읽어 나갔다.
“으음……. 다 읽어 보긴 했는데…….”
“어때요?”
“솔직히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오진아 매니저는 여전히 미간을 좁힌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추천해 주신 세 작품 모두 소재도 좋고 전개 방향만 잘 잡는다면 기대도 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지금 연재된 부분만 봐서는…… 그냥 무난하다? 가 총평일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오진아 매니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신인연재 작품 추천해 주신다고 해서 조금 기대를 하긴 했어요. 그런데 모두 쌩신인 작가님들에 필력도 돋보일 정도는 아니고, 다들 첫 연재 작이어서인지 설정 부분에 구멍도 종종 부분도 있고요.”
‘음, 생각보다 평이 안 좋네?’
“솔직히 대체 뭘 보고 이런 작품을 추천해주신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말을 마친 오진아 매니저가 가자미눈이 된 날카로운 눈빛을 나를 향해 보냈다.
“설마…… 엘가에만 좋은 작품 가져가려고—”
“아,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우리 엘가는 작가님들 인성도 보고 계약하는 곳이에요. BS북이랑은 차원이…… 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뾰로통해진 얼굴을 보니 더는 장난을 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소회의실에서 오진아 매니저와 단둘이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의심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추천 드린 작품은 솔직히 진아 매니저님 신입 교육 과정 때 알려드린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눈여겨본 작품들이에요. 세 작품 다 회차수도 1화, 3화, 2화씩이고 유의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도, 댓글이나 추천글 같은 독자 반응도 없죠.”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교육받은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는 작품이니까요.”
오진아 매니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내가 진아 매니저에게 추천한 작품들은 우리 엘가 매니저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작품들일 테니까.
‘사실상 지금 연재 회차만 보고선 어떤 출판사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글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오진아 매니저가 저렇게 행동을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녀를 골탕 먹이려거나 다른 생각이 있어서 이런 작품들을 추천하는 건 결코 아니다.
“우선 진아 매니저님, 지금 이 시간은 교육 목적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결연한 내 표정에서 무언 갈 읽었는지, 순간 진아 매니저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진아 매니저님이 돋보일 정도의 실적이 될만한 작품, 저는 그런 작품을 추천 드린 게 맞아요. 그리고 현재 소설피아에서 컨택할 수 있는 작품 중에서도 지금 추천 드린 세 작품이 가장 좋고요. 다만…….”
이걸 어떻게 말하는 게 좋으려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딱히 돌려 말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
“감이라고 해두는 게 좋겠네요.”
“감이요?”
편집자가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게 걸리긴 하는데, 회귀 전에 읽었던 글인데 중반부 넘어갈수록 더 재밌고 대박 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부끄럽지만 감이에요. 하지만 지금 추천 드린 작품들은 유료화도 되기 전에 무조건 뜰 작품으로 보여요. 그러니 가급적 빨리, 아니, 오늘 당장 계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흠…….”
“감이라고 해서 그런지 더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아, 그게 아니에요.”
잠시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던 오진아 매니저는 내 말에 가벼운 손사래를 쳤다.
“저는 정우 매니저님의 보는 눈을 인정해요. 이제 연재를 시작한 지 몇 화 되지도 않은 글이지만 정우 매니저님은 제가 보지 못한 걸 봤기 때문에 추천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다만…….”
“다만?”
“추천해 주신 작가들에게 당장 연락해서 계약을 하는 건 어렵지 않겠죠. 다만 제가 읽으면서 재미 포인트를 느끼지 못한 작품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해당 작품들을 담당하게 되면 작가님들께 전개 관련해서 무슨 피드백을 드려야 할지 솔직히 감이 안 잡혀서요.”
아, 그건 문제없지.
난 그 글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단순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지. 몇 화 어느 장면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했는지까지도 기억하고 있지. 중간에 연중 때린 기간도 기억하고.’
나는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가 이제 막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각 작품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 좋을지가 떠올랐네요. 우선 첫 번째로 추천한 작품 전개는…….”
내가 추천한 작품은 총 셋.
나는 차례로 그 작품들을 어떤 식으로 전개해나가면 재미있을지, 어떤 조연이 어떤 갈등 요소를 불러일으킬지, 어떤 식의 적대자가 등장하면 좋을지를 계속 설명해나갔다.
“……여기까지예요. 물론 말로만 하는 설명이어서 사실 감이 잘 안 오시겠지만—”
“아뇨. 너무 재미있어요. 솔직히 지금 말해주신 대로만 작품이 진행된다면 세 작품 기대 매출을 합했을 때 코즈일이나 노원지귀 작품 비슷하게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그래요?”
우려와 달리 진아 매니저가 재미있다고 생각을 해줘서 다행이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뭐가요?”
“정우 매니저님이 웹소설 작가 활동도 하고 있어서인지 제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창의적으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머리도 좋고 창의적이란 얘기 종종 들었는데도 정우 매니저님이 말하신 것처럼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하하…….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창의적이긴 하지.
내가 쓴 글이 아니라 그 작가님들이 원래 그렇게 쓰실 예정이었으니까.
아무런 노력 없이 받는 금칠이 민망하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여기서 추가 설명을 하는 것도 이상해 보일 테니.
‘하지만 이 정도로는 오진아 매니저가 돋보일 정도의 매출이 바로 나오진 않을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금 추천한 작품들은 초반부에도 인기를 끌긴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탄탄한 독자층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괜한 불안감 조성을 할 필요는 없다.
“추천 드린 작품 세 개가 모두 성공한다면 판무 1팀, 2팀 다 합쳐서도 진아 매니저님 매출이 상당히 상위권으로 올라갈 것 같아요.”
현재 오진아 매니저의 매출은 판무 1, 2팀을 통틀어 최하위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담당하는 작품 수가 다른 매니저에 비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상위권 정도로는…… 그 정도로는 안 돼요. 대표님이 제 아버지이긴 해도 그 정도 실적으로는 더 높은 자리로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우니까요. 회사에도 제가 낙하산인 걸 공개하기 전에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다른 매니저들도 낙하산인 걸 알면서도 마지못해 수긍할 테고요.”
오진아 매니저의 말이 맞긴 하다.
BS툰이라는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강경진만 해도 이미 낙하산.
‘거기다 강경진은 스펙도 되는 놈이지. 재수 없긴 하지만.’
반면 진아 매니저는 아직 스펙 면에서 특히 경력 면에서 부족하다. 단순히 학벌 등을 비교하자면 진아 매니저를 BS북 그리고 BS툰 누구와 붙여놔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커리어가 진아 매니저에겐 딱히 없었다.
‘BS북이 아무리 좋좋소라고 해도 낙하산을 둘이나 꽂는 이미지를 줘서는 기존 직원들의 반발이 심할 테지. 그것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진아 매니저를 승진까지 시키려면, 무언가를 더 확실히 보여 줘야 할 테고.’
“아무래도 이번에 할당받은 선인세로 완결 직전 A급 작가들을 데려오는 식으로—”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다니요? 다른 괜찮은 작품 있나요?”
“아직은요.”
“……?”
오진아 매니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확신에 찬 말로 그녀에게 말했다.
“우선은 지금 말씀 드린 작가들부터 계약하시고 선인세는 아껴두세요. 소설피아 공모전 결과 기다리느라 연재하지 않고 기다렸던 작가들도 있을 거거든요.”
“음……. 그런가요?”
“네, 그러니 8월 초나 중순 정도가 되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서요. 저도 진아 매니저님이 계약할만한 작품 따로 모니터링할 테니까 선인세는 그때까지 쓰지 마시고 아껴 주세요. 진짜 괜찮은 작품 나왔는데 조건 못 맞춰줘서 계약하면 아쉽잖아요.”
“……알겠어요. 정우 매니저님이 그렇게 말하시니 믿을게요.”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기왕 같은 배를 타게 됐는데.
이제 한 주 앞으로 다가온 8월이 되면 ‘그 작품’이 나올 차례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회귀 전에도 그 작품은 엄청 났었지.’
2015년 기준 소설피아에서 3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기였던 작품. 하지만 내가 그 작품을 기다리는 건 그 소설이 단지 인기가 많을 예정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판무 웹소설은 200화를 완결 기준으로 잡는다. 200화보다 적게 썼으면 적게 쓴 편 그리고 200화 이상을 썼을 경우에는 평균 이상을 쓰는 식. 하지만 내가 추천해주려는 글은 초 장편이다.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 말라고 진아 씨. 그 작품만 계약되면 정말 끝도 없이 매출이 나올 거니까.’
오진아 매니저와 나와의 계약 조건을 듣고 가장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건 엘가의 출판본부장인 권미현이었다.
권미현 본부장은 좋은 작가 그리고 작품들이 BS북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를 아니꼽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바라는 엘가, 아니, 우리 LGA컴퍼니의 방향성은 단지 돈이 아닌 출판계를 바꾸기 위한 표본이 될 출판사다.
회귀의 기억을 사용하는 꼼수에 의존하기보단 작가 계약을 진행하는 담당 매니저들의 실력이 더 느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에 회귀 전 기억을 이용해 쉽게 수익 창출이 가능한 작품은 진아 매니저에게 넘길 예정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다 넘길 생각은 없지만.
“회의실에서 너무 오래 있었네요. 이만 나갈까요? 벌써 점심 시간이네요.”
“네, 먼저 식사 하세요. 저는 작가님들한테 먼저 컨택 쪽지 보내고 먹을게요.”
“그래요, 고생해요.”
소회의실 밖으로 나오니 매니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가고 있다.
“정우 씨, 무슨 회의를 그렇게 오래 해요. 혼내고 그런 거 아니죠?”
“에이, 뭔 말씀이세요. 제가 혼내긴 누굴 혼내요. 짬도 안 되는데.”
“우리 정우 매니저가 언제 짬 신경 쓰는 사람이었나?”
“하하, 뭐 드시러 가실까요?”
소회의실 밖으로 이창윤 매니저가 실없는 소리를 하면 내게 다가왔다. 오늘은 김동현 팀장과 조팟 둘 다 점심 약속이 있다고 나간 상황이기에 간만에 오붓하게 점심이나 먹을 생각이다.
“날도 더운데 냉면 어때요? 물냉 고?”
“고 하시죠.”
“저도 같이 껴도 되겠습니까!”
사무실 슬리퍼를 벗고 신발로 갈아 신는 그때.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건일 매니저, 같이 먹어도 돼요? 오늘 무두절?”
“하하, 네. 파트장님이랑 팀장님 모두 미팅 가셔서요. 사무실에 오늘은 저만 있을 예정이에요.”
이창윤 매니저의 물음에 황건일 매니저가 씩 웃으며 답했다. 이달 초 건일 매니저가 판무 1팀으로 팀 이동을 한 후로는 바로 몇 걸음 차이였지만 사실 대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우리야 편하게 말을 걸어도 상관없었지만 괜히 한우석 팀장이 건일 매니저에게 트집을 잡을지도 몰라 자체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오, 우리도 조팟님이랑 팀장님 안 계신데. 그럼 같이 먹으러 갈까요?”
“하하하, 오랜만에 같이 드시죠.”
“우리 냉면 먹으러 가려는데.”
“가시죠!”
“고고!”
이창윤 매니저와 황건일 매니저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 낄낄대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나도 그들을 뒤따랐다.
‘이상한데…….’
하지만 내가 보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건일 매니저가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