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 갯벌 속에는 늘 진주가 있다.
BS북의 오성민 대표와 강경진 본부장.
나는 결국 그들의 딸이며 친척인 오진아 매니저와 손을 잡기로 했다.
그리고 오진아 매니저와의 은밀한 거래가 체결된 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와아, 3월에 한 공모전 발표를 이제야 하네요?”
“쯧, 이럴 줄 알았다니까? 상위권 수상작들은 싹 다 소설피아랑 계약했네.”
“그래도 장려상은 드래곤이랑 계약한 작품도 몇 개 있긴 하네요.”
“대상 1억, 1등 5천, 2등 3천, 3등 2천, 장려상 천만 원……. 개부럽네 진짜…….”
“쓰읍! 조팟, 창윤 매니저, 우리랑 계약도 안 한 작품 자꾸 봐서 뭐 해? 배나 아프지. 일이나 합시다.”
“어휴, 그러게 말입니다요.”
그리고 오늘은 7월 21일 화요일.
지난 3월 16일 시작했던 소설피아의 제1회 공모전 결과 발표가 나온 날이다.
‘역시, 상위권 당선작은 회귀 전이랑 거의 비슷하네.’
회귀 전.
소설피아 제1회 공모전 상위권 작품은 카리오스와 소설피아 매니지가 양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카리오스의 계약 사기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었다. 그리고 카리오스의 이름이 잊혀질 만하면 정글북에 ‘계약 사기 출판사 근황’ 같은 제목으로 사이버 렉카가 되었기에 회귀 전과 같이 카리오스가 소설피아의 2중대로 활약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젠 소설피아 2중대도 아니라 문 닫기 일보 직전이라지? 그러게 계약서 장난질은 작작 쳤어야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 소설피아 매니지를 제외하곤 우리 드래곤의 작품이 세 작품이나 장려상을 탔다는 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엘가에선 당연히 축제 분위기였고.
그럼에도 내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지난 주말 엘가 임직원들과 급히 모인 회의에서 했던 대화가 드문드문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험하진 않을까요? 오진아 매니저라는 사람이 다른 마음이라도 먹으면…….”
“저도 지연 본부장님 생각하고 같아요. 엘가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BS북에 다녀서 알지만, 오성민 대표가 회사 굴러가는 일에 조금도 관심 없는 사람인 건 분명하잖아요. 연좌제처럼 여기는 건 아니지만 오진아라는 사람 자체를 믿긴 어려워요.”
“그으흐흐,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본부장님들. 사람이야 당연히 믿을 수 없죠. 하지만 증거는 믿을 수 있습니다. 제가 따로 알아보니 오진아 매니저라는 사람이 준 증거 자료들. 모두 사실이더군요.”
“따로 어떻게요?”
“크흠……. 그건 밝히기 어렵습니다만, 이 자료가 터졌을 때 위험한 건 저희가 아니라 BS북, 아니, 강경진이겠죠. 그리고 그 계획대로만 진행한다면 크게 위험할 일도 없을 겁니다. 다 같이 죽자 하는 게 아닌 이상에요.”
의도치 않게 내 정체가 드러났기에, 이지연 본부장과 권미현 본부장은 오진아라는 변수를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엘가의 브레인 단풍 삼촌의 말에 그들의 불안을 가까스로 잠재울 수 있었다.
‘……물론 불안감이 줄어든 거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야. 당사자인 나도 아직 두근거리긴 하니까.’
반면 BS북에서 마주치는 오진아 매니저가 나를 대하는 태도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시켜도 그녀의 표정은 고요하기만 했다.
지난 금요일.
오진아 매니저가 내게 원하는 건 단순했다.
그건 바로 강경진을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자신이 BS북의 최대 주주가 되겠다고 했지. 내 목적에 부합하긴 해. 나 역시 강경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BS북이란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게 가장 컸으니까.’
BS북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한 첫 단추로 오진아 매니저는 내 도움을 바랐던 거다. 그녀 자신이 압도적인 실적을 낼 수 있도록.
오성민 대표는 오진아 매니저를 온실 속의 화초 정도로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좋은 학교를 나와 BS북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무척 화를 냈다고도 했고.
‘회사 몸집을 불려 매각할 생각밖에 없는데 그 회사에 딸이 들어와 커리어를 망치게 된 꼴이니……. 확실히 대표 입장에선 탐탁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대표는 결국 오진아 매니저를 회사에 입사시켰다.
자신의 딸이 열악하고 형편없는 좋좋소의 현실을 깨달으면 알아서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터.
하지만 오성민 대표는 놓치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히 이상하긴 했지. 회귀 전에 오진아 매니저의 이름은 BS북뿐만이 아니라 웹소설 출판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회귀 전 내 기억에 오진아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던 건 왜일까? 라는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아마 회귀 전엔 그녀가 강경진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됐다.
‘그게 아니면 내게 했던 말처럼 아예 출판계에 발도 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고…….’
지난 금요일.
오진아 매니저와 둘만의 은밀한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나는 그녀에게 물었었다.
“만약, 제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음…… 솔직히 그건 고려하지 않고 있었어요.”
“제가 무조건 진아 매니저님의 제안을 수락할 거로 생각했다는 건가요?”
“저는 지금 출판계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도 그리고 경진 오빠도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나 작가 발굴을 하기 위해 애쓴다기보단 단순히 돈을 벌려는 장사꾼의 모습으로만 보였거든요.”
“그러면 왜……?”
“처음에는 애증이었어요.”
“……?”
오진아 매니저는 출판계의 민낯과 현실을 직면하면서 자신이 애정하는 소설과 작가를 단지 돈으로만, 물건처럼 여기는 출판계의 현실이 미웠다고 했다.
사촌 오빠인 강경진보다도 월등히 뛰어났던 오진아 매니저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아이비 리그를 졸업하고 출판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었기에 자신이 출판계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고 했고.
‘그런 와중에 내 글을 보게 되었다라…….’
오진아 매니저가 아직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시절, 그녀가 우연이 읽게 된 소설이 바로 내가 쓴 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지. 심지어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를 런칭한 게 BS북이었으니까.’
내 글을 읽으며 그녀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 하지만 어느새 코즈일이란 필명으로 연재되는 새로운 글을 보며 다시 한번 장르 소설의 재미와 깊이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노원지귀라는 필명 출간된 글을 보면서는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고.
‘오진아 매니저가 보기엔 코즈일과 노원지귀의 글의 문체가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했지.’
그렇게 호기심 반 의문 반을 안고 처음에는 코즈일과 노원지귀가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추리였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시작하면서 오진아 매니저는 자신도 이 업계를 바라만 보지 않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지. 그런 생각으로 BS북에 왔다가 나를 향한 의심의 불씨를 점점 더 키워나갔던 거고.’
결국 코즈일이든, 노원지귀든, 박정우든.
오진아 매니저는 처음부터 나를 의심했다는 얘기다. 어찌 보자면 내 정체가 그녀 앞에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성민 대표가 예쁘고 연약한 유리구슬로만 여긴 자기 딸이 범이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것도 발톱을 숨기고 있는 산군.’
오진아 매니저가 언제부터 출판계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그녀와 나의 목표가 일치한다는 점이니까. 불안감은 뒤로한 채 기호지세로 그녀를 타고 나아가면 될 일이다.
“진아 매니저님, 시간 괜찮으세요? 지난번에 작가 계약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다는 거 알려드리려고 하는데.”
“네, 시간 괜찮습니다.”
나는 오진아 매니저와 함께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소회의실 문을 닫자마자 그녀는.
슥— 스스슥— 스슥—
“뭐…… 하세요?”
오진아 매니저는 내가 묻는 말에 검지를 올려 입술에 가져다 대고선 소회의실 책상 밑, 창가 틈새, 의자 아래 등을 손끝으로 짚어가며 꼼꼼히 살폈다.
“녹음기나 카메라로 보이는 건 없네요. 그럼 이제 말씀하시죠.”
“…….”
흡사 단풍 삼촌이 이북에서 살던 시절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제스처다.
“굳이…… 그렇게까지? 사무실 안에는 CCTV가 없을 건데요?”
“BS북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인사를 핑계로 3층 본부장실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본부장실 연필꽂이에 펜 타입 녹음기가 꽂혀있는 것도 봤었죠. 정우 매니저님이 평소에 느슨하게 행동하시니 잘 모르시는 거예요. 그러니 저한테도 걸린 거고요.”
“…….”
“앞으로 저희 미팅은 웬만해선 외부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소회의실, 대회의실 일정 다 찼을 때 제가 업무 요청드리면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서 미팅할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러도록 하죠.”
나는 BS북에 입사한 후로 모든 행동을 철두철미하게 처신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느슨하다라?’
과한 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실제로 오진아 매니저에겐 내 정체가 탄로 났었기에 그녀가 언급하는 안전 불감증에 관해선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민망함에 목청을 몇 번 가다듬자 오진아 매니저가 자신의 폰을 내게 보였다.
“제가 추린 하반기 추천 작품이에요.”
“우선 확인부터 해보죠. 음……. 괜찮은 작품들이긴 하네요.”
미팅을 핑계로 오진아 매니저와 소회의실에 오게 된 건 그녀에게 2015년도 하반기 추천 작품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오진아 매니저와의 거래로 나는 그녀가 돋보일 만한 실적을 쌓아주기로 협의했다. 그런 실적이 있어야만 오진아 매니저도 자신의 아버지인 대표에게 더 큰 자리를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리스트에 있는 작품들 다 좋네요. 좋긴 좋은데…….”
“설마……. 이미 엘가 선점 작품?”
오진아 매니저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 레이더, 레전드 오브 헌터, 성스러운 흑마법사 모두 엘가 쪽에서 이미 계약 완료한 작품들이에요.”
“…….”
오진아 매니저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죠?”
“뭐가요?”
“엘가에서 아직 계약 안 됐는데, 일부러 제가 계약 못 하게 그런 말 하시는 건 아닌지?”
“와아, 진아 매니저님 너무하시네? 우리 한배 타기로 한 거 아니에요? 저 치사하게 그런 식으로 거래 깨는 사람 아닙니다.”
“알아요, 장난이에요.”
“…….”
변화 없는 오진아 매니저의 얼굴을 보니 장난이라는 그녀의 말이 과연 사실이었을지 고민하게 된다.
“여하튼, 저 작가님들한테 연락하시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BS북이 우리 엘가 계약 조건을 따라올 수는 없다는 걸요.”
“음……. 그런 말을 엘가의 대표님한테 들으니 솔직히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난 섞인 오진아 매니저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겠어요? 우리 엘가의 계약 조건이 업계 탑인 건 이제 신인 작가도 출판사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저희 거래 내용에 엘가 자랑이 포함된 줄은 몰랐네요.”
오진아 매니저가 내 정체를 알기에 나도 모르게 엘가 자랑이 나와버렸다. 그동안 틈만 나면 내 새끼 엘가 자랑을 하고 싶던 마음이 둑 터진 물처럼 터져 나온 모양이다.
“하하, 사실만 말한 거긴 한데.”
쌍커풀 짙은 오진아 매니저의 눈이 부리부리해졌다.
그럼 팔불출 행동은 여기까지.
“걱정 말아요. 여하튼 진아 매니저님이 추려둔 작품 리스트는 됐고, 소설피아 신인연재 들어가 볼래요?”
“신인연재요? 거기에 괜찮은 작품이 있어요?”
신인연재는 신인 작가들 중에서도 거의 처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만 모아둔 코너.
그렇기에 신인연재 코너에 올라오는 글의 퀄리티는 보통연재나 프로연재 코너보다 필력이나 연재 주기 등 많은 부분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오진아 매니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렇게 묻는 것일 테지.
“물론이죠. 지금 같이 보도록 하죠. 어떤 작품을 추천 드리려는 건지.”
그리고 갯벌 속에는 늘 진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