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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8화 (88/201)

#88화 ― 대체 회사 돌아가는 꼴이 왜 이따구야!

작가들을 마주하는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떨리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작가의 권리는 유통사, 즉, 출판사의 의무죠. 그렇기에 출판사는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반대로 유통사의 권리는 작가의 의무죠. 작가님들께서 흔히 매니지라고 부르시는 유통사와 계약을 하게 되시면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을 갖게 되고 2차저작물작성권의 이용권, 해외 판권, 우선협상권…….”

하지만 강의를 진행하면 할수록 그 떨림이 사라졌다.

온전히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작가들과 지망생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설명하는 데 몰두하게 되면서 긴장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오늘 강의는 사두용미 아카데미 첫 강의 때 진행했던 ‘어떻게 해야 사기 계약을 피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장판.

그렇기에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점점 내 감정은 고조됐고 최근에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사기 계약들에 대한 상세한 예시와 주의 사항을 열거하며 목에 핏대를 세워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이렇게 공정한 계약인지, 최소한의 인간 다운 창작 환경을 보장받는지를 확인하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면서 본 강의는 이로써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몇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열정을 쏟아부은 강의가 끝나자 청중석에선 다시 한번 콘서트홀을 뒤흔드는 박수갈채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아하하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노원지귀 작가님께서 열변을 토하셔서 그런지 목이 마르신가 봅니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물병에 담긴 물을 마시자 사회자로 나선 단풍 삼촌이 껄껄대며 웃었고 청중들도 삼촌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럼 10분간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작가님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 여러분들께서 기대하셨던 작가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단풍 삼촌의 휴식 안내 멘트와 동시에 나도 연단 위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돌아왔고 하회탈을 벗어 던졌다.

하필 이게 나무로 만든 전통 하회탈이라 그런지 장장 몇 시간을 계속 쓰고 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으니까.

“고생하셨어요. 이것 좀 드세요.”

“아! 고마워요.”

이지연 본부장이 건네준 주스와 빵을 목에 쑤셔 넣듯 삼키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엔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테드 강연자 같던데요?”

“괜찮았어요?”

“네, 하회탈을 쓴 거만 빼면요.”

이지연의 두서없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짧은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하회탈을 챙겨 쓴 후 나는 다시 연단 위에 올라섰다.

질의응답 시간은 연단 위에 준비된 의자 위에 앉아서 진행하기로 했기에 본 강의 때보다 체력적으론 덜 피곤할 터였다.

“다들 잘 쉬셨습니까아!”

내가 의자에 앉자 마이크를 잡은 단풍 삼촌이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노원지귀 작가님의 질의응답 시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으신 번호 순서대로 작가님께서 답변을 해주실 겁니다. 127분 모두 질문 있으시면 작가님께서 오늘 밤을 새더라도 답변을 해주고 떠나신다고 했으니 눈치 보실 필요 없이 평소 궁금하셨던 질문 편하게 해주시면 되십니다!”

그 말과 함께 단풍 삼촌이 가장 첫 번째 작가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판타지를 쓰는 코르누스라고 합니다. 좋은 글 연재해주시는 와중에 대면 강의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코르누스 작가님. 어떤 점이 궁금하실까요?”

“노원지귀 작가님께서는 연재를 하시면서 강의도 하시고 사실상 투잡이라고 보이는데요. 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겸업 작가입니다.”

코르누스 작가의 말에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저는 퇴근 후에 매일 글을 쓰는데 가끔 집안일도 해야 하고 체력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혹시 저처럼 겸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집필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콘서트홀에 모인 사람들은 내가 노원지귀인 줄로만 안다.

‘작가님……. 투잡이면 할만하시네요. 전 쓰리잡이에요. 그것도 3작품 연재…….’

만약 내가 코즈일에 BS북 편집자 일까지 하면서 사실상 엘가의 대표라는 걸 알면 얼마나 놀랄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글 쓰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빠르게 쓰신다는 작가님들보다도 최소 배 이상으로 빠른 편이죠.”

웃음기 가득한 내 대답에 청중 사이에서 장난 섞인 야유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장난이었다는 걸 알리듯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갔다.

“하하, 그렇다고 해서 드릴 수 있는 조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저도 처음 연재를 시작하면서 상당히 긴 시간을 겸업 작가로 살았으니까요. 저는 겸업 작가님들껜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만 볼 수 있게 내 앞쪽에 놓인 소형 스크린 화면엔 질문하는 작가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였다. 질문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니 내 말이 바로 이해되진 않는 모양이다.

“글을 쓰실 때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는지 모르지만 대개 작가님들은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시죠. 그리고 핸드폰 앱 중에도 한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글 앱이 없으셔도 폰에 무료 메모장 앱이 있는 건 작가님들 모두 알고 계시죠?”

““네!””

작가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은 후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판무 기준으로 웹소설 작가란 무조건 하루에 5천 자를 써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겸업이신 작가님들과 지망생분들이 지친 회사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식사하고 컴퓨터를 켠 후에 로봇처럼 바로 5천 자를 쓰기란 심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럽죠. 이미 시계는 8시에서 9시를 가리키고 있을 테니까요.”

내게 질문을 한 코르누스 작가뿐만이 아니라 다른 겸업으로 보이는 작가들도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수심 짙은 얼굴이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출근길에 1,000자, 점심시간에 500자 퇴근길에 1,000자. 이 습관이 몸에 밴다면 퇴근 후엔 고작 2,500자만 더 쓰면 되는 거죠. 물론 자투리 시간에 2,500자를 쓰는 게 쉽지 않으리란 건 저도 압니다.”

솔직히 나는 힘들지 않았다.

단지 손가락이 조금 아플 뿐이지 핸드폰만 있어도 앉은 자리에서 5,000자를 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 평범한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시간. 그들의 능력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해결책을 혹은 해결책에 가까운 대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하지만 겸업 작가님들이 이런 식으로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신다면 퇴근 후에 쓰시는 글의 양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아! 그렇다고 회사에서 화장실 간다고 하시고 몰래 글 쓰시라는 말은 아니고요.”

“하하하, 루팡하지 않고 자투리 시간 잘 활용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웃음과 함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났고 청중들 사이에서 여기저기 손이 올려 졌고 질문들이 쇄도했다.

“작가님께선 다양한 장르를 쓰시는데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시는 편이신가요?”

“작가님의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선인세는 무조건 받아야 좋은 걸까요?”

“글 쓰는 프로그램은 어떤 걸 추천하시나요?”

“전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재 수익이 어느 정도면 전업을 시작해도 안전할까요?”

“웹소설의 전망은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시나요?”

“한 화를 완성하는 데 몇 시간 정도를 잡는 게 좋을까요?”

일부는 내가 강의에서도 몇 번 언급했었던 질문 그리고 일부는 내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질문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비록 그들의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변이 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나는 한 명, 또 한 명에게 진심을 담은 답변을 건넸다.

“대체역사를 쓰는 역사백과라고 합니다. 저는 사실 이 질문이 가장 궁금합니다.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질문 같은데요.”

“네, 그게 뭘까요?”

“강의 때마다 하회탈을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 건가요? 쓰신 탈의 생김새를 보면 실눈이지만 코끝이 떨어져 나가고 턱이 분실된 게 이매탈로 보이는데요? 혹시 숨은 의미가 있는 건가요?”

간혹 이런 개인적이고 웹소설 집필과는 연관이 없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3달간의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해온 전사들. 이들의 질문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안녕하세요 역사백과 작가님. 매우 예리한 질문이군요. 제가 쓰고 있는 탈은 이매탈이 맞습니다. 첫 강의 때도 설명드렸던 것처럼 제가 쑥스러움이 많아 탈을 쓰고 지금까지 강의를 진행했는데요. 이매탈이 입 부분이 트여 있어서 이걸 쓰고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네요. 실망시켜드려 죄송하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하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물론 그 많고 많은 하회탈 중에 굳이 이매탈을 쓴 이유가 따로 있지. ‘이매’의 뜻은 하급 관원.

보통 탈놀이를 할 때 이매탈을 쓴 이는 똑바로 걷지 않고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룩이는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결함을 지닌 하인상의 설정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지.’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통해 명확하고 작가들을 위한 정보를 정하는 내 행동이 출판계의 양반들이 보기엔 치기 어린 신인 작가의 쓸데없는 행동으로 바보처럼 보이길 바랐으니까.

‘방심한 뒤에 맞는 공격이 가장 아픈 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탈을 벗는 날도 이제 머지않았다.

BS북에서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줄에 계신 분 중에서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단풍 삼촌의 말에 연단 앞 스크린과 연동된 카메라가 콘서트홀 가장 뒷열을 비췄다. 중복되는 질문이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긴 질의응답 시간 동안 작가들도 점점 지쳐서였는지 뒷줄로 갈수록 질문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단풍 삼촌의 말에 가장 뒷열에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어?’

그리고 그 질문자는 내가 익숙히 알고 있는 얼굴.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지망생인 갈린잡초입니다.”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시작할 때 연락을 위한 작가와 지망생들의 연락처 그리고 필명만 받았었다. 최대한 작가들과 지망생들이 부담 없이 아카데미에 지원하기를 바랐으니까.

내가 놀람을 내색할 겨를도 없이 그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노원지귀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출판사란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시작하던 강의 초반.

김동현 팀장과 조팟 그리고 이창윤 매니저도 강의를 들었다고 했었다.

‘어쩌면 BS북 매니저들이나 관계자가 한 명 정도 있을 수도 있진 않을까란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하지만 생각만 하던 것과 실제로 마주한 것의 차이는 컸다. 준비되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 웃으며 작가들의 말에 답변하던 것과 달리 내 입술은 순식간에 수분이 빠져나간 것처럼 메마르고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다.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답변을 드리기 전에 갈린잡초 님은 어떤 이유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런 긴장과 압박감 속에서도 나는 물어야 했다.

그가 회사를 나가기 전의 각오와 지금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이 순간의 각오가 동일한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저는……. 얼마 전까지 웹소설 출판사의 매니저였습니다.”

갈린잡초라는 필명으로 내 앞에 나타난 최진혁의 말에 청중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는……. 본심과 달리 작가님들을 채찍질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각각의 재능이 있는 작가님들이었는데…….”

연단 앞에 놓인 스크린 화면에 최진혁이 입술을 질끈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저는 작가님들의 장점을 이끌어내지 못한 편집자…… 아니, 편집자라는 말로도 불려선 안 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처음엔 마치 복싱 코치가 난데없이 선수로 뛰겠다며 나온 것만 같은 상황에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보던 작가와 지망생들의 눈빛이 진중함이 가득 담긴 최진혁의 말에 수그러들었다.

“제가 작가를 하게 된 건 작가님들이 직접 집필을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충 그 모든 걸 직접 느껴보고 작가님들을 더 이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달가량 직접 글을 쓰게 된 지금까지도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출판사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작가들이 계약해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를요.”

“…….”

최진혁의 말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엘가 임직원들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늘 하는 말이었으니까.

다만 내 정신을 계속 흔들어 놓는 문제는 최진혁이 있는 맨 뒷열을 비춘 스크린에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성 때문이었다.

‘저 사람은…… 또 왜 저기 있는 거야?’

최진혁의 옆자리에서 기계 같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은 BS북 판무 2팀의 진아 매니저였다.

진아 매니저는 BS북 판무 2팀에 입사하고 처음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내가 노원지귀가 아니냐며 물었던 눈썰미가 동물의 감처럼 좋은 사람.

그렇기에 일부러 그 후로부터는 사두용미 아카데미 강의를 할 때 평소의 특징적인 몸 제스처 등을 자제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답변은 최진혁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성공적인 웹소설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답변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결코 피해서는 안 되는 답변이기도 하다.

“갈린잡초 님의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출판사란…….”

* * *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종강이 진행되고 있던 그 시간. 주말임에도 BS북 대표실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대체 회사 돌아가는 꼴이 왜 이따구야!”

그리고 대표실에선 쩌렁쩌렁한 고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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