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7화 (87/201)

#87화 ― 마지막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와, 팀장님 조금만 더 일찍 들어오시지. 대박 사건 있었거든요.”

“응, 그래 조팟. 흥미로운 이야기 잘 들었고. 대표님 전달 사항 있어서 부른 거니까 다들 자리에 앉자고.”

““네.””

대회의실 문이 닫히자 우리 2팀 매니저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조팟은 조금 전 있었던 판무 1팀의 이야기를 김동현 팀장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보였지만 김동현 팀장은 조팟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우리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인상 펴, 우리한테 딱히 나쁜 소식은 아니니까.”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회의.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2팀 매니저들 모두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리 지난달에 선인세랑 계약 조건 수정되었다는 거. 그게 조금 더 수정되기로 했습니다.”

“어휴…… 그러면 그렇지. 선인세 다시 없애기로 한 거죠?”

말을 듣자마자 한숨을 내쉬는 조팟의 읊조림에 김동현 팀장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거 아니다 조팟아. 그때 말했던 조건 그대로고 올해 하반기 동안 매니저들이 각자 줄 수 있는 선인세를 정하기로 했어. 우선 신입들은 오천.”

“신입이 오, 오천이요?”

놀란 듯 되묻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머지 매니저들은 각자 1억씩 배정됐어. 팀장 결재만 받으면 되니까 좋은 작품 컨택 해서 나 알려 달라고.”

“그러면…… 저번 달에 말하신 권당 100만 원씩 본부장님이랑 팀장님 결재 없이 완결 회차까지 주는 선인세는요? 그건 없어진 거예요?”

“아니 그것도 그대로 유지. 내년 되면 또 대표, 아니, 대표님 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A급 작가, S급 작가 있으면 잘 데려와 보자고.”

“와……. 일억이면 해볼 만하겠는데요?”

“아니 대표가 웬일이래요? 로또라도 맞으셨나?”

“팀장님 저 1팀에 가도 동일한 건가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이창윤 매니저와 조팟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가 연달아 말을 쏟아냈다.

김동현 팀장은 오른손을 허공에 들어 올리며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단 오천, 1억. 이거 우리 연봉 아니다? 다 써도 된다는 거지 막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이번 주 초에 소송 들어온다고 난리 나고 정글북에 공론화까지 돼서 지금 작가 컨택 하나도 안 되는 거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예……. 컨택 중이던 작가님들뿐만이 아니라 기존 작가님들도 계약 해지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아, 작가 새끼들……. 나도 그런데.”

“저도요…….”

이창윤 매니저와 조팟, 황건일 매니저가 다들 한숨 섞인 말을 뱉으며 답했다. 그들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던 김동현 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아, 나뿐만이 아니라 이번엔 본부장님들이랑 대표님도 심각성을 느낀 모양이더라. 실제로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고.”

““…….””

김동현 팀장의 말에 대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편집자로서 다니는 출판사에 표절 작품이 하나둘도 아니고 셋이나 연거푸 발생했다는 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일일 테니까.

“어? 팀장님, 잠깐만요! 근데 왜 제가 1억이에요?”

숙연해진 분위기를 까랑까랑한 하이톤 데시벨로 깨부순 조팟이 눈에 불을 켜고 김동현 팀장을 향해 고갤 회까닥 돌렸다.

“……또 뭐가아?”

얼핏 살기처럼 느껴지는 그 눈빛에도 김동현 팀장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아니! 신입은 그렇다 쳐도 저는 파트장인데 왜 창윤 매니저, 정우 매니저랑 선인세 금액이 같아요? 일반 매니저랑 파트장은 선인세 차등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팟아.”

“네?”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니?”

“…….”

조팟이 현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1초 남짓.

그 찰나와도 같은 시간에 조팟은 자신의 실적이 나와는 당연히 비교할 대상이 아니고 이창윤 매니저보다도 한참 낮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조팟놈이 벌게진 얼굴로 입을 다물자 탄식 같은 옅은 한숨을 내쉰 김동현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임원진들도 다들 심각성을 느꼈을 거야. 이번에 까딱 삐끗하다간 진짜 큰일 날 수도 있다는 걸.”

“그렇죠…….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카리오스도 계약서 장난질 걸렸다가 대형 작가들 지금 거의 다 빠져나가서 빈집이라고 하더라고요…….”

힘없이 내뱉는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콧등을 매만졌다.

“정글북……. 이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 때문에 지금 한 주 내내 계속 불이 타고 있어서 쓰는 고육지책인 것 같다. 신인 작가들은 뒤도 안 보고 빤쓰런하고 그나마 몇 없는 A급, S급 작가들도 계약 해지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상황이니까.”

“…….”

김동현 팀장의 말처럼 지난 화요일 우리 엘가의 훌륭한 작가님들이 정글북에 피해 사실을 적나라하게 쓴 글로 인해 BS북 판무 1팀과 경영 지원팀의 전화기는 통화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 1팀 매니저들의 담당 작가 몇과 로맨스 팀 작가들 중에서도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아마 BS북의 임원진들도 이대로 두고만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여하튼 대표님 말로는 지금 당장 수습할 방법은 없어서 일단 상소하기로 하셨댄다.”

“엥? 그게 의미가 있어요? 그냥 시간만 끄는 것 같은데. 솔직히 우리 글이긴 하지만 담당자가 아닌 제가 봐도 표절 같아 보이는 부분이 많던데요?”

“그건 나도 모르죠 조팟님아. 내가 그런 거까지 알면 변호사 하고 있지 지금 이 나이 먹고 여기서 이러고 앉아 있겠냐?”

“그렇긴 하네요.”

“뭐, 인마?”

늘 싸가지가 충만한 조팟놈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뒷목을 몇 차례 주물거리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지금 돈지랄 해서라도 작가들 발목 잡아보려고 하는 상황이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아, 그리고 건일 매니저 아까 말한 거.”

“예, 팀장님!”

“출판 본부 전체 지시 사항이라니까 차주에 1팀으로 가도 선인세 관련 사항은 동일하게 적용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예!”

우렁차게 대답하는 황건일 매니저의 대답에 조팟의 한쪽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아니, 건일 매니저는 뭐가 그렇게 좋아요? 오천이 건일 매니저 거도 아닌데?”

“아하하, 저희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좋은 조건으로 작가님들 데려올 수 있으니 전 좋은 것 같습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황건일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두툼한 손으로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집중!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우리 선인세도 월말에 주잖아. 그것도 A급 작가나 S급 작가 선인세 써서 계약할 때는 유도리 있게 줄 수 있게 해 준다니까 다들 그것도 알아 두라고.”

“팀장님, 작가님께서 급하다고 하시면 한 어느 정도로 빠르게 지급 가능한 걸까요?”

“영업일 기준 하루 이틀 걸린다니까 작가들한텐 3일 정도 걸린다고 전해. 경영 쪽 알잖아? 일 처리 느려 터져서 매번 말 바뀌는 거.”

“네,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황건일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피식 웃었다.

“건일 매니저하고 같은 팀으로 하는 회의는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겠네. 차주부터 1팀 가서도 열심히 하고. 그럼 회의 이만 마칩시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옙.”

미리 퇴사한 임서진 매니저를 제외한 판무 1팀 매니저들은 6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화요일에 아무런 말도 인사도 없이 바로 정시에 짐을 챙겨 BS북을 떠났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황건일 매니저는 1팀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

변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가의 용사들이 지른 불의 화력은 꺼질 줄 모르고 주말이 지나면서 점점 벌겋게 불타올랐으니까. 그리고 6월의 마지막 주이자 7월의 첫 주인 그다음 주도 빠르게 흘러갔다.

“그래, 신입이면 이렇게 빠릿한 맛이 있어야지. 건일이라고 했지? 앞으로 잘해보자, 어?”

“예, 팀장님! 열심히 그리고 잘하겠습니다!”

“김영진이, 얘 교육 제대로 시키고 있어 나는 면접 좀 보고 와야 하니까.”

“네, 팀장님.”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슬쩍 올려 보니 다행히 판무 1팀 한우석 팀장은 바로 전 직원들이 집단 퇴사를 한 영향 때문인지 혹은 건일 매니저 특유의 싹싹함 때문인지 시작부터 건일 매니저를 쏘아붙이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가…….’

이제는 한우석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된 황건일 매니저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나 역시 BS북의 선인세 사항 등에 대한 대응 그리고 엘가의 업무 보고를 처리해야 했기에 황건일 매니저에게 더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갔다.

* * *

시간을 도둑맞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한 주의 마지막인 일요일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많이 다른 일요일이다.

“후우…….”

“긴장 많이 되세요?”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조금 긴장되긴 하네요.”

내게 건네는 이지연 본부장의 말에 나는 멋쩍은 웃음이 담긴 말을 건넸다. 오늘은 3달간 진행됐던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마지막 날. 내 얼굴은 여전히 하회탈로 가려져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했던 강의였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평소와 같은 온라인 강의가 아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강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하는 대면 강의지만, 잘하실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아자!”

“고마워요. 힘낼게요.”

내게 긴장을 말라며 손목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고 내뱉은 이지연의 응원. 이지연의 덜덜 떨리는 얇은 손목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 굳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지 않아도 지금 이지연의 얼굴 또한 나 못지않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작가님아, 시간 됐다. 이제 나올 시간입니다.”

“후우……. 갈게요.”

오늘 강의를 위해 대관한 미니 콘서트홀 대기실 안으로 단풍 삼촌이 들어와 말했다. 대기실 벽면에 걸린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깊은숨을 내쉬며 대기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와아아!”

“노원지귀 작가님!”

“작가님이다!”

평소에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새로 맞춘 정장에 하회탈을 쓴 채로 콘서트홀 연단 위로 손을 흔들며 올라서자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연단 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오늘의 사회자인 단풍 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마이크를 건네며 작게 속삭였다.

“잘해라, 간나야.”

“고마워, 삼촌.”

사두용미 아카데미에서 처음 모집했던 수강생의 인원은 총 200명.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마지막까지 모든 수업을 따라와 준 수강생들은 127명이라고 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마주하니……. 상당히 기분이 묘하네.’

압도되는 기운에 휩싸인 채 나는 마지막으로 옅은 날숨을 내쉰 후 마이크 스위치를 올렸다. 이제는 시작할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 여러분. 지난 세 달간 여러분과 함께한 노원지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까스로 떨림을 숨긴 내 목소리가 마이크와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전달됐다. 그리고 미니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사두용미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목줄을 타고 올라오는 찌르르한 기분을 참아내며 나는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으로부터 세 달 전. 처음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시작했을 때 200분이 함께 시작했었죠. 그리고 마지막 순간인 오늘까지 모든 강의와 숙제를 병행하시면서 집필 활동을 이어가 주신 수강생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두용미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모두 필명을 사용했기에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지난 세 달간 얼마나 뼈를 깎는 고생과 노력을 했을지 잘 알기에 나는 허리를 접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이제 마지막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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