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5화 (85/201)

#85화 ― 이제 시작이다 새끼들아.

오늘은 6월 22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주간 회의는 왜인지 모르게 상당히 침울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특히 김동현 팀장과 황건일 매니저가 그런 음습한 오라를 잔뜩 뿜어냈는데, 어떤 상황에도 씩씩함을 보디던 황건일 매니저의 축 처진 어깨를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럼 이번 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흐음…….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김동현 팀장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짙은 한숨만 내쉬었다.

“아, 무슨 일이길래 그러세요? 1팀 집단 퇴사하는 거 때문이에요? 설마 우리한테 뭐 일 더 떨어지고 하는 거 아니죠? 저는 남의 팀 일 못 합니다.”

“……그런 거 아니야 조팟아.”

“그것도 아니면 대체 뭐길래 그러세요?”

이어진 조팟의 물음에 김동현 팀장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하겠다는 듯이 뒤통수를 벅벅 긁고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차주부터…… 우리 황건일 매니저가 1팀으로 팀 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네?”

“예?”

놀라 고함을 지르듯 되묻는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와 달리 나는 너무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간 회의 내내 황건일 매니저의 어깨가 축 처져있던 모습을 보니 그는 아마 이 사실을 사전에 전달받은 모양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내가 교육까지 다 마친 신입을 1팀으로 보낸다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황 매니저 우리 2팀 매니전데 갑자기 1팀으로 데려간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건 팀장님 선에서 커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게 어디 있어요!”

내가 하려던 말이 눈을 부릅뜬 조팟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 길진 않은 시간이었지만 싹싹한 황건일 매니저의 행동이 조팟으로 하여금 그를 같은 팀의 일원이자 동료로 여기게 한 것 같다.

“우리 노동력이 줄어드는 건데! 교육도 우리가 다 시켜놨잖아요! 이제 쓸만해졌는데 이렇게 쏙 빼가서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거잖아요?”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다.

건일 매니저와 진아 매니저의 모든 교육을 전부 내가 진행했다는 게 조팟놈의 기억엔 없는 모양이다. 지 이름 같은 행동을 하는 한결같은 새끼다.

“하……. 다들 어이없고 화 나는 건 알아. 나도 주말에 대표님한테 연락받고 엄청 따졌어. 오늘 출근하자 마자 바로 대표실로 가서 절대 안 된다고 다시 얘기 나눴고. 그런데……. 미안합니다 여러분. 특히 건일 매니저한테 정말 미안해…….”

“…….”

김동현 팀장은 뭐라 항변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내가 손수 키운 매니저를 한우석 같은 쓰레기에게 눈 뜨고 뺏길 수는 없었기에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건일 매니저님이 꼭 1팀으로 가야 하는 겁니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한 팀장 그 양반이 작가 계약을 하도 푸시해서 신작 계약은 엄청 됐는데, 지금 매니저들이 집단 퇴사한다는 거잖아. 1팀에 한우석 팀장 그리고 김영진 파트장 둘밖에 안 남는 거여서 작품 넘겨받을 사람이 아무리 못해도 최소 한 명은 더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

우리 2팀과 달리 판무 1팀은 원래 1파트와 2파트, 총 2파트 체제로 이루어졌었다. 즉, 인원수로만 따지면 우리 2팀보다 배 이상은 많은 수였는데 그 많던 인원이 이제 고작 8일 뒤에 모두 퇴사한다고 하는 상황.

사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고작 황건일 매니저 한 명이 더 추가된다고 해서 집단 퇴사자들이 하던 일들을 모두 수습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피해를 건일 매니저가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신규 직원 채용은 안 하나요? 이달 말까지면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 빠르게 채용을 하면…….”

“공고야 진작에 올렸지. 그런데 하아……. 엘가 이 양아치 새끼들 때문에.”

“……?”

엘가?

여기서 내 회사 이름이 왜 나와?

“엘가 이 미친놈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편집자 인턴제를 도입한다는 거야.”

“인턴이요? 편집자 인턴?”

묘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묻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 갑자기 1년짜리 인턴 뽑는다고 공고 올렸는데 월급이랑 복지는 또 인턴이란 이름에 안 맞게 더럽게 좋아요.”

“아니 그거랑 1팀 매니저 채용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재차 되묻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잠시 주위를 살피며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누가 워크플래닛에다 BS북 정규직 매니저 할 거면 엘가 인턴 뽑으니까 차라리 거기 들어가라고 써놨더라. BS북 정규직보다 엘가 인턴이 월급도 복지도 훨씬 낫다고.”

“헐…… 1팀 매니저 중 하나 아니에요? 워크플래닛에 그런 글 싸지른 새끼?”

“당연한 걸 묻냐? 여하튼 그거 때문인지 1팀 면접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지금 연락도 잘 안 돼서 빠르게 인력 충원도 안 되는 상황이랜다.”

“하……. 엘가 미친놈들이네. 거기 대표 새끼는 대체 뭔 생각으로 인턴 같은 걸 만들고 지랄이야, 쯧.”

‘너 같은 새끼들이 편집자 하니까 인턴 제도 만든 거다 조팟놈아.’

지난 금요일.

엘가 임원진 회의에서 원래 디자인 본부를 위해서만 인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제 자리가 잡힌 판무 쪽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확장을 시작했기에, 디자인 본부뿐만이 아니라 출판 본부에도 인턴 직원 채용을 진행하게 된 거였다.

‘권미현이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다고 하긴 하던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또 몰랐네.’

BS북을 일부러 엿먹이려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엘가의 인턴 직원 채용 여파가 황건일 매니저를 판무 1팀으로 가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순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뭐가 됐든 우리가 손해 보는 건!”

“나도 정말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 됐어. 그래서 건일 매니저는 앞으로 1팀 매니저로 근무하게 될 겁니다.”

“…….”

아무리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게 일상인 좋좋소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팀 이동을 시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출판 본부에 이런 긴급한 상황이 생긴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건일 매니저님 의사도 존중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랜 시간은 아니더라도 같은 2팀 매니저로 함께했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1팀으로 보낸다뇨?”

“하아……. 나도 그렇긴 한데…….”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다른 곳으로 가족을 보낸다면, 빈말이라도 그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매번 팀은 제2의 가족이라 했던 김동현 팀장이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모습이 더 역겹게 느껴지는 그 순간.

“괜찮습니다 정우 매니저님. 팀장님께서도 제 의견 물어봐 주셨고…… 제가 가기 싫다면 안 가도 된다고 하셨어요. 제 선택이니 괜찮습니다.”

“……?”

황건일 매니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그때 조팟놈이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선택지가 있으면 왜 가요?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1팀 가면 개고생할 게 뻔한데. 그리고 솔직히 우리 팀장님이 능력이 없지 사람은 좋잖아요.”

“조팟아…… 나 눈앞에 있다.”

“팀장님이 협박한 거 아니에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제 발로 1팀 가서 득 될 게 하나 없을 건데 간다는 게?”

비록 말투는 싸가지 없지만 조팟놈은 간만에 핵심을 짚었다. 선택지가 있다면 그 누구라도 1팀으로 가지 않을 테다. 특히 한우석이 팀장으로 있는 1팀으로는.

“하하, 아닙니다. 1팀으로 가면 대신 연봉을 조금 더 올려 주신다고 해서요. 2팀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저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라서 팀장님께 제가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헐, 뭐야? 얼마나 올려주길래?”

“저, 그게…… 백만 원 더 올려 주기로 하셨습니다.”

“조팟! 무슨 연봉을 물어보고 그래! 쯧.”

“아니 궁금하잖아요…….”

연봉 백만 원 인상.

세금 떼고 차 떼고 포 떼고 뗄 거 다 떼면 고작 월급에 6~7만 원 정도 더 붙을 적은 금액이다.

나는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벌리는 돈 백만 원.

고작 백만 원이라는 돈에 불지옥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다니. 건일 매니저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을 쇠붙이로 찌르듯 욱신거린다.

“그동안 2팀에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 주부터 1팀으로 가게 됐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은 무슨. 이제 전쟁인 거 알죠? 1팀은 다 적이야.”

“조팟아, 쫌!”

버럭 지른 소리로 조팟의 입을 다물게 한 김동현 팀장이 건일 매니저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건일 매니저, 내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고…… 그리고 고마워. 1팀으로 가도 종종 술 한잔하자고.”

“아하하, 좋습니다.”

그렇게 황건일 매니저는 판무 2팀을 떠나기로 결정됐다.

‘그럼 나도 계획을 더 앞당겨야겠네. 건일 매니저가 피해받아선 안 되니까.’

* * *

주간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작가와 통화를 한다고 김동현 팀장에게 전한 후 회사 근처 카페로 갔다.

얼마 전부터 옥상에 올라가니 전에는 작동하지 않는 게 분명했던 옥상 CCTV의 빨간 불이 들어오며 움직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단풍 삼촌, 지금 통화 가능해?”

—어, 가능. 무슨 일이십니까, 대표님아?

주문한 초코 라떼를 홀짝이며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소송 준비 어떻게 돼 가고 있어? 거의 다 됐다고 했었지?”

—아, 그거? 안 그래도 변호사한테서 연락 왔다. 내일 오전 중으로 자료 준비 다 끝날 거라고 하더라. 언제 시작하려고?

“잘됐네. 조금 갑작스럽겠지만 내일 바로 진행해 줘. 권미현 본부장님한테도 작가님들한테 따로 연락드리라고 전달드리고.”

—크흐흐, 오케이. 내일 불 한 번 더 나겠구만.

“어, 진행하고 알려 줘.”

지난달.

사랑과평화 작가님이 방문한 그 날 BS북의 화약고가 터졌었다. 사평 작가와 코즈일의 계약 해지와 표절 피해를 당한 우리 엘가 측 작가님들의 피해 사실을 명시한 형사 고소장 접수 사실을 연달아 회사 전체 메일로 알렸으니까.

‘원래 방어가 안 된 상태에서 맞은 주먹에 뼈가 더 잘 부러지는 법이지.’

그리고 우리 엘가는 사평 작가와 코즈일의 계약을 해지하고 작품을 이관하는 조건으로 형사 고소를 취하했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형사였을 뿐.

‘민사는 이제 시작이다 새끼들아.’

BS북의 표절 작가들인 사팔팔오, 해골병, 티팬티내꺼 이 세 명의 도둑놈들과 강경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터다.

단풍 삼촌이 엘가 대표로 고소를 취하하기로 한 그날 강경진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슬쩍 밑밥을 깔아 뒀으니까.

“저희 측 작가님들은 걱정 마시죠. BS 북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저희 작가님들은 다들 신인이시라 소송을 진행할 돈도 없고 솔직히 기성 작가님들과 소송전을 벌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솔직히 이겨서 득 될 것도 없는 싸움이니까요. 단지 이번 형사 고소는 유사성이 너무 심해서 한 겁니다, 올바른 출판계를 위해서요.”

“무슨 말인지 압니다. 저희 BS북 소속 작가님들이 워낙 많아서 이런 오해가 생길 만한 일들이 벌어진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약속했던 대로 고소 취하해 주시면 저희 대표 작가님 두 분 작품 이관 계약서 전달 드리도록 하죠.”

주요 인물들의 설정과 상호 관계, 상황 설정, 구체적인 줄거리 및 사건의 전개 과정, 구체적인 일화, 표현 등에 있어 유사성이 있는, 아니, 가져다 베낀 그 쓰레기 작가들을 내가 그리고 우리 엘가가 곱게 놔줄 거로 생각한 건가?

로켓소년단 작가, 황금거위 작가, 히전죽 작가는 한국 최고의 법무 법인인 김이박 시니어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고 있다. 작가님들이 수임료 따위를 신경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 엘가에서 전액 지불하기로 했으니까.

‘건일 매니저, 따땃하게 뎁혀 둘게요. 초가삼간 다 태운 1팀에서 평안하게 적응하시길.’

그리고 이건 황건일 매니저를 위한 내 약소한 선물이다.

내 첫 후임이 표절작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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