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하나의 뿔.
엘가의 임직원들이 간만에 구 엘가 사무실에 모두 모여 미팅을 진행했다.
“우리 LGA컴퍼니의 상반기 연재 진행 중인 작품 중 소설피아에서 메인 프로모션을 받은 작품 수는 총…….”
전반적인 회의의 내용은 상반기 실적 발표 및 하반기 목표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회의가 진행되며 가만히 듣고 있던 그때였다.
“어, 거참! 대표님! 오랜만에 나와서 회의 집중 안 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단풍 삼촌의 벼락같은 호통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회의 내용을 흘려듣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팟이 카톡으로 보냈던 내용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아 미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게 사실이긴 했다.
“대표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저도 말할까 하다 말았는데…….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요.”
권미현 본부장도 출판 본부 하반기 계획 발표를 멈추고 내게 되물었다.
“아, 그게……. 우리 LGA컴퍼니 직원들 중에 회사 생활 힘들다고 하거나 퇴사하고 싶어 하는 분들 있나요?”
“예에?”
“갑자기?”
“네?”
권미현, 단풍 삼촌, 이지연의 입에서 연달아 놀란 듯한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임원진들이 느끼기엔 아직 그런 직원들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름이 아니라 BS북 판무 1팀에 한우석 팀장이 돌아왔다고 했잖아요.”
“대표가 미친 새끼죠. 저번에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아, 우리 대표님 말고 병신북 대표 말하는 거 아시죠?”
권미현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뱉은 말에 단풍 삼촌이 킬킬댔다.
“그거 때문에 우리 대표님이 이렇게 쪼셨구만? 한우석 그 쌍간나 때문에 BS북 매니저들 퇴사라도 하고 싶답니까?”
“네, 전부요. 한 명 빼고 전부.”
“에엥?”
놀란 듯 눈을 부릅뜬 단풍 삼촌과 임원진들에게 조팟을 통해 들은 BS북 판무 1팀 집단 퇴사에 관해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그래서 괜히 우리 LGA컴퍼니도 걱정되더라고요.”
“그아하핫! 무슨 그런 걸로 걱정을 합니까 대표님아!”
내 설명을 다 들은 단풍 삼촌이 내 등짝을 퍽퍽 치며 너털웃음을 뱉었지만, 나는 인상을 풀 수가 없었다.
“제가 아직 BS북을 다니고 있어서 신경을 잘 못 쓰지만, 그 이상으로 본부장님들이 잘 케어해주시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LGA컴퍼니가 지금 엄청 빠른 속도로 확장 중이잖아요. 본부장님들이 보시기에 정말 우리 LGA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게 없을까요?”
결연한 표정으로 물은 질문에 본부장들은 잠시 고심에 찬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지연 본부장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디자인 본부는 가끔 급한 일이 있어서 급할 때는 야근을 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없어요.”
“우리 경영 본부는 칼퇴야.”
“출판 본부도요.”
우리 엘가는 다른 좋좋소와 달리 포괄임금제가 아닌 통상임금제를 시행한다. 즉, 야근을 해도 수당이 따로 나온다는 뜻이다.
BS북처럼 구인 구직 사이트에 ‘식대 제공’이라고 적어두고 막상 입사하니 월급에 10만 원 붙여주는 그런 양아치 짓도 우리 엘가에선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양아치 새끼들 업무일을 20일이라고 해도 하루 5천 원꼴인데 뭘 처먹으라는 거야?’
BS북의 창렬한 점심 식대를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린다. 얼마 전에 본 뉴스에 의하면 2015년인 6월 서울 외식비 평균 가격은 냉면 8,182원, 비빔밥 8,000원, 칼국수 6,545원, 김치찌개 백반이 5,727원이었다.
율곡 이이 선생님은 자기 얼굴이 그려진 화폐로 백반 하나 사 먹을 수 없다는 걸 과연 아시려는 지 모르겠다.
결국 BS북의 식대로 먹을 수 있는 건 서울 평균가 4,591원인 짜장면이나 한 줄에 3,373원 하는 김밥뿐.
‘웃긴 건 이게 평균의 함정이란 거지.’
강남 그리고 BS북이 있는 합정 부근은 서울 평균가에 최소 1,000원 이상씩은 더 비싸다.
그러니 황건일 매니저가 맨날 지하철 1,000원짜리 김밥이나 먹는 것일 테다. 중식으로 매일 백반만 먹어도 회사에서 지급받은 식대보다 비싸니까.
BS북을 떠올리면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차린 회사, LGA컴퍼니는 결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LGA컴퍼니 직원들은 개인당 법인 직원 카드가 지급되기에 BS북 매니저들처럼 점심을 먹을 때나 작가 미팅을 갔을 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직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이미 늦은 거야.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게 진정한 복지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지연 본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디자인 본부 직원분들의 야근이 많지는 않다고 해도 야근을 한 시간만큼 추후 업무 시간에서 제외하게 해주는 건 어떨까요? 대기업에선 이런 식으로도 진행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음……. 좋은 방안이긴 하지만 저희는 아직 대체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지금 상황에서 업무 시간을 더 줄이는 복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요.”
LGA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려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걸 느꼈다. 바로 지금처럼.
‘……맞는 말이긴 해. 연차 수만 따져도 엘가는 다른 회사보다 훨씬 많으니까.’
통상적으로 좆소들이 1년 차엔 달에 연차 1개씩, 즉, 년에 고작 12번의 유급 휴가를 주는 것과 달리 우리 엘가는 그 두 배에 가까운 20개를 준다.
이 중 12개는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연차 그리고 나머지 10개의 연차는 미사용 시 회사 내규에 따라 연차 수당을 따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것도 원래는 더 늘리려 했지만 임원진들의 강한 반발에 의해 20개로 합의한 상황이다.
묘책이 없는지 고민하는 그때 이지연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서류 심사와 면접이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상당히 까다롭잖아요? 그래서 인력 충원이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인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긴 하죠?”
몇 달 전부터 엘가는 더 공격적으로 인력 진행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채용 공고를 상시 모집으로 변경한 상황이다. 하지만 서류 심사와 면접이 워낙 까다롭기에 신규 직원 충원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존 직원들에겐 연차 관련 복지가 아닌 다른 식으로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 업무량 감소를 위해 외주 직원을 더 채용하는 건 어떨까요?”
“음, 그건…….”
“대표님이 외주 직원 채용을 꺼려하시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사업이 확장되는 걸 그대로 유지하면서 직원들 업무량도 줄일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외주 인력을 쓰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서요.”
엘가를 진행하면서 이지연 본부장과 가장 많이 부딪혔던 부분이 바로 외주 인력에 관한 문제였다.
부서에 관계없이 엘가에서 채용하는 모든 직원은 업계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월급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입사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력과 인성을 모두 겸비한 직원 채용이 가능했던 건데…….’
그렇기에 외주 인력을 사용하는 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엘가를 만든 취지 자체가 더 좋은 출판계, 즉, 작가와 직원 회사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회사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그런 모습을 업계 표준으로 만들어 과거 내가 당했던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피해를 당하는 작가들과 매니저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포함이 되어 있었고.
‘외주 인력을 쓴다면 어떤 사람들인지 알 방법이 없을 텐데…….’
외주 인력을 사용할 시 해당 외주 인력의 능력을 보고 계약을 맺을 거기에 실력 부분은 우리 엘가의 조건에 부합할 테다.
‘하지만 인성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어. 실력 좋은 파브르 같은 놈이 외주 직원 중에 있다면…….’
생각만 해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역겨움이 밀려온다.
원작자와 우리 엘가의 훌륭한 모든 직원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물에 더러운 손길이 닿을 수도 있다는 게.
‘……그렇다고 이지연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야. 대체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차만 더 늘릴 수는 없지. 스타트업 특성상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를 테니까.’
그렇다면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상황에서는.
“외주 인력 대신 인턴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요?”
“기간제 근로자 말이신가요?”
“네, 탈락한 지원자들 중에 인성 같은 인재상은 우리 회사에 부합하지만 업무적인 면이 부족해서 채용하지 못했던 아쉬운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계약 기간은 1년으로 인턴제를 진행했으면 해서요.”
“음……. OJT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을 것 같긴 하지만, 교육 담당 인력 배치만 제대로 해 두면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인턴이니 비용 절감도 될 테고요. 그럼 인턴분들은 계약 기간 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혹시라도 이지연이 인턴으로 실력이 좋지만 인성이 빻은 것들을 뽑자는 말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1년 동안 우선 부족한 실력이 늘 수 있도록 최대한 서포트 해주면서 옥석을 가려 보죠. 실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인력은 1년이 되기 전이라도 정규직 제안을 하도록 하고요.”
“나쁘지 않겠네요. 그럼 조건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될까요?”
“계약 조건은…….”
인턴 채용과 관련해 이지연 본부장과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고 단풍 삼촌과는 브루나이 인력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플랫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요한 얘기는 다 들은 것 같고 이제 이름만 정하고 마무리하죠. 권미현 본부장님, 괜찮은 이름 생각한 거 있다고 하셨는데, 들어볼까요?”
그리고 오늘 회의의 마무리 시간이 됐다.
내가 뱉은 말에 출판 본부장 권미현이 슬쩍 미소 지었다.
“어려울 거 있나요? 판무 레이블 이름 정할 때 세상에 없을 만한 글을 보여주자는 의미로 드래곤이라고 지은 거였잖아요? 그런 의미로 유니콘 어때요?”
“유니콘……. 좋은데요? LGA컴퍼니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지고 어감도 좋고.”
“유니(uni)가 ‘하나’를 뜻하는 말이잖아요. 말 그대로 하나의 뿔! 세상의 없던 글을 소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최고가 되자는 뜻도 포함된 것 같아서 저도 좋아요!”
단풍 삼촌과 이지연 본부장 모두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그럼 로맨스 레이블 이름은 유니콘으로 하죠.”
2015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LGA컴퍼는 더 이상 잠룡이 아닌 비상하는 용.
그리고 외뿔의 유니콘처럼 하늘 끝까지 날아가려 한다.
출판계의 유일한 존재로.
그리고 압도적인 차이로.
* * *
시간을 도둑 맞은 듯 빠르게 주말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의 주간 회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뭐가 됐든 우리가 손해 보는 건!”
잔뜩 격양된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나도 정말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 됐어. 그래서 건일 매니저는 앞으로 1팀 매니저로 근무하게 될 겁니다.”
오늘은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夏至).
아침부터 긴 하루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