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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3화 (83/201)

#83화 ― 1억 5천이면 나쁘진 않네.

“어……. 아니, 우리 회사도 법무팀 따로 없어. 월 20인가 내고 자문 변호사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변호사, 선인세 등에 관한 말을 하는 걸 보면 김동현 팀장의 지인에게 뭔가 잘못된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것도 출판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 중에서.

“야아, 설마? ……아니겠지 인마. 그게 진짜면 그게 사람 새끼냐? 일단 나 회사라 나중에 전화해. ……어, 끊는다.”

김동현 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고 조팟놈은 예상 그대로 행동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뭐, 출판사 다니는 지인 중에 큰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마치 자신의 궁금증을 배설하듯 묻는 조팟놈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다들 기억하지? 저번 달 회식 때였나? 내 대학 동기 하나가 미라지 다닌다고 한 거.”

“예, 기억하죠? 거기 은태식 작가한테 선인세 6억 주고 혈검강 작가랑 천패검신 작가한테도 5억씩 줬다면서요? 웹소설 판 씹어 먹겠다면서.”

“어, 근데 지금 웹소판을 씹어 먹는 게 아니라 미라지가 작가들한테 씹어먹힌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번만큼은 조팟이 내 마음을 대변해 묻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미라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지 정말 궁금했으니까.

“지난달 말일이 원래 작가들한테 원고 전달 받기로 한 날이었대. 그런데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김동현 팀장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지 중간중간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내 친구 놈이 어떻게 수소문해서 찾아보니까 미국 이민 가셨댄다.”

“미…… 미국이요?”

“아니, 은태식 작가, 혈검강 작가, 천패검신 작가 모두요?”

“선인세는 어떻게 하고요?”

조금도 예상치 못한 미라지 소속 작가들의 한국 탈출 소식에 2팀 매니저들의 질문이 김동현 팀장을 향해 쏟아졌다.

“다 갔대, 싹 다. 그 작가 셋이 친구라고 하더라고. 선인세 받은 걸로 아파트 사겠다고 하더니 그 돈으로 투자 이민 신청했대. 그래서 지금 이거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데……. 참, 별의별 일이 다 생기네.”

‘어쩐지……. 기억에 전혀 없더니만…….’

종이책 대여점 시절 강자였던 미라지의 이름으로 출간된 웹소설을 나는 회귀 전에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은태식, 혈검강, 천패검신 작가들의 신작 또한 마찬가지고.

“와아……. 믿기지가 않는데? 아니 돈도 많이 벌어뒀을 건데 설마 글 안 쓰고 미국으로 날은 건 아니겠죠?”

“천패검신 작가가 그럴 리 없어요! 저 전권 소장 중인데!”

“아! 말도 안 돼요 진짜!”

매니저들은 각자의 팬심을 들어내며 말도 안 된다면 고함을 질렀다. 매니저들의 모습이 알엔비의 황제 알 켈리가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를 받았을 때 뉴스 기사를 보면 오열하던 삼촌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거 아직 사실 아니니까 다들 입조심 해! 단지 연락이 안 된다고 불안해하는 것뿐이니까. 음…… 사실 동기 놈한텐 말 안 하긴 했지만, 좀 찝찝하긴 하다.”

“그 작가님들이 연락 안 되신지는 얼마나 됐다고 하나요?”

다른 매니저들이 모두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그때 오진아 매니저가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한 세 달 됐다나? 이제는 아예 카톡도 안 본다고 하고. 왜 진아 매니저 무슨 묘안이라도 있어?”

“아뇨, 큰 선인세를 받고 친분 관계가 있는 기성 작가 셋이 해외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면 사기가 확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앞으로 선인세 지급할 때 참고될 만한 내용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선인세를 많이 달라는 작가님들께는 예시로 들어도 될 것 같아서요.”

“음……. 뭐, 나쁠 건 없는데 말했다시피 대외비니까 어떤 작가인지 개인 정보는 말하면 안 되는 거 잊지 말고.”

“네.”

“…….”

최근 들어 BS북에 안 좋은 일들이 연거푸 터져 나왔지만, 우리 2팀 기준으로 보자면 좋은 일도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진아 매니저의 각성.

지난달에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내가 해줬던 조언이 도움이 되었던 건지 진아 매니저는 이번 주에만 두 작품을 연달아 계약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심지어 다 성적도 좋고 잠재력도 있는 신인 작가들이었지.’

교정 교열은 물론이거니와 진아 매니저의 작품 보는 눈이 원래부터 좋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계약까지 잘하니 정말 부족함이 없는 만능 매니저가 된 모습으로 보여 뿌듯한 감정이 든다.

‘물론 작가가 아닌 같은 매니저들에겐 지금처럼 상당히 직설적이긴 하지만……. 뭐, 그건 크게 문제 될 건 없지.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그때, 김동현 팀장이 굵직한 손으로 박수를 쳐 주위를 환기시켰다.

“여하튼 미라지 이야기를 여러분께 한 건, 우리 선인세 풀렸다고 너무 막 퍼주지 말고, 주기 전에 신중하게 고민해보자 이 말이야. 다들 경각심 갖고 일하자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뱉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이 코웃음을 쳤다.

“에이, 뭐 우리 풀려봤자 권당 백만 원 주는 건데 그거 받고 누가 미국이라도 가겠어요?”

“쓰읍, 조팟님아. 주의하자? 어?”

“네에.”

“아,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하아……. 이런 말 괜히 편가르는 거 같아서 하기 싫긴 한데, 우리 사무실 안에선 말하는 거 다들 조심하자고. 우리 회사 내에 스파이가 있으니까.”

뜬금없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스파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우석 팀장 우리 회사 다시 오게 한 거 누굴 꺼 같애?”

“누구긴요 대표님이라면서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표님이 처음부터 알았겠냐고. 그거 운영팀장이 최 팀장 퇴사한다는 걸 한 팀장한테 말해서 한 팀장이 대표님한테 우리 회사로 오고 싶다고 한 거래더라.”

“아아……. 어쩐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 같긴 했어요.”

“그렇긴 하네요. 아무리 1팀, 2팀 경쟁 구도 만들고 싶다고 해도 대표님 성격에 먼저 연락했을 것 같진 않았는데.”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하튼, 이번 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이번 달만 지나면 올해도 벌써 반 지나는 거니까, 다들 계약 열심히 하고 더 힘내 보자고.”

““네!””

* * *

한우석 팀장이 돌아오고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BS북에서의 업무도 업무였지만, 내 본진인 엘가에서의 업무 또한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으니까.

“작가님, 축하 인사가 늦었네요. 글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댓글 반응도 좋고 별점도 좋은데요?”

—하하, 런칭일에도 카톡으로 축하해주셨으면서, 뭘 또 이렇게 전화까지 다 주십니까?

오늘은 6월 19일 금요일.

미뤄뒀던 미팅 일정이 잡혀 잠시 기다리는 사이 그제 웹월드에서 ‘격투 천재 백사범’이란 제목으로 바꿔서 런칭한 황금거위 작가에게 짧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우 씨.”

“아, 작가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음에 시간 맞춰서 히전죽 작가님이랑 또 같이 뵙죠. 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를 불렀던 여성에게 다가갔다.

“스타작가 작가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냥 스타작가라고 불러요. 매번 부를 때마다 스타작가 작가라고 하니까 웃겨.”

내 유일한 연예인 인맥이자 의도치 않게 나와 귀한 인연이 된 스타작가 윤선미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미소 지었다. 확실히 연예인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녀였다.

“웃으시라고 일부러 그런 건데요?”

“못 말린다니까, 정말. 아, 저기 오시네. 대표니임! 작가니임!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오늘의 미팅 또한 윤선미 작가의 바에서 진행됐다.

“브라운관의 요정님! 코즈일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제 BS북과 계약했던 코즈일과의 계약이 모두 엘가로 완벽하게 이전됐기에 미뤄뒀던 업무를 하나씩 진행시킬 차례다.

인턴사원 회장님의 드라마 제작을 원했던 스튜디오 해츨링의 고영호 대표와 임준기 드라마 작가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코즈일 작가님이 하도 연락을 안 주셔서 혹시 다른 제작사랑 계약 하셨나 마음 졸이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문제 될 게 없으니 바로 계약 진행하시죠.”

작년 11월 중순 경에 첫 미팅을 하고 지금이 6월 중순이니 거진 반년 이상을 기다려 준 셈이다.

‘1억 오천이면…… 나쁘진 않네?’

단풍 삼촌이 알아본 바로 소설 원작의 드라마 판권료는 대개 5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라고 했다.

물론 단풍 삼촌이 들었으면 턱도 없다고 했을 터다.

삼촌은 내게 2억 이상 받거나 2억 아래일 경우 추가 인센티브 지급 조항을 반드시 계약서에 넣으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스튜디오 해츨링은 반년 이상 내 작품의 계약을 미뤄줬고 거기다 계약 정보에 관한 내용을 그 어디에도 누설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누설됐다면 BS북으로 바로 소식이 들어왔겠지.’

그렇기에 이번엔 돈에 너무 욕심을 내기보다는 내 작품의 첫 드라마화 그리고 나를 믿어준 신뢰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보고 서명을 진행했다.

“하하, 계약 감사합니다. 매번 진행 상황을 따로 보고드리진 않지만 주연 배우진이 모두 정해지거나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종종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스튜디오 해츨링과의 미팅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제는 구 엘가 사무실로 가서 엘가 임원진들과 밀린 업무 보고를 상세히 전달받고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코즈일로 계약했던 작품이 모두 엘가로 넘어왔기에 이제 그동안 비축분을 만들면서 준비해 왔던 ‘불지르는 파이어맨’과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의 웹툰 런칭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윤선미 작가의 바 근처에 세워둔 차를 타고 합정 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로맨스 쪽은…… 어떤 이름으로 해야 되려나?’

잠시 후 있을 엘가 임원진 회의에서 다뤄질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 드디어 우리 엘가에서 로맨스 레이블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엘가는 노원지귀뿐만이 아니라 코즈일이란 대형 작가의 이름까지 가져온 상황.

거기다 정글북과 했던 지난 공모전 그리고 아직까지 계속 진행 중인 사두용미 아카데미로 인해 실력 있고 인성 있는 작가들이 계속 드래곤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권미현 본부장과 본격적으로 로맨스 레이블 설립을 위한 방안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레이블 이름을 뭐로 지어야 좋을까 고민하던 그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아, 거참. 조팟새끼 나 휴일인 거 알면서 꼭 이 톡방에……에엣?!”

김동현 팀장과 이창윤 매니저 그리고 나까지 함께 있는 조촐한 단톡방에 계속해서 조팟놈이 보내는 카톡을 흘겨보던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갓길에 차를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카톡을 자세히 살폈다.

—조팟: 비상

—조팟: 판무 1팀에서 난리 남

—김동현 팀장님:?

—조팟: 1팀 매니저들 퇴사한다 함

—조팟: 영진 파트장은 남고

—이창윤 매니저님: ??? 갑자기요?

—이창윤 매니저님: 누구누구 나가는 건데요?

—조팟: 영진 파트장‘만’ 남고

—조팟: 나머지 모두 퇴사

“아니……. 집단 퇴사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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