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2화 (82/201)

#82화 ― 선인세는 다 받고?

“마누라는 원래 본처가 최고지. 여긴 뭐, 오랜만에 와도 바뀐 게 없네?”

판무 1팀 자리에서 저열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출근하자마자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그건 우리 판무 2팀 그리고 1팀 매니저들도 마찬가지였다.

“와하핫!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팀장님.”

“이 팀장도 잘 지냈지?”

“그럭저럭 지냈죠. 한 팀장님 안 계셔서 좀 적적했던 거 빼고요.”

“사람, 참. 하하하.”

조팟의 확장판인 운영팀 이형석 팀장이 판무 1팀 자리로 다가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인사를 받은 이는 다름 아닌 한우석 팀장이다.

“아니……. 이게 무슨……?”

“한 팀장님이…….”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가 서로 놀라 부릅뜬 눈으로 1팀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때.

“하아……. 주간 회의는 나중에 합시다. 나 자리 좀 비워야 할 거 같아서.”

그리고 창가를 등진 가장 안쪽 자리에서 1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김동현 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바로 대표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야? 한우석이 왜 여기 있어?’

헤비 크리스찬 최진혁을 로맨스 팀으로 보내버렸던 장본인. 그리고 약 1년 전 갑자기 사표를 내고 더노벨로 떠나버렸던 한우석이 다시 BS북으로 돌아온 거다. 판무 1팀 팀장으로.

“김영진이, 너 뭐 하냐? 기껏 파트장 달아 줬더니 최진혁 같은 모지리한테도 밀리고, 쯧.”

“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장님.”

“야, 내가 항상 하는 말 있지? 열심히 말고 잘하라고 자알. 그새 잊었어?”

“예! 잘하겠습니다, 팀장님!”

당혹감을 감추질 못하는 1팀 매니저들의 모습을 보니 그들 역시 한우석의 복귀를 미리 언질 받지 못한 게 분명해 보인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

좀처럼 지금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였다.

“여기도 못 보던 얼굴이 많네?”

김동현 팀장이 자리에 없어서였을까?

한우석 팀장이 누런 치아를 빛내며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한우석 팀장님!”

한우석의 등장에 조팟놈이 허리를 꾸벅 접었다. 타고난 노예근성이다.

“정우 매니저, 오랜만이야? 아직도 안 그만뒀네?”

“네, 아직 잘 다니고 있죠. 팀장님은 더노벨이 안 맞으셨나 보네요? 나가신 지 1년도 안 되신 것 같은데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뱉은 말에 한우석 팀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뭐, 원래 이 바닥이 그렇고 그런 게 아니겠어?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움직여야지. 안 그래? 코즈일 작가도 움직였다며? 엘가로?”

이 새끼 봐라?

내가 코즈일이고 코즈일이 나다 이 새끼야란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나는 복식 호흡을 하며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네, 저도 정말 아쉽게 생각합니다. 이 바닥은 정말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네요. 한 팀장님을 BS북에서 다시 뵐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정우 매니저는, 참. 오랜만에 봐도 귀여운 맛이 없어, 어?”

“다 큰 성인이 귀여우면 그게 이상한 거죠. 애도 아니고.”

한우석 팀장과 내 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는 그때였다.

“우리 팀엔 무슨 일입니까?”

대표실에서 나온 김동현 팀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얼핏 봐도 한우석 팀장의 등장에 심기가 가득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다.

“아, 뭐 무슨 일이 있어서 옵니까? 같은 부서인데, 오랜만에 반가워서 인사 한번 한 거지. 앞으로 자알 해 봅시다? 예?”

“…….”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그렇게 한우석은 BS북에 돌아왔다. 그렇게 한 주의 시간이 흘렀다.

“와…… 미치겠네. 너 학교 어디 나왔어?”

“지금 이걸 보고서라고 쓴 거야?”

“신입, 너는 얼굴은 예쁘장한데 일은…… 아, 그래서 대가리가 꽃밭이신 건가? 어? 백치미 그런 거야?”

“나 없는 1년 동안 대체 뭘 한 거야? 회사에 돈 타먹으러 다녀? 좀도둑이세요?”

그리고 단 한 주 만에 판무 1팀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아니, 그때보다 더 끔찍하게 변모했다.

한우석 팀장의 살 떨리는 폭언에 판무 1팀 몇몇 여직원은 눈물을 터트리기도 했다.

“야…… 우냐? 내가 니 아빠야? 울면 해결돼? 즙 짜지 말고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고?”

“흐흐흑……. 죄, 죄송합니다, 팀장님. 저도 정말 계약 하려고 애를 썼는데…….”

“어이, 백치미. 너 신파 찍냐? 왜 애를 써? 잘하라니까? 잘! 착즙기 끄고 당장 회의실로 따라와. 우리 회사에 포돌이 새끼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제 회의실 아니면 무서워서 말을 못 해.”

“…….”

“더럽게 즙 그만 짜고 가자고? 진솔한 토크 좀 하게.”

하지만 한우석 이 양아치 놈에겐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우석에게 자신 밑의 매니저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작품 계약만 하면 되는 영혼 없는 그의 꼭두각시 인형일 뿐, 그 이상은 의미 없는 존재였으니까.

‘하아……. 양아치 새끼.’

거기다 한우석 팀장은 나를 의식 하는지 아니면 일부러 자극시키려는지 일부러 한두 마디 정도로만 직원들을 몰아붙이고는 회의실로 데려가 지랄병을 떨었다. 회의실 안에서 얼마나 더 심한 욕설과 폭언이 오갈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심증만 있을 뿐이지.

강경진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최진혁이 퇴사했으니 이제야 좀 더 제대로 회사 같은 모습으로 BS북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악화된 모습에 월요일 아침부터 치가 떨려오는 기분을 느끼던 그 순간, 김동현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간 회의하러 갑시다.”

““네.””

지난 한 주간, 김동현 팀장의 분위기는 나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차가웠다. 오죽했으면 눈치 빻은 조팟조차 아무런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주간 회의 시작합니다. 우선 조팟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주간 회의는 조용히 진행됐고 조팟놈은 한우석에 관해 물어봐도 될지 말지 눈치만 힐끔대는 상황이 회의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주간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금주 전달 사항은 따로 없습니다.”

주간 회의를 마치고 회의록을 정리하던 김동현 팀장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뭔데? 조팟, 할 말 있으면 해라. 계속 힐끔거리는 것도 신경 쓰이니까.”

“아, 아뇨. 제가 언제 그랬어요?”

더듬대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한 팀장 다시 온 거 대표님 지시야.”

“헐, 미쳤네. 아니 자기 발로 나간 사람인데 그걸 다시 부른 게 대표님이라고요? 한 팀장님이랑 대표님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요?”

조팟은 일주일간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듯 격양된 하이톤으로 말을 쏟아냈다. 김동현 팀장은 이제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이야 당연히 좋을 게 없지. 후임도 안 구해 놓고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한 상태로 더노벨로 떠났으니까.”

“아니, 제 말이요! 대표님 그 양반은 대체 왜 그런 거래요?”

“우리 팀하고 1팀하고 다시 경쟁 관계로 만들려고 하신댄다.”

“예에?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요?”

조팟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대략 상황이 이해가 가긴 했다.

최진혁이 판무 1팀 팀장으로 있었던 지난 1년간, 판무 1팀은 우리 2팀에 비해 매출이 점점 떨어졌었고 단 한 번도 우리 2팀의 매출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물론 대부분 코즈일 작품 때문이긴 했지.’

하지만 코즈일이란 필명으로 내가 쓴 글을 빼고서라도 나와 이창윤 매니저가 계약한 작품들 중에 좋은 작품들이 점점 많이 나왔었다.

그리고 이젠 코즈일 작품이 없더라도 우리 2팀의 매출이 1팀보다 미세하게 높거나 비등한 상황.

‘인원수는 1팀이 훨씬 많은데 매출이 비슷하다는 게 대표 입장에선 눈살 찌푸려질만 하지.’

오성민 대표는 아마 그것 때문에 고육지책을 쓴 모양이다.

“그래,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란다. 메인 플랫폼에서 뽑아내는 판무 1팀 매출이 우리 2팀보다 떨어지는 상황인데, 사실상 올댓스토리 계약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잖아. 강경진 본부장은 웹툰 쪽 자리 잡느라 정신없고.”

“우와……. 그 타이밍에 최 팀장이 퇴사를 한다니 사람이 급하긴 하긴 했는데…… 그래도 한 팀장님을 다시 들어오게 한다는 게…….”

조팟놈의 말하는 꼴이 가관이다.

회사에서 어쩌다 한우석 팀장만 마주치면 내시처럼 폴더 인사를 박는 놈이, 회의실 안에서는 한우석이 다시 돌아와선 안 됐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보기 민망할 정도로 추한 모습을 보자니 괜히 내가 부끄럽고 인류애가 상실되는 기분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대표님이 한 팀장 다시 불러온 거야. 우리 팀과 다시 경쟁 구도로 이끌어 가게 한다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자고.”

““네!””

“아니, 그런데 팀장님?”

“하아……. 그래, 조팟. 또 뭐가 궁금하세요?”

김동현 팀장이 마무리 멘트로 주간 회의를 끝마치려 했지만, 조팟놈은 아직 궁금증 해소가 덜 된 모양이다.

“그런데 경쟁 구도로 간다고 해서 1팀이 성과가 있을까요? 1팀 매니저 전원이 대부분 올댓에 넘길 작품만 찾았잖아요.”

“저거 안 보이냐?”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턱짓으로 대회의실의 투명한 통유리창 너머 판무 1팀 쪽을 가리켰다.

당연히 그곳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한우석 팀장이 1팀 매니저들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윽박지르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저렇게 애들을 갈아 넣으니까 한 팀장 우리 회사로 다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이번 달 올댓에 넘길 작품 계약 다 끝냈다더라. 더노벨에서 신간 계약도 몇 개 했고.”

“헐, 벌써요?”

김동현 팀장의 말에 놀란 건 조팟뿐만이 아니었다. 강경진의 지령에 독기를 품고 1팀 매니저들을 푸시하던 최진혁 팀장도 쉽게 해내지 못했던 걸 한우석은 단 한 주 만에 해낸 거였으니까.

“와……. 부하 직원들한테 대하는 태도는 좀 너무하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일주일 만에 올댓 작품 계약을 그렇게 쉽게 한 걸 보면 대단하긴 하네요.”

이창윤 매니저 자신도 올댓에 넣을 작품 계약을 해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렇기에 한우석 팀장이 일주일 만에 해낸 일이 놀랍다는 말투였다.

“대단할 게 뭐 있나? 창윤 매니저랑 조팟은 알 거야. 한 팀장이 A급이나 S급 작가는 잘 계약 못 했던 거.”

“음…….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올댓 계약은 엄청 잘하시네요?”

이창윤 매니저가 의아하다는 듯이 턱을 긁적였다.

“간단하지. A급이나 S급 작가들은 정산비, 선인세, 계약금같이 계약 조건을 얼마나 더 잘 맞춰줄 수 있느냐, 즉, 얼마나 자신을 잘 대우해 줄 수 있느냐를 묻잖아. 신인 작가들은 출판사 이름값 보고 계약하려고 하고. 한 팀장, 신인 작가 꾀는 건 도가 튼 사람이니 올댓도 어렵지 않았겠지.”

“아…….”

“그르네. 올댓에 넣을 작품 계약하는 건 한 팀장님 전문일 수밖에 없는 거겠네요.”

이창윤 매니저와 조팟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BS북은 좋은 팀장과 나쁜 팀장을 구분하지 않는다. BS북의 대표가 원하는 건 오직 실적을 내는 팀장, 단 하나뿐이니까.

“자, 다들 더 궁금한 거 없으면 주간 회의 여기서 마무리…….”

지이잉— 지이이잉—

김동현 팀장이 회의를 마무리하겠다는 말을 하려던 그 순간. 회의실 책상에 올려둔 김동현 팀장의 폰이 거칠게 울렸다.

“어, 무슨 일이야?”

반말로 응대하는 걸 보니 업무 관련 전화는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김동현 팀장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 ……어? 날랐다고? 선인세는 다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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