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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80화 (80/201)

#80화 ―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세요?

“와……. 무슨 수를 썼길래 은태식 작가랑 계약을 했대요?”

“무슨 수를 썼긴. 당연히 돈이지. 미라지에서 은태식 작가 데려오겠다고 6억 풀었대더라.”

“6…… 6억이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 뿐만이 아니라 2팀 매니저 모두의 입이 놀라 벌어졌다. 오진아 매니저만 빼고.

“찌라시 아니에요? 은태식 작가 마계천황 이후로 절필하신다고 했는데요. 돈도 이미 벌 만큼 버셨다고 하셨고?”

“어허이? 창윤 매니저. 내가 언제 찌라시 말하는 거 봤어? 미라지에 다니는 대학 동기 놈이 하나 있어. 걔한테 들은 거야.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돈이야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거잖아?”

“그렇긴 하네요. 하긴 나라도 6억, 아니, 1억만 준다고 해도 바로 회사 때려칠 건데.”

“조팟아, 그럴 일 없으니 일이나 열심히 하자.”

“쯧, 말이 그렇다는 거죠!”

2015년인 올해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8억. 수도권이 3.7억 그리고 서울이 5.5억이다.

내가 회귀하기 전 시절에 비교하자면 6억으론 서울에 있는 소형 아파트도 사기 빠듯한 정도였지만, 지금 시절에는 충분히 서울에서도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다.

“여하튼 미라지 주의해야 해. 은태식 작가뿐만이 아니라 혈검강 작가랑 천패검신 작가도 각각 5억씩 받고 계약했대.”

“아니……. 혈검강이랑 천패검신?”

“6억, 5억, 5억이면…… 작가 셋한테만 16억을? 와…….”

혈검강 작가와 천패검신 작가 또한 은태식 작가 못지않은 기라성 같은 무협 작가들이다. 하지만.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한데?’

5, 6억이면 절필 선언한 작가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한 금액일 터다. 그럼에도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회귀 전에도 은태식 작가, 혈검강 작가 그리고 천패검신 작가의 신작을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

“저는 혈검강 작가님 전투 묘사 정말 좋아하거든요. 혈검강 작가님 글 전권 구매한 거 집에 있는데.”

“저는 천패검신 작가 팬이에요. 천패검신 작가의 그 하드보일드한 문체가 완전 제 스타일이거든요. 근데 어떻게 그런 대여점 시절 S급 작가들을 다 데려간 건지 신기하네요. 진짜 돈 앞에 장사 없는 건가?”

황건일 매니저와 이창윤 매니저가 서로 대여점 시절 읽었던 추억의 작품을 떠올리는 그때, 김동현 팀장이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까 말한 대학 동기 놈이 그러더라고. 은태식 작가가 혈검강 작가, 천패검신 작가랑 다 친분이 있대. 그래서 은태식 작가가 다 데리고 왔다고 하더라고.”

“와아……. 역시 갓작가님들끼리는 다 아시는 사이구나.”

“진짜 대박이네요.”

은태식 작가, 혈검강 작가, 천패검신 작가 이들 셋이 모두 친구 사이라는 건 고인물 독자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미라지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고작 대여점 시절 작가 셋에 16억을 쓴다고? 미라지에서 다른 작품을 본 건 아예 없는데?’

하지만 소설피아, 웹월드, 테일랜드, 더노벨 그 어디에도 미라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미라지에서 레이블 이름을 다르게 해서 출간하고 있던 걸까요? 아직 미라지 이름으로 나온 웹소설은 본 기억이 없어서요.”

“판무 쪽은 따로 레이블 파지는 않고 미라지라는 이름으로 계속 갈 거라고 하더라고. 미라지는 이름값이 있잖아? 아직 준비 중이라 작품은 없는 거고.”

김동현 팀장은 내 질문에 피식 웃음 지었다.

“심지어 준비도 오래 했다네? 작년 중순부터 준비했다나?”

“작년 중순이요?”

“어, 웹소설 출판사로 탈바꿈하려고 장년 중순부터 준비했고 은태식, 혈검강, 천패검신 작가한테 선인세 지급도 작년 말에 이미 다 끝났다고 하더라고. 지금껏 대외비여서 말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슬슬 준비된 것 같으니 자랑질하려고 전화한 거더라고. BS북도 긴장하고 있으라는데?”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후……. 선인세 풀린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 작가 셋한테만 돈을 그렇게 뿌렸는데 다른 작가도 계속 채가는 거 아니에요? 어쩐지 요즘 계약이 어렵더라.”

“그건 우리 조팟님이 그냥 계약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미라지는 A급 작가도 필요 없고 무조건 S급 작가들로만 계약할 거라고 하더라.”

“S급이면……. 은태식 급이요?”

“그래 그 정도 탑티어 작가 작품만 출간할 거래.”

잔뜩 긴장한 듯한 매니저들을 향해 김동현 팀장은 피식 웃었다.

“그냥 다들 알고 있으라고 말한 거니까 너무 쫄지는 마. 돈지랄로 웹소 판 엎어버리려고 해도 그게 뭐 쉬운 일이야?”

“쯧, 그렇긴 하죠.”

“여튼 걱정 말고 다들 파이팅하자고! 마셔잇!”

“파이팅입니다!”

잔을 부딪치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신작 계약을 할지, 또 이번에 바뀐 선인세 내부 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싸구려 와인을 몇 병 더 이우고 다들 얼큰히 취해 갈 때쯤, 드디어 회식 자리가 마무리됐다.

“저…… 이거 남은 거 혹시 포장 되나요?”

“포장 용기가 따로 없는데 어쩌죠?”

“아!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주셔도 되세요!”

“그럼 호일에 싸서 드릴게요.”

“아하하! 넵! 감사합니다!”

김동현 팀장이 법카로 계산을 하러 간 사이 황건일 매니저가 얼마 남지 않은 고기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토마토처럼 시뻘개진 조팟놈이 황건일 매니저에게 다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얼마 남지도 않은 걸 뭘 싸가요? 거지도 아니고.”

“아하하……. 그냥 두고 갈까요?”

“조팟님. 말 좀 예쁘게 하시죠? 거지가 뭡니까? 남으면 어차피 버릴 건데 싸가서 먹으면 식당도 손님도 서로 이득인 거죠.”

“정우 매니저, 가끔 보면 예민해? 웃자고 한 말에?”

“조팟님 얼굴이 더 웃긴데요?”

“뭐요?”

“저도 웃자고 한 말이에요.”

빙긋 웃으며 뱉은 말에 조팟놈은 지 혼자만 들릴 정도로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병신 새끼가 명품 입는다고 지가 명품이 되는 줄 아나?’

조팟놈은 틈이 날 때마다 찐따스럽기 그지없는 안경을 만지작대며 명품이라고 자랑했는데, 황건일 매니저한테 거지라고 하는 놈의 싸가지를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인성 하나는 제대로 거지 같은 놈인 게 분명하다.

‘건일 매니저가 괜히 마음 안 상했으면 좋겠네.’

입사 첫 주를 제외하고 건일 매니저는 매번 지하철역 입구에서 사 왔다는 천 원짜리 김밥 두 줄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월말이 다가갈수록 김밥을 한 줄만 먹는 일도 종종 봤었기에 조팟놈이 스쳐 지나가듯 한 말이어도 건일 매니저에겐 상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식 때 먹는 걸 보면 먹는 양이 결코 적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눈치 빻은 조팟놈은 간혹 건일 매니저에게 김밥만 먹고 배가 차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건일 매니저는 호탕하게 웃으며 점심때는 입맛이 없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종종 탕비실에 별거 없는 과자와 음료수로 배를 채우는 그를 보니 과거의 내가 떠올라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자자, 다들 이제 갑시다.”

조팟놈에게 한 번 더 극딜을 넣을까 하던 찰나, 계산을 마친 김동현 팀장이 우릴 불렀다.

“차주 월요일은 석가탄신일이니 다들 3일 동안 푹 쉬다 오고. 그럼 화요일에 봅시다.”

“주말 잘 보내세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즐주!”

회식을 마치고 산개하듯 흩어져 다들 집으로 가는데.

또각— 또각—

“……어? 진아 매니저님?”

“저도 이쪽 방향이어서요.”

“그럼 같이 가죠.”

바로 뒤에서 계속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진아 매니저였다.

“어때요? 요즘 일 하면서 어려운 일은 없나요?”

“네, 어려운 것 없어요. 단지…….”

슬쩍 운을 띄운 말에 진아 매니저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계약이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진아 매니저가 아무리 똑똑하고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을 상대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안 그래도 조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인데, 잘된 것 같다.

“계약 진행할 때 어떤 점이 많이 힘들던가요?”

“음……. 예측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버리는 작가님들이 많으셔서, 그 이유를 분석 중입니다.”

“그렇군요.”

진아 매니저는 작품을 보는 눈, 교정 등 전반적인 업무 능력은 건일 매니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작품을 계약한 수는 건일 매니저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그러니 진아 매니저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

“제가 간단한 해결 방법 하나 말씀드릴까요?”

“간단한…… 해결 방법이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진아 매니저에게 고개를 돌려 빙긋 미소 지었다.

“하하, 너무 거창하게 말했나요? 사실 별거는 없고요. 컨택 쪽지나 전화로 작가님들과 연락할 때 조금만 더 부드럽게 말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드럽게요?”

진아 매니저는 여전히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예를 들자면 계약 전에 그런 작가님들이 종종 계시잖아요. 자기 글이 어느 정도 성적을 낼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요.”

“네, 기성 작가님들은 계약 조건만 간단히 물어보시지만 신인 작가님들은 대부분 그런 부분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진아 매니저는 자신이 보냈던 컨택 쪽지를 떠올리는지 잠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아 매니저님이 작가님들께 보낸 컨택 쪽지나 통화 내용 들었을 때 보면 피드백 등도 놓치는 게 없을 정도로 정확해요. 하지만 너무 정확한 것도 신인 작가님들 입장에선 문제가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

내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진아 매니저는 동그란 눈을 다시 치켜뜨고선 나를 바라봤다.

“우회해서 말하라는 뜻인가요?”

진아 매니저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하지만 계약 같은 중요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작가님들께 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신인 작가님들의 심리를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

“쉽게 말하자면, 신인 작가님들은 상당히 불안하죠. 이 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소설만으로 수익을 낼 수도 있을지도 고민을 하실 거고요. 만약 겸업인 작가님들은 본업을 계속하면서 글을 써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을 테죠.”

실제로 수많은 신인 작가들이 이런 고민을 안고 산다. 나 역시 경험했던 부분이고.

“신인 작가님들은 자신의 글 외에도 자기가 처한 주변의 상황 등 모든 게 혼란스럽기 마련이에요. 이런 경우에는 작가님들의 장점 위주 그리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 위주로 말씀드리는 게 좋아요.”

“…….”

“물론 진아 매니저님 말처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만 사람이란 단순하면서도 어렵고 복잡하잖아요? 때론 정확한 정보보다 좀 더 친근하고 인간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게 좋을 때도 있으니까요.”

“아…….”

진아 매니저는 이제야 내 말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을 사러 갔을 때도 너무 방대한 지식을 전달받으면 당황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가님들께도 당장 필요하고 원하는 정보만 말하면 더 좋겠다는 말이시군요?”

“대략적으로 그런 말이죠. 물론 이건 제 경험상일 뿐이고 매니저님의 성향에 따라 작가님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계약 전에는 좀 더 부드럽게 접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뿐이에요.”

“감사해요 매니저님. 그런데, 저 하나 더 여쭤도 될까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진아 매니저는 평소의 기계 같은 얼굴과 달리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만약 정우 매니저님이 출판사를 차린다면,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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