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합숙이 시작된 지 5일째.
작가들의 키보드는 불을 뿜어냈다.
타닥! 탁! 타다다다닥!
티디딕! 티딕! 틱! 티딕!
듀얼 모니터 한쪽 창에 켜둔 화면 공유 프로그램으로 굳이 감시를 하지 않아도 이제 작가들의 손가락은 알아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확실히 합숙이 도움이 되네. 특히 히전죽 작가님은……. 무서울 정도야.’
황금거위 작가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활화산 같은 기세로 활자를 쏟아내는 히전죽 작가의 독기 어린 분노의 타이핑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히전죽 작가가 새로 집필 중인 ‘이혼 후 와이프부터 죽임’은 그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글.
옆에서 언뜻 보기엔 무지성으로 찍어대는 활자 조합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히전죽 작가의 글을 조금이라도 본다면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테다.
‘오히려 무거워…….’
히전죽 작가의 글에서 특히 주인공이 와이프에게 배신을 당하고 그 외도를 직접 목격하는 초반부는 처절한 리얼리티가 반영되어 있었다.
‘결혼, 아니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기분이 들 정도니 말 다 했지.’
만약 히전죽 작가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독자들이 본다면 댓글창은 아주 맵고 뜨겁게 달궈질 게 분명하다.
‘상처와 분노가 집필에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흐뭇한 마음으로 나도 내 글 집필에 온전히 집중하는 그때였다.
“어? 벌써 소설피아 공모전 마지막 날이네요?”
“그러게요. 정신없이 글만 쓰다 보니 벌써 마지막 날인지도 몰랐네, 하하. 황금 작가님은 어떤 글이 당선될 거 같으세요?”
오늘은 소설피아 1회 공모전 참여 마지막 날이다. 황금거위 작가의 타이핑이 잠시 멈췄다 싶더니만, 그가 툭 뱉은 말에 히전죽 작가의 타이핑까지 멈췄다.
“지금 성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우리 작가님들 벌써 오늘 집필 분량 다 쓰셨나 보네요? 그래도 히전죽 작가님은 목표 분량 맞추신 것 같은데, 황금 작가님도 다 쓰셨나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되지.
입꼬리만 부드럽게 올린 채 미동 없는 차가운 눈빛을 건네자 황금거위 작가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아니 그게, 소설피아 공모전 참여 마지막 날이잖습니까? 같이 글 쓰는 사람이다 보니 어느 작품이 대상을 수상할지 궁금해서…….”
“결과 발표 나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공모전이란 단순히 성적만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압도적인 성적이라면 다를지 모르지만, 공모전이란 전쟁터에선 오리지널리티에 방점을 두기에 어떤 작품이 선정될지는 알기 어렵죠. 그리고.”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아예 시선을 황금거위 작가에게 돌리자 그는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작가님들은 매일이 공모전, 매일이 전쟁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각기 다른 소재로 다수의 작가와 경쟁하는 공모전과 달리 작가님들은 오로지 작가님들의 글만 부수려는 적대자가 있지 않습니까?”
“아하하……. 그, 그렇죠?”
“저희가 쓰는 웹소설에서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황금 작가님이 쓰시는 글의 주인공은 태권도계에서 파벌 싸움으로 완전히 매장당하고 UFC란 단체로 넘어가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더는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없는 주인공이 UFC라는 세계 최고의 MMA단체에서 태권도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목표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 목표는 안중에도 없고 중간에 연애나 하고 놀러나 다니고 남들 쉴 때 쉴 거 다 챙겨서 쉰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그게…….”
히전죽 작가의 글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외도로 인생이 무참히 망가진 주인공이 회귀 후 아내의 외도를 뻔히 알면서도 기타 선생으로 위장한 불륜남이 버젓이 자신과 아들이 사는 집에 들락날락하며 안방엔 밤꽃향을 뿌려대는데 그걸 알면서 낚시나 다니고 게임이나 하면서 논다면?
‘글 읽던 독자들이 뒷목 잡고 각혈하다 쓰러지겠지. 하차한다는 저주와 함께.’
물론 굳이 이 말까진 꺼내지 않았다.
히전죽 작가의 글은 워낙 사실을 많이 반영한 글이기에 피드백 내용을 전달할 때도 상당히 조심스러웠으니까.
“죄송합니다. 며칠 됐다고 제가 집중력이 잠시 떨어진 것 같군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는 황금 작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한테 죄송할 건 없습니다. 단지 저희가 이렇게 합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오늘, 내일, 모레까지 앞으로 단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네요. 힘드시겠지만 작가님들이 지금처럼 글에만 온전히 집중하시는 행동이 완전히 몸에 체화되도록 더욱 분발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제넘게 드린 말입니다.”
“어, 어유. 주제넘다뇨. 노원 작가님 덕분에 정신이 번뜩 드네요.”
“아이고, 저도 잠시 집중이 흐트러질 뻔했는데, 감사합니다 노원 작가님. 남은 기간 동안 다들 더욱 힘내 보시죠.”
다시 정신을 차린 작가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그때.
권미현 본부장에게 카톡이 도착했다.
“아, 그리고 황금 작가님.”
“네, 넵?! 저 지금 안 쉬고 있습니다!”
“통조림 아니에요. 좋은 소식 있어서 전달드리려고요. 웹월드 심사 통과됐다고 합니다. 축하드려요.”
“아이고! 축하합니다, 황금 작가님!”
권미현이 내게 전한 소식은 황금 작가의 웹월드 심사 합격 결과였다. 이번 합숙 기간 동안은 엘가와 협력해 내가 엘가의 대변인이자 매니저 역할까지 모두 담당하기로 한 상황.
그렇기에 엘가의 담당 매니저가 아닌 내가 웹월드 합격 소식을 전해도 작가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야하하하! 드디어 정식 연재를 하게 됐네요.”
“본때를 보여 주죠 작가님. 소송 관련해선 엘가 쪽에서 모든 일을 진행하기로 했으니 걱정 마시고 비축 쌓는 데만 집중해 주세요. 런칭일은 한 달 후인 6월 17일 수요일이라고 하네요. 그때까지 원고는 충분하시죠?”
“물론이죠. 아주 폭탄 연참으로 그 표절작을 부숴버릴 생각입니다.”
“좋네요, 그럼 다시 빡글 가시죠 작가님들. 심사 통과했다고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니까요.”
“좋습니다, 가시죠!”
“하하, 파이팅합시다!”
작가들은 다시 열의를 불태우며 불꽃 집필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쓰고, 먹고, 자는 생활을 며칠 더 반복하니 어느새 합숙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후가 되었다.
“끄으으~읏! 드디어 끝났다!”
“하하, 저도 이제야 목표치 다 끝냈네요. 이게 확실히 매일 미친 듯이 쓰다 보니 글근육이라는 게 붙나 봅니다.”
“제 말이요. 히전죽 작가님 같은 속도는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하루에 한 편 겨우 끝냈는데 이제 하루에 두 편까지도 거뜬하네요.”
황금 작가와 히전죽 작가 모두 자신이 쓴 파일을 저장하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폈다.
“지난 한 주간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님들과 함께 의견을 조율하면서 저도 많은 도움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내 말은 진심이다.
지난 합숙 동안 나는 황금 작가와 히전죽 작가의 길잡이 역을 하며 그들의 막히거나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리고 최고의 배움은 남을 가르치는 거란 말이 있듯 신인 작가들이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이유로 고민하는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에이, 도움은 저희만 받았죠. 꼭 이번 합숙 기간 동안 배운 내용 잊지 않고 저희 글 훔친 도둑놈들 아주 먼지가 되도록 짓밟겠습니다.”
“하하하, 좋은 각오네요.”
감사 인사를 전한 황금거위 작가에 이어 히전죽 작가도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LGA컴퍼니 그리고 노원 작가님께서 애써 주신 덕분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배울 경험이었네요.”
“정 고마우시면 좋은 글로 보답해 주세요. 아직 자세히 말은 못 드리지만 LGA컴퍼니는 제가 가족같이 생각하는 애정이 가득한 회사거든요.”
“하하하, LGA컴퍼니 주식이라도 사신 모양입니다.”
주식은 아니고, 그냥 내 회사다.
열심히 좋은 글 써서 다시 캐시백 해주시길.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작가님들도 이제 한 질, 두 질 쌓아 가면서 기성 작가가 되시면 그때 이런 피해 받는 작가님들 많이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당연한 말씀을.”
“하하, 물론이죠.”
PC 전원을 끄면서 마무리를 하는 그때, 흑싸리 삼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릴즈를 낀 것처럼 번쩍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여어, 작가님들! 이제 다 끝난 거 같습니다? 그럼 후딱들 식사하러 가시죠. 오늘은 특별히 싱싱한 놈으로 잡아 왔으니까, 크흐흐.”
“아아……. 네…….”
“가, 가시죠…….”
일주일이란 합숙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작가들은 온전히 글에 집중하는 법과 여러 가지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싸리 삼촌의 얼굴에 적응하는 데는 일주일이란 시간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나도 고등학생 되기 전까진 삼촌들 눈도 제대로 못 쳐다봤으니까.’
우리는 흑싸리 삼촌에게 등이 떠밀리다시피 숙소 가장자리에 있는 테라스로 이동했다. 테라스에선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확 탁 트인 오션 뷰가 보였는데, 식탁을 보니 흑싸리 삼촌이 이미 저녁 세팅을 완료한 모양이다.
“어……. 삼촌? 근데 쌈 채소만 있고 뭐 아무것도 없는데?”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묻는 말에 흑싸리 삼촌이 미간을 좁히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배 하나 빌려서 선우랑 낚시 갔다 왔는데, 아주 싱싱한 놈을 잡아 왔거든.”
덜컹—
바닥에 놓여 있던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열자 그 안을 가득 채운 거대한 활어가 펄떡였다.
“새끼가, 쯧.”
푸욱!
“허억…….”
“컥…….”
펄떡대는 활어에 예기 가득한 사시미가 사정없이 쑤셔졌다.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 방혈되는 활어의 모습에 작가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크흐흑. 오랜만에 하는 칼질인데, 손에 착착 감기네?”
“…….”
물론 얼어붙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사삭— 샥— 샤샥— 샥—
흑싸리 삼촌은 마치 적과 항쟁을 벌이듯 맹렬히 생선을 난도질했다.
“우와아…….”
“아니……. 횟집에서 일하셨습니까?”
“크흐흐, 소싯적에 칼질 좀 했쥬.”
“…….”
“…….”
“…….”
눈 깜짝할 사이였다.
풀떼기만 가득하던 테이블 가운데엔 어느새 회로 만든 꽃봉오리가 가득 피어났다.
“싱싱한 놈이라 쫄깃할 겁니다. 작가님들 먼저 드슈. 나는 나머지 손질 좀 끝내고 먹을라니까. 선우야아! 밥 먹어라! 손, 발 씻고!”
“네, 삼촌!”
백사장에서 놀던 히전죽 작가의 아들 선우는 단풍 삼촌의 외침에 모래를 탈탈 털며 테라스로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저씨라 불렀는데 이제 삼촌이라 부르는 걸 보니 그동안 부쩍 친해진 모양이다.
“이야아! 횟집 하셔도 되겠습니다!”
“쫄깃한 맛이 일품이네요. 이럴 땐 반주 한잔 따악 걸치면 좋을 텐데, 하하하.”
“크흐흐, 많이들 드슈. 아직 나올 거 천지니까.”
흑싸리 삼촌은 언제 준비했는지, 곧이어 대왕 문어 찜과 고등어 구이부터 각종 해산물을 연달아 내왔다.
작가들은 흑싸리 삼촌의 사시미질은 이제 기억에서 잊었다는 듯이 진공청소기처럼 음식을 흡입했다.
‘잘 드시니 보기 좋네.’
그리고 나는 슬쩍 냉장고로 가 음료를 챙겨왔다.
“작가님들, 한잔하시죠.”
“아니…… 이거 술 아닙니까?”
“무알콜 맥주지만 분위기는 내보려고 챙겨 왔어요. 무알콜이라도 알콜이 조금은 함유된 거 아시죠? 너무 많이들 드시진 마세요.”
“여윽시! 갓작가님이라 분위길 아시네! 이럴 때 술이 없으면 아쉽지.”
“하하, 좋네요. 건배하시죠 노원지귀 작가님,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알콜 맥주캔을 부딪치며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아직 해도 지기 전의 시간.
하지만 분위기에 취하는 기분이다.
흑싸리 삼촌이 끓여 온 매운탕과 대게찜 껍질에 밥까지 쓱쓱 비벼 먹으니 배가 터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테라스로 나가려는데, 히전죽 작가가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아, 작가님. 잠시 후에 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썩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날 거여서요.”
“아하하, 아닙니다. 작가님께 따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내게 따로 할 말? 그게 뭐지?’
라는 생각을 하는 그때.
히전죽 작가가 결연한 눈빛을 빛내며 나를 응시했다.
“작가님.”
“예, 말씀하세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마음이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