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망할 수가 없다.
“이혼……물이요? 제 이야길 쓰라는 말이십니까?”
아직은 이혼물이란 단어가 생소한 시기.
그래서인지 히전죽 작가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혼물이란 이혼을 소재로 쓰는 글이죠. 굳이 작가님의 이야기일 필요는 없지만, 작가님의 경험을 녹여 쓰신다면 리얼리티가 훨씬 살 겁니다.”
“흠……. 전혀 예상 못 한 소재라 조금 당황스럽긴 하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걸 누가 읽기나 할까요?”
당연하죠 작가님.
없어서 못 읽는 거니까요.
‘물론 잘 써야 하는 게 전재 조건이지만.’
2021년 후반부터 2022년 중반까지 이혼물은 반년을 넘도록 소설피아를 점령했었다.
‘아주 지겨울 정도였지.’
2022년에 들어서면 끝날 줄 알았던 이혼물이 그해 공모전에서까지 난무할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현상이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 정도로 이혼물은 파급력이 큰 먹히는 소재의 글이라는 뜻이다.
“이혼 소재는 무조건 먹힐 겁니다 작가님. 한때 이고깽물이 인기였고 요즘엔 레이드물이 대세인 것처럼 이혼물도 상당한 수요가 있을 거로 봅니다.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드래곤 매니저님도 동의하는 부분이구요.”
“그래요? 제 담당 매니저님께서 그런 말은 없으셨는데…….”
“아하하, 제가 주로 소통하는 게 판무팀 팀장님이셔서 아직 다른 매니저님들께는 해당 내용이 전달이 안 됐나 보군요.”
물론 권미현에게도 이혼물에 관해 설명한 적은 없다. 히전죽 작가와 미팅이 끝나고 말을 맞춰두긴 해야겠다. 어차피 이혼물이 뜰 거란 건 사실이니까.
“음……. 솔직히 쉽게 와닿지는 않는군요. 죄송하지만 대체 어떤 점 때문에 작가님과 팀장님은 이혼물이 뜰 거로 생각하시는 걸까요?”
“이혼을 쉽게 생각하자면 회빙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회빙환이요?”
아, 2015년도인 지금까진 회귀는 주로 사용됐지만 빙환은 덜 사용되던 시기였다는 걸 깜빡했다.
“흔히 회귀, 빙의, 환생을 줄여서 회빙환이라고 부릅니다. 회빙환이 사용되는 이유는 약하고 부족했던 주인공의 과거사를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긴 하죠. 제가 봐도 확실히 회귀 같은 장치가 들어가는 작품은 초반부가 속도감이 있더군요.”
“거기다 회빙환이라는 장치가 무서운 점은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훨씬 더 빠른 시간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죠.”
“아……. 그래서?”
이제야 히전죽 작가는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주인공이 성공하는 모습을 독자 입장에서 더 흥미롭고 짜릿하게 표현하려면 우선 주인공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려야 하죠. 이 상황을 가장 간단하고 편리하게 끝낼 수 있는 장치가 바로 회빙환이고요. 하지만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회빙환은 완전히 판타지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이혼은……. 현실적이라는 말이시군요.”
그래, 바로 그거다.
회빙환이 판타지적 장치라면 이혼은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치.
아직은 퐁퐁남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기 한참 전이다. 하지만 한국의 연평균 이혼 수는 10만 건 이상. 이혼물이란 터지기만 한다면 무시무시한 화력을 일으킬 게 분명한 소재가 분명하다.
‘그러니 아침 드라마든 저녁 드라마든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하는 거지.’
단지 작가들은 모르고 있는 거다.
현로나 로판도 아닌 판무에서도 ‘이혼’이란 단어를 박고 나온 글이 먹힐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여태껏 이혼 소재의 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혼맛 소재를 제대로 살린 작품은 아직 없었지. 아무리 이혼 소재의 잠재력을 알아봤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글과 자신이 상상하는 글의 간극은 큰 법이니까.’
확실히 그런 면에선 히전죽 작가가 딱이다.
누가 이혼물 따위를 보냐고 묻던 말과 달리 지금 그의 눈빛은 소설 속 각성자의 그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작가님, 이혼물이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이혼 후 주식이 대박 날 수도 있고, 코인이나 로또가 당첨이 될 수도 있죠.”
“코인은…… 그건 뭡니까?”
“아, 그건 가상 화폐라고 하는 건데 작가님도 여유자금 있으시면 매달 조금씩만 넣으셨다가 2017년 말에 파시면 좋습니다.
코인장은 2018년부터 하락장에 들어서기에 2019년 초에 다시 진입해 2021년 초에 풀매도를 한다면 히전죽 작가의 팔자가 피겠지만, 괜히 그런 말로 흔들 필요는 없겠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여하튼 중요한 건, 이혼이 메인 재료지만 주인공은 각성자가 될 수도 있고, 작가, 작곡가, 음악가,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으로 현판, 판타지 장르별로도 구애 없이 서사를 진행하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음……. 그렇군요.”
턱을 매만지며 갸냘픈 머리를 흩날리는 히전죽 작가의 모습을 보니 이제 거의 다 넘어온 것 같다.
“우선 쉽게 생각해 보시죠. 만약 작가님께서 이혼물을 쓰신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시겠습니까?”
“저는…….”
잠시 고민하던 히전죽 작가는 몇 가지 안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이어진 히전죽 작가의 말을 들으며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무조건 된다.’
* * *
다음 날 아침.
합숙 숙소에서의 둘째 날이 되었다.
“자 아침 드십시다! 작가님들 기력 회복 하시라고 약재 푸욱 고아 삶은 한방 능이 오리백숙이니 남기지 말고 다 드십쇼!”
“저는 원래 아침 잘 안 먹어서 괜찮—”
“하하하, 작가님. 개구쟁이시네?”
“예에?”
“따땃할 때 후딱 드십쇼.”
“아니 전 아침을 잘—”
“드십쇼. 지금.”
“……잘, 잘 먹겠습니다.”
작가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흑싸리 삼촌이 밝은 미소를 짓자, 황금거위 작가는 저항을 끝내고 바로 수저를 들었다.
새벽 기상 후 샤워 그리고 든든한 식사까지 마친 후 흑싸리 삼촌은 선우를 학교에 등교시켰고, 나와 작가들은 온전히 집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황금 작가님, 타자가 멈추셨는데 막히는 부분 있으세요?”
“아뇨, 그건 아니고. 잠시 졸려서 멍 때리느라.”
“작가님……. 지금 밟고 계신 이 땅 어딘가에 작가님의 자식 같은 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도둑놈이 살고 있죠. 그런데 잠이 오시는군요?”
“아…… 아뇨! 바로 정신이 듭니다.”
“히전죽 작가님, 자리를 오래 비우셨네요?”
“제가 변비가 좀 있어서……. 보통 화장실을 가면 이삼십 분 정도는—”
“클라우드 사용 안 하시나 보군요? 폰에 한글 앱 설치해주시고 클라우드로 연동해 주세요. 그럼 화장실뿐만이 아니라 어딜 가시더라도 계속 이어서 글을 쓰실 수 있죠. 쉬지 않고요.”
“아하하……. 예, 좋은 세상이네요…….”
어제저녁 미팅 후.
작가들의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나는 양옆에 그들을 앉혀 둔 후, 그들에게 짓시 링크를 보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적응된 모양이네.’
짓시(Jitsi Meet)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서 상대방의 모니터 화면 공유가 가능하다. 즉, 우리 작가님들이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지, 글자를 치는지 실시간으로 감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나는 듀얼 모니터 한쪽엔 짓시 화면을 틀어놓고 실시간으로 작가들의 화면을 확인하며 피드백을 줬다.
‘이번 합숙이 끝나도 효율적인 글 쓰는 습관은 유지되어야 해.’
내가 이번 합숙을 제안한 건 단지 글에 관한 피드백을 주는 것 외에도 작가들이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니까.
“잠시만요 작가님. 지금 쓰시는 대화는 조금 어색해 보여서요. 대화에 나오는 태권도장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다들 다나까 말투를 쓰고 있네요? 혹시 의도하신 설정일까요?”
“아이고, 제가 실수했네요. 제대한 지 꽤 됐는데도 가끔 대화체를 쓰고 보면 이렇게 나오네요. 조금 더 나이대에 맞게 수정해보겠습니다.”
어제저녁부터 바로 통조림에 들어갔기에 오늘 오후 시간이 되자 작가들도 이젠 통조림에 많이 적응된 모습이다. 물론 작가들이 글을 쓰느라 고생하는 만큼 나 역시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여보세요? 네네, 아! 축하해요! 계약 조건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첫 대면 미팅이어서 많이 긴장했을 텐데. 다시 한번 축하해요. 고생 많았어요.”
이제 첫 계약을 따낸 황건일 매니저로부터 종종 연락이 왔고, 중간중간 엘가 임원진들의 보고를 받으며 내 글도 집필을 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시간이 되었을 무렵, 이번엔 권미현에게 전화가 왔다.
“네, 본부장님. 숙소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통화 가능해요.”
특히 권미현과는 이번 표절 이슈로 인해 통화가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고생 많으시겠어요.
“고생은요. 군소리 없이 따라와 주시는 작가님들이 힘드시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이번엔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는데.”
내 말에 휴대폰 너머로 피식 웃음 짓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에요. 본부장님들하고 지금 테일랜드 가서 이슈 상황 전달하고 미팅도 끝냈어요. 점심때 보내 주신 원고도 함께 넘겨줬고요.
“그래요? 어떻게 됐어요?”
전날 저녁 나와의 개별 미팅이 끝난 후, 히전죽 작가는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갔다. 마치 자신의 한을 담아내듯이.
신작의 제목은 ‘이혼 후 와이프부터 죽임’.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2022년 소설피아 공모전에서 비슷한 제목으로 초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던 기성 작가님의 작품이 있지. 비록 나중에 제목을 바꾸셨지만.’
히전죽 작가는 어제저녁부터 밤까지 5화 그리고 오늘 오전에 또 5화를 써 10화분을 완성했다. 물론 초반 전개 및 캐릭터 설정을 함께 짜주고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물고기처럼 내 통조림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당한 속도였다.
특히 ‘이혼 후 와이프부터 죽임’은 허구와 논픽션이 적절히 섞인 글이었기에 작가님은 자신의 울분을 쏟아내듯 활자를 쏟아냈다.
그리고 내 교정을 거쳐 가까스로 완성이 된 10화 원고가 오늘 미팅 때 테일랜드 측에 전달된 상황이다.
—테일랜드 측에서도 이런 경우는 사실 처음이라 당황스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희 임원진들이 모두 직접 가서 상황 설명을 하니 새로운 글로 연재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하아……. 일단 급한 불은 껐네요. 본부장님들께도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세요. 테일랜드 측에서 신작 내용은 괜찮다고 하던가요?”
—아뇨, 글 자체는 훑어보지도 않더라고요. 런칭 일정이 촉박해서인지 마지못해 알겠다는 뉘앙스였어요.
하긴, 테일랜드는 아직 작품 수급이 어려워서 허덕이던 시기다. 작품의 질을 따지는 시점은 아니지. 그러니 히전죽 작가가 무슨 글을 쓰든 딱히 기대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해서 테일랜드의 건조한 반응이 실망스럽진 않다. 기대가 없는 만큼 놀라움은 더 클 테니까.
—테일랜드 심사팀에서 오늘 전달한 원고는 늦어도 차주 중으로 연락준다고 했는데, 큰 문제 없이 런칭 가능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 됐다.
내 역할은 이전과 다른 갑옷과 무기를 장착한 히전죽이라는 전투사가 칼춤을 출 아레나가 필요했던 거니까.
“일정은 그대로죠?”
—네, 혹시 몰라서 런칭 일정을 좀 미룰 수 있는지도 물어보긴 했는데, 테일랜드에 작품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가능하면 원래 일정에 맞춰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어떻게 할까요?
플랫폼과의 대화는 연인과의 대화와 같다.
‘가능하면’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그건 부탁이 아닌 명령. 무조건 그 일정에 맞추라는 뜻이지.
“괜찮다고 해주세요. 지금 작가님 진행 속도를 봐선 문제 없을 것 같으니까요.”
—네, 그럼 해당 내용 정리해서 메일로 전달할게요.
“고생 많았어요. 마무리하고 얼른 퇴근해요.”
권미현과 통화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제 작가들은 내가 없어도 맹렬한 타격음으로 키보드를 강타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들을 보니 통조림의 효과가 발휘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제 기본은 되신 것 같네.’
황금거위 작가의 열정적인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특히 히전죽 작가는 몰아의 경지로 보인다.
히전죽 작가의 이글거리는 눈은 바로 코앞에 불구대천지원수가 있다는 듯이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으니까.
표절이라는 마른 장작에 나는 글로서 이기자는 복수의 불씨를 지폈다. 그렇게 타오르기 시작한 히전죽 작가의 불씨엔 이혼이라는 기름이 들이 부어졌고.
이혼남이 쓰는 이혼물.
그것도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이혼남.
이 작품은 망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