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68화 (68/201)

#68화 - 각오 되셨습니까?

법적으로 따지자면 저작권은 작품의 창작과 동시에 아무런 절차나 방식 등이 요구되지 않고 발생하는 무방식주의.

즉, 저작권은 출판을 하든 안 하든 간에 글을 창작하는 순간부터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저작권 침해와 표절은 다르지만, 한국은 저작권 보호와 표절에 대한 규제 또한 느슨하다.

‘문제는 소송을 벌이긴 싫단 거지. 두 분 모두…….’

법적 조치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다. 소송 비용을 떠나 그 긴 과정으로 인해 피해자인 작가가 겪게 될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

실제로 이번 피해 작가들에게 표절과 아이디어 도용 사실을 알렸을 때, 권미현 본부장을 통해 들은 작가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작가님들 다시 설득해 볼 순 없을까요? 로켓 작가님도 마음 돌리셨잖아요.”

—안 그래도 소송 전반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LGA컴퍼니에서 책임지니 출판계를 위해 좋은 선례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어요. 황금거위 작가님은 고민 중이신 거 같은데 히전죽 작가님은 상당히 단호하세요…….

독자들이 이 상황을 안다면 왜 바로 법대로 하지 않는지 답답해할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매일 같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 소송전과 같이 신경 뺏길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나도 처음 고소장을 받았을 때, 한동안 글은 손도 못 댔지.’

하물며 소송전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대 로펌과 변호사의 영향력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에 우리 쪽이 피해자라고 해서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다.

결국 하루하루가 다양한 아이디어로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소비되는 웹소설 판에선 법적인 문제로 끌고 갔을 경우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경우가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웹소설 작가 사이에 법적 분쟁이 생겼을 경우 제로섬 게임이라기보다 공멸의 게임이라 부르지.’

비록 소송에 이길지라도 소송 준비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신의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차기작을 내지 못해 도태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관한 부분이 형사상 범죄로 간주되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되도록 제도가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당장 변하지도 않을 테고.’

그렇기에 나는 오늘부터 7일간 피해 작가들과 단체 하숙을 하며 각 작가들의 글을 봐주기로 했다.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대표 강사로서.

‘그런데 시작도 전에 작가님 한 분이 아이 때문에 어렵다고 하신다니…….’

—아이가 몇 살이라고 했죠?

—권미현 본부장: 이제 중학교 1학년이라고 하더라고요

—권미현 본부장: 남자애예요

—그럼 이건 어때요?

저희 기존 숙소 예약 취소하고

히전죽 작가님 집 근처로 숙소

잡을 테니 애랑 같이 와 달라고요

—권미현 본부장: 물어보는 거야 어려울 건 없는데……. 좀 멀지 않나요? 히전죽 작가님 지역이 속초라고 하시던데?

—상관없어요

몇 시간 운전하는 게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권미현 본부장: 그럼 황금거위 작가님께도 그쪽으로 오시라고 전달드릴까요?

—히전죽 작가님께 먼저

여쭤보고 진행해 주세요

—황금거위 작가님은 제가

픽업하면 되니까요

권미현이 작가들에게 카톡을 보낸 후 얼마 안 있어 히전죽 작가에게 답변이 온 모양이다.

—권미현 본부장: 히전죽 작가님 가능하시대요!

—잘됐네요

—경영팀에 에어비앤비

변경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새로운 숙소 위치 저랑

황금 작가님께도 공유해주세요

아이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서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히전죽 작가의 열정이 적은 게 아니라는 게 다행이다.

6박 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할 거다. 소송전으로 갈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단 하나.

‘표절작보다 더 좋은 글을 만들어 낸다.’

엘가의 작품을 표절한 해골병, 티팬티내꺼 작가가 A급 작가라는 덴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작가님들이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인 건 아니지.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6박 7일 동안 내가 뜯어고쳐 줄 테니까.

‘그럼 애 돌보미한테도 연락해볼까?’

* * *

오후 반차를 썼기에 2시가 되자마자 나는 칼퇴를 진행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옷만 갈아입은 후 바로 강의 녹화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및 지망생 여러분들. 이번 강의는 부득이하게 녹화본으로 진행될 예정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번 주 교육 내용인—”

매주 일요일.

나는 하회탈을 쓴 채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 주엔 내가 아카데미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라이브 강의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 7주 차여서 그런지 녹화 강의도 딱히 어색하진 않네.’

나는 빠르게 녹화를 마치고 황금거위 작가를 픽업하러 이동했다.

“노원지귀 작가님을 직접 뵙다니. 영광입니다.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별말씀을요. 우선 차에 타시지요.”

황금거위 작가는 사두용미 아카데미 강의를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글의 팬이었다.

나 역시 그가 내 회사 소속 작가이기에 딱히 어색함은 없었다.

하지만 차에 타고 잠시 후.

조수석에 앉은 황금 작가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게 아이디어가 도용당한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린 말없이 숙소가 있는 속초로 이동했다.

“다 왔네요. 그럼 이제 짐 챙겨서 내리시죠.”

“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네요?”

“하하, 저도 바다 본 지 정말 오래된 것 같네요.”

황금 작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죽어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도 지금은 웃을 상황이 아니었을 테지.

우리가 잡은 숙소는 속초해수욕장 바로 근처의 펜션. 오션뷰가 훤히 보이는 위치라며 단풍 삼촌이 자신도 오고 싶다며 투덜거렸었는데, 그럴 만한 아름다운 광경이다.

‘물론 작가님들은 바닷물에 발도 담글 일이 없을 거지만.’

통째로 빌린 펜션 마당에 각그랜져가 보이는 걸 보니 도우미도 이미 도착한 모양이다.

‘삼촌은 도착했나보네.’

짐을 챙겨 작가들과 깔끔하게 조경된 잔디 마당을 지나 펜션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엔 가무잡잡한 피부의 거대한 덩어리가 긴 테이블을 모아 붙여 피시방 대열로 컴퓨터와 듀얼모니터 세팅을 진행 중이었다.

“삼촌, 우리 왔어.”

“여어, 노원지귀 작가님.”

임시 보모를 맡게 된 건 6박 7일간 청소와 요리를 담당할 흑싸리 삼촌이다.

6박 7일간 알바비 200만 원을 선언하니 삼촌들은 서로 가겠다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흑싸리 삼촌을 뽑은 건 요리도 요리지만 흑싸리 삼촌이 원래 속초 출신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작가님이시군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깔끔하게 준비 끝났으니 편하게 글만 쓰시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하지 않아도 황금 작가의 얼굴에 가득 맺힌 당혹감이 충분히 느껴진다.

흑싸리 삼촌의 진심을 담은 해맑은 미소엔 피아노 건반 같은 금니가 하나 건너 하나씩 빛을 내고 있었으니까.

황금거위 작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 진 그 순간. 등 뒤의 현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선우야 아빠 일 하는 동안은 삼촌들이랑 조용히 있어야 해. 알았지?”

“걱정 마. 내가 애도 아니……아, 아빠아.”

“선우야 왜 그래? 아…… 실례했습니다. 제가 집을 잘못 찾은 것—”

“히전죽 작가님 맞으시죠? 노원지귀입니다. 이쪽은 6박 7일 동안 아드님을 돌봐 줄 제 삼촌입니다.”

“반갑습니다, 하하. 꼬맹이도 반가워.”

“……아빠아.”

“…….”

히전죽 작가의 아들 선우가 아빠 손을 꼭 잡은 채 그의 뒤로 숨었지만, 꼬마의 겨드랑이를 파고든 흑싸리 삼촌의 굵고 검은 팔이 서리꾼처럼 아이를 낚아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끄아아악! 아빠아!”

“서, 선우야…….”

“그렇게 걱정 하실 필요 없으세요 작가님. 저희 삼촌이 좀 개성 있게 생기시긴 해도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건 전문가시거든요. 얼른 짐부터 옮기시죠.”

“아…… 예…….”

인신매매범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히전죽 작가의 아들 선우는 금세 방 한쪽에서 흑싸리 삼촌과 깔깔대며 웃음꽃을 피웠다.

“여어, 꼬맹이 좀 치는데?”

“아저씨가 못 하는 거거든요?”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흑싸리 삼촌에게 꼬맹이 하나 다루는 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뭐 인마?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니까?”

“아저씨…… 양심 노? 그리고 원래 더 잘하는 사람이 형이에요. 한 판이라도 이겨 보시던가.”

“이 쥐콩만한 녀석이! 그럼 삼촌이라고 불러 인마.”

“네, 아저씨.”

선우도 친화력이 있는 애라 다행이었다.

플스를 챙겨온 흑싸리 삼촌이 선우와 놀아주는 그때. 나는 작가들과 함께 6박 7일간의 지옥 합숙을 진행할 거실에 모였다.

‘애는 잘 해결된 것 같고……. 그나마 둘 다 전업 작가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네.’

이들이 전업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합숙 훈련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노원지귀입니다.”

소재를 도둑맞고 표절을 당한 상황이었기에 작가들의 얼굴엔 침울함, 우울함 그리고 분노 등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6박 7일간. 작가님들이 카피작을 짓밟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각오 되셨습니까?”

각오가 되었든 안 되었든 상관없다.

제 발로 이곳에 들어온 이상. 나는 이들을 최선을 다해 단련시킬 뿐이니까.

* * *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나는 임시 회의실로 만든 방에서 작가들과 개별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주자로 황금거위 작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도용작 확인해 보시니 어떠셨나요? 작가님이 보시기엔?”

“음……. 솔직히 소재나 전개 방식 모두 너무 겹치는 게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그보다 제가 쓴 글보다 더 재미있다는 부분이 가장 힘드네요…….”

웹월드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 황금거위 작가의 신작은 스포츠물. UFC가 메인 주제인 격투기물이다.

MMA물이 흔하지 않은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황금거위 작가가 준비하는 ‘격투 천재 백사범’과 해골병 작가의 ‘옥타곤의 태권 천재’ 모두 태권도 선수 출신의 주인공이라는 점.

거기다 국가대표였던 주인공이 누명을 입고 태권도계에서 퇴출당하고 우연히 MMA를 접한다는 점. 그리고 알고 보니 자신이 엄청난 하드펀쳐였다는 점까지 우연이라 하기엔 겹치는 요소가 너무 많다.

‘해골병 작가가 쓴 글이 흐름도 훨씬 매끄럽고 호흡도 더 빨라. 물론 황금거위 작가가 쓴 글도 전보단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해.’

동일한 소재, 캐릭터의 사연, 거의 비슷한 초반 전개를 두고 봤을 때 소설피아에서 먼저 연재를 시작했고 필력도 더 매끄러운 해골병 작가의 글이 독자들이 보기엔 더욱 재미있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독자들이 해골병의 글이 오리지날이라고 착각한다는 거지. 많은 독자들은 어느 작가가 먼저 기획했고 집필을 했냐를 떠나 재미있는 글이 더 좋은 글 아니냐란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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