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67화 (67/201)

#67화 – 어쩌면 좋을까요?

평일에 회사에 있을 땐 죽어라 안 가던 시간이 주말엔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주말 간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놀라운 일이 반복됐다.

“어디, 단풍 삼촌이 일을 잘 했……오오! 6.09? 조금만 더 했으면 5점까지 떨어졌겠는데?”

눈을 비비며 전날 테일랜드에서 런칭한 사팔팔오 작가의 표절작을 보니 그제만 해도 8점 후반이었던 별점이 6점 초반대로 뚝 떨어졌다.

‘역시…… 노쓰 출신!’

별점 하락뿐만이 아니었다.

댓글창도 아예 표절 관련 내용이 도배가 됐고 상위 베스트 댓글 또한 표절 관련 내용으로 가득 찼으니까.

—[BEST] 표절단속반(noco****):

1. 주인공 이름이 같음

2.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기가 같음

3. 주인공의 성장 과정 같음

4. 빌런 설정이 같음

—[BEST]이동하(hido****): 소재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지만 정도가 있지

—[BEST]ohd(idhe****): 따지고 보면 이 작가 전작도 클리셰 범벅이긴 했는데, 그래도 신인 작가 표절이라…… 추하다

—[BEST]Remon(fpah****): 사팔팔오 퇴물 소리 듣더니 이제 아예 신인 단물 빨려는 게 느껴지네

—[BEST]임한준(june****): 개웃기네 ㅋㅋㅋ 5화까지는 첫배뎃 말하고 똑같고 6화부터는 다른 전개로 각잡고 레이저 드리프트 하는 게 더 웃김 ㅋㅋㅋ

댓글의 말투, 댓글을 단 시간마저도 제각각이고 댓글이 달린 회차 역시 다 다른 걸 보니 단풍 삼촌은 역시 프로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단풍 삼촌이 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출신 성분 때문에 안 되겠지만, 솔직히 단풍 삼촌 같은 사람이 국정원에 들어간다면 북한 정규 티비 방송에 뮤뱅이 흘러나오지 않을까란 생각마저 든다.

“좋아, 이건 우선 이 정도로 두고 오늘은 나도 비축이나 더 만들자.”

후배 작가들을 위해 선례를 만들어 달라는 권미현과 단풍 삼촌의 거듭된 설득에 로켓 작가는 소송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이제 본격적인 소송이 진행되기 전까진 딱히 걱정할 게 없어 보인다. 사팔팔오의 신작 댓글창이 제대로 곱창나고 여론도 등을 돌려 버린 상황이니까.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매일 작가 사무실에 와 글을 쓰는 도준이 형도 주말에는 집에서 쉬기에 나는 온전히 내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코즈일로 연재 중인 ‘인턴사원 회장님’과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한 회차씩 쓰고, 이제 노원지귀로 연재하는 ‘혁명적인 작가 생활’의 비축분을 바로 이어서 쓰려는 그 순간, 폰에 진동이 울렸다.

“주말에 어쩐 일이에요?”

—휴일에 죄송해요. 표절 건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긴장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권미현 본부장이었다.

“표절이요? 로켓소년단 작가님은 소송 진행하기로 잘 마무리된 거 아니었어요?

—그게……. 다른 작가님들도 당하셨어요.

잔잔한 호수 같던 마음에 폭풍이 몰아친다.

“다른 작가님들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번엔 상황이 더 안 좋아요. 황금거위 작가님이랑 히전죽 작가님. 두 분 글이 추가로 표절당했어요.

“아니…… 그분들도 신인 작가님 아니에요?”

황금거위와 히전죽 작가 모두 이번 계약이 출판사와의 첫 계약인 작가들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황금거위 작가님은 세최공 때 계약한 작가님이시고, 히전죽 작가님은…….

“알아요, 투고 주신 작가님이죠. 그리고 두 분 모두 소설피아가 아닌 타플 연재 준비 중인 분들이고요.”

—네……. 거기다 이번 표절 작품 두 개도 모두 파이톤 출간작이에요…….

파이톤은 BS북의 판무 레이블.

사팔팔오가 표절작을 테일랜드에 런칭한 게 바로 지난 금요일. 그로부터 연달아 두 작품을 BS북으로부터 표절당했다.

‘BS북 이 미친놈들……. 의도적으로 우릴 노린 거였어?’

한 번 일어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 연달아 두 번 터졌다는 건 BS북에서 의도적으로 엘가를 저격 중인 게 틀림없다.

“그 표절작들도 테일랜드에요? 아니면 웹월드?”

—그게……. 소설피아예요.

“소설피아요?”

—네……. 토요일인 어제 그리고 오늘까지 하나씩 올라왔어요.

“파이톤 계약작인 건 확실해요? 어제, 오늘 올라온 글이면 아직 표지도 없을 거잖아요?”

소설피아에서 이제 막 런칭된 글이라면 아직 표지가 없을 터. 내가 표지를 물은 건 표지가 나와야 그곳에 적힌 출판사명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 매니저들이 혹시 하는 생각에 서지정보에서 찾아봤대요. 글 내용이 저희 작품들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머리가 지끈거린다.

서지정보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사이트를 말한다. 매니저들 사이에선 흔히 ISBN이나 서지정보라고 줄여 부르는데, 도서명이나 작가명을 검색하면 어느 출판사를 통해 작품을 출간했는질 확인할 수 있다.

“대개 유료화 일정이 나왔을 때 ISBN 등록을 하는데, 런칭하자마자 바로 등록 해놨다는 건……. 성적이 좋든 나쁘든 무조건 유료화를 하겠다는 말이네요.”

—문제는…… 망할 것 같지가 않아요. 아직 초반부라 정확한 지표를 살피긴 어렵지만, 표절 작가들이 다들 실력이 있는 작가들이라…….

“파이톤 표절 작가는 누굽니까?”

—해골병, 티팬티내꺼 작가예요.

“하아…….”

충격으로 인해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해골병과 티팬티내꺼는 파이톤의 A급 작가들이었으니까.

심지어 이들은 소재만 잘 잡는다면 언제든 대박을 칠 수 있는 조건의 작가들. 거기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최진혁 담당작이야.’

지난 금요일 로켓소년단 작가의 글을 표절한 사팔팔오의 담당은 최진혁이었다.

그리고 해골병과 티팬티내꺼 역시 최진혁 담당이다.

‘강경진만 문제가 아니었던 건가.’

폰을 움켜쥔 손이 부들거린다.

근묵자흑이라 하더라도 최진혁이 이런 짓을 벌일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건 편집자가 지녀야 할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결코 해선 안 될 일이었으니까.

“……작가님들껜 말씀드렸나요?”

—아직이요. 그나마 로켓 작가님은 이미 연재 중인 상황이어서 바로 상황을 전달드릴 수 있었지만, 황금 작가님과 히전죽 작가님은 다들 런칭 전이셔서요.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대표님께 먼저 연락드렸어요.

아무리 판무팀 전권을 지닌 권미현이라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은 확실히 조심스러웠을 테다.

표절작 놈들이 오히려 더 빨리 대중에 공개된 끔찍한 상황이니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황금 작가님의 경우엔 아직 웹월드 심사 중이고, 히전죽 작가님은 테일랜드에서 런칭 일정 확정만 받은 상황이세요.

“대체 이해가 안 가네요……. BS북에서 이 작가님들이 우리와 계약한 걸 어떻게 알고 표절을 자행한 건지…….”

최진혁이 담당자로서 우리 신인 작가 아이디어 빼먹기를 자행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해당 작가들이 엘가 소속인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그게…… 담당 매니저들에게 물어보니 황금 작가님은 세최공 끝나고 나서도 계속 BS북에서 연락이 왔었데요.

“올댓스토리에 올리자고요?

—네, 하도 집요하게 연락이 오니까 LGA컴퍼니와 계약했다고 말했다고 하세요. 아마 그때 BS북에서 알아차린 것 같고요.

“그러면 히전죽 작가님은요? 투고작이었는데 아이디어 도용을 대체 어떻게?”

—히전죽 작가님은 저희랑 계약 전에 타 출판사에도 투고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중에 한 곳이 BS북이었고요.

“이런 미친놈들. 투고작 아이디어를……. 하…….”

—어쩌면 좋을까요?

“…….”

권미현의 물음에도 나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로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 * *

“정우 매니저,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이거 생생하던 사람이 연달아 쉰다고 하니까 걱정되는데…….”

“며칠 쉬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곳 면접? 아니지?”

“……아닙니다.”

전날 BS북에서의 의도적인 표절 이슈가 터진 후, 나는 임원진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월요일인 오늘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연달아 4일 반 동안 휴가를 내기로 했다. 다만 갑작스러운 연차 사용이 김동현 팀장에게 의심의 실마리를 안겨 준 것 같다.

“어허, 그래. 피곤하면 안 되지. 걱정 말고 푹 쉬고 오라고. 연휴 동안 담당 작가들만 잘 챙겨주고.”

“……알겠습니다.”

2015년인 올해.

BS북은 업계 8년 차가 되었지만 놀랍게도 회사 곳곳 체계가 없는 모습이 판을 치고 있다.

‘푹 쉬면서 담당 작가를 잘 챙기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김동현 팀장은 자기가 뱉은 말이 상반된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BS북은 휴가 기간에도 자신이 담당하는 작품의 관리 역시 담당 매니저가 맡는 좋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라이브 연재가 있는 매니저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지.’

물론 내가 담당하는 작가들의 경우엔 다들 최소 2주 이상의 비축분이 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비축 없이 라이브 연재 작품을 담당하는 매니저의 경우엔 휴일이란 이름의 재택근무일 뿐.

그게 BS북 판무팀 매니저들의 현실이다.

‘뭐, 나한텐 잘된 일이기도 하지. 조팟 같은 놈이 내 글을 담당하다 무슨 실수를 낼지도 모르니까.’

나는 담당 작가들에게 갑작스럽게 연차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금주 동안 해야 할 업무를 정신없이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음……. 소재도 좋고 이 작품은 컨택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다만 중언부언하고 동어 반복되는 일이 잦으니 작가님과 통화해 보면서 작품 계약하게 되면 이런 부분 수정 가능하실지도 확인해 보세요.”

“넵, 해당 부분 참고해서 연락 드려보겠슴다!”

“컨택 쪽지 보내기 저한테 먼저 보여주시면 확인해 드릴게요.”

“감사함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실무에 들어가게 된 신입 매니저들의 컨택 리스트를 함께 확인하는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내 자리로 돌아와 폰을 확인하니 권미현에게서 온 톡이었다.

—권미현 본부장: 작가님들 답변받았어요

—권미현 본부장: 황금거위 작가님은 가능하시다는데 히전죽 작가님은 참여가 힘들 것 같다고 하세요

—권미현 본부장: 홀로 아이 돌보는 상황이라 주위에 아이를 돌봐 줄 분이 없다고 하셔서요

‘단 6박 7일 동안이긴 한데……. 확실히 애가 있으니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

엘가 작품 중 가장 먼저 표절을 당한 로켓 작가의 경우 단풍 삼촌의 이북식 댓글 공작으로 표절 이슈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거기다 지금과 달리 로켓 작가의 글은 소설피아에 더 빨리 공개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황금거위 작가와 히전죽 작가의 경우엔 단풍 삼촌의 이북식 온라인 당수 치기도 불가능하다. 우리 쪽이 작품 준비를 먼저 한 게 분명하지만, 대중에 공개된 건 도둑놈들이 먼저였으니까.

‘상관없지. 도둑놈을 때려잡는 법은 여러 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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