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놈들이 원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후우……. 아슬아슬했다.”
차를 향해 전속력 질주 후 바로 풀악셀을 밟지 않았다면 상반신을 크롬하츠로 도배한 성난 야수, 아니 아버지에게 잡혀 죽을 뻔했을 게 분명하다.
“전화는……. 한 주 정도 지난 후에 받는 게 낫겠지.”
자동차 스피커에서 아버지의 전화가 집요하게 걸려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받는 순간 진이 빠질 정도의 잔소리가 들려올 게 분명했으니까.
“아, 거참! 무슨 전활 연달아 일곱…… 어? 이지연?”
수신 거부를 누르려던 내 손이 멈칫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수신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이지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아직 퇴근 전이에요?
—아뇨, 이미 집이죠. 혹시 저희 동네 오셨나 해서요.
“근처에요, 지금 막 아버지 뵙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무슨 일 있으세요?”
얼마 전 임원 톡방에 어버이날 선물을 추천받았었는데, 이지연은 그게 기억이 났던 모양이다.
—아뇨, 별일은 아니고……. 혹시 바쁘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하실 수 있나 해서요. 드릴 말도 있고…….
“주소 불러 주세요. 바로 갈게요.”
뭔가 말꼬리를 흐리는 게 묘했지만, 별생각 없이 이지연이 불러준 주소로 이동했다.
이지연이 사는 곳은 4호선 라인인 상계역.
인의 보육원이 있는 수락산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카페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아직 안 온 건가?”
15분쯤 걸려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지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걸려는 그 순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낯선 여자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대표님.”
“……본부장님?”
낯선 이라고 생각했던 연갈색 단발의 여자는 이지연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때, 싱긋 웃으며 다가온 이지연이 내게 음료를 건넸다.
“아이스 초코예요.”
“아…… 네. 근데 머리 자르셨네요? 순간 모르는 분인 줄 알았어요.”
“이상한가요?”
이지연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쪽 귓가로 짧아진 머리를 넘겼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찰랑이는 긴 밤색 웨이브 머리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무슨 고민인지는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쉴 틈 없이 바쁜 매일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지연이 내 소중한 사업 파트너란 점. 귀중한 동료이자 부하 직원인 이지연에게 따스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상사가 되어야 한다.
“아뇨, 잘 어울려요.”
“……저, 날씨도 좋은데 야외에서 드실래요?”
“그러죠.”
내색하진 않았지만, 평소와 사뭇 다른 이지연의 행동과 외모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단히 커피나 마시자면서…… 풀메?’
풀메는커녕 이지연이 화장한 모습을 본 것조차 손에 꼽을 정도다. 회귀 전에 함께 회사를 다닐 때도 바이어와 미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틴트도 안 바르는 사람이었는데?
함께 걸으며 힐끗 보이는 모습을 보니 작정하고 꾸민 냄새가 난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사의 범주이기에 묻지 않았다.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하지.’
나는 이지연을 따라 카페 근처의 개천으로 이동했고 우린 자연스럽게 형형색상으로 빛나는 당현천 분수대 앞에 앉았다.
“저어…….”
“?”
빛으로 물든 물보라를 보며 말없이 플라스틱 컵을 만지작거리던 이지연이 정적을 깼다.
“실은—”
“어? 잠시만요. 미현 본부장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아…… 네.”
“미현 본부장님. 무슨 일—”
—대표님! 큰일이에요! 표절 문제 생겼어요!
“표절…… 표절이요?”
휴대폰 너머로 들려 오는 청청벽력 같은 소리에 머리가 멍해진다.
“아니, 표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던 분수대 물보라가 신경을 긁는 마찰음처럼 귀를 괴롭힌다. 나는 이지연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피해 전화를 이어받았다.
—로켓소년단 작가님 기억하시죠? 저희가 세최공 때 계약했던 신인 작가님이요.
“기억하죠. 성지글 작가님이잖아요. 로켓 작가님 글이 표절당한 거예요?”
로켓소년단 작가는 지난 세최공에서 나의 뼈 때리는 집중 피드백을 받고 각성해 우리 엘가와 계약까지 하게 된 작가다.
내 첫 피드백이 담긴 게시글이 성지글이 되면서 수많은 지망생들과 작가들의 공모전 참여를 이끌어낸 일등 공신이었기에 당연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지연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팔팔오 작가 아시죠? 슬기로운 레이드 생활 작가요.
“알죠. 카리오스 소속이다가 지난번 계약 이슈 터졌을 때 파이톤으로 넘어온 작가잖아요. 1팀 최진혁 팀장이 담당하는 것 같던데……. 설마?”
—네……. 사팔팔오가 오늘 테일랜드에 신작 런칭했어요. 슬기로운 도사 생활이라는 제목으로요.
“……?”
—어반 판타지 레이드물인데, 그게……. 제목이나 소재만 비슷한 게 아니라 1~5화 업로드된 전개나 갈등 장치 등이 완전히 동일해요. 6화부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긴 하지만요.”
화가 나다 못해 머리에 눈송이가 쌓인 듯 얼얼하다. 최진혁이 강경진의 완벽한 하수인이 되면서 이전과 완전히 다른 편집자, 아니 샐러리맨이 되어버린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표절작을 직접 출간한다고?
그것도 자기가 직접 기획해서?
“제가 아직 사팔팔오 표절작을 보진 못했는데, 미현 본부장님이 보기에도 그 정도로 비슷한가요?”
—솔직히……. 참고를 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예요. 주인공 이름부터 사용하는 무기, 성장 과정, 악역 설정까지도 동일해서요. 문제는 사팔팔오 작가는 자체 팬덤도 있고…….
“거기다 필력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죠.”
—네…… 그게 문제인 상황이에요.
“하아……. 미치겠네.”
사팔팔오처럼 이름값이 있는 작가가 표절을 자행한다면 이런 게 문제다. 오리지날 소재로 먼저 연재를 시작한 로켓소년단 작가의 글이 되려 아류작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으니까.
‘로켓 작가님 필력이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사팔팔오 수준엔 못 미쳐. 거기다 팬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한 기성 작가들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신인들의 소재를 뽑아먹는 악행은 웹소판에 종종 있는 일이다. 거기다 문제인 게 분명함을 알면서도 이런 일이 자행되는 건 조치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팔팔오와 최진혁 팀장도 이런 추잡한 일을 강행하는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작가님과 고문 변호사님께 해당 내용 바로 전달드리고 조치를 취해야겠네요. 저도 지금 바로 읽어보고 표절 부분 확인을—”
—그게……. 작가님께서 원치 않는다고 하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순간 벙쪄 물은 말에 전화기 너머에선 권미현 본부장의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표절 의심 부분 파악하고 바로 고문 변호사님께 해당 내용 전달드렸어요. 로켓 작가님께도 상황 설명드리고 회사 차원에서 BS북과 플랫폼에도 정식 항의하고 소송 진행하겠다고요.
“그런데 작가님이 싫다고 하세요?”
—네……. 장르판이 원래 다 이런 거 아니냐면서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표절 문제가 생겼을 때 소송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소송에 드는 비용과 그 결과가 나오는 기간 동안, 피해당한 작가의 멘탈은 으깬 두부처럼 바스라져버릴 테니까.
—거기다 사팔팔오 작가 글을 보면 6화부턴 완전히 다른 전개로 넘어가니 글이 진행될수록 괜한 논란만 가중될 것 같다고 하세요.
“…….”
피해자인 로켓 작가가 도둑놈의 눈치를 보는 지금 상황이 열을 뻗치게 한다.
‘상대는 고정 팬층이 있는 기성 작가 거기다 매니지는 국내 웹소 탑이라는 BS북이니까.’
—거기다 로켓 작가님은 이번이 유료화 하는 첫작이라 괜히 기성 작가와 트러블 생기는 게 두렵다고 하세요……. 그래도 대표님께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팔팔오와 BS북.
놈들은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에 놈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신인 작가를 굴복시켰다.
팬덤을 보유한 기성 작가 그리고 대형 출판사라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선 변호사님하고 다시 이야기해보고 승소 가능성 확실하면 작가님 다시 설득해 주세요. 작가님께서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시는진 잘 알겠지만, 피해받은 사람이 가해자 눈치를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니까요. 소송 진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우리 회사에서 부담한다는 말도 전해드리고요.”
—네, 대표님. 그렇게 처리할게요.”
권미현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이지연에게 돌아갔다.
“죄송해요. 통화가 길어졌네요.”
“아니에요. 표절 문제 같던데……. 잘 해결됐나요?”
“하아…… 아뇨. 작가님께서 법적 조치를 취하기 싫다고 하셔서요. 그래도 다시 설득해 보려고요.”
나 역시 작가이기에 로켓 작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문제가 터졌을 땐 신속하게 해당 이슈를 처리해야 한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선 꿀릴 게 없어. 물론 소송 과정이 길긴 하겠지만…….’
소송에 휘말려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는 건 온전히 집필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야 하는 작가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표절을 자행하는 도둑놈들도 이걸 알기에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 테니까.’
지금 당장은 신인 작가라도 이들 역시 한 질, 두 질 쌓이게 되면 기성이 된다. 앞선 선배 작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신인 작가들은 달라야 한다. 잘못된 길로 간 이들과 다른 선례를 만드는 것. 그게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이 될 테니까.
“근데 아까 하려던 말은 뭐였어요? 하필 그때 전화가 와서.”
“아하하, 아니에요. 근처이신 거 같아서 커피나 한잔할까 했던 거예요. 표절 이슈 때문에 바쁘실 텐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알겠어요.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 * *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단풍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여보세—”
—이게 누군가? 미제앞잡이가 다 된 쌍간나 아니신가? 새끼야, 큰형님한테 그리 비싼 걸 사주면 되갔어? 큰형님 아주 난리가 났다!
전화를 받자마자 잔뜩 성을 내는 단풍 삼촌을 보니 크롬하츠 풀세트를 받은 아버지가 자랑을 좀 하신 모양이다. 신나신 모양이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삼촌. 우리 표절당했어.”
—뭐? 표저얼?
나는 단풍 삼촌에게 로켓소년단 작가의 글이 표절당했다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뭐 그런 미친 애미나이를 다 봤나? 그래서 그냥 그대로 냅둔다 이 말이간?
“아니, 당연히 아니지. 권미현 본부장한테 말해서 다시 작가님 설득할 생각이야.”
—그렇디. 선례를 제대로 만들어 놔야 이런 쌍간나 애미나이들이 그런 양아치 짓을 두 번 다시 할 생각을 안 할 테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회사 차원에서 부탁하거나 그런 건 저얼대 아닌데, 사팔팔오 작가 표절한 주제에 댓글 반응이 좋네? 왜 이럴까?”
—그으흐흐, 기래? 정우야 끊는다. 할 일이 있어서.
역시 단풍 삼촌.
척이면 척이다.
당장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해도, 사팔팔오 이 양아치 새끼가 한 행동을 그대로 두고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진흙탕 싸움? 하고 싶다면 해줘야지. 물론 거기서 뒹구는 건 니들뿐일 테지만.’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랬나?
웹소설 작가이니만큼 트렌드에 맞춰서 패줘야 한다.
“사이버전은 역시 북쪽이지.”
뒷처리를 단풍 삼촌에게 맡기고 나서야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