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65화 (65/201)

#65화 - 멋이란 원래 고통스러운 법이다.

김동현 팀장의 반기 선언이 있고 난 뒤.

나와 신입들을 제외하곤 모두 대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신입들에게 교육과 관련해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한 상황이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실무 들어가겠네요. 다들 지난 한 달 동안 교육받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하핫! 아닙니다! 정우 매니저님의 지도 편달에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도 내가 신입들을 불러 모은 건 김동현 팀장이 예약해 둔 대회의실 사용 시간이 아직 40분 정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소회의실에서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것보다 대회의실에서 널찍이 떨어져 있는 게 낫지.’

댓글 테러와 트레이싱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었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신입 교육 일정의 마지막 날인 5월 8일.

실무를 앞둔 건일 매니저와 진아 매니저의 선임으로서 이들에게 따로 전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작가 컨택 등 실무에 투입될 예정인데 눈여겨보는 작가들은 좀 있어요?”

“있긴 하지만 아직 공모전 기간이어서 그런지……. 아직 제 취향에 맞는 글은 많지 않습니다.”

“진아 매니저님은요?”

“더노벨에서 컨택할 작품만 추려둔 상황입니다. 소설피아도 공모전 막바지라 점점 공모전 미참여 작품들이 나오긴 하지만, 아직 회차가 쌓이기 전이어서 현재 지표로는 매출이 나올만한 작품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3월 16일 시작된 소설피아 공모전이 드디어 다음 주 금요일인 5월 15일에 막을 내린다. 그렇기에 이제 슬금슬금 공모전 불길을 피한 작품들이 나올 타이밍이다.

‘공식적으론 대략 3주 정도면 발표를 할 거라 거라고 하니 다음 달부터는 컨택이 잘 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공모전 발표일은 7월 중순이 지나서였지.’

소설피아 역시 이번 공모전이 1회 공모전이어서인지 부족한 점이 많았다.

거기다 이 시기에는 소설피아 사이트가 수시로 다운되고 결제 에러도 종종 발생하던 개복치 시절이라 온전히 공모전 당선 발표에만 집중하지 못하던 시기이기도 했지.

물론 보통 공모전 당선 작가들의 경우엔 당선 발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전에 미리 연락을 받는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최소 2달은 더 공모전 참여 작가들은 빠져나오지 않을 테다.

공모전 기간이 끝나면 오히려 소설피아와 계약해서 유료화에 들어갈 테니까.

“건일 매니저님은 소설피아 말고 더노벨도 모니터링하면서 컨택 준비해주세요. 더노벨 글이 매니저님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저희 편집자는 취향에 맞는 글만 계약하는 게 아니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매니저들도 사람인지라 특히 신입 매니저들은 종종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만 컨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육 때도 이미 설명하긴 했지만 이런 일은 기피해야지.’

편집자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직업이 입맛에 따라 원하는 글만 컨택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노벨은 급식 픽, 소설피아는 아재 픽이라고 하긴 해도 편집자가 반찬 투정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기도 하고.’

기존 1팀 팀장이었던 한우석이 이직한 더노벨은 아직은 완전히 망하기 전의 상황이기에 진아 매니저처럼 건일 매니저도 다른 플랫폼으로 신인 발굴을 하도록 시야를 넓혀야만 한다.

“그리고 진아 매니저님은 지금도 잘하고 계시지만, 추가로 당부드리고 싶은 건 작품을 컨택할 때 지금 당장의 매출뿐만이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성실한지 등의 요소도 봐주시면서 작가님을 발굴한다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진아 매니저는 딱히 부족한 점이 없다. 하지만 모든 글을 내용보다는 지표로만 살피려는 경향이 강하기에 진아 매니저는 조금 더 글의 내용과 작가의 성장 가능성에 관해 살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자, 두 분 지난 한 달 동안 정말로 고생 많으셨고 이제 정직원 되시는 거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아, 아닛! 선물인가요? 와하하핫!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포장된 선물을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건일 매니저는 승천하듯 광대를 꿈틀거리며 콧구멍을 벌렁거렸고, 진아 매니저는 늘 그렇든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크게 특별한 건 아니고 이건—”

“아앗! 잠시만요 매니저님! 선물 뭔지 말해주지 마시고 저희가 먼저 풀어보면 안 될까요? 제가 또 서프라이즈를 좋아해가지고. 아하하핫!”

“그래요.”

회사라는 울타리는 신기하다.

회사 밖에서 받았다면 대수롭지 않을 선물이지만 회사 내에서는 조그마한 선물로도 사람들이 크게 감동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라는 곳이 그 정도로 삭막한 장소여서 일지도 모르지.’

“오오오옷! 만년필!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잘 쓰겠습니다.”

“옆에 두 분 이름으로 각인도 해뒀어요. 이왕 선물 포장 뜯은 김에 한번 봐 봐요.”

“오오오! 편집자 황건일! 아하하핫! 너무 멋집니다! 이런 선물 처음 받아 봐요!”

“다음 주부턴 정직원이기도 하시고 제 첫 후임이기도 해서 약소한 선물이지만 챙겨주고 싶었어요. 다른 팀원들은 이런 거 챙겨주는 일 없으니까 저한테 받았다고 소문내진 말고요. 특히 우리팀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마요.”

신입들에게 선물을 줬다면서 괜히 트집을 잡거나 찡얼거릴 조팟놈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건일 매니저와 진아 매니저 모두 한 달간 같은 팀 생활을 해서인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내 말 의도가 무언지 파악한 것 같다.

“당연하죠!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정우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앞으로 좋은 편집자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넵!”

“네.”

앞으론 스스로 성장하면서 좋은 편집자로 커나가길 바란다. 나는 이제 슬슬 BS북을 떠날 타이밍이 되고 있으니까.

* * *

퇴근 후 나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5월 8일.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아버지가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나의 목적지는 인의 보육원.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로 여기는 구광적 보육원장을 보러 가는 길이다.

“다들 외식하러 나왔나? 차가 엄청 막히네.”

퇴근 시간이 겹쳐서인지 거진 1시간 반에 걸려 인의 보육원에 도착했다. 보육원 안에 차를 들여놓으면 분명 비싼 차 끌고 와서 애들 기죽이려 하냐? 같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할 것 같아 담벼락 밖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때.

“동작 그만. 어슬녘에 뉘십니까아?”

“어이. 귀에 못이 박혔나.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지?”

양복을 쫙 빼 입고 건들거리는 차림새로 내게 다가오는 두 명의 건달, 아니 삼촌들이었다.

“오동 삼촌, 흑싸리 삼촌. 오늘은 삼촌들이 망보는 날이야?”

“정우여? 웬일이냐? 연락도 없이?”

“정우? 이 쉐키 오랜만이다!”

이제야 나를 알아본 삼촌들이 뛰어와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면 좋아했다.

“근데 손에 그건 뭐냐? 너…… 설마? 또 애들 줄 거 사온 거 아니지?”

“에이, 아냐. 어버이날이고 해서 아버지 줄 선물 작은 거 샀어.”

종이 봉투에 담긴 게 아버지에게 줄 선물이라는 말에 삼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긴장할 뻔했네. 큰형님 선물이야 뭐 암거나 대충 사드려도 문제없지.”

“그럼 난 아버지 얼굴만 보고 올게. 원장실에 계시지?”

“아니, 큰형님 지금 옥상에서 운동 중이시다. 같이 가줘?”

“됐어. 삼촌들 순찰해야지. 조금 있다가 봐.”

혹여 동생들이 늦은 밤 밖에 나가 술을 마시거나 비행을 저지를 걸 우려한 삼촌들은 매일 둘씩 짝을 지어 경계 근무를 섰다.

삼촌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보니 담벼락에 개구멍이 있다는 걸 삼촌들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원래 가끔의 일탈이 청소년 시절엔 추억이 되기도 하잖아?’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 나를 반기는 동생들과 삼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는 보육원 옥상인 3층으로 올라갔다.

“후아아압!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

옥상 문을 열기도 전에 열정적으로 쇠질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거친 함성이 들려왔다.

끼이익—

“후우…… 누구냐?”

“꼭 앞에 백만이라고 숫자를 가짜로 붙여야겠어?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정우?”

피식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 얼굴을 보이자 아버지는 무척 무척 기뻐하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사람들이 보기엔 살인자의 얼굴일 테지만, 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는 분명 기쁨의 감정이라고 읽혔다.

목을 시원하게 우두둑 꺾은 아버지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펄떡대는 근육을 꿈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꿀꺽—

간만에 보는 아버지의 몸은 여전히 전투적이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몸을 만드는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 시선이 아버지의 손가락과 팔목 그리고 목을 훑었다.

‘역시……. 저럴 줄 알았다니까. 자기 몸에는 저렇게 투자를 안 하니.’

싸구려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반지로 인해 갑옷 같은 근육 위로 시뻘건 쇳독이 벌겋게 올라와 있는 모습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잘 들어라 정우야. 비록 백만 개는 못 치더라도 그 정도는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쇠질을 하면 어제보다 더 강한 근육을 만들 수 있다.”

“괜한 소리는 됐고, 이거 선물. 어버이날이고 해서 샀어.”

“이 새끼가 지금?”

“크윽!”

아버지가 부릅뜬 눈으로 내 옷깃을 휘어잡으며 눈을 희번덕였다.

“내가 말했지 이 새끼야. 사회 초년생은 첫째도 저금, 둘째도 저금, 셋째도 저금이라고. 이딴 거 사올 바엔 저금을 하거나 금을 사!”

처음 보는 사람이 봤다면 내가 맞아 죽는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엔 보인다. 아버지의 눈꼬리에 감동의 이슬이 살짝 맺힌 모습이.

“아, 나 돈 많이 벌어!”

“이놈이 그래도!”

“그리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거든?”

“크흠, 그래? 얼마짜린데?”

“아, 진짜! 무슨 선물 가격을 물어보고 그래. 여튼 지금 차고 있는 거나 싹 다 빼. 쇳독 오른다고 끼지 말래도 계속 끼고 다녀.”

내가 학생이던 시절 용돈을 모아 사드린 싸구려 장신구를 아직도 쓰신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들아. 멋이란 원래 고통스러운 법이다. 패션이란—”

“됐고, 선물이나 풀어 봐.”

아버지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내가 사온 선물은 건넸다.

“……이거 정말 안 비싼 거 맞냐? 아무래도 은 같은데?”

“아버지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요즘엔 은값이 똥값이야. 금이 비싼 거지 은으로는 개당 만 원도 안 해.”

“그래? 만 원짜리 치곤 포장이 상당히 화려한데?”

“아, 거참. 속고만 사셨나.”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열 손가락에 찬란하게 빛나는 반지를 끼워 넣고 목과 양 손목에도 굵직한 두께의 팔찌와 목걸이를 채워드렸다.

“……마음에 들어?”

작년에 회귀하고 난 후에는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 어버이날 선물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자면 회귀 전에도 변변찮은 선물 하나 해드린 적이 없었기에 지금 내 가슴은 간질간질하면서도 두근대는 기분이다.

“내 새끼. 다 컸구나. 마음에 든다.”

밤하늘 위에 걸린 달빛에 반사된 액세서리들이 조명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그보다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더욱 눈부시게 그리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게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정우 아직 여기 있냐…… 아잌 누운! 아, 아니 큰형님? 이게 뭔 오징어잡이 배도 아니고 웬 빛이…… 히익? 그, 그거 크롬 하츠 아닙니까?”

“크롬…… 뭐? 이거 정우가 사준 건데?”

“아버지, 삼촌, 나 일 생겨서 먼저 가볼게. 연말쯤에 또 올게! 잘 지내고 있어!”

‘패션 테러리스트인 오동 삼촌이 크롬 하츠를 알고 있다니. 낭패다.’

올해의 효도는 우선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진심을 다 해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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