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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64화 (64/201)

#64화 - 뾰족턱일수록 강해지는 세계관이냐?

판무 매니저들에게 통화는 일상이다.

이건 비단 BS북뿐만이 아니라 엘가 그리고 다른 매니지들도 마찬가지일 테지.

“네……. 그건 저희가 아니라 BS툰……. 예, 계열사이긴 하죠. 아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네, 작가님께도 잘 말씀…… 여보세요?”

딸칵—

“하아…….”

통화음이 끊기자 조팟은 말없이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멘탈이 털릴 대로 털린 조팟놈이 옥상으로 올라간 것 같다.

‘조팟새끼. 진작에 좀 저럴 것이지. 그래도 오늘은 좀 딱하긴 하네.’

조팟놈은 컴플레인 전화를 받을 때마다 광증이 도지는 병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병세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바로 얼마 전 도준이 형이 퇴사하고 나서 진아 매니저가 뱉은 한마디 말 때문에.

“아니 팀장님. 근데 구라 같지 않아요?”

“또 뭐가아.”

“신도준 그 사람이요. 공무원 준비할 거였으면 입사를 하지 말았어야지, 무슨 입사 하고 일주일 만에 퇴사를 하겠다고 해요?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네.”

“하아, 조팟아. 대체 며칠째냐? 나간 사람은 나간 건데 이제 렛잇고 할 때 되지 않았냐? 진짜 공무원 준비할 수도 있고, 다른 출판사 취업했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리 회사가 마음에 안 드나 보지.”

“참나, 우리 회사가 뭐 어때서요? 뭐, 회사 전반적으로 보면 구리지만, 우리 팀만 봐서는 솔직히 다닐 만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신입분들?”

그리고 바로 조팟의 이 질문이 자승자박의 결과를 만들어 낸 거였다.

“아하하, 파트장님 말이 맞습니다! 회사 생활은 처음이지만 저희 팀같이 가족같이 화목한 분위기의 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훗, 그렇지. 으흠, 저…… 진아 매니저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진아 매니저님 생각도 우리팀 분위기가—”

“신도준 매니저의 퇴사가 외부가 아닌 내부 요인에 기인하는 거라면 조성훈 파트장님 때문이 아닐까요?”

“……뭐?”

“매번 통화 끝내실 때마다 들리지도 않을 작가님께 욕설이나 험담을 하시던데 그런 부정적인 기운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부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물드는 게 싫어서 도망치는 1급수 물고기 같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하, 진아 매니저님 장난도 참.”

“저는 딱히 신경 안 써요. 회사란 다 그런 곳이니까요.”

“아하하하……. 그렇지…….”

그날 진아 매니저의 말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건 2팀 매니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여하튼 진아 매니저 덕분에 그날 이후로부터 조팟놈은 통화 후 조증이 도질 때마다 옥상으로 사라졌다.

“창윤 매니저.”

“네, 팀장님!”

“조팟 수화기 좀 올려놓자. 괜히 없을 때 전화 울리면 골치 아프니까.”

“그러니까요. 오늘 독자 컴플레인이 장난이 아니네요.”

“하……. 그러게 말이다.”

도준이 형이 나가면서 판무 2팀은 다시 한번 자리 배정을 바꿨다. 김동현 팀장은 여전히 창가를 등지고 혼자 앉아 있고, 그를 중심으로 T자 구조 배열이었는데, 우측엔 조팟, 창윤 매니저, 건일 매니저 그리고 좌측엔 나와 진아 매니저 순서로 안게 됐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내내 조팟의 전화가 불티나게 울리는 건 작가들이 아니라 독자들의 항의 전화였다.

5월에 들어서고 강경진이 본부장으로 있는 BS툰에서 드디어 야심 차게 준비한 웹툰을 런칭했다. 문제는 그중의 하나가 바로 조팟놈이 담당하는 폭행몬 작가의 글이 웹툰화가 된 거였기 때문이다.

‘경영지원팀도 양아치네. 이걸 왜 다 조팟한테 넘기냐? 하여튼 이 회사는 만만한 팀엔 일 떠넘기는 게 당연하게 생각한다니까?’

독자들이 컴플레인을 걸기 위해 전화를 하면 그들의 전화는 경영지원팀에서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홈페이지에 적힌 대표번호는 경영지원팀에게 다이렉트로 연결되었으니까.

사실 오늘 계속해서 걸려오는 독자들의 컴플레인은 판무 매니저들이 어찌 담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쪽이 아니라 BS툰 쪽으로 연결되게 하는 게 맞는 일이다. 하지만 경영지원팀에선 전화를 바로 조팟에게 넘겨 버렸다. 강경진보다는 조팟이, 아니 우리 2팀이 더 만만한 상대이니까.

“하아……. 그런데 이거 진짜 심하긴 하네. 웹툰 댓글 완전 난리도 아닌데? 어찌 된 게 점점 더 심해져? 아예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인데?”

“제 담당 작품이 아니어서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봐도 이대로 두기엔 너무 심하네요. 아카회귀 웹툰뿐만이 아니라 원작에도 악플이 엄청 달리고 있어요…….”

“아, 진짜 돌겠네 이거…….”

“…….”

이창윤 매니저가 말한 아카회귀란 조팟의 담당인 폭행몬 작가의 대표작 ‘아카데미 회귀만 백만 번째’를 말한다.

아카회귀는 주인공이 졸업만 하려고 하면 무한으로 회귀를 하게 됐고, 고인물이다 못해 썩은 등유가 되어버린 설정이다.

그런 주인공이 백만 번째 회귀하게 된 그 날, 마음을 바꿔먹고 전교생과 선생을 학살해 아카데미를 탈출하기로 하면서 시작되는 뒤틀린 인성이 가득 탑재된 주인공의 기이한 모험기다.

‘물론 아카회귀 말고 새로 쓴 작품은 모두 망해버렸지. 지금 연재 중인 양산 헌터가 되었다도 저조한 성적이고.’

하지만 아카회귀는 계속되는 잔인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사이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 마니아 층에게 상당한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내가 BS북에 입사하기 전만 해도 2팀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한 작품이 그거라고 했으니까, 조팟놈도 심란하긴 하겠지.’

웹툰을 런칭하면 첫날 보통 선플 도배와 악플 도배, 그 둘로 분위기가 판가름 난다.

하지만 아카회귀의 경우 악플 도배가 일반적인 신규 런칭 작과 비교해도 너무 심한 정도였다.

—김형식(hyung****): 제발 턱좀 둥글게 그려라. 고개 끄덕이다가 바로 뒤지겠다.

—UNI(uniu****): ㅅㅂ드릴턱 때문에 키스신도 집중이 안 됨. 살인키스임?

—박지성(socc****): 이 웹툰 보면 모서리공포증 생길 거 같음 뾰족턱일수록 강해지는 세계관이냐?

‘음……. 웹툰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겐 턱 이슈가 가장 크네…….’

베스트댓글 순위에 올라온 악플들은 대부분 그림체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럴 만하긴 한 게 사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턱이 과하게 뾰족하다 못해 날카로워 보였으니까.

‘이지연이 그리던 웹툰 보다가 보니 더 차이가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물론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건 비단 뾰족턱뿐만이 아니었다.

드르륵— 드륵—

—화산(maeh****): 턱만 문제가 아님. 그작새끼 원작 읽기는 했냐? 주인공이 왜 원작에 없던 안경 처쓰고 있냐?

—김도현(doba****): ㅇㅇ 원작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두, 거인캐릭터들이 왜케 많음?

—정리충(clea****): 원작에선 주인공 흑화해서 드라이아이스급 콜드한 놈인데 웹툰에서 씹찐따로 만들어놈. 땀은 다한증 환자처럼 존내 흘리고 시도 때도 없이 콧물 흘림. 원작 망치지 말고 좋게 말할 때 접어라.

드릴턱 태클뿐만이 아니라 원작 파괴를 항의하는 댓글들이 상당했다. 이런 댓글들은 대부분 폭행몬 작가의 팬들이겠지.

‘연재 첫날인 걸 감안해도 댓글 반응이 너무 심하다. 이걸 원작 작가인 폭행몬 작가가 보기라도 한다면…….’

결과는 파국일 게 분명하다.

조팟이 씨부리는 걸 듣기론 폭행몬 작가 성격도 상당한 개차반이라던데, 조팟이 살짝 걱정되긴 한다. 물론 인성 안 보고 덥석 계약한 조팟놈의 선택이긴 하지만.

이창윤 매니저의 말처럼 폭행몬 작가의 원작인 아카회귀 댓글창에도 새로운 댓글, 아니 악플이 시시각각 늘어나는 중이었다.

폭행몬 작가가 현재 연재 중인 ‘양산 헌터가 되었다’에도 글 내용과 무관한 전작인 아카회귀 웹툰에 관한 비판 댓글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상황이었고.

“팀장님. 잠시 얘기 좀 드릴 수 있을까요?”

“어, 조팟. 소회의실로 가서 얘기하지. 잠시만.”

옥상에 올라가서 샤우팅이라도 하고 왔는지 목이 갈라질 대로 갈라져 걸걸해진 조팟이 축 처진 얼굴로 돌아왔고 그 둘은 소회의실로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분쯤 시간이 흘렀을 무렵.

회의실에서 나온 김동현 팀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잠시 공지할 거 있으니까 다들 대회의실로.”

““네.””

평소와 달리 비장함마저 비치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2팀 모두는 대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황건일 매니저가 회의실 문을 닫자 김동현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이미 다들 알겠지만 조팟이 담당하는 폭행몬 작가의 아카데미 회귀만 백만 번째가 웹툰화가 되었어요. 그런데 독자 반응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아. 그래서 중대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중대 결정이란 말을 내뱉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눈동자만 이리저리 흔들릴 뿐. 다들 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원작 담당자인 조팟과도 상의해본 결과 지금 웹월드에서 연재 중인 웹툰은 내리기로 했습니다.”

“아니……. 아직 만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내리는 건가요?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도…….”

놀란 듯 묻는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플이 심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웹툰 런칭 당일에 바로 내려버릴 줄이야.

“단순히 악플 때문에 내리는 건 아니야. 조팟 보여줘.”

“네.”

김동현 팀장은 자신의 폰과 조팟의 폰을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줬다.

김동현 팀장의 폰엔 아카회귀 3화 부분에 주인공이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 그리고 조팟이 보여준 화면엔 유명한 일본 만화에서 한 캐릭터가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었다.

“……어 이건?”

“설마…… 트레이싱?”

창윤 매니저와 건일 매니저가 놀란 듯 내뱉은 말에 김동현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웹툰 독자 한 명이 알려줘서 망정이지, 늦게 봤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트레이싱이란 원본 그림 위에 새 종이를 대고 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을 말한다.

‘웹툰 업계에선 남의 그림을 베끼는 말로 쓰인다고 하던데. 하긴……. 파브르 같은 놈이 직원이니 BS툰 실력이 개판일 줄 알긴 알았는데, 그래도 트레이싱은 정말…… 할 말이 없네.’

웹툰 업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트레이싱이다. 눈으로 보고 참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그대로 베끼는 트레이싱은 해당 작가의 그림 자체가 무시되는 일이니까.

“원작 작가인 폭행몬 작가도 동의해 주셨고, BS툰에 정식 항의해서 판매 중지 요청할 겁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을 따로 부른 건 앞으로 BS툰에서 자체 IP로 웹툰화 하겠다고 작품 달라는 거에 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말이야.”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말씀이?”

조심스럽게 묻는 창윤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김동현 팀장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2팀 매니저들. 그리고 신입들도 이제 다닌 지 1달 정도 됐으니 대충 회사 분위기는 다 알 거야. BS툰 쪽에서 우리 IP로 웹툰화하려고 애쓰는 것도 잘 알 테고.”

김동현 팀장의 말에 다들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고 이창윤 매니저는 유독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BS툰에서 웹툰화를 위해 괜찮은 소설을 달라는 압박이 하루가 다르게 점점 심해지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동현 팀장과 나를 따로 부른 것처럼 강경진이 창윤 매니저를 따로 불러서 괜찮은 작품 좀 달라고 이야기했다더니만.

평소보다 다크서클이 더 짙은 창윤 매니저의 얼굴을 보니 중간에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이제 말로 설명 더 안 해도 알 거야. BS툰에서 만드는 웹툰 우리 계열사라고 하지만 너무 허접한 실력이야. 특히 엘가 제작 웹툰하고 비교하면 제작 기간도 더 느릴 뿐만이 아니라 퀄리티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고.”

1팀 매니저가 담당하는 원작을 기반으로 한 웹툰도 며칠 전에 오픈을 했다. 소설 원작의 인기 수준은 오히려 아카회귀보다도 더 낮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전반적인 그림 퀄리티는 아카회귀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BS툰이 같은 계열사라고 해서 편의를 봐주거나 끌려다닐 생각 말자고. 다들 잘 들어. 이제 엘가든 다른 웹툰 제작사든 상관없이 무조건 실력으로만 확인받고 진행합니다.”

웹툰화를 해도 우리 2팀 웹툰엔 힘을 안 실어준다는 게 명백한 증거로 나왔기에 김동현 팀장도 더는 두고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 원작으로 웹툰 제작 들어갈 때 무조건 포트폴리오 확인하고 중간 제작 현황 확인해서 별로면 무조건 버린다. 이제부터 다른 부서, 다른 팀에 끌려다니는 일 없이 우리 실력으로만 가봅시다. 다들 알겠습니까?”

““네.””

대놓고 행해지는 1팀과의 차별.

그리고 김동현 팀장이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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