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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62화 (62/201)

#62화 - 큰일 났다 정우야!

도준이 형이 퇴사를 밝히고 한 주의 시간이 더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BS북 판무 2팀 내에선 도준이 형의 말이 종종 흘러나왔다.

“하……. 아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무슨 일이십니까 파트장님?”

신입의 싹싹함으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즉각 반응하는 황건일 매니저가 조팟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니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무슨 일주일 만에 퇴사하는 사람이 있냐고. 안 그래요?”

“아…… 아하하. 예…….”

지난 월요일 도준이 형이 김동현 팀장에게 사직서를 건넨 후 퇴사 처리는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회사 입장에서도 하루라도 더 빨리 내보내는 게 손해가 덜할 테니까.

“조팟, 없는 사람 얘기는 그만합시다. 정우 매니저는 다른 두 분은 도망 안 가게 잘 케어해주고.”

“어휴…… 네.”

“네, 팀장님.”

“저는 관 짜뒀습니다 팀장님! BS북에 뼈를 묻을 생각이니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으셔도 되십니다!”

“저런 말 하는 사람이 가장 빨리 도망치던데.”

“아닙니다! 저는 태어나서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 말은 잘해요.”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황건일 매니저의 외침에 다들 피식 웃으면서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조팟과 달리 김동현 팀장은 별말이 없었는데, 사실 이전에도 입사 후에 금방 퇴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해서인 것 같다.

‘회사 창립 초엔 카톡 퇴사나 무단결근 퇴사도 종종 있었다고 하더니만, 여하튼 별일 없이 넘어가서 다행이네.’

비록 회사 내에서 이미지는 좀 버렸지만, 도준이 형은 스타 작가가 될 사람이니 이 정도 욕은 감수해도 될 터다.

‘BS북에서 도준이 형이 안 좋은 꼴 보면서 상처 받을 필요는 없지.’

도준이 형에게 따로 물어보니 김동현 팀장이 화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별일 없이 무사히 퇴사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아 매니저는 확실히 특이하단 말이야?’

김동현 팀장이 별말 없이 넘어갔다고 하지만 입사 일주일 만에 신입 사원이 퇴사한다는 건 팀 내 사기를 저하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동현 팀장은 별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팟뿐만이 아니라 이창윤 매니저 역시 지난주 내내 우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래서인지 도준이 형과 입사 동기인 황건일 매니저는 억지로 텐션을 높여 팀 분위기를 억지로 활기차게 만들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진아 매니저는 조금도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단지 도준이 형의 퇴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흥미롭다는 표정을 잠시 비칠 뿐이었으니까.

“또 이렇게 하루가 갔네. 자 다들 퇴근 합시다.”

물론 김동현 팀장 역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도준이 형의 퇴사가 많이 신경 쓰이긴 하는 모양이다.

김동현 팀장은 보통 퇴근 시간 10~15분 정도가 지난 후에 퇴근을 하는데, 도준이 형이 퇴사를 하고 난 후 일부러 정시 퇴근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입들의 퇴근을 장려하고 있다.

‘물론 김동현 팀장이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 버스 시간 맞춰서 나가는 거긴 했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김동현 팀장의 배려에 신입들은 눈치 보지 않고 칼퇴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다들 고생하셨어요.”

“정우 매니저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그런데 매니저님은 퇴근하고 뭐 하십니까?”

퇴근 지문을 찍고 회사 밖으로 나오는 그때 건일 매니저가 붙임성 좋게 물었다.

“딱히 할 거 없어요. 그냥 재미있는 글 있나 읽는 정도죠.”

“크으, 역시 참 편집자십니다! 멋지십니다 매니저님!”

“그런 말 한다고 월급 더 안 올라가요.”

“압니다! 그냥 제 진심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과해……. 파이팅이 너무 과하다.’

여하튼 이제 다음 달이면 건일 매니저와 진아 매니저 둘 다 실무에 투입된다. 진아 매니저는 잘 모르겠지만 건일 매니저같이 싹싹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작가들과의 소통 역시 원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참 편집자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들 내일 봬요.”

“넵,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그럼 나도 가볼까?’

인사를 건네는 신입들을 보낸 뒤 만두와 김밥 몇 줄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내 집의 바로 옆 방인 작가 사무실로.

틱 틱틱— 띠리링~

“형, 나 왔어.”

“정우야 왔어?”

작가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다름 아닌 도준이 형이다.

“아직 저녁 안 먹었을 것 같아서. 같이 먹자.”

“뭘 이런 걸 다…… 어? 만두네! 나 만두 진짜 좋아하는데!”

도준이 형은 만두를 처음 먹는 사람 수준으로 만두를 좋아했다. 글 쓸 때 만두처럼 맛있고 손 안 가고 뒷정리하기 쉬운 음식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그냥 만두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형 먼저 먹고 있어. 난 방에서 노트북만 가져올게.”

“얼른 와, 내가 단무지 세팅해 놓고 있을 테니까.”

“오케이.”

도준이 형은 지난 월요일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 집필하기엔 어머니 눈치가 보인다고 해서 오늘부터는 작가 사무실에서 집필을 하기로 한 상황이다.

내 방에 들려 노트북을 챙겨 오자 도준이 형은 이미 입에 만두를 하나 문 상태로 집필을 하고 있다. BS북에서 신입 매니저로 있던 때와는 풍기는 분위기마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형, 목 막히겠다. 다 먹고 같이 써. 나도 이제 빡글할 거니까.”

“아하하, 미안. 지금 쓰는 부분이 재미있어서.”

도준이 형을 표현하자면, 글 쓰는 일에 미친 사람. 아마 그 표현이 적당할 테다.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이기도 하고.’

회귀 전 내가 도준이 형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팬과 독자의 관계였다.

‘도준이 형 글에 설정 오류랑 오탈자 잡아주다가 친해지게 됐지.’

비밀 댓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친이 되었던 그때가 떠오르자 괜스레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도준이 형은 내가 아는 작가들 중에 가장 아이디어가 다양한 화수분 같은 작가다.

나도 나름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고 하지만 도준이 형은 무협, 판타지, 퓨판, 겜판, 스포츠, 라노벨, 현판, 대역, 전쟁물, SF, 추리물, 공포물 등 장르를 따지지 않고 늘 아이디어가 샘솟아 넘쳤으니까.

회귀 전에는 로판이랑 현로도 써보고 싶다고 내게 시놉을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장르에 구분 없이 소재가 넘치는 대단한 사람이다.

“정우야 근데…… 나는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아.”

“뭐가?”

갈비 만두를 우물거리던 도준이 형이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코즈일 작가, 노원지귀 작가가 바로 넌데 사실상 네가 LGA컴퍼니의 대…… 대표—”

“형, 대체 그 말을 일주일 동안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미안. 그냥 지금도 얼떨떨해서. 대체 그런 대단한 사람이 왜 나를…….”

내가 보기엔 도준이 형이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본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지.

“밥 다 먹었으면 이제 글이나 쓰세요 작가님. 내가 말했지? 퇴근하고는 나도 그냥 형하고 같은 작가라고.”

“나 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먹으면서 써. 형 원래 그렇게 쓰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그런 말도 했었나?”

“술 취했을 때 했었어.”

도준이 형에겐 내가 엘가의 대표인 것도 모두 다 말했다. 단풍 삼촌이랑 권미현 본부장이 왜 그걸 밝혔냐고 뭐라고 하긴 했지만.

‘도준이 형에겐 솔직히 다 터놓고 말하는 게 낫지. 엘가랑 전속 계약까지 해서 앞으로 계속 같이할 사람이니까.’

어차피 도준이 형의 입이 얼마나 무겁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는 과거의 내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기에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만나게 돼서 잘 된 거지. 솔직히 도준이 형이 데뷔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시 만날 방법이 없을 줄 알았으니까.’

BS북에게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도준이 형과는 지난주 내내 작품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서인지 도준이 형도 이제는 나를 많이 편해하는 것 같다.

“졸지에 담당 작가가 두 명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뭐아거?”

“별거 아냐. 만두나 다 먹고 말해.”

엘가 소속 작가 중에 내가 직접 교정교열을 담당하는 작가는 스타작가라는 필명으로 흥행리에 연예계물을 연재 중인 윤선미 그리고 디제이라는 필명으로 엘가와 계약한 도준이 형 둘 뿐이다.

‘사정상 둘은 내가 직접 담당하게 됐지만 이런 케이스를 더 늘릴 수는 없어. 이제는 내 글뿐만이 아니라 엘가의 대표이기도 하고.’

경영 전문가인 단풍 삼촌에게 경영 전반을 맡겨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단풍 삼촌, 이지연, 권미현 모두 담당하는 업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아는 것처럼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

“하아, 잘 먹었다.”

만두와 김밥을 깔끔히 비운 도준이 형이 배를 두드리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참! 정우야 나 안 그래도 물어볼 거 있었는데.”

“뭔데?”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스크리브너 설치해도 되나 해서.”

“스크리브너? 그 영어 한글 같은 프로그램?”

“응, 작가 사무실 컴퓨터는 공용이니까 허락을 받고 설치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쩐지 자유롭게 쓰라고 둔 작가 PC를 두고 형이 개인 노트북으로 쓰고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이유였구나.

“당연하지. 그거 어떻게 설치하면 되는 거야? 이참에 PC마다 다 설치해야겠네. 아, 형 그리고 아예 형 전용 PC는 아예 정하자. 지금 앉은 그 자리 형 고정으로 할 테니까 형 필요한 프로그램은 다 설치해. 물론 게임 같은 거 설치하지는 말고.”

“게임은 당연히 안 설치하지! 그런데 그래도 돼? 다른 작가님들도 쓸 수 있다며?”

“응, 그렇긴 한데. 어차피 나오시는 작가님들 몇 안 계셔서. 형처럼 자주 나오는 작가가 지정석 쓰면 좋지. 다른 작가들이 보면 자극될 수도 있고. 일요일만 아카데미 수업 때문에 내가 써야 하는 거 알지?”

“그럼. 어차피 나도 주에 한 번은 쉬어야지, 하하.”

작가 사무실로 만든 지 좀 됐지만 여기서 집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사랑과평화 작가와 천명 작가뿐이었다.

‘천명 작가님은 와이프 잔소리 때문에 당분간 집에서 글 쓴다고 하셨고 사평 작가님은 요즘 노가다 현장이 지방이라 오기 힘들다고 하셨지.’

오히려 잘된 일이다. 도준이 형과 대화를 하면 새로운 소재, 전개, 연출 등 다양한 의견이 샘 솟듯이 솟구쳐 나오기 때문이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남자 둘이 망상에 가까운 수다를 떤다고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화수분같이 끊임없는 소재와 영감을 줄 수 있는 조력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웹소설 작가에겐 기연 혹은 축복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형, 근데 대단하다. 스크리브너 이거 완전히 매뉴얼부터 영어로 된 것 같은데. 형 영어 잘 하나보네?”

“정우야, 형 토익 990점이야.”

“……어, 좋겠네.”

압도적인 학벌과 스펙인 오진아 매니저에게 가려졌을 뿐이지 사실 도준이 형의 스펙 역시 만만치 않다.

‘하긴, 언론 고시 필기 합격자인데 이 정도 영어는 문제없겠지.’

그래도 능숙하게 영어로 가득 찬 사이트를 훑어보며 결제를 하는 걸 보니 영알못인 내겐 대단하기만 해 보인다.

“아, 형!”

“으응? 왜?”

“결제는 이걸로 해야지.”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무슨 소리야. 회사 비품인데 당연히 법카로 결제해야지.”

“하하하, 고맙다.”

드드득— 드드드득—

“정우야, 너 전화 같은데?”

“어? 삼촌이네? 통화 좀 하고 올게. 먼저 글 쓰고 있어.”

지금 시간은 오후 6시 42분.

전화를 울리는 건 단풍 삼촌이다.

이미 퇴근했을 시간인데 웬일이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내 집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어, 삼촌. 무슨 일이—”

—큰일 났다 정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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