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예? 제가요?
“흐음…….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다음 날 정오가 조금 지난 오후.
도준이 형이 사는 집 근처 카페에서 느긋이 초코 라떼를 홀짝이는 그때 카페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허억, 헉. 저, 정우 매니저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셨어요? 뭐 드실래요?”
“아, 아뇨. 제가 사겠—”
“제 거는 먼저 시켰어요. 기다리고 있느라.”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약속을 기억 못 해서…….”
내가 기다린 시간은 15분도 채 안 됐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도준이 형이 늦은 게 아니니까. 말한 적이 없는데 알 방법이 없었겠지.
“아아 괜찮죠?”
“……감사합니다.”
알쓰인 도준이 형은 어제 기막힌 타이밍에 만취를 했을 뿐이다. 나는 기회를 잡았을 뿐이고.
나는 카페에 도착하기 직전에 형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오늘 집 앞 카페서 만나기로 했는데, 설마 잊은 거냐는 말과 함께.
주문한 음료를 챙긴 후 우리는 구석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도준이 형은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저, 정우 매니저님.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어제 화장실에서 매니저님이 등 두들겨 주시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는…….”
속이 타는지 아메리카노를 한입에 쭉 들이킨 도준이 형은 영문 모를 일에 속이 타는지 파리해진 얼굴이다. 자기가 어제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고통스러운 상황이겠지.
‘걱정 마 형. 좋은 동생 만난 거 다행으로 알라고.’
두려움 가득 한 얼굴로 덜덜 떠는 도준의 형을 향해 나는 빙긋 미소 지었다.
“일단 호칭부터 정리하자 형. 우리 회사에 있을 때 말고는 형 동생 하기로 했잖아.”
“……예? 제가요?”
내가 고개를 시원하게 끄덕였음에도 도준이 형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내가 지금부터 할 말이니까.
“기억 안 나도 괜찮아 형. 나는 기억 하니까.”
“그……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에이, 괜찮데도. 일단 어제 말했던 원고부터 보자.”
“……원고요? 그게 무슨?”
“뭐야? 진짜 기억 못 하나 보네? 형 다음 주에 바로 퇴사하기로 했잖아. 이제 글 쓸 거라며?”
“예에에? 제, 제가요?!”
나의 만족스러운 연기가 펼쳐지자 도준이 형은 당장이라도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얼굴이 됐다.
‘괜찮아 형. 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사회생활이 원래 쉬운 게 아니라고.’
이런 면에선 업계가 좁다는 게 나쁘지만은 아닌 것 같다. 은혜를 갚을 사람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형이 그동안 준비한 원고, 오늘 같이 보면서 검토해달라고 했었잖아. 편집자로서 생각하기에 어떻냐면서.”
“……으, 으어어. 제가 그,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창백해진 얼굴로 말을 더듬는 게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먼저 맞는 매가 원래 덜 아픈 법이지. 정신이 흔들리는 걸 보니 막타를 칠 타이밍이 된 것 같다.
“형, 왜 자꾸 존댓말 해? 진짜 어제 기억 하나도 안 나는 거야? 이러면 나 무척 서운해지려고 하는데?”
“아, 아니 그게……. 죄송…… 아니 미안…… 해.”
말 놓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눈을 질끈 감은 도준이 형의 눈꼬리엔 눈물마저 맺힌 것 같다.
“하하하, 미안할 게 뭐 있어. 여하튼 어제 형이 알려준 소설 내용 진짜 재미있더라. 얼른 보여줘 봐. 그거 보여준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 그럴 리가……. 그럴 리 없어. 아무래도 그건 저, 정우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도 극구 부정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자기가 취했어도 원고를 보여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확고한 생각이라도 때론 부셔야 하는 법이지.
“제목은 지구로 돌아온 귀환자들이랬나? 비슷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아?”
툭 내뱉은 말에 도준의 형이 눈이 터질 듯 크게 뜨였다.
‘그럴 만도 하지. 이건 원래 형이 썼던 소설의 제목이니까.’
도준이 형은 군 제대 전에 이미 초반부 원고와, 제목, 전반적인 구상을 모두 끝냈다고 했다.
“헌터물 골조에 현대 배경 그리고 이계로 넘어간 사람들이 지구로 돌아오는 그런 내용이라고 했었어.”
형의 떡 벌어진 입을 보니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왜 모르겠어. 내가 형 글을 몇 번이나 돌려 봤는데.
“도입부는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청년이 있었고 주인공이 옆으로 다가가지. ‘저 말리지 마세요! 어쭙잖은 동정이나 위로 따윈 필요 없다고!’라고 울며 울부짖는 사람에게 주인공은 ‘그럼 잘 가세요~’하면서 등을 밀어 죽인다고 했었고.”
“어…… 어떻게 그걸.”
“그리고 주인공이 ‘A―1 클리어’ 이런 식으로 무전을 치는 그때 다른 쪽에선 주인공과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C―6 클리어’라고 말하면서 환생 트럭으로 또 다른 사람을 치어 죽인다고 했어.”
“……내가 거기까지 말했었나?”
“아, 물론 진짜 죽이는 게 아니라 주인공과 그 동료들은 드래곤볼의 드래곤 레이더 같은 걸 가지고 다니면서 현계보다 이계에 더 어울리는 적격자들을 이계로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여기까진 내 말 맞지?”
“…….”
도준이 형은 귀신에 홀린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재미있었어. 그 적격자들은 현생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이세계로 가서도 문제없이 적응했는데, 늘 어느 상황에서도 미친놈은 존재하니까. 이계로 간 적격자 중에 미친놈이었던 놈들이 이계에서 얻은 힘으로 차원을 찢고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세계 적격자를 보내는…… 쿠팡맨 처지의 주인공은 졸지에 지구로 되돌아온 미친 귀환자들의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서 내용이 시작되지. 알고 보니 미친 귀환자들이 모두 주인공이 이계로 보낸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제 기억 나나 보네.”
“기억이 난다기보다는……. 하아……. 내가 진짜 다 말했나 보네.”
처음 보이는 미소. 아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미소에 도준이 형의 마음이 조금은 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준의 형의 집은 엄격하다.
사실 엄격하다기보단 대학 교수인 편모 가정에서 자라왔기에, 늘 좋은 직장에 다니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대치를 맞춰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문창과에 가고 싶던 형의 욕심과 달리 어머니는 글에 뜻이 있다면 차라리 신방과를 가라고 했고, 도준이 형은 그 어렵다는 언론 고시 필기시험도 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자기 꿈에서 멀어질 거란 생각이 들어 군대로 도망쳤다고 했지.’
도준이 형은 카투사에서 복무하던 군 시절이 그리 싫지 않았다고 했다. 일과 시간 후엔 쓰고 싶던 글을 마음껏 구상하고 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준이 형의 꿈은 예전에도 지금도 늘 웹소설 작가가 되는 거였고 나는 형의 꿈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도달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면 클라우드에 저장된 글이나 보여 달라고. 형도 이제 기억 다 난 것 같으니까.”
“……클라우드 저장. 내가 그것도 말했었어?”
“응, 당연하지.”
그리고 도준이 형은 내게 클라우드를 사용하라고 알려 줬던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 * *
“아니, 도준 씨. 주말 잘 보내고 오더니만 갑자기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주간 회의를 시작하기도 전인 이른 아침, 비장한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신입 매니저가 건넨 ‘辭職書’라는 글자가 적힌 봉투를 받자 판무 2팀 김동현 팀장의 미간이 깊이 좁혀졌다.
“일단 소회의실로.”
“……예.”
김동현 팀장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신도준 매니저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몸과 달리 신도준 매니저의 눈빛은 결연했다.
“입사 일주일 만에 퇴사라니. 일단 얘기나 좀 들어 봅시다. 무슨 일인데?”
평소 김동현 팀장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푸근한 곰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신도준 매니저의 맞은편에 앉은 김동현 팀장은 성난 야수 같은 얼굴이었다.
‘……미쳤어. 내가 미친 건가? 지금이라도 다시 실수였다고…….’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진 신도준 매니저는 당장 손톱이라도 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바로 이틀 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에 벗어나 눈을 떠 보니, 바로 윗선임인 박정우 매니저와 자신은 호형호제하는 사이…… 최소 박정우 매니저는 그렇게 자신을 여겼다.
거기다 필름이 끊긴 사이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소설가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 그리고 집필 했던 글 내용, 심지어 가정사까지 술술 털어놨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자면 오히려 시작이었지.’
박정우 매니저는 요즘 가장 핫하기로 유명한 LGA컴퍼니에 잘 아는 분이 있다면서 원고를 보내 계약 검토만 확인받자고 했었다.
그리고 못 이기는 척 보냈던 원고는 계약서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연봉보다 배 가까이 높은 금액의 선인세와 함께.
토요일, 일요일 단 이틀 만에 귀신에 홀린 듯 벌어진 일이었지만, 후회가 되진 않았다.
기자나 아나운서 혹은 대학원까지 더 다녀 자신처럼 교수가 되라는 어머니에게 안겨 드릴 실망감. 그리고 기껏 입사하게 된 첫 회사에 일주일 만에 사직서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군 시절 내내 꿈꿔왔던 그 꿈이 실제로 다가온 상황이었으니까.
“형은 기억 못 하겠지만, 나는 형이 했던 말이 진심이라고 믿어.”
“내가 또 무슨 말을……?”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군가 오롯이 형의 글을 봐 주는 기회가 생긴다면, 뒤도 보지 않고 그 기회를 잡을 거라고. 더는 후회하기 싫다고.”
“…….”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 나머지 두 번은 언제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이 그중 하나라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후회만 하면서 살 생각은 아니지?”
박정우 매니저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신도준 매니저는 쥐꼬리만 하게 줄어들었던 마음속 용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끄응, 이제 별다른 방법도 없잖아. 도준아 더는 우유부단해지지 말자.’
박정우 매니저가 대체 LGA컴퍼니랑 얼마나 친분이 많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토요일에 원고를 보내고 박정우 매니저와 점심을 먹고 나오니 벌써 전자 계약서가 도착해 있었다.
등 떠밀리듯 밀려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지만 일요일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사실 계약을 해지할까도 고민했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는.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통장에 찍힌 연봉보다 배도 많은 액수의 선인세를 보니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었다.
박정우 매니저의 말대로 신인 작가에게 이 정도 계약 조건을 내미는 매니지먼트는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게 분명했으니까.
“도준 씨,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나? 물론 교육 기간이긴 하지만 입사 일주일 만에 퇴사한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서 그래.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다시금 집요하게 묻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신도준은 박정우 매니저에게 들었던 멘트를 그대로하기로 다짐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합니다. 학원 다녀야 해서 퇴사해야겠습니다.”
“하……. 공무원,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