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제가 아는 사람이랑 비슷해서요.
“왜?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 아뇨. 여기 여성분 이력이 특이해서요.”
“아, 오진아 씨? 고등학교를 1년 일찍 졸업했나 보더라고. 학력이랑 다른 것도 고스펙이고. 솔직히 왜 이런 곳에 지원했는지 모르겠……는 게 아니지! 우리 회사가 언제 스펙으로 사람 뽑았나? 실력으로 뽑았지.”
“아, 예…….”
그렇구나.
스펙이 아니라 실력으로 뽑았다는 결과가 조팟이었구나.
“그러니 걱정 말고 잘 케어 해줘. 교육하다 막히는 거 있으면 창윤 매니저랑 조팟한테 물어보고.”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나는 후임으로 들어오게 될 신입 직원 생각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신도준……. 도준이 형이 내 후임으로 들어오게 될 줄이야…….’
내가 놀란 건 김동현 팀장에게 말했던 것처럼 오진아라는 신입 때문이 아니었다.
건네받은 이력서엔 회귀 전에 나와 알던 사이였던 도준이 형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도준이 형이 그런 말 하긴 했었지. 1년 정도 편집자 생활했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무척 죄책감에 시달려 하던 도준이 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있다.
‘도준이 형이 다녔던 매니지는 BS북이 아니었는데?’
도준이 형이 편집자 생활을 했던 게 이 시기쯤은 맞지만, BS북이 아니었던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BS북에 내가 개입하면서 원래 미래와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나비 효과인지도 모르고.’
내가 출판계에 개입하면서부터 이미 내가 알던 미래와는 많은 게 바뀌어 버린 상황이다.
BS북만 하더라도 내 개입이 아니었다면 판무 1팀 팀장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을 강경진이 BS툰이라는 웹툰 법인을 만들지도 않았을 테지.
‘2팀에서 이번처럼 신입을 더 뽑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고…….’
거기다 엘가를 차리고 웹소설 기반의 웹툰화 시장을 선점, 그리고 공모전과 아카데미까지 진행을 하면서 계속해서 출판계에 미약한 날갯짓을 했던 게 그 축을 생각 이상으로 많이 틀어버린 것 같다.
신인 작가를 올댓에 넘기는 일만 잘 처리되었어도 김동현 팀장이 판무 총 팀장이 되었을 테니까.
흔히 같은 업계에 겹치는 사람들을 보며 아는 사람들이 많이 겹친다는 말을 하는데, 막상 내가 겪고 보니 신기하긴 하다.
‘크게 상관은 없지. BS북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부터 변화는 각오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인연을 놓칠 생각이 없다.
* * *
한 주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월요일이 되었다.
“자, 다들 통성명 나눴을 테지만 우리 팀끼리 모인 자리에서 신입 분들께 다시 한번 환영의 말을 전합니다. 판무 2팀에 입사하신 걸 다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BS북 판무 2팀 직원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신입 사원들의 입사일이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파이톤 판무 2팀 신입 매니저로 입사한 황건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진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도준입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매주 단 넷이서 주간 회의를 할 때는 몰랐는데, 한 주만에 인원이 일곱으로 늘어나니 휑하던 대회의실이 가득 찬 기분이다.
신입 직원들의 짧은 자기 소개와 함께 주간 회의가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회의가 마무될 무렵 김동현 팀장이 말했다.
“그럼 4월 셋째 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신입 세 분은 박정우 매니저님이 교육 바로 진행하실 거니까 그렇게 알아주시고. 더 하실 말 있으신 분?”
“팀장님,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조ㅍ…… 성훈 파트장님. 말하시죠.”
조팟놈이 뿔테 안경을 옹졸한 손짓으로 올리며 되도 않는 분위기를 잡는다. 디폴트 값이 솔 톤인 목소리를 내리깐다 해서 분위기가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저희 2팀에 신입 분들이 들어왔는데 팀 회식 한번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
“……?”
“……?”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조팟이 회식을 추친한다고?
조팟놈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팟은 그런 우리의 눈빛은 깡그리 무시한 채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매달 하는 거기도 하고 신입 분들하고도 친해질 겸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 그래. 그러지 뭐. 이번 주 금요일 다들 시간 괜찮나?”
“네, 저는 마침 금요일에 시간이 되는군요.”
“…….”
조팟놈의 간사하게 얇고 처진 눈이 신입 직원.
정확히 말하자면 오진아 매니저를 향하는 걸 보니 왜 저 지랄을 떠는지 이해가 된다.
‘정말…… 보기 역하군.’
조팟놈의 적극적인 주도하에 회식일이 잡혔고, 대회의실엔 나와 신입 셋만 덩그라니 남게 됐다.
“교육 기간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앞으로 4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후에는 바로 실업무 투입 예정이고요. 우선 지금 전달 드린 교육 일정표 함께 보시죠. 첫 주차엔 플랫폼별 장르 순위 및 트렌드 분석 보고서 작성이 진행될 예정이고…….”
BS북은 여러 가지 의미로 놀라운 좋좋소인데, 업계 8년차라는 말과 달리 신입 교육 자료가 전혀 구비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BS북이 개판인 건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교육 자료는 이미 만들어 둔 상태다.
사실 BS북에서 활용하려고 만든 건 아니고 엘가 판무팀 직원들을 위해 만든 자료였지만, 신입 편집자를 위한 자료를 공유하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다. 단지.
‘집중이 안 되는데…….’
황건일 매니저는 온몸에서 열정을 뿜어내며 내가 말 하는 걸 하나도 빠지지 않겠다는 듯이 불필요해보이는 메모를 계속 하는 중이고 내가 가장 신경을 쓰이는 도준이 형은 조용히 내 말을 경청 할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 아이컨택 수준으로 내 눈만 빤히 바라보는 오진아 매니저는 가뜩이나 흔들리는 내 집중력을 몹시 흔들리게 했다.
오진아 매니저는 다른 매니저들과 달리 아무런 필기도 않고 나만 지긋이 바라보는데, 마치 뱀이 먹이를 응시하는 듯이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외주 작업 및 회의록 작성 관리 인수인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진아 매니저님?”
“네.”
“따로 필기를 하지 않으시던데 다 기억하실 수 있으신가요?”
황건일 매니저가 하듯 과한 메모는 아니더라도 멀뚱히 나만 보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
꼰대 같아 보일 수도 있긴 하지만 아무런 필기도 하지 않고 다른 매니저들에게 추후 도움을 요청하는 식의 행보. 회사에서 여왕벌 놀이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준이 형처럼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퍼줄게 분명해. 첫날이니 미리 그런 일 없게 제대로 말해 둬야지.’
라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오진아 매니저는 예상과 전혀 다를 답을 했다.
“네, 제가 암기력이 좋은 편이어서요. 첫 주엔 플랫폼별 장르 순위 및 트렌드 분석. 플랫폼별 프로모션 파악 및 조사 그리고 신작 모니터링 및 추적. 둘째 주엔 장르별 인기작 분석과 장르별 인기작 분석…….”
눈 하나 깜박 않고 말을 이어가는 신입 매니저의 모습을 보니 왜 그녀가 1년 일찍 학교를 졸업한 영재인지 알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왜 BS북에 입사했는지는 모를 것 같고.
“다 말하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암기력이 뛰어나다는 건 매니저로서 큰 장점이죠. 그럼 남은 교육 기간 동안 궁금하신 점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네.””
능력 있고 패기 있는 신입 사원들.
이제 그들 사이에서 도준이 형만 빼내면 되겠다.
* * *
“정우 매니저님, 이건 이렇게 진행하는 거 맞습니까?”
“정우 매니저님, 시간 괜찮으시면 내용 확인 한번만 부탁드릴 수 있을지…….”
“정우 매니저님.”
“정우…….”
신입 매니저들이 들어오고 한 주를 함께 보내면서 든 생각은.
‘생각보다……. 빡센데?’
생각보다 신입 교육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엔 입사 전부터 이 업계에 관해 아는 지식이 충분했기에 내 교육 담당이던 이창윤 매니저에게 딱히 뭘 물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만 황건일 매니저는 무척 의욕적이어서 모든 걸 다 물어보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커다란 시고르자브종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너무 질문이 과하다.’
의욕이 앞서는 건 좋지만 질문을 하기 전에 좀 더 고민을 하고 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강하게 든다. 황건일 매니저 페이스에 맞춰 잘 하고 있는 도준이 형까지 괜히 휘말리는 느낌이니까.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괜히 의욕 있는 신입 기를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신입이 들어오고 난 후로는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기분이다. 교육 진행 중간중간 밀려오는 갈고리 폭탄과 교육 내용의 피드백, 교육 평가까지 내가 해야 했으니까.
거기다 엘가 임원들에게서도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으며 전쟁 같은 매일을 보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회식 당일이 되었다.
“자, 그럼 다들 마무리하시고 회식하러 가시죠.”
“고생하셨습니다.”
“으으윽! 퇴근이다!”
오늘의 회식 장소는 통삼겹살집.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김동현 팀장이 뭐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조팟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조팟, 삼겹살집은 냄새나서 싫어하지 않았어? 웬일이야?”
“저 삼겹살 없어서 못 먹습니다. 신입분들도 드시고 싶다고 하시고요. 그보다 호칭 줄여서 말하지 말아주시죠.”
“파하하핫. 조팟님이라고 보통 부르시는군요.”
“……웃네? 재밌어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술도 한 모금 안 들어갔는데 벌써부터 어질어질하다.
‘조팟아……. 신입들이 먹고 싶기는. 진아 매니저가 먹고 싶다고 하니 저지랄이네.’
7명으로 늘어난 팀 단톡방에서 김동현 팀장은 신입들에게 물었었다. 회식은 어디서 했으면 좋겠는지를.
그리고 삼겹살집을 언급한 건 오진아 매니저였다. 판무 2팀 기존 멤버들은 당연히 조팟이 옷에 냄새 배긴다고 생지랄을 떨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조팟놈은 삼겹살이 자신의 최애라며 즉각 회사 근처 유명 삼겹살집 리스트를 추려 올리는 당황스러운 일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신경 쓰지 말자. 조팟놈이 또라이긴 해도 사람 새끼라면 신입한테 찝쩍거리진 않겠지.’
거기다 이번 한 주간 지켜봐 온 오진아 매니저는 교육 업무에서 실수 하나 없었고 태도 자체가 상당히 똑부러진 사람이다.
조팟놈의 찝쩍거림은 알아서 잘 처신할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조팟놈이 또라이짓을 하냐 안 하냐 정도는 계속 주시할 생각이지만.
‘그보다 도준이 형하고 따로 말할 타이밍을 잡긴 해야 하는데…….’
도준이 형을 향한 내 목표는 단 하나.
도준이 형이 BS북을 탈출하게 만드는 거다.
그래야지 형이 쓰고 싶었던 그리고 내가 다시 읽고 싶은 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테니까.
“마셔 마셔!”
“으하하핫! 한잔 더 받겠습니다!”
“어이씨, 와이프네. 나 통화 좀.”
쾌활한 분위기 속에서 회식은 진행됐고 어느새 후식 냉면까지 모두 끝냈을 무렵, 다들 얼큰히 취한 상태가 됐다.
‘좋아……. 지금인가?’
김동현 팀장은 와이프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고 곧이어 조팟놈과 이창윤 매니저는 화장실, 황건일 매니저는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간 상황.
그리고 지금 자리에 남은 건 내 맞은편에 앉은 오진아 매니저와 바로 내 옆옆자리에 앉은 도준이 형뿐이다.
오진아 매니저도 화장실에나 갔으면 좋겠지만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기, 도준 매니—”
“신기하네요.”
“……?”
도준이 형의 옆자리로 슬쩍 자리를 옮겨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려는 그 순간.
오진아 매니저가 반짝이는 손톱으로 소주잔을 톡톡 치며 나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마음 같아선 화장실이나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고 싶지만, 신입 환영회를 겸하는 첫 회식이라 그렇게까지는 말할 순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말이시죠?”
“제가 아는 사람이랑 비슷해서요.”
“흔하게 생겨서 그럴 수 있겠네요.”
대충 말을 넘기고 다시 도준이 형에게 말을 걸려는 그 순간. 이어진 다음 말이 나를 흠칫하게 했다.
“노원지귀 작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