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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58화 (58/201)

#58화 -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운영팀에서 실수가 있었네 보네요. ……예, 잘못 업로드된 회차 바로 교체 요청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세요 작가님? 타플 풀리는 일정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아유, 제가 작가님 담당인데 설마 잊었겠습니까? 운영팀이 플랫폼이랑 일정 협의 중인데 일처리가 많이 늦어져서 그래요. 운영팀 일처리 아시잖아요.”

“등록팀 이것들 안 되겠네? 연재 시간을 모르는 게 그게 말이 됩니까? 예? 등록팀을 대신해 제가 먼저 사과드립니다. 해당 등록팀 매니저는 바로 시말서 쓰게 할 테니 걱정…… 어허이! 안 됩니다 작가님! 젊은 친구라고 자꾸 봐주니 이런 일 생기는 겁니다. 저희 회사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 아닙니다. 제가 따끔하게 혼낼 테니 걱정 마시지요.”

식목일이었던 어제.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폭풍 같던 첫 강의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BS북에서의 한 주는 이렇게 시작되는 중이다.

‘오늘은 등록 실수가 연달아 터졌나 보네.’

순서대로 이창윤 매니저, 조팟, 김동현 팀장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등록 이슈가 터진 모양이다.

“하아…….”

“창윤 매니저님, 괜찮아요?”

나직이 한숨을 내뱉은 이창윤 매니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웹월드 연재 글인데, 실수가 생긴 것 같아요. 내일 연재 회차가 오늘 풀려서 작가님이 많이 화나셨네요. 일단 전 등록팀 좀 갔다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이창윤 매니저의 담당 작품 실수는 등록팀의 실수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조팟과 김동현 팀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일까?

“니미……. 진짜 좆될 뻔했네.”

수화기를 내려 놓은 조팟의 얼굴엔 안도의 기색이 가득했다.

“……이상하네? 원래 이 시간 연재였나?”

김동현 팀장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내렸고.

‘하는 꼬라질 보니 또 지들이 실수한 거구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기에 대충 판무 매니저들의 대화를 들으면 진짜 실수를 야기한 게 누구인지 대략 견적이 나온다.

“자자, 다들 통화 끝났으면 주간 회의하러 갑시다. 창윤 매니저는?”

“잠시 등록팀 가셨어요.”

“어허이! 이거이거 또 등록팀이 실수했나? 쯧, 그럼 우리 먼저 회의실 가 있지. 창윤 매니저는 일 끝나면 알아서 오겠지.”

“가시죠.”

김동현 팀장, 조팟과 함께 대회의실로 이동하자마자 이들은 다시 안도의 힘을 내 쉬었다.

“조팟, 아까 들어보니까 타플 런칭 일정 제대로 못 맞춘 것 같더만.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거요? 깜빡했어요. 소설피아 1차 독점작인데 심해 바닥에 처박힌 개똥글이거든요. 간신히 구매수 2자리 나오는 토사물이라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벌써 타플 풀리는 시점인 줄은 몰랐죠.”

눈 하나 깜빡 않고 당당히 말하는 조팟놈을 보니 이 새낀 정말 갱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운영팀이 플랫폼이랑 일정 협의 중이라고 둘러대더니만? 작가가 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 소리네.’

“어허이! 파트장이 돼서 말이야! 그러면 안 돼, 어? 교정이나 이런 거 신경은 안 쓰더라도 런칭 일정은 잘 맞춰야지.”

거기다 팀장이란 놈이 하는 말도 가관이다.

매출이 안 나오는 작품이면 교정을 대충해도 된다는 말을 저렇게 떳떳하게 한다고?

“네, 뭐. 아니 근데, 팀장님도 연재 시간 등록 오류 난 것 같은데 그건 무슨 일이에요?”

“크흠, 별건 아니고. 소설피아 연재하는 거 있어.”

“엥? 소설피아 연재 작품은 등록팀에서 안 올리고 담당자가 직접 올리는 거잖아요? 그럼 팀장님 실수에요?”

“요즘 눈이 침침한가? 시간을 잘못 봐서. 그러니까 작가 새끼가 원고를 재깍재깍 줬으면 이런 사고가 안 나는 거 아냐?”

김동현 팀장.

이 양반도 뻔뻔함이 조팟 못지않다.

하긴 조팟이 누굴 보고 배웠겠어.

윗물이 똥물이니 아랫물도 필연적으로 더러울 수밖에 없겠지.

“푸흐흫. 아까 시말서 쓰게 한다 어쩐다 하시더만. 하긴 운영 쪽 애들은 틈만 나서 시말서 쓰니 우리가 뭐 따로 말할 것도 없긴 하죠.”

출판 본부에 판무 1, 2팀 그리고 로맨스 팀이 있듯이 운영본부엔 등록팀과 운영팀이 있다.

운영팀은 판무팀과 로맨스팀에서 담당하는 소설을 타 채널로 유통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등록팀은 각 플랫폼에 글을 등록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타 팀이라 하더라도 운영팀, 등록팀과 우리 판무 2팀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운영팀과 등록팀의 총괄 팀장인 이형석 때문이다.

‘나도 딱히 그 사람한테 좋은 감정 느끼고 있는 건 아니지.’

작년에 당시 판무 1팀 팀장이었던 한우석을 내가 들이받았을 때, 부하 직원이 욕먹는 건 싸패처럼 쪼개면서 구경하다가 내가 하극상 부리는 건 고까워하며 지랄떨던 놈이 바로 이형석 팀장이었으니까.

이형석 팀장은 하이에나의 표본.

어찌 보면 조팟의 최종 진화형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늘 회사에 영향력 있는 사람의 전담 내시를 자처한다.

한우석이 있을 때는 한우석 똥꼬를 핥느라 바빴고, 지금은 강경진을 하도 빨아재껴 혀가 닳고 닳은 전설의 똥꼬충이다.

이형석 팀장이 대놓고 우리 2팀을 아랫것들 대하진 않았지만, 프로모션 일정부터 뭐든 걸 1팀과 비교될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으니 우리 2팀에서 운영팀을 좋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지들 팀원은 갈아 넣으면서 강경진 뒤는 신나게 핥고, 뭐 나오는 게 있나? 이해가 안 가는 새끼란 말이야.’

프로 똥꼬핥기 이형석 팀장은 자신이 맡은 운영팀과 등록팀 매니저들에겐 유독 가혹하게 대했는데, 그의 지론은 이거였다.

“니들 하는 업무? 니들이 하는 게 뭐 있어? 이건 시간만 주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아~ 업무가 많아? 그럼 때려쳐. 니들 대체할 인력은 쎄고 쎘으니까.”

“니들 몸값은 니들이 만드는 거야. 그런데 니들은 사람이 아니야. 일을 사람같이 해야 몸값이 있지 니들이 무슨 몸값이 있어?”

판무 1팀 매니저들이 수세식 맷돌로 갈려 나갔다면 운영팀과 등록팀 매니저들은 그라인더로 갈려 나가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 원흉이 팀장인 이형석에게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나나 이창윤 매니저는 등록팀이나 운영팀에서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실수를 눈감아 줄 때가 많았다.

‘BS북이라는 같은 지옥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곳은 불지옥이니까.’

하지만 김동현 팀장이나 조팟은 티끌 만한 실수가 보이더라도 이형석 팀장에게 해당 팀원 참조까지 걸어 공식 항의 메일을 보냈다.

물론 오늘같이 본인 실수가 명백한 상황에도 운영팀이나 등록팀을 팔아먹는 짓을 종종 했고.

‘어차피 작가들은 확인할 방법도 없을 테니까.’

김동현 팀장과 조팟놈의 치졸한 책임 회피에 혀를 차는 그때 대회의실로 이창윤 매니저가 들어왔다.

“창윤 매니저 왔네. 자 얼른 자리 앉아. 이번 주 주간 회의 시작 합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등록 오류 처리 요청할 게 있어서.”

이창윤 매니저까지 자리에 앉자 김동현 팀장은 주간 회의록을 우리에게 건네며 말을 시작했다.

“자, 다들 원치 않았겠지만 또 지옥 같은 한 주가 돌아왔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이 아름다운 시기에 회의실에 박혀 있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현실인데.”

“팀장님……. 출근하기 싫었나봐요? 말이 긴 걸 보니.”

“조팟은 잘 보낸 것 같고. 여튼 다들 주말 잘 보냈습니까? 꽃 구경도 좀 하고 어?”

본격적인 회의 진행에 앞서 한담으로 말문을 연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꽃은 뭔 꽃이에요. 전 그거 봤어요. 사두용미 강의.”

“어? 파트장님도요? 저도 그거 봤는데.”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 모두 내 강의를 봤다니.

강의 때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이들이 날 알아보진 못했을 테지만 괜스레 손에 땀이 찬다.

“참나, 다들 직업병이야, 직업병! 뭐 주말에 그런 걸 다 보고 그래.”

“팀장님은 그럼 뭐 하셨는데요?”

“나도……. 그거 들었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판무 2팀 전원 아싸기질이 다분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럴 거면 대체 주말에 뭔 일을 했는지 왜 묻는 걸까?

“정우 매니저는?”

“저도 사두용미 아카데미 강의 들었어요. 매니저들 입장에서 참고할 부분도 있고. 좋던데요?”

“어휴…….”

“쯧…….”

“…….”

판무팀 매니저들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애잔한 눈빛으로 훑는다. 괜히 이들처럼 주말에 불러줄 곳도 하나 없어 집안에 박혀 인강이나 들은 사람 취급을 받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나는 강의를 한 거였다고!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 매일 보는 사람들이 내 강의를 들었다니.’

“가면 쓰고 강의하는 거 보니까 생긴 거 개못생겼을듯.”

“뭐요?”

“어…… 아니 왜 정우 씨가 정색을 해?”

실수다.

밑도 끝도 없는 조팟의 어그로에 순간 평정심을 잃었다.

“아니, 무료로 강의 해주시는 고마우신 분인데 보이지도 않는 외모로 그렇게 평가하는 건 좀 아니죠.”

“그래 조팟아. 암만 못생겨도 너보다 낫지 않겠냐?”

“팀장님, 사과하시죠. 부하직원 얼평 이런 거 다 사내 폭력입니다.”

“고맙네. 조팟이 날 상급자라고 생각은 해줬었구나?”

의도치 않은 김동현 팀장의 지원사격으로 위기에서 넘어날 수 있었다. 김동현 팀장과 조팟의 의미 없는 투닥임에 이창윤 매니저가 대화에 불쑥 끼었다.

“저도 진짜 유익하게 보긴 했어요. 첫 강의를 사기 계약 주의 사항 같은 내용으로 한 건 좀 의외긴 했지만, 강의 내용 보면 틀린 말 하나 없는 것 같던데요? 작가님 입장에서 미쳐 생각 못했던 부분도 되짚게 됐구요.”

역시, 판무 2팀에 이창윤 매니저만이 그나마 쓸만하다.

“아! 그 내용도 기억 나네요. ‘우리 회사 웹월드랑 친해요’, ‘저희 회사 대표님이랑 테일랜드 대표랑 서로 술 마시고 호형호제하는 사이에요’. 이런 헛소리 하는 매니저들도 다 거르는 게 좋다구요, 하하하. 그거 듣고 얼마나 웃기던지. 그래도 우리 회사에선 그런 식으로 컨택 안…… 아, 죄송합니다…….”

“…….”

“…….”

갑자기 싸늘하게 식은 회의실 내의 온도에 이창윤 매니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조팟놈과 김동현 팀장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그동안 저런 식으로 작가 계약을 해왔을 게 뻔하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주간 회의 바로 진행합시다.”

““네.””

“우선 조팟부터. 귀족남편 작가 전달사항인데…….”

조팟을 시작으로 이창윤 매니저 그리고 나까지 각각 담당 작품의 진행 보고와 추가 전달사항을 받으며 회의는 마무리를 향해 갔다.

“자, 그리고 차주 월요일부터 신입들 들어오는 거 다들 안 잊었지?”

““네.””

그리고 이번 주간 회의의 핫 이슈.

BS북 입사 1년 2개월 만에 드디어 내 첫 후임이 생기게 됐다.

그동안 판무 1팀과 로맨스팀, 운영팀, 등록팀에선 수도 없이 신입 직원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하지만 우리 1팀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섬이어서인지 다른 팀처럼 퇴사율이 심하진 않았다.

과한 팀 편의주의적인 김동현 팀장이 제 몫을 한 것도 있긴 했지만, 내가 들어오기 전까진 실적도 제대로 내지 못했기에 신규 인력 요청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 2팀이 1팀 매출을 추월하기 시작하면서부턴 신규 직원 채용 이야기가 몇번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기심과 배타심으로 뼛속까지 물든 조팟놈의 훼방 그리고 판무 종합 팀장이 되리라는 김동현 팀장의 어리석은 판단 미스로 여태까지 계속 신규 인력 없이 우리끼리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잘됐네. 이 시궁창에서 나가기 전까지 후임으로 들어오는 매니저들은 제대로 교육을 시켜 줄 테니까.’

“남자 둘, 여자 하나 총 세 분이고. 경영, 국문, 신방출신인데 정우 매니저가 선임으로 잘 케어해 줘.”

입사 1년 차인 내게 대놓고 인수인계를 맡긴다는 게 좋소기업 클래스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내가 하는 게 맞는 일이니까.

“네, 제대로 교육 진행해 보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에 김동현 팀장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출력한 종이를 내게 건넸다. 상단 구석에 사진이 박혀있는 걸 보니 이력서인 모양.

“신입들 이력서인데 한번 쓱 훑어봐. 자세히 볼 필욘 없고, 교육 전에 미리 알아두면 대화하기엔 훨씬 수월할 거야.”

“네, 차질 없이 준비 잘해서…… 어?!”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들의 이력서.

그곳엔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이 사람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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