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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57화 (57/201)

#57화 - 아카데미 첫 강의.

BS북 판무 매니저들을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은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일정 발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세최공 상금 지급까지, 드디어 공모전 관련 업무가 모두 끝났네요. 그동안 애써 주신 엘가 임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LGA컴퍼니 임원들은 세계 최강 공모전의 완전한 마무리 축하와 저녁 식사를 겸해 모였다.

“뭐야아, 대표님이 대놓고 엘가라고 부르는 게 어딨어요?”

“……아! LGA컴퍼니 임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 붙었나 봐요, 하하.”

BS북에서 우리 회사를 하도 엘가라고 불러서인지 나도 이젠 입에 붙은 느낌이다. 이지연의 지적에 다들 피식 웃으며 허공에 올린 잔을 부딪쳤다.

“크으~!”

“캬아!”

“으음! 맛있는데요?”

다들 간만에 축이는 술이어서인지 기분 좋은 탄성이 모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눈치 못 챘어. 어차피 분위기가 중요한 거니까, 괜찮겠지.’

이지연의 손에 들린 건 논알콜 스파클링 와인.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지연이 취했다가는 감당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표님, 미현 본부장님한테 들었어요.”

“뭐를요?”

오늘의 회식 장소는 대게 전문 레스토랑.

달착지근하면서도 쫄깃하게 쪄진 영덕 대게 다릿살을 호로록 빨아 당긴 이지연이 내게 말을 건넸다.

“대표님이 계신 2팀에선 이제 올댓에 보낼 신인 작가 모집 멈추기로 했다면서요?”

“아, 그거요? 승진을 빌미로 추진되던 일이었는데, 김동현 팀장도 이제 감 잡은 거죠. 눈 밖에 제대로 난 상황인데 굳이 매출에 도움도 안 되는 올댓 일엔 신경을 끄기로요.”

승진도 물 건너갔는데 이제는 굳이 강경진 눈에 잘 보일 필요가 없게 됐으니까. 뭐가 됐든 우리 엘가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미현 본부장님, 아카데미 진행 상황은 어때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특히 커리큘럼상 작품 피드백 담당하게 될 매니저들은 더 신중하게 피드백 업무 진행하도록 OJT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요.”

“좋네요.”

사두용미 아카데미는 총 3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3달이라고 해봤자 매주 일요일, 주 1회만 진행되는 강의. 그렇기에 실질적인 총 강의 횟수는 고작 13회뿐이다.

아카데미가 시작되는 첫 달인 4월 한 달간은 이론 교육. 5월부턴 이론을 병행한 본격적인 실습이 진행될 예정이다.

‘마지막 달인 6월 한 달간은 본격적인 실습과 더불어 첨삭이 진행될 예정이지.’

그리고 권미현 본부장이 말하는 OJT는 이때 진행될 1:1 피드백 및 멘토링에 참여할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뜻한다.

엘가의 판무팀 매니저들은 면접 때 인성과 실력 모두를 고려해 채용한 인재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편할지 모르기에 방심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OJT로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의 목표와 존재 이유 등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야 한다. 직원들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이어도, 귀찮아하더라도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그나저나 몇 명이나 따라올지 기대되네.’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모집 정원은 총 200명.

하지만 이들 모두의 작품을 피드백하게 되진 않을 거다.

지난 세최공에서 장려상과 신인상을 합쳐 우리가 준비한 상의 수상자의 수는 250명 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상한 이들의 수는 200여 명 정도뿐이니까.

‘나머지 50 명은 수상조차 하지 못했지. 기준에 충족하지 못했으니까.’

지난 세최공 수상 요건은 최소 20화 이상 연재였다. 하지만 연재 속도를 못 맞추는 지망생, 지표를 보고 멘탈이 나간 작가 등 10화도 다 못 채우고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워낙 많았다. 그렇기에 신인상 수상자 중 50여 명은 결국 상을 받지도 못했다.

‘즉, 이번 아카데미 모집 인원은 200명이면 충분할 거란 뜻이지.’

1:1 피드백과 멘토링은 모든 수업을 정시에 입장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작가와 지망생들에게만 진행될 예정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엘가 판무 매니저들이 투입될 3달 차 때가 되어서는 100명도 남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의욕도 없는 사람들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무료 온라인 수업에서도 나가떨어지는 사람들까지 올댓의 구렁텅이에서 구르게 될 게 염려되진 않는다. 노오력도 안 하는 끈기 없고 나약한 인간들까지 챙길 정도로 나는 배포가 넓은 게 아니니까.

“세최공에 이어서 바로 진행되는 아카데미 일정도 상당히 빠듯한데 다들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연 본부장님도 홍보 배너 멋지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무진 본부장님도 여기저기 홍보하고 기사 내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다들 대게 살을 신나게 흡입하느라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애써준 이들의 노고를 잘 알기에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그아하하, 진짜 잘 풀리니 좋구만! 이번 주가 정말 빡세긴 합니다. 공모전 상금은 오늘 모두 전달했고, 이틀 뒤엔 발표 평가, 일요일엔 아카데미도 열리니, 쯧. 쉴 수가 없네.”

“아, 거참. 인센 더 올려 드린다니까?”

“그아하하하, 장난입니다 대표님아.”

단풍 삼촌은 일이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엘가에서 함께하는 단풍 삼촌의 모습이 그동안 내가 봐 왔던 삼촌의 모습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삼촌 자신도 잘 알고 있을 테다.

‘여기선 배경에 상관없이 오롯이 삼촌 실력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

단풍 삼촌이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발표 평가가 벌써 코앞이네요.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당연하디! 쫄릴 게 뭐 있나, 실력으로 승부하면 되는데, 그아하하하!”

“저는 솔직히 좀 걱정되는데…….”

“저도요…….”

단풍 삼촌이 말하는 발표 평가는 브루나이 정부와 한국 정보가 함께 진행하는 플랫폼 지원 사업 발표다.

발표 평가는 1차 서류 심사에서 통과했던 기업들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PT를 진행하는 형태다.

메인 발표자인 단풍 삼촌과 함께 발표에 참여하게 된 이지연과 권미현은 잔뜩 긴장이 되는지 대게 다리살을 힘없이 빨아들였다.

“그아아하하! 지연 본부장님, 미현 본부장님. 걱정할 거 없습네다. 내래 총포탄을 뚫고 남조선에 왔는데 그깟 PT가 뭔 대수라고. 일없소!”

물론 단풍 삼촌은 늘 그렇듯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건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뜻이겠지.

단풍 삼촌의 입에서 고향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슬슬 자리를 파해야겠다.

* * *

식목일인 4월 5일.

공교롭게도 오늘이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첫 강의 날이 되었다.

“쓰읍, 후우…….”

“그아하하하. 대표 동무, 긴장되나 보구만 기래.”

“아, 삼촌! 등짝 좀 그만 때려!”

“야이 간나야, 직접 대면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모니터 앞에서 나불거리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유난이네?”

“에이, 그래도 우리 대표님 긴장되실 만하죠. 가면 써도 처음으로 방송 타는 거잖아요.”

“가면 쓰면 오히려 긴장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본격적인 아카데미 첫 강의가 시작되기 30분 전인 지금. 촬영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로 한 구 엘가 사무실에서 단풍 삼촌과 이지연, 권미현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아니……. 오늘 근무일도 아닌데 왜 다들 나와서 이래요? 수당 따로 안 챙겨 줄 거라니까요? 주말인데 다들 집 가서 쉬어요.”

“우리 대표가 방송 타는 첫날인데 어떻게 집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나? 옆에서 봐야 더 재밌디. 그으흐흐.”

“맞아요 대표님. 누가 옆에 있으면 기운 나잖아요.”

“쫄까봐 와 줬구만.”

“…….”

다들 내가 긴장이라도 할 까봐 와 준 것 같다.

문제는 이들이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이는 거란 걸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 이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들은 옆에서 내게 응원을 해주거나 별다른 걸 해준다기보단.

“진짜 발표할 때 무진 본부장님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영어 잘하시는 줄 알긴 했는데 그 정도로 잘하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그아하하하, 그렇습니까?”

“저도 솔직히 놀랐어요. 눈 감고 들으면 원어민 수준이던데요?”

“미현 본부장님도? 그어허허헛! 외국어 그거 몇 개 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내 긴장을 풀어 준다는 명목하에 사실상 노가리를 까는 게 전부였으니까.

‘아……. 이제 그냥 좀 가면 안 되나?’

간절한 내 염원과 달리 우리 임원진들은 여기서 점심까지 시켜 먹으며 나갈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 지금도 짜장, 짬뽕을 후루룩 흡입하며 그그제 있었던 발표 평가 얘기를 다시 꽃피우느라 바쁘신 모양.

“아니 영어는 그렇다고 해도. 브루나이 측 분들한테 말레이어랑 중국어로도 그렇게 유창하게 대화가 가능하실 줄은 몰랐어요.”

“제 말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도 발음이나 억양 이런 게 엄청 자연스러운 게 티가 나더라니까요? 그때 심사위원분들 놀라던 거 아직도 생각나요.”

“그어허허헛! 뭘 또 금칠을 이렇게까지!”

계속되는 수다가 끝나고 드디어!

강의 시작 5분 전이다.

“자, 여러분. 안 나가실 거면 이제부터 조용히 해 주세요. 강의 이제 곧 시작합니다.”

후우……. 속으로 나지막한 한숨을 뱉은 후 미리 준비한 하회탈을 썼다.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내가 진행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맨얼굴을 노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조팟이나 강경진 그리고 BS북 매니저들만 해도 엄청 볼 게 분명하니까.’

“대표님 잘하세요!”

“저희 조용히 옆에 있을게요.”

“가즈아악! 파이테에엥!”

임직원들의 힘찬 응원을 뒤로한 채 나는 온라인 강의 화면에 로그인했다.

비록 비대면 수업이기에 나 홀로 떠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얇은 모니터 뒤에 200명의 사람이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 작가 그리고 예비 작가 여러분. 작가들을 위한 커뮤니티 정글북 그리고 LGA컴퍼니의 판타지 무협 레이블 드래곤이 함께 진행하는 제1회 웹소설 아카데미, 사두용미에 참여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음, 아무도 없는데 혼자 떠드는 게 살짝 뻘쭘하다는 생각이 드려는 찰나. 모니터 뒤에 다소곳한 모양새로 나란히 앉은 덩어리와 여인 둘이 입모양만 뻥긋거리며 내게 무언의 응원을 보냈다.

‘다음 수업 때는…….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해야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 덕분에 처음 진행하는 강의가 떨리거나 긴장되진 않았다.

“이번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의도는 이 강의를 듣고 계실 수많은 작가님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분들께서 지금은 비록 작은 꿈을 품은 뱀일지언정 이 수업이 끝날 때엔 승천하는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저는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수업을 담당하게 된 드래곤의 전속 작가이자 노원지귀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연재 중인 작가입니다. 총 3달 동안 진행될 수업은 제가 메인 강사로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첫 번째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차례다. 솔직히 첫 수업 커리큘럼으로 이 내용을 넣는 게 순서상으로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럼 첫 번째 수업인 ‘어떻게 해야 사기 계약을 피할 수 있을까?’부터 먼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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