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56화 (56/201)

#56화 - 사…… 사두용미?

내가 회귀하기 전도 그렇지만, 이 시절에도 소설피아는 웹소설 플랫폼의 절대 강자였다.

소설피아 주최의 첫 공식 공모전이 시작되자 BS북 역시 덩달아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아……. 첫날에만 600 작품 넘게 몰리더니,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벌써 1,000 작품이 넘어가네요.”

“그러니까요. 생각보다 참가작 숫자 느는 게 빠른데요?”

“역시 제대로 된 공모전이라 다르긴 다르네. 드래곤에서 하던 세최공은 이거 반에 반도 안 되지 않았나?”

“…….”

오늘은 공모전이 시작된 첫 주 금요일인 3월 20일. 소설피아 제1회 공모전이 시작된 후, 트렌드 파악 등을 위해 판무팀 매니저들은 공모전 작품을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소설피아 공모전을 살피는 이창윤 매니저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데 어김없이 조팟놈이 끼어들었다.

‘조팟새끼……. 저건 어디 이직도 안 하나?’

하긴, 생각해보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 우리 LGA에도 지원했지만 서류 심사에서 이미 광탈한 놈이니까.

회사란 조직은 특이하다.

오래 함께하고 싶거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은 금방 떠나가고, 제발 꺼져줬음 싶은 사람은 말로만 퇴사한다, 사표 쓴다 지랄똥을 싸면서도 기생충처럼 회사를 나갈 생각을 않는다.

‘말은 안 해도 지들도 알겠지. 여기서 나가면 더 이상 발 붙일 곳이 없다는 걸.’

본인의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과 모난 성격을 반면교사 삼아 발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조팟 같은 놈들은 조금도 그럴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회사라는 조직의 씁쓸한 현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잘 다니던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주화입마에 걸린 것처럼 흑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최진혁 파트장……. 아니 팀장처럼 말이지.’

지난 수요일.

판무 1팀에선 최진혁이 정식으로 팀장이 됐다.

판무 1팀의 인원은 우리 2팀보다 2배 이상 많은 수다. 하지만 최진혁 팀장이 원래 있던 1파트장 자리는 공석인 채로 유지되고 있다.

‘기껏 2파트로 늘린 자리에 파트장 자리 하나를 공석으로 놀리는 건 상당히 의도적인 행보지.’

1팀에서 연차가 좀 쌓인 매니저들은 파트장 자리에 앉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반면 2파트의 김영진 파트장 같은 경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최진혁 팀장의 눈밖에 벗어나 파트장 자리에서 잘리지 않도록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 대체 왜 저렇게 된 거냐?’

최진혁 팀장을 보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물론 일개 사원인 내가 팀장 자리에 앉은 최진혁을 안쓰러워하는 게 언어도단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최진혁이란 사람이 원래 자신이 담당하던 작가와 작품을 어떤 태도로 대하던 사람인지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최진혁 팀장의 바뀌어 버린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한테 그런 말 듣고도 별말 없네?’

1팀과 원래 자주 마주칠 일도 없긴 했다.

하지만 최진혁 팀장과 간혹 화장실에서 마주쳐도 서로 묵례만 할 뿐, 딱히 내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최진혁 팀장에게 했던 나의 행동은 사실상 하극상이나 마찬가지였음에도.

‘뭐……. 자기도 쪽팔린 건 아나 보지.’

그게 아니라면 BS북에서 내 이미지는 전 1팀 팀장이었던 한우석을 들이받으면서 개쌍마이웨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이거나.

“오? 현미떡볶이 작가 성적 괜찮은데? 확실히 공모전 당일부터 5연참 3연참 연달아 때린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야.”

“원래 이번 달에 런칭 준비 중이셨는데 운 좋게 공모전 타이밍이랑 겹쳤어요. 그래서 성적이 좋은 것 같아요.”

“어허이, 창윤 매니저.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야 실력. 지금처럼만 잘하자고.”

“네, 팀장님.”

이번 소설피아 제1회 공모전엔 BS북 소속 작품들도 상당수가 출전했다. 그렇기에 판무 매니저들은 각자 자신의 담당작이 잘되고 있는지 안 되는지 물 떠놓고 비는 수준으로 매일 지표 확인을 했다.

특히 이창윤 매니저가 담당하는 현미떡볶이 작가는 스포츠 장르의 글로 이번 공모전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다.

첫날엔 공모전 순위 20위권이었던 현떡 작가가 공모전 5일째인 오늘 5위권에 진입하자 이창윤 매니저와 김동현 팀장은 무척 밝은 모습이다.

“……아하하, 네 작가님. 저희 팀에는 편부인 없습니다. ……네 편공주도 없고요. ……예예, 제가 잘하겠습니다.”

물론 우리 2팀 모두의 표정이 밝은 건 아니었다.

“어우웈! 이 개같은!”

전화를 끊은 조팟놈의 광증이 오늘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김동현 팀장의 얼굴은 정말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는 무표정. 하지만 묻지 않아도 조팟놈은 계속해서 중얼거릴 게 분명하니 빨리 묻고 저 새끼 입을 다물게 하려는 계획인 듯싶다.

“귀족남편 이 미친놈이 진짜 쓸데없는 걸로 전화 와서는 지랄병 떨잖아요.”

“뭔데? 말할 거면 요약해서 말해.”

지난달 카리오스에서 계약 논란이 터진 이후, BS북은 A급 작가 셋을 데려올 수 있었다.

판무 1팀에서 둘 그리고 우리 2팀에서 하나였는데, 2팀에서 A급 작가를 데려온 유일한 실적을 낸 이가 바로 조팟이었다.

“아니,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매번 연락 올 때마다 왜 여자 편집자가 아니라 남자냐. 담당자 못 바꾸면 여자 편집자를 소개시켜달라. 뭐 이딴 개소릴 지껄여요. 마흔도 더 처먹은 놈이 우리 편집자 대부분 20대라고 해도 이딴 소릴 한다니까요?”

“그래, 작가가 잘못했네. 30대인 조팟도 연애를 못 하는데.”

김동현 팀장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심드렁히 말하자 조팟의 눈이 부릅떠졌다.

“팀장님, 저 29이거든요? 그리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작가가 미친놈이라니까요?”

“그래. 그러니 계약하기 전에 잘 살펴봤어야지.”

“어후……. 내가 팀장님한테 말하니 혼자 앓다 죽어야지. 이런 미친놈인 거 알았어도 팀장님은 계약하라고 했을 거잖아요?”

조팟의 계속되는 투덜거림에 옅은 한숨을 내뱉은 김동현 팀장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조팟에게로 옮겨졌다.

“조팟아, 인생이 원래 다 그런 거다. 담당 작가가 미친놈이면 미친놈인 대로 케어해야지 어쩌겠어? 귀족남편 매출은 잘 뽑잖아? 원고도 따박따박 잘 주고.”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이 눈이 더 크게 찌푸려졌다.

“따박따박 잘 주긴요? 연재 시간 10분 전 5분 전 아슬아슬하게 줘서 매일 심장이 두근거려요! 꼴에 기성이라고 그나마 오탈자가 없어서 원고 받고 올리니 별문제 없는 거지. 지금처럼 소설피아 연재가 아니라 타플 연재였으면 이미 큰일 났어요. 그리고, 매출이 저랑 뭔 상관이에요? 작가 돈이 내 돈도 아닌데.”

조팟놈의 지랄병은 주에 최소 한 번이 디폴트 값. 하지만 카리오스에서 귀족남편이란 필명의 A급 작가를 데리고 온 후부터는 조팟놈의 광증이 매일 한 번씩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어허이. 우리 조팟님 아주 도둑놈 심보셨네? 작가 돈이 당연히 작가 돈이지 그걸 넘봐?”

“아니 넘본다는 소리가 아니라—”

“작가 매출 잘 나오면 실적에 포함되잖아. 긍정적으로 생각 좀 하고 살자 어? 포지티브 바이브 온리 어?.”

“어휴……. 됐습니다요.”

‘조팟아……. 그러니 작가 계약 전에 인성 파악 좀 해보면 될 것을, 쯧.’

카리오스에서 쓸만한 작가들은 이미 드래곤으로 데려와 계약 이관까지 끝낸 상태다.

그러니 BS북에서 데려온 작가들은 다들 저 모양 저 꼴일 수밖에.

예상 못 할 일도 아니었는데, 저렇게 유난 떠는 게 어처구니없게 보인다.

“모두 파이팅입니다. 벌써 3월 20일인데 이제 열흘만 지나면 세최공 상금 지급도 끝나겠네요.”

“그래, 다들 긍정 에너지 좀 뿜으면서 살자고. 정우 매니저 말처럼 열흘만 더 지나면 이제 올댓에 넘길 신인 작가들 계약하기도 쉬워질 테니까.”

파트장이었던 최진혁이 1팀 팀장이 된 후로 김동현 팀장은 한동안 상당히 암울한 기움을 뿜었었다.

하지만 주말을 보내고 온 뒤로 김동현 팀장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는 듯이 쾌활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어휴……. 그건 그나마 다행이긴 하네요. 빨리 4월이 돼야 망생이들 납치가 좀 수워얼……어어엌? 이, 이건 또 뭐야아?! 미친!”

“조성훈 파트장! 적당히 좀 하지? 이번에 새로 데려온 작가 때문에 힘든 건 알겠는데, 계속 그렇게 투덜거리면 같은 팀 사기도 영향받는 거 몰라?”

“아, 아뇨. 아니 그게 아니라…… 정글북, 얼른 정글북 들어가 보세요!”

“정글북? 거긴 또 왜?”

정글북이라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뿐만이 아니라 이창윤 매니저 그리고 내 시야에 힐끗 보이는 판무 1팀 매니저들의 고개 역시 잠시 들썩거렸다.

세최공의 개최 그리고 카리오스 정산 이슈가 터진 이후로 정글북엔 점점 더 많은 지망생들과 신인 작가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제 편집자들은 정글북 이름만 들으면 우리 회사에서 무슨 일이 터진 게 아닌지 혹은 내 담당 작가가 무슨 글을 쓴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풍 삼촌이 이제 올렸나 보네?’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정글북 카페를 들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정글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 사두용미? 사두용미 아카데미 오픈? 이건 또 뭐야?”

“와아……. 이번에도 드래곤……. 엘가 주최네요.”

“미친……. 심지어 무료? 거기다 신인 작가들 대상이야. 엘가 이 개새끼들!”

BS북 매니저들 사이에선 LGA컴퍼니를 ‘엘가’라고 줄여 부른다. 아마도 엘가, 헬가, 개같은 엘가 등 욕하기 편하려고 부르는 것 같긴 한데, 어느샌가부터 나도 엘가라는 말이 더 입에 붙어 LGA컴퍼니 임직원과 이야기할 때도 종종 엘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신인 작가 파밍할 생각에 들떠있었을 텐데?’

우리 2팀뿐만이 아니라 1팀 매니저들 역시 정글북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는 관자놀이를 누르거나 타이레놀을 찾아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엘가 이 새끼들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올댓에 보낼 망생이 수급 못 하게 하려고?”

뜨끔.

조팟놈이 저런 예리한 말을 하다니.

별생각 않고 한 말이 분명하겠지만, 조금 놀랍긴 하다.

“생각해 봐요 우리가 올댓에 망생이들 넘기려 할 때부터 엘가에서 계속 우리 발목 잡고 있잖아요? 우리 회사에 산업 스파이라도 꽂아 놓은 게 아니고서는—”

“제바알. 조팟아 제발 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자.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엘가에서 뭣 하러 산업 스파이를 심어? 그보다 이거 환장하겠네 진짜. 사두용미 아카데미? 전액 무료에 그것도 온라인 강의?”

“하아…….”

“하…….”

정글북 카페 메인 화면에 띄워진 아카데미 신청 모집 공고를 읽는 매니저들 사이에서 한숨과 함께 드르륵거리는 마우스 휠 오르내리는 소리만 메아리쳤다.

정글북 X 드래곤 제 1회 웹소설 아카데미 오픈!

1. 웹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지망생 여러분!

2. 연재 경험은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신인 작가님들!

3. 혼자 집필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는 모든 분들!

시작은 미약할지언정 뱀이 아닌 용처럼 구름 위의 벽을 넘고 싶은 신인 작가님들과 지망생 여러분을 사두용미(蛇頭龍尾) 아카데미에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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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강사진과 함께 하는 무료 온라인 강의로…….

“……사두용미 아카데미. 이건 얼마나 하는 거지?”

“그게……. 바로 다음 달부터 3달 동안 진행된다고 하는데요?”

“…….”

“…….”

사두용미 아카데미 모집 공고를 읽은 판무 2팀 매니저들 사이에선 한동안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김동현 팀장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2팀은 앞으로 소설피아 런칭에만 집중합시다. 그 이유는……. 말 안 해도 다 알 거라 생각해.”

“……네, 팀장님.”

“……예.”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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