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공지 올라왔는데요?
5일간의 황금 연휴가 끝났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한 주의 화요일.
드디어 길고 길었던 세계 최강 공모전의 당선작 발표일이다.
“와, 미친! 도사가 마법사를 숨김 이거 우수상 탔네?”
“헐? 대박이네요. 그거 연중했다가 아예 새로 쓴 작품 아니에요? 로켓소년단 작가였나?”
“맞아요. 그 성지글 작가. 와, 이 작가 처음에 도사와 마법사였나? 그건 완전 개똥글이었는데, 대가리 깨지더니 발전하긴 하네.”
“이번 글 필력은 아직 많이 딸려도 전반적인 흐름은 괜찮던데. 독기 품고 쓰더니만 완전 각성했네요.”
“노원지귀가 한 건 하긴 했네. 망생이 하나 사람 만들고.”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정글북 카페에 올라온 세최공 당선작 목록을 보며 서로 어떤 작품이 재미있었다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 그래도 이 빌어먹을 공모전 이제라도 끝나서 다행이네.”
“뭐가요?”
“뭐긴? 생각해봐요. 망생이들이 그동안 올댓으로 넘어가기 싫다고 버틴 가장 큰 이유가 공모전에 지들이 당선될 줄 알고 희망회로 돌렸던 거잖아요. 이제 공모전 끝났으니 그런 일 안 생기겠다 이 말이지.”
“음……. 그렇긴 하겠네요.”
조팟의 예상과 달리 세최공으로 한 달간은 더 잡아둘 수 있을 테다.
‘상금 지급일이 익월 말까지란다 조팟아.’
즉, 상금을 받으려면 그때까지는 타 출판사에 계약이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
권미현 본부장과 드래곤 판무팀 매니저들이 당선 작가들에게 지금 열심히 메일을 보내는 중일 테다.
상금 지급 일정과 함께 소설피아가 아닌 타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있을 경우 당선금 지급은 안 된다는 내용의 메일을.
“어디 그럼 당선에서 떨어진 망생이들부터 컨택 쫙 돌려야겠네.”
“오, 확실히 탈락작들 컨택하는 건 쉽겠네요.”
“빈집털이 가보자고!”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빈집털이를 기대하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그건 내게 지옥불로 걸어 들어가는 소리로 들렸다.
총 256명의 수상작에 들지 않는 작품은, 실질적으로 연재가 불가능한 작품이란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장려상 50명과 신인상 200명.
조팟과 BS북 판무 매니저들이 우선적으로 노리는 신인 작가들은 이들 외의 작가들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들의 글은 사실상 유료화를 해서 유의미한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
아니 유의미한 성적을 떠나 연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내 솔직한 심사평이다.
그렇기에 장려상과 신인상은 글의 내용을 떠나 공모전 기간 동안 꾸준히 글을 쓴 작가들 대부분이 수상하게 됐다.
‘그러니 250명에 포함 안 된 작가님들은 꾸준한 연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지.’
1일 1빡, 아니 주에 5빡도 불가능한 작가들을 데리고 올댓에 런칭을 한다?
잘 해봐라 조팟아. 계약된다고 해도 개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그 순간.
파티션 너머로 김동현 팀장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쪽은 신경 끄고 카리오스 작품들이나 신경 쓰자고. 다들 카리오스 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
“…….”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따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속은 웃고 있었지만.
“그게……. 당장 계약하겠다고 하는 작가님은 A급에서 1명밖에 없어요. 철수아빠빠 작가요.”
철수아빠빠 작가는 권미현이 블랙리스트에 추가한 작가다. 즉 인성이 개 빻은 사람이라 드래곤에선 계약을 하지 않은 작가인데, 잘 됐다. 잘 가져가라.
“창윤 매니저랑 정우 매니저는?”
“저는 아직 답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아직 작가님들 답변은 못 받았습니다.”
“쓰읍. 이거 이상하네……. B급, C급 작가들은 대부분 바로 계약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바로 계약했어요 팀장님. 우리 드래곤이랑.’
이 사실을 모르는 김동현 팀장은 낮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전화번호 받은 작가들 있으면 오늘 오후나 내일쯤 다시 연락해봐. 전화로 설득 안 되면 만나서 미팅하자고 꼬시고.”
“네.”
“알겠습니다.”
“넵.”
큰일 날 뻔했다.
진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으니까.
‘B급, C급 작가들 몇 번을 연락해봐라. 이미 단풍 삼촌이 카리오스 측에 연락했다고요 이 사람들아. 작품 인계받고 드래곤하고 계약하기로.’
올댓에 넣을 작품 계약도 안 되는데 카리오스에서 거저먹을 줄 알았던 작가 빼오기 마저 난항을 겪자 김동현 팀장은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팀장님아, 아직 놀랄 일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정신줄 꽉 잡고 있으라고.’
매는 빨리 맞아야 덜 아픈 법이다.
나는 누구보다 매를, 아니 좋은 소식을 먼저 전달하기 위해 소설피아 사이트에 들어가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기다리던 소식이 올라왔다.
“어? 소설피아에 공지 올라왔는데요? 이거 다들 보셨나요?”
마치 내공을 실어 말하듯, 최대한 성량을 높여 판무 1팀 자리까지 들릴 정도의 크기로 모두에게 묻자 다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공지?”
김동현 팀장의 물음에 나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소설피아에서 자체 공모전 한다는데요? 3월부터요.”
파티션 너머 강경진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보인다. 남들이 보기엔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강경진의 눈꼬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공모전?”
“공모전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소설피아가? 공모전?”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순식간에 판무 1팀과 2팀 주위는 딸칵대는 마우스 클릭음으로 요동쳤고, 금세 여기저기서 옅은 탄식과 짜증이 흘러나왔다.
“아, 이게 뭐야 또? 이제 공모전 끝나나 했더니. 3월 16일부터 5월 15일? 미친 거 아냐?”
“와……. 상금 미친……. 대상 1억, 1등 5천, 2등 3천, 3등 2천, 장려상이 천만 원?”
“수상작에 한해 드라마 및 영화화 작업? 아니……. 해외 진출 번역도 해준다는데요?”
역시, 예상대로 판무팀은 뒤집어졌다.
그리고 그건 운영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판무팀에서 따로 확인 요청을 했는지, 운영팀 이형석 팀장은 급히 소회의실로 뛰쳐가 누군가와 긴 통화를 시작했다. 그는 통화가 끝난 후 곧장 강경진에게 들렀다 김동현 팀장의 자리로 와서 말했다.
“김동현 팀장님, 소설피아 측에서 첫 공모전이라 사전 고지를 못 해 죄송하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도 이거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닙니까? CP사에 연락도 없이 이게 뭔…….”
업계 탑인 BS북에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건 의도적인 엿먹임이 분명하다. 이번 올댓스토리 투자금 유치로 인해 BS북은 확실히 조금 눈 밖에 난 게 분명하다.
‘LGA컴퍼니도 미리 전달받았는데 BS북은 연락을 못 받았다라……. 카리오스도 미리 연락을 받았을 텐데.’
물론 카리오스는 이제 나락행 급행열차를 탔으니 아디오스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 이게 좀 난감한데. 공모전 참가가 계약 작품도 가능은 한데, 미계약작으로 참가한 작품은 공모전 결과 발표일까지 CP사에서 컨택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니, 뭐 그딴 게 다 있어요? 하……. 이거 다 LGA 그 양아치 새끼들 하는 짓 보고 따라하는 거 아니야?”
“정말 난감하네요……. 소설피아도 이번이 첫 공식 공모전이라 준비가 미흡해 사전 고지를 미리 못했다고 합니다.”
김동현 팀장과 이형석 팀장 사이에서 옅은 한숨이 수차례 흘러나왔다.
‘LGA 탓 아니야. 소설피아 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어.’
그들의 썩어 문드러지는 표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당황스럽겠지.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끝판왕이 나온 격이니까.
“우리만 그런 거 아니죠? 다른 CP도 공모전 기간에는 다 컨택 못 하는 건가?”
“네……. 공모전 기간엔 무조건 소설피아 매니지에서만 계약 가능하게 할 거라고 합니다.”
“하아……. 돌겠네, 진짜.”
돌겠냐? 나는 기쁜데.
기쁜 속내를 감추고 소설피아에 올라온 공모전 공지를 찬찬히 읽고 또 읽었다.
‘……없어. 아예 없네.’
회귀 전엔 매 공모전마다 협력사로 참여했던 카리오스가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상당 기간 소설피아의 모든 공모전에는 카리오스가 협력사로 참여했었다.
그리고 작품 컨택 역시 소설피아 매니지와 카리오스 판무팀에서만 가능한 투톱 체재였는데, 내가 알던 역사와 확연히 바뀌어 버린 거다.
‘잘 가라 카리오스. 그러니까 계약서 장난질 같은 양아치 짓은 하질 말았어야지.’
그럼 이제 우리 LGA컴퍼니도 할 일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다들 소설피아 공모전 공지 봤죠?
—단풍 삼촌: 봤습니다~
—단풍 삼촌: 바로 연락 합니까?
—오늘 중으로 소설피아에
연락해서 사업 제휴는
힘들 것 같다고 해주세요
—단풍 삼촌: 오케이
이제 우리 LGA컴퍼니가 신인 작가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는 내실을 다지고 더욱 단단해질 때다. BS북이든 플랫폼이든 그 누구도 우릴 흔들 수 없도록.
* * *
오늘은 3월 10일 화요일.
단풍 삼촌이 소설피아 측에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두 주가 흘렀다.
우려와 달리 소설피아 측에서 별다른 말은 없었다.
“미치겠네……. 공모전 시작도 안 했는데, 컨택 되는 작가가 아예 없어. 요즘엔 쪽지 보내도 읽씹이 기본이라니까.”
턱을 괸 채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조팟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이창윤 매니저 또한 비슷한 얼굴이다.
“제 말이요. 올댓에 보낼 작가도 문제지만, 이제 소설피아에서 유료화시킬 작가 구하긴 더 어려워졌어요.”
“그럴 만도 하지. 1등 상금이 1억이라는데. 아, 나도 편집자 말고 글이나 쓸걸, 쯧.”
“아서라 조팟아. 글은 아무나 쓰냐? 조팟 글 써서 회사 탈출하겠다고 말한 지 벌써 몇 년 되지 않았어?”
조팟의 의미 없는 넋두리에 김동현 팀장이 끼어들자, 조팟은 미간을 찌푸리며 김동현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쓰려면 쓰죠. 왜 못 써요? 이번 공모전 회당 3천자 이상만 되면 쓰면 되던데. 3천자 그게 뭐 대수라고.”
“편집자들 다 자기가 글 쓰면 담당작보다 잘 쓸 자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내가 아직까지 글 써서 성공한 편집자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작가로 잘 될 편집자였으면 애초부터 작가 생활했겠지. 안 그래?”
“아니, 왜 뼈를 때려요? 말도 못 해요?”
“그러니 잡생각 말고 일이나 집중하시자고요.”
어렵기는 개뿔?
꾸준히 하면 되지 편집자라고 작가 왜 못하겠어? 니들이 퇴근하고 게임하고 술 마시고 놀고 운동하고 할 거 다 하니까 글 쓸 시간이 없는 거지.
“소설피아 공모전 이제 시작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어. 다들 공모전 참여하는 작가들 케어 잘 하자고.”
““네.””
“아, 그리고 나는 강경진 팀장하고 미팅 있어서 위층에 잠시 갔다 옵니다.”
“무슨 미팅이요?”
조팟의 물음에 김동현 팀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다. 갑작스럽게 연락이 와서. 여튼 다녀옵니다.”
“네, 팀장님.”
“넵.”
“다녀오세요.”
작년 말에 BS툰이 설립되고 강경진은 2, 3층을 종종 오갔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점점 3층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팀장님, 같이 가시죠.”
“진혁 파트장님도 위에 가세요?”
“네, 강 팀장님이 저도 부르셔서요.”
“그래요? 같이 가죠.”
김동현 팀장이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그때. 어느새 다가온 1팀 1파트 파트장 최진혁이 김동현 팀장을 뒤따라 함께 위로 올라갔다.
‘최진혁 파트장. 눈빛이…….’
로맨스 팀에 좌천돼 지옥 같은 생활을 보내던 그가 강경진에게 구원을 받은 후, 최진혁 파트장은 전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전 팀장인 한우석이 떠오를 정도로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이다.
특히 최진혁 파트장은 신입 직원들이 작은 실수라도 하면 얼마나 휘어잡는지, 예전의 어수룩하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정도로 사람이 180도 바뀌었다.
덜컥!
김동현 팀장과 최진혁 파트장이 강경진과 회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간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상당히 거칠게 사무실 문을 열고 돌아온 김동현 팀장이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었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지 않아도 김동현 팀장의 얼굴에 가득한 감정은 분노, 그 자체다.
김동현 팀장의 표정이 워낙 심각했기에 낄 때 빠질 때 못 가리는 조팟놈도 힐끔거리기만 할 뿐, 김동현 팀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걸진 않았다.
—조팟: 뭐야?
—조팟: 팀장님 왜 저러심?
—이창윤 매니저님: ……뭔가 안 좋은 일 있었나 본데요?
—이창윤 매니저님: 파트장님이 한번 물어보시죠?
—조팟: 씁…… 팀장님 저런 표장 처음 보는데…… 말 걸어도 될라나?
띠링—
‘전체 메일?’
조팟이 김동현 팀장에게 말을 걸까 말까 뜸들이던 그 순간. 갑자기 날아온 한 통의 메일로 김동현 팀장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인사 발령 공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