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작가 계약은 연애와 같다고 했던가?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의 눈이 튀어 나올 듯 크게 떠졌다. 김동현 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쟁 선포나 다름 없었으니까.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올댓 보낼 작품만 지금 하루 종일 컨택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면 인센은 1팀 입에 다 처먹이라는 소리예요?”
‘조팟아……. 놀란 포인트가 그거였냐?’
내가 놀란 건 카리오스의 작품을 빼온다는 거였는데, 조팟의 발작 포인트는 올댓스토리에 신규 작가를 못 데리고 간다는 거였다.
대체 조팟새낀 어떻게 이 회사에 입사한 건지 궁금증이 도지는 그때, 김동현 팀장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올댓이 문제가 아냐. 다들 카리오스 불타는 거 알지?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몰라. 이건 IMF때 땅 사는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 같이 카리오스가 흔들리고 있을 때 우리가 작가들을 싹 다 데려 와야 한다고.”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게 말이 쉽지, 가능하겠어요? 카리오스에 스타 작가가 한둘이 아닌데. 거기다 이런 생각 하는 거 우리 회사만 하는 것도 아닐 거 아니에요. 게다가—”
“일단 들어.”
조팟의 말을 끊은 김동현 팀장은 가져온 문서를 우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카리오스 작가 리스트야. 리스트 우측에 적힌 작가들은 우리 2팀이 그리고 좌측은 1팀에서 컨택하기로 했어.”
“아니…… 진짜로요?”
“조팟.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애?”
“…….”
김동현 팀장이 나눠준 문서엔 카리오스 소속의 작가들의 필명과 작품명, 그리고 S급, A급, B급, C급으로 작가들을 구분 지은 리스트였다.
“지금 카리오스에 날마다 계약 해지해 달라는 작가들 전화가 빗발치고 있댄다. 그럼 우리가 뭘 해야겠어? 작가들이 환승 연애 하고 싶다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연락오면 컨택하는 게—”
“아~ 답답하다. 조팟아 니가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없는 거야. 창윤 매니저랑 정우 씨도 여자 없지?”
“…….”
“…….”
갑자기 뼈를 때리네?
김동현 팀장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짧게 혀를 차곤 다시 말을 이었다.
“여자 사귀기 가장 쉬운 때가 언젠지 알아? 막 헤어진 여자, 이제 헤어지려고 마음 먹은 여자라고. 작가 계약도 똑같애. 지금 출판사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짓도 엿같고 같이 있기도 싫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우리가…… 데려온다?”
“그러어취 조팟아! 작가들 듣기 좋은 달콤한 말 막 던지라 이 말이야. 그 출판사는 어떻게 해줬다면서요? 우리는 안 그래요. 나는 잘해줄게요. 이런 말 하면서 꼬시면 된다 이 말이야.”
어처구니없긴 한데, 막상 듣고 보니 맞는 말 가기도 하다. 아니, 굳이 연애와 같은 선상에 두고 본다면 오히려 더 쉽지. 연애와 달리 계약은 조건만 잘 맞춰 주면 계속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요 팀장님.”
“그래 조팟아.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니?”
김동현 팀장이 애잔한 눈빛으로 조팟을 바라보자 조팟은 발끈하며 말했다.
“작가들이 아무리 계약 해지를 해달라고 해도 계약 기간이 아직 남은 작가들을 카리오스에서 풀어주겠어요? 그게 다 돈인데?”
“하……. 조팟아, 조팟아. 생각을 좀 해 봐라.”
“네? 뭔 생각이요?”
김동현 팀장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정글북이 미친듯이 불타고 있잖아.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카리오스도 마냥 붙잡고 있을 순 없다고. 너는 질척거리는 구남친이 인기 있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그건 아니죠.”
“연애랑 똑같애. 질척대는 구남친 이미지가 소문나면 어떻게 되겠어? 다른 여자들이 매력 있게 볼까? 만나고 싶을까? 아니잖아. 카리오스도 지금 그 꼴이야. 계약 기간 남았다고 억지로 잡고 있으면 지들 이미지만 깎아 먹는 거야.”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이미지 관리가 잘되어야 다른 작가들을 꼬셔 올 수 있긴 하겠네요. 더 논란을 키우고 싶지도 않을 테고요.”
김동현 팀장의 괴상한 예시에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는 한마디씩 보태며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다.
“그러니 다들 기회 놓치지 말고 빠르게 컨택 진행하자고. 다른 매니지에서도 카리오스 작가들에게 컨택이 들어갈 거니까.”
“S급 하나에 A급 다섯. 이 사람들만 데려와도…….”
뒷말을 흘린 조팟의 눈은 탐스러운 먹잇감을 보듯 눈을 번뜩였다. 김동현 팀장이 건넨 작가 리스트에 적힌 S급 A급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B, C급 작가들 중에서도 잘 키우면 성장할 만한 눈에 익는 작가들이 여럿 보이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탐욕으로 번들거리던 조팟의 눈빛은 이내 못 먹을 떡을 봤다는 듯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변했다.
“아……. 그래도 안 돼요!”
“안 돼? 뭐가 안 돼?”
조팟놈의 조증에 김동현 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조팟은 자기 앞에 놓인 작가 리스트를 구부린 검지로 톡톡 치며 말했다.
“팀장님. 여기 리스트에 있는 작가들 모두 메인 플랫폼에 갈 사람들이잖아요.”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올댓엔 진짜 아무도 안 보내려고요? 달에 최소 다섯 작품은 보내기로 한 게 투자 조건 이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려고요?”
조팟놈은 카리오스의 작가들을 빼올 수 있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 마치 올댓스토리의 투자 조건이었던 할당량을 걱정하는 말투다.
‘조팟새끼. 가지가지 하네.’
물론 조팟이 BS북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라는 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사실. 조팟놈은 카리오스 작가들을 데려오기보다 올댓에 넘길 작가 계약을 더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카리오스 작가를 빼온다면 팀의 총 매출 그리고 자신의 실적으로 귀결되는 작품들인 게 분명했지만, 올댓에 넘길 작가를 계약하는 것처럼 인센을 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니까.
“조팟아.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선 올댓에 넘길 작가들 계약 못 해. 공모전 당선작 발표 날 때 까진 두고 봐야 한다고.”
김동현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인센 욕심이 나는 건 알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신인들 계약 자체가 힘들다는 것 쯤은 따로 말 안 해도 알거야. 강 팀장도 그걸 아니까 이 일을 제안한 거고.”
역시, 이번 일은 강경진이 주도한 거였다.
하지만 조팟놈은 늘 그렇듯 가만히 듣고 있을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댓에 투자금 받은 조건으로 매달 판무 5종은 내기로 했잖아요? 1월에도 런칭작이 없었는데, 이번 달도 런칭작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건 강 팀장이 처리하기로 했어.”
“강 팀장님이요?”
‘강경진이라고 별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그리고 이런 의문을 갖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강 팀장님이라고 계약을 할 수가 있어요? 선인세를 준다면 모를까.”
“그래, 선인세 주기로 했어. 그러니까 올댓 쪽은 신경 끄자고.”
“예에? 올댓 작품에 선인세를요?”
“그래, 투자금 받은 이상 급한 불은 꺼야 하니까. 일단 이번 달까지는 그렇게 처리할 거야.”
강경진도 어지간히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30억이나 받아 머슴살이를 하기로 한 상황.
그런데 대감집 주인이 시킨 일은 안 하면서 웹툰 법인에만 돈을 꼴아박고 있었으니 급하긴 했겠지.
‘똥줄이 타긴 하나 보구만? 돈까지 태워서 올댓에 작가들 넣는 걸 보면.’
얼굴엔 내색 하나 없었지만, 강경진이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걸 생각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올댓은 이번 달, 아니, 다음 달까진 강 팀장이 선인세 주면서 처리한다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 두고. 우리 팀은 카리오스 작가들 데려오는 데만 집중하자고. 전체 매출로도 실적 쌓는 데도 그게 훨씬 좋을 테니까. 그리고 이거.”
김동현 팀장이 우리에게 새로운 문서를 건넸다.
좀 전에 받았던 문서엔 작가들의 필명과 연재작, 구작이 정리된 리스트가 적혀있던 반면, 이번에 받은 문서엔 각 작가의 정산비, 선인세 등이 정리된 표였다.
“……어 이건?”
“……이걸 어떻게?”
“팀장님, 이 내용 정확한 겁니까?”
잠자코 정황을 살피려 했지만, 이번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동현 팀장은 내 질문 의도를 파악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 들어. 이건 대외비야. 카리오스 내부자에게 받은 자료니까 그렇게만 알아 두라고.”
카리오스에 대학 후배가 있다고 하더니만.
아마도 그를 구워삶아 이 자료를 빼낸 것 같다.
“지금 이 사단이 난 걸 보면 카리오스는 어차피 무너지게 돼 있어. 남들이 다 털어 가는 걸 보기만 할 거야? 그럴 바엔 우리가 데려오는 게 낫지. 안 그래?”
김동현 팀장은 한동안 무기력하던 모습과 다르게 그의 눈에선 열정의 불꽃이 붉게 타올랐다.
‘강경진한테 또 달콤한 말 듣고 왔나 보네.’
아까 강경진과 팀장 회의를 하면서, 분명 말이 나왔을 테다. 이번 카리오스 작가 수급을 제대로 성사한다면 판무 1, 2팀 종합 팀장 일을 확실히 시켜주겠다는 말이.
그러니 저렇게 신나하고 있겠지.
“하긴……. 돈 관련 이슈 터지면 그 매니지는 끝장난 거나 다름없죠.”
조팟놈은 이제야 판단이 섰는지 김동현 팀장에게 받은 작가 리스트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프랑스 속담에 좋은 계산이 좋은 친구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김동현 팀장의 말처럼 확실히 카리오스는 이번 이슈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거다.
카리오스가 아무리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틴다 한들, 한번 무너진 신뢰를 돌이키기란 흘러내린 물을 다시 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 테니까.
“자, 그럼 각자 컨택할 작가들 서로 분담합시다. 셋이서 나누고 담당 작가들 정해지면 카리오스에서 받는 조건보다 조금 더 높여서 컨택 진행하기로 하고.”
“귀족남편 작가랑, 황금복숭아 작가 우선 찜.”
“저는 파란달팽이 작가님, 노랑튜브 작가님 먼저 컨택해 볼게요.”
조팟놈과 이창윤 매니저는 빠른 태세 전환으로 이젠 서로 작가를 데려가겠다고 나서고 있다.
‘새끼들. 욕심만 많아 가지고. 아주 신났네, 신났어.’
어떤 작가를 데려오느냐에 따라 자신의 실적이 확연히 뛸 수 있는 상황이기에 조팟놈과 이창윤 매니저가 왜 서로 난리인지 이해가 가긴 한다.
“이 사람들이 진짜? 상의해서 정해, 상의해서! 정우 매니저는 그럼 C급만 가져가냐?”
김동현 팀장은 그의 직책 때문에 개인 실적보단 팀 매출이 중요한 사람. 아니 곰 같은 여우다.
언뜻 듣기엔 나를 위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컨택하는 게 더 제대로 매출을 뽑을 거 같으니 나를 푸시하려는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김동현 팀장의 장단에 맞춰주거나 조팟이나 이창윤 매니저의 작가 쟁탈전에 개입할 생각도 없다.
나는 이미 계획이 있으니까.
“전 괜찮습니다. 다들 고르시고 남은 작가님들 제가 담당할게요. 선인세랑 계약 조건만 어떤 식으로 정할지 고민하면 좋겠네요. 아무래도 그 부분은 선배님들 의견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정우 씨는 어후……. 사람이 말이야, 사회에선 너무 착해 빠져도 못 써, 실력도 좋은 사람이 말이야.”
“아, 뭐래요? 약하면 뒤지는 게 사회지. 아무튼 저는 이 작가하고—”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가 각자 신나게 자신이 컨택할 작가를 고르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그래, 맘껏 골라. 어차피 BS북이랑 계약할 작가는 몇 없을 테니까.’
작가 계약은 연애와 같다고 했던가?
그럼 잘 알아두라고.
BS북보다 더 잘생기고 멋진 남친.
그건 우리 드래곤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