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순매출이 아니라 총매출.
“……지분 인수라니. 그게 뭔 개소리야?”
LGA컴퍼니는 소설피아와 CP계약을 체결한 이후 별다른 미팅 한번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다고?’
소설피아가 CP사의 지분 확보에 참여하는 건 회귀 전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런 쌍간나를 봤나? 삼촌한테 개소리가 뭐냐 개소리가! 버르장머리 없게, 쯧. 나도 갑작스럽긴 한데, 우리 성장세를 눈여겨보는 것 같다.
단풍 삼촌은 마치 내 당혹감을 읽었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판무 장르 소설의 웹툰화 시스템을 성공시켰다는 점.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진행한 공모전과 감평 시스템으로 보여준 편집자들의 실력. 마지막으로 노원지귀라는 스타 작가와 천명 작가 같은 대여점 시절 스타 작가의 신작 계약 체결로 웹툰, 웹소설을 모두 아우르는 올라운더로 여기는 것 같다. 그흐흐, 내가 경영을 잘해서인 것도 있고.
내가 사실상 LGA컴퍼니의 대표지만 소설피아는 그 사실까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노원지귀가 코즈일이란 사실은 알고 있지.
그렇기에 작년 소설피아 최대 매출을 낸 작가인 내가 소속된 LGA컴퍼니를 눈여겨보기는 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파격적, 아니 충격적인 제안이다.
“그쪽에서 제안한 조건은?”
—우리 지분 51%.
“……51? 아예 자회사로 삼겠다는 거네? 그렇게 되면 경영권 행사도 가능해진단 뜻이고.”
소설피아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지분 인수를 한다라…….
회귀 전에도 없던 일을 강행하는 건 아직 창립한 지 얼마 안 된 우리 LGA가 더 커지기 전에 싼값으로 집어삼키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그렇지. 지분값을 우리 한 주당 가격으로 계산하면…….
“삼촌. 그건 됐고. 대답은? 대답은 뭐라고 했는데?”
우리 LGA컴퍼니가 받을 돈?
그딴 건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글쟁이인 내가 개미 더듬이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 편집자 생활을 하는 와중에 출판사까지 운영하는 게 고작 돈이나 벌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정우야, 이번 미팅은 내 판단에 전적으로 맡긴다고 했지?
단풍 삼촌의 낮게 깔린 살벌한 아니 진중한 음성. 아니 이 인간이 설마?
—당연히 좆까라 했디!
“어…… 진짜?”
—간나 새끼. 그렇게는 말 못 했디! 너랑도 상의해 봐야 하니 우선 고민 좀 해보고 온다고 했다. 내가 LGA 대표로 가서 미팅한 건 맞지만 내가 실질적인 대표는 아닌 것도 그쪽에서는 아니까. 대표님하고 상의하고 연락주겠다고 했지.
“잘했네.”
—근데 말이다. 소설피아 이 새끼들이 재밌는 짓을 하더라고?
“재밌는 짓?”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단풍 삼촌의 스산한 웃음소리에 자동 반사로 마른침이 목울대를 넘어갔다.
—소설피아 놈들이 지들도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데? 3월 중순부터. 이 쌍간나들, 우리가 하는 거 보고 따라하겠다는 것 봐라. 남의 아이디어 빨아먹는 거 보면, 김정은 그 돼지 새끼 저리 가라다.
아……. 그건 아니야 삼촌.
걔들 원래 그때 공모전 하려고 했어.
단지 내가 먼저 했을 뿐이야.
“공모전이야 또 하면 좋지. 작가들을 위해서 공모전은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재밌는 짓은 이게 다가 아니다. 소설피아 놈들이 앞으로는 해마다 공모전을 할 거라고 하더라고.
어, 삼촌.
걔들 그것도 앞으로 매년 할 생각이었어.
—그리고 공모전 때 출판사와 계약한 작품도 참가는 가능하게 할 건데, 대신 작가가 미계약작으로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면 심사 완료까지는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아예 못 하게 막아버릴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
다소 놀란 뉘양스로 말하긴 했지만 딱히 놀랄 것도 없었다. 소설피아 공모전은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새끼. 별로 놀라지도 않네. 그런데 이번 지분 인수 계약을 진행하게 되면 우리 회사는 3월에 있을 공모전에 협력사로 이름을 올려 주고 계약 제안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더라.
소설피아는 여왕 개미.
그리고 여왕께서 우리에게 진딧물의 똥꼬를 함께 핥을 자격을 주시겠다는 영광스러운 소리였다.
‘한마디로 쌉소리지.’
이어진 단풍 삼촌의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소설피아의 행동이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정실인 BS북이 외도를 시작하니 소설피아도 첩을 들이겠다는 소리다. 그 후보 중 하나가 우리 LGA컴퍼니 인 거고.
비교적 만만하고 성장 가능성 있는 우리 LGA를 말 잘 듣는 개새끼처럼 부리고 싶다 이 생각이신가 본데?
‘어림도 없지. 나는 이제 돈도 있고 가오도 있으니까.’
단지 플랫폼만 없을 뿐이다.
좋든 나쁘든 플랫폼과는 언젠가 부닥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추진력을 위해 잠시 수그리고 있을 뿐이고.
“단풍 삼촌. 소설피아 측에는 고민하고 연락하겠다고 한 거지?”
—그래.
“그럼 답변 최대한 우리 당선작 발표일 때까지만 끌어줘. 그때 가서 바로 거절해주고.”
—그흐흐, 당연하지. 이미 그러려고 했다.
한 주 정도 답변을 질질 끌고 다음 주가 되면 설 연휴다. 그리고 설 연휴가 지나면 곧 세최공 발표와 소설피아 공모전 발표일이지.
그때까지만 일단 소설피아 장단에 맞춰주는 척을 하면 될 거다. 그 전에 미리 거절 했다가 심통난 소설피아에서 지랄나면 우리가 곤란해질 테니까.
—그런데 너 카리오스라고 들어 봤니?
‘카리오스? 카리오스가 왜 여기서 나와?’
—이제 막 1년 정도 된 신생 출판산데 내 미팅이 끝나고 거기 대표가 바로 미팅 하러 왔더라고. “아는 곳이야. 거기 굵직한 작가들이 몇 있거든.”
아직까지는 있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대표가 작가 출신인 카리오스는 작년 이맘때쯤 창립한 이제 막 1년 정도 된 회사다.
하지만 카리오스는 짧은 업계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BS북을 제외하고 가장 핫한 신흥 출판사로 불린다.
‘이 시절 재벌물과 무협물로 웹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는다는 점에서 신인 작가들이 무척 선망하는 출판사기도 하지.’
하지만 내가 이렇게 카리오스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이 매니지가 단지 스타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신흥 강자여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실질적인 소설피아 2중대로 활동하다가 메인 작가들이 모두 빤쓰런 하고 소설피아에도 팽당해 심연의 끝까지 나락을 가버린 그 카리오스였기 때문이다.
“카리오스 쪽에선 무슨 일로 간 건진 모르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인사를 하거나 소개 받지도 않았어. 미팅 끝나고 회의실에서 나가면서 그냥 스치듯 지나쳤는데, 소설피아 대표가 마치 들으라는 듯이 카리오스 대표를 부르더라고.
“음…….”
—사람 촉이란 게 있잖냐? 미팅 시간을 그렇게 맞춘 것도 그렇고. 의도적으로 서로 마주치게 한 그런 느낌이 들더라.
총칼을 맞으면서 이북을 탈출한 단풍 삼촌의 동물적인 촉은 대체로 정확하다. 특히 상대가 불순한 의도를 지녔다면 정확도는 더욱 올라가고.
‘이것 봐라? 진짜 재밌는 짓을 하네?’
카리오스와 LGA컴퍼니는 둘 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신생 출판사.
소설피아가 카리오스에는어떤 제안을 했을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소설피아의 의도는 우리나 카리오스나 너희 정도는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가 다분하다.
회귀 전에도 ‘카리오스’는 소설피아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회사가 되진 않았다. 그렇기에 소설피아의 제안이 더욱 혼란스럽다.
원래의 역사와 달라지는 현상들.
나라는 변수로 인해 출판계의 모습이 내가 알던 미래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난다.
“그래봤자 카리오스가 변하진 않겠지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야, 내가 잊고 있었던 게 떠올라서. 카리오스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돼.
카리오스는 알아서 무너질 테다.
하지만 이번엔 더 빨리 무너지겠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삼촌, 내가 조금 있다가 톡으로 글 하나 보낼 거거든? 그거 계약 사기 주의 게시판에다가 운영자 아이디로 좀 올려줘.”
* * *
“익일은 오전 근무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아뇨…… 안 되죠. 공휴일이잖아요 작가님. 저도 쉬어야죠.”
“오늘까지는 보내주셔야 교정해서 올릴 수 있어요. 4시에 보내주신다고요? 작가님 연재가 오후 4신데요?”
“설 선물이요? 아…… 다른 작가님은 받으셨다고요? 그게 경영 지원팀에서 담당하는 거라 저도 그건…….”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월 16일 월요일.
BS북 판무 매니저들은 채권자처럼 작가들에게 비축분을 닦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잌! 씨파아알!”
그리고 전화를 끊은 조팟은 오늘도 어김없이 광증이 도졌다.
하지만 설 연휴를 바로 앞둔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기에, 이창윤 매니저나 김동현 팀장 그 누구도 조팟의 지랄병에 대꾸하진 않았다.
“아니 똥글 써서 지가 매출 안 나오는 걸 어쩌라는 거임? 아니, 팀장님. 우리 회삿돈 없어요? 대체 왜 이래요?”
“또 무엇이 그대를 힘들게 하십니까아.”
물론 조팟놈은 병먹금을 당했음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 지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김동현 팀장을 콕 찝어서. 짧은 한숨을 내쉰 김동현 팀장은 모니터에서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심드렁히 대답했다.
“매출도 안 나오는 작가들 선물 주는 거 아까운 거 알긴 하는데. 까놓고 신생 출판사 중에서도 명절 선물 안 주는 회산 없잖아요?”
“뭐, 그렇겠지.”
“소고기를 사주라는 것도 아니고 한돈을 사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라도 내라고 식용류나 햄 세트라도 뿌리면 안 되요? 하꼬 망생이들 몇이 지인 작가는 선물 받았는데 자기는 못 받았다고 개지랄이에요.”
“그럼 조팟님도 같이 지랄해주세요. 내가 뭔 힘이 있냐?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설날 연휴가 낀 게 크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서라도 김동현 팀장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다가올 설 연휴만 지나면 이제 곧 2월이다. 하지만 김동현 팀장 자신을 포함해 판무 2팀에서는 올댓에 넘길 작가를 하나도 못 만들어 낸 게 그의 자신감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로 계속 간다면 판무 1, 2팀 통합 팀장은 아예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겠지.’
김동현 팀장은 올댓에 넘길 작가 수급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정글북의 활성화로 인해 점점 작가 지망생들과 신인 작가들의 눈이 떠지고 있다는 게 패착이었을 터다.
‘좋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네.’
그로 인해 당연히 올댓으로 넘길 작가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재 작가들 특히 존나 잘 삐져요. 시발 갱년기 터졌는지 뭐 선물 안 줬다고 삐지고. 그냥 말투에서 삐진 티가 팍팍 나는데, 아오. 매번 명절마다 이게 뭐예요 진짜? 솔직히 이거 너무 쪽팔린 거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가 업계 탑인데?”
세상에.
이런 말이 조팟놈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조팟놈이 지적할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쪽팔릴 짓이긴 한데 그걸 조팟놈의 입에서 듣게 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묘하다.
“조팟님아, 선물이 뭐가 중합니까. 우린 우리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야. 되도 않을 선물로 지지고 볶지 말고 우리 일만 잘하자고. 이번에 카리오스 터진 거 봤지? 업계 탑이든 뭐든 작살나는 건 한순간이야.”
“카리오스? 거기 한태산 작가 있는 매니지잖아요?”
뜬금없이 카리오스를 언급하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놈의 광증이 살포시 가라앉았다.
“대학 후배가 카리오스 매니전데 불공정 계약 터져서 완전 난리났댄다. 작가 몇이 고소한다고 쌩 난리쳐서.”
“헐 뭐야? 정글북에 뭐 올라온 거 없나?”
어느새 출판사나 작가들 사이에 이슈가 터지면 매니지에선 바로 정글북을 뒤져보는 상황이 일상이 되고 있다. 좋든 싫든 정글북을 뛰어넘는 작가 커뮤니티는 없으니까.
‘생각보다 효과가 빠르네? 글 올린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와하하! 카리오스. 그냥 하는 짓이 카오스네.”
“왜요? 무슨 일이래요?”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일부러 조팟에게 물었다. 조팟새끼처럼 시끄러운 놈이 목소리를 내야 우리 BS북의 매니저님들도 경각심을 느낄 테니까.
“아니 작년 여름쯤에 정글북 생기고 난리였잖아요. 정글북 운영자인 노원지귀 그 분탕충 새끼가 작가 기본 계약은 7:3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쌩 난리 치는 바람에.”
“그렇죠. 그래서 다른 매니지들도 정산비 많이 바꿨다면서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조팟아.
내가 그 분탕충인데.
그리고 내가 분탕을 하도 쳐놔서 중소 규모의 신규 매니지들은 기본 정산비를 7:3으로 올리는 곳이 많아졌고 BS북도 작년 연말부터는 7:3 계약 비중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지난 1년간 웹소설 작가들이 많아지는 비율만큼 소규모, 1인 기업의 매니지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BS북이 아무리 업계 탑이라 해도 여론 앞에선 더 이상 뻗댈 수 없었고.
“그런데 카리오스 얘들은 한술 더 떠서 신인들 기본 정산비를 8:2로 해주기로 했데요.”
“엥? 그럼 엄청 좋은 거 아니에요? 단순 계산해도 훨씬 좋은 정산빈데?”
잠자코 듣고 있던 이창윤 매니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듣기만 해서는 8:2 정산이 훨씬 좋아 보일 테니까.
“푸흐흐. 아니 나도 그런 줄 알았다니까? 근데 지금 정글북에 고소했다는 작가 하나가 쓴 글 있는데 여기 뭐라고 나온 줄 알아요?”
“뭔데요?”
“카리오스가 말한 8 대 2가 순매출이 아니라 총매출 8 대 2였음.”
“어? 그래도 더 좋은 것 같은—”
“아니, 플랫폼 수수료 제외하지 않고 8 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