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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49화 (49/201)

#49화 - 사업 제휴를 요청했어.

“다들 지난 40일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우리 박정우 대표님과 권미현 본부장님 그리고 출판 본부 매니저님들의 노력으로 총 1,082개의 공모전 출품작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들 박수 한번 주시죠!”

회식 장소로 빌린 고깃집에서 단풍 삼촌이 나를 대신해 건배사를 진행했다.

“그아하하! 우리 경영 본부와 디자인 본부도 모두 고생 많았고. 성공리에 첫 공모전이 마무리된 걸 축하하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건배!”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다들 잔을 부딪치며 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처럼 기뻐했다. 나만 빼고.

“인상 좀 펴요, 대표님. 소설피아에서 연락 온 게 뭐 대수에요? BS북 있을 때도 운영팀하고 종종 미팅하고 그랬어요. 별일 아닐 거에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염려 말라는 권미현의 말에도 내 머리는 고민으로 가득했다.

‘이상해……. BS북도 최근 들어 소설피아와 미팅을 따로 한 적이 없을 텐데…….’

BS북의 경영 방침이 다각도로 지랄맞은 게 사실이지만, BS북은 여전히 업계 탑이다.

소설피아와 더노벨, 웹월드, 테일랜드 등의 메인 플랫폼에서 정책 변경 등의 이슈 사항이 생길 때면 가장 먼저 미팅을 잡는 순서 역시 BS북부터니까.

그렇기에 소설피아의 미팅 요청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출판 업계에 진출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LGA컴퍼니가 BS북보다 먼저 소설피아와 미팅 자리를 갖는다는 건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미팅을 하는 게 우리 LGA라……. 대체 뭐지? 뭐길래 갑자기 미팅 제안이 온 걸까?’

BS북보다 LGA컴퍼니와 먼저 하는 미팅이라면 정책 변경 등의 내용을 공유하려는 건 아닐 터다. 그렇다면.

‘BS북이 올댓에 투자받은 거랑 연관 있나?’

BS북이 현재 소설피아에 찍힌 상황이긴 할 테다. BS북이 따로 소설피아에 알리진 않았겠지만, 어차피 신문 기사로 올댓스토리 30억 투자 관련 기사가 떴으니까.

하지만 BS북은 2015년이 된 아직까지도 웹소설 업계 부동의 1위 출판사. 다른 플랫폼에 투자를 받은 BS북이 아니꼽긴 해도 소설피아에서 BS북을 내칠 수 없을 터다.

단지 불편한 동거일 뿐이지.

‘그렇다면 우리 공모전 관련일 텐데…….’

타이밍이 애매하기에 더욱 혼란스럽다.

내가 주최한 세최공에 불편한 기색을 비추고 싶었다면 진작에 연락이 했을 테다. 하지만 소설피아는 공모전이 진행되는 40일간 별다른 연락 한번 없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내용에 관한 미팅은 아닐 것 같긴 한데, 대체 무슨 이유로 갑작스럽게 미팅을 제안한 건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으읍! 머에어?”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무는 그때, 내 입을 향해 단풍 삼촌이 큼지막하게 싼 고기 쌈이 밀려 들어왔다.

“대표님아, 고생하셨으니 인상 풀고 고기도 좀 처먹고. 술도 마시고 좀 그럽시다. 회식 자리에서 혼자 인상 쓰고 있으면 분위기 처지는 거 몰라?”

“…….”

칼자국 가득한 험상궂은 얼굴로 내뱉는 상냥한 말에 정신이 차려진다. 맞는 말이다.

머리를 싸매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 갑자기 해결되진 않겠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길었네요.”

“그아하하! 오늘은 다들 편하게 마시자고요!”

“그래요, 오늘은 좀 쉬어요 대표님.”

단풍 삼촌이 말아주는 소맥을 꿀떡꿀떡 삼키다 보니 가득했던 걱정과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다.

“근데, 이번 공모전 성과 진짜 괜찮았어요.”

삼겹살을 오물거리던 권미현 본부장이 말을 꺼냈다.

“솔직히 우리가 공모전 개최한 거긴 해도 대부분 소설피아랑 계약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저희 감평 피드백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봐요.”

냉미녀 얼굴의 권미현이 저렇게 밝게 웃다니.

BS북에서 함께 다시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다.

“계약 제안 넣는 작품마다 대부분 계약 하겠다고 하시는데, 하……. 진짜 전자 계약서 회신받을 때마다 부자가 된 느낌이에요.”

“권미현 본부장님, 작가님을 돈으로 보는 건 아니죠?”

“무슨 소리예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치, 말도 못 하겠어.”

“하하, 장난이에요.”

이번 공모전 기간 중에 계약이 가능한 출판사는 오직 소설피아 매니지와 우리 LGA컴퍼니뿐.

만약 그 외의 출판사와 계약을 한다면 공모전 자격이 바로 박탈된다.

미래의 소설피아가 취할 시스템이었지만 이걸 직접 써보니 그동안 소설피아 매니저들은 얼마나 계약 하는 게 쉬웠을지 눈에 훤하다.

“아 참, 대표님한테 말씀드렸나요? 그 성지글 작가님도 계약하기로 했어요.”

“정말요? 망생…… 아니 로켓소년단 맞죠? 그분 필명이?”

“네, 피드백 받고 완전 각성한 거 같이 쓰시더라고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키우는 맛이 있을 것 같아서요.”

어찌 보면 이번 공모전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장본인. 로켓소년단 작가가 내게 뼈를 후두려 맞지 않았다면, 세최공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던 그 성지글은 탄생하지 않았을 터다.

‘정말…… 다른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었지.’

로켓소년단 작가를 떠올리니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린다. 그는 정말 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로켓소년단 작가는 트렌드를 보는 눈이나 글의 센스 역시 현저히 떨어졌고, 이해력도 상당히 뒤떨어졌다.

하지만 로켓소년단 작가는 그 누구보다 내 피드백을 수용하려 애썼다. 그리고 계속된 피드백 요청으로 뼈가 부러지고 붙기를 반복하며 공모전 기간 동안 계속해서 성장했다.

‘진짜 빡셌다. 돈도 많이 썼고.’

체력적으로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상당히 소모가 많은 공모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공모전을 개최하지 않았다면, 연재가 소원이던 로켓소년단 같은 작가 지망생들이 올댓스토리에 끌려갈 수도 있었을 터.

힘든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이번 세최공은.

“잘됐네요. 제가 봐도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아 보이니까, 케어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경영 본부장님은 채용 공고 올려 두셨죠? 지원자는 좀 있어요?”

“이번 공모전 효과가 확실히 있었는지 지원자가 몰려듭니다. 이제 슬슬 서류 심사 시작해야죠.”

이번 공모전을 통해 신규 작가들을 많이 계약하게 되면서 판무 매니저들을 대거 추가 채용하게 됐다.

솔직히 우리 LGA컴퍼니가 보낸 계약서 샘플을 보면 열이면 열 계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출판계의 정설. 최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인이든 기성이든 계약 조건을 듣는 순간 구미가 당길 만한 계약서였으니까.

‘남들은 분기별이나 익익익월, 잘 줘야 익익월 정산인데, 우리는 익월이지. 쫄리면 지들도 하던가.’

업계 표준이 되어야 할 당연한 내용임에도 아직도 많은 출판사들은 지랄맞은 계약을 조건으로 내건다.

지금까지 재미 좋았지?

이제 목 싹 닦고 기다리라고.

양아치 짓 하는 매니지들은 하나둘씩 단두대에 올려보낼 테니까.

단순히 글 쓰는 게 좋은 작가들.

계약 관련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 작가들.

그들이 되도 않는 계약에 피해보는 일 없이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출판계를 내가 만들 거니까.

“잘 부탁드려요. 인원이 많아진다고 해도 자격 안 되는 사람 뽑을 생각은 없으니까 면접까지 잘……. 왜요? 왜 그렇게 웃는데?”

뜬금없이 핸드폰을 내게 들이민 단풍 삼촌이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권미현 본부장도 마찬가지였고. 뭔가 싶어 단풍 삼촌이 들이민 폰을 봤는데.

“조, 조팟?”

“크흐흐. 이거 말해주고 싶어서 혼났다니까.”

“조성훈이 지원한 거예요? 편집자로?”

조팟 이 또라이 새끼.

그렇게 LGA컴퍼니 욕을 할 때는 언제고 입사 지원을 했어?

“쭉 읽어봐요. 이력서 내용 나름 참신하던데.”

권미현 본부장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었고, 나는 단풍 삼촌의 폰을 넘겨받아 조팟놈의 이력서를 쭉쭉 읽어갔다.

“장점이……. 원만한 대인 관계? 공감 능력?”

시작부터 거짓으로 시작된 자소서는 하단 부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코즈일을 발굴해낸 게 자기다? 와……. 경영 본부장님.”

“어떻게 요리해 드릴까? 1차 면접 고?”

“면접은 무슨? 광탈 시키고 탈락 메일에 그 말 꼭 써주세요.”

“뭐라고?”

“개소리 말고 BS북에나 끝까지 남아 있으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는 동안 내가 출판계 다 뜯어 고칠라니까.”

“그으흐흐. 순화해서 보내도록 하죠.”

* * *

공모전 마지막 날로부터 열흘이 흘렀다.

“아니…… 지난주에 5화 쓰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오늘은 3화인 거죠? 지금 속도로 월말 런칭을 어떻게? ……예? 한 달만 더 미루자고요?”

“올댓스토리 그렇게 작은 회사 아니예요 작가님. 인지도가 소설피아보다 좀 떨어지는 거지 성장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데요. 에이, 작가님. 소설피아에서 연재해야만 무조건 성공 하는 거 아니에요. 어느 플랫폼이든 작가 타이틀을 먼저 따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BS북 판무 매니저들은 여전히 올댓스토리로 넘길 희생양들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아아앜!!!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지 주제를 알아야지?”

작가와 통화를 끊은 조팟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아니 올댓에 넘기기로 한 그 병신 새끼 있잖아요.”

“12월에 계약한 걔?”

“네, 그 새끼요. 아니 미친놈이 혼자서 무한 갈엎하고 지랄이에요.”

“조팟이 시킨 것도 아닌데?”

“제가 시키긴 뭘 시켜요? 갈엎도 가능성이 보여야 시키지. 올댓 연재할 새끼라 그냥 닥치고 배설만 하라는데, 그걸 못하고 계속 갈엎하고 또 갈엎하고. 하아…….”

지난 12월.

조팟놈은 뭣도 모르는 신인 작가 하나를 구워삶아 올댓스토리에 넘기려 했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조팟이 계약한 작가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올댓 작가들은 신경 쓰지 마. 시간 낭비야.”

“아, 저도 그러고 싶죠! 똥이 괜히 똥이겠어요? 제발 똥만 싸지르라고 해도 이 미친 씹망생이가 방구만 북북 뀌고 똥을 안 싸는데, 어떻게 해요? 찔끔 싸고 수정하고 찔끔 싸고 또 수정. 계속 이 지랄 나서 계약한 지 두 달이 되도록 3화에요. 틈만 나면 계약 해지하고 싶다는 말만 하고.”

“계약 해지? 그 작가 공모전 몰래 넣은 거 아냐?”

“저도 몰라요. 다른 필명으로 넣었든 말든, 쯧. 맘 같아선 그냥 계약 해지해 버리고 싶다니까요. 올댓으로 작가 꼬시기 진짜 너무 빡세요.”

조팟에 말에 김동현 팀장도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네……. 공모전은 진작에 끝났는데. 이제 결과 발표만 남은 상황이잖아?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제 말이요. 망생이 새끼들 설마 지들이 당선될 거라고 행복회로 돌리는 건 아니겠죠?”

이들은 아직 작가의 심리를 모른다.

말로는 기대 안 한다고 해도 발표 당일까지 기대하는 게 사람 심리다.

“설마 그러겠어? 지금 성적만 봐도 될지 안 될지 뻔히 알겠구만.”

“대, 최, 우는 몰라도 장려상, 신인상 이거 고작 50만 원, 10만 원 주는 건데 고작 그 돈 받으려고 저러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내 말이 그 말이다.”

장려상과 신인상 수상자가 받는 돈이 고작 50만 원, 10만 원인 작은 액수인 건 맞다.

하지만 그 금액의 가치보다 글을 써서 수익이 생겼다는 게 신인 작가들에게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 저들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양아치 새끼들. 지들도 그 돈 받겠다고 올댓에 작품 밀어 넣으면서.’

10만 원, 50만 원이란 작은 액수에 의미를 두기보다, 많은 신인 작가들은 자신이 도전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꿈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디뎠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는 이도 많다.

한심한 매니저들의 행동에 속으로 혀를 차는 그 순간, 전화 진동이 울렸다.

노원지귀 용 폰 진동이.

—단풍 삼촌: 정우야 미팅 끝났는데

통화 가능해? 지금?

—ㅇㅇ 5분만

“작가님이랑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다녀와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다.

나는 패딩을 챙겨 입고 회사 근처 아무도 찾지 않는 단골 카페로 바로 이동했다.

“어, 삼촌. 미팅 어떻게 됐어?”

오늘 단풍 삼촌은 강남에 있는 소설피아 본사로 찾아가 LGA컴퍼니를 대표해 미팅을 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미팅이 끝난 모양이다.

“하……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내가 오늘 미팅 내용 따로 녹음해 놨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바로 보내줄 건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거야.”

“어, 듣고 있어.”

단풍 삼촌의 말이 짧은 한숨으로 시작되었기에 괜스레 마른침이 목울대를 넘어갔다.

“소설피아가 사업 제휴를 요청했어.”

“사업…… 제휴? 웬 사업 제휴? 어떤 건데?”

“지분 인수를 요청했어. LGA컴퍼니 지분 인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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