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47화 (47/201)

#47화 - 준비되셨나요? 뼈 맞을 준비?

“……으, 너무 피곤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쇼파에 몸을 던졌다. 쇼파에 몸이 빨려드는 기분이다.

오늘이 공모전 첫날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다.

“251명……. 찔끔 오르긴 했네.”

한 시간 전쯤, 회사에서 봤을 때보다 오른 수는 고작 50여 명 정도. 퇴근 시간에 맞춰서 출품작 수가 좀 늘어나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 달리 참여자들의 수는 생각 이상으로 저조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수상자가 부족할 수도 있겠는데…….”

장려상 50명에 신인상 200명.

거기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까지 합치면 총 수상 대상자는 256명이다.

공모전 초반엔 대개 열정의 불꽃이 유지된다.

하지만 한 주, 두 주 지날 때마다 마음의 불씨는 점점 줄어들고 이탈자는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

인정하긴 싫지만 이대로 가다간 조팟놈의 말대로 참가자 대부분이 수상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눈을 질끈 감으니 조팟새끼의 음습한 비웃음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다.

거기다 수상 조건은 공모전 기간 동안 최소 20화 이상 연재다. 그러니 앞으로 한 주, 두 주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률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매번 1~5화만 깔짝이던 신인 작가에게 20화를 채우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돌겠네. 단풍 삼촌이 감평글 홍보는 다 올렸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게 감평 요청이 없어? 기준이 넘 빡셌나?”

감평 조건은

1. 공모전에 참여한 작품만 가능.

2. 감평은 드래곤 소속 매니저와 소속 작가가 진행함.

3. 누가 피드백줄지는 선택 불가능.

오직 이 3가지였다.

텅 빈 감평 게시판을 보니 혹시나 내 예상이 틀린 걸까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감평만으로는 안 되겠어. 러프 표지 제작이라도 해보자고 할까? 하……. 가능한가?”

회귀하고 처음으로 느끼는 낯선 감정.

어차피 단풍 삼촌과 경영 지원 본부 매니저가 감평글 홍보를 올린 지 아직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텅 빈 감평 요청 게시판을 보니 등줄기가 서늘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일 이지연에게 공모전 참가작에 임시 표지를 만들어 주는 건 어떤지 얘기를 해봐야겠다. 어떻게 해서든 공모전을 활성화시켜야 하니까.

“썩을…… 글이나 쓰자.”

당장 답도 없는 상황에서 머리만 싸매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정신을 다잡을 겸 한글 프로그램을 켰다.

눈 보호를 위해 녹색으로 설정한 한글 배경 화면을 봐도 울적한 기분만 가득 맴돈다.

하지만 울적하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니까.

타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우울함을 떨치듯 맹렬히 타자를 치니 온갖 근심 걱정이 조금은 휘발되는 기분이다. 즐겁다.

지금 이 순간만은 나 홀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아, 물론 지금 내가 쓰는 건 100미터를 1초에 주파하는 바퀴벌레와 결합된 좀비들이 판을 치는 바퀴포칼립스 세계관.

이런 세기말 세상에 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단지 신처럼 한 세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과정이 짜릿하고 즐겁다는 게 더 맞겠지.

“끄으으— 오늘은 여기 까지만 써야겠다.”

코즈일로 연재하는 ‘인턴사원 회장님’과 ‘불 지르는 파이어맨’ 그리고 노원지귀로 연재하는 ‘혁명적인 작가 생활’을 모두 1편씩 총 3빡을 하니 오후 8시 반이다.

과거로 회귀해서 좋은 점은 단지 내가 미래의 경험을 아는 것뿐만이 아니다. 확실히 열 살이나 젊어져서인지 오래 일해도 피로도가 덜하다.

“어디 한번 봐 볼까? 감평 요청이 좀 들어 왔는지?”

대략 30분.

글의 시놉이 짜여져 있어야 하긴 하지만, 내가 1빡을 하는 데 보통 걸리는 시간이다.

평균적으로 하루 작품당 2빡씩, 총 6빡을 하는데, 오늘은 3빡으로 만족하려 한다.

지금 시간이면 감평 요청이 좀 들어왔을 것 같으니까.

‘아니 들어와야 되는데…….’

사실 이 생각 때문에 글이 손에 안 잡힌다.

딸칵— 딸칵—

“……하나? 고작 하나아?”

너무 많으면 어쩌지 하던 우려와 달리 감평 요청글은 달랑 하나. 억장이 무너진다.

복식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고작 하나 올라온 감평 글을 다시 살폈다.

“그래도 패기는 있네? 비공도 아니고 전체 공개로 해논 걸 보니까.”

세최공 참가한 망생이입니다.

이번 공모전을 기회 삼아 소설피아에 첨으로 글 올려봤는데…….

관심작 전멸.

추천도 전멸.

가장 큰 걱정은 연독입니다.

아직 3화밖에 안 올리긴 했는데 프롤 넘어가면서부터 연독이 맨틀 뚫고 내핵에 처박혔어요ㅜㅜ

짧은 의견이어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ㅠㅜ…….

싹 다 갈아엎으라 하셔도 좋고 뼈 때리셔도 좋으니 진솔한 피드백 부탁드려요…….

“오…… 공개 처형을 바란다라?”

내 호승심을 매우 자극한다.

노원지귀란 필명이 아직 덜 유명해지긴 했다지만, LGA컴퍼니 홈페이지와 블로그 메인 배너에 나와 드래곤 편집자들이 직접 감평을 해준다고 했는데. 고작 하나?

딸칵—

밀려오는 현타를 뒤로하고 망생님이 올린 링크를 누르자 ‘도사와 마법사’라는 공모전 참여작이 나왔다.

1화 – 도사

넓디넓은 이 세상에 마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도술 그리고 마법.

영화에 흔히 나오는 영웅의 초능력처럼 치부될 수 있지만,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할 뿐.

마법 같은 일들은 우리 세계에 늘 도사리고 있다.

뉴스에서 몇천분의 1의 확률로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진 아이가 나뭇가지에 걸려 별다른 상처 없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우린 기적이라 부른다.

“오, 소재도 시작도…… 올드한데?”

도사, 신선, 도깨비 등 토속적인 소재는 조금만 잘못 다뤄도 글이 상당히 촌스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이니까.

글의 소재는 요리의 재료나 마찬가지다.

이국적인 재료로 만든 해외의 요리를 마주한다면 보통 어떤 반응일까?

대개 먹지 못할 정도의 특이한 향이 나는 게 아니고 간만 잘 맞는다면 나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건 흥미롭기 때문이지.’

하지만 신토불이 향이 나는 고전적 소재의 글이라면 조금 삐끗하는 순간 나락행 급행 열차를 탄 거나 마찬가지다. 왜냐면 우리가 잘 아는 맛이니까.

‘이 집 푸아그라 간이 좀 짜네?’ 같은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김치 맛 씨발이야!’ 같은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신인 작가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글을 보는 독자들은 홍길동전, 전우치전을 보고 자란 신토불이 코리안이라는 것을.

‘프롤 부분만 해도 피드백줄 게 많긴 하지만…… 일단 다 읽어보자.’

드륵— 드륵— 드르륵—

‘아 이제 코앞에 다가왔구나. 9서클의 경지가!’

자신의 심장에 9번째 고리가 거의 다 채워져 가는 것을 느껴갈 때쯤.

“신의 결계!”

“차원의 문!”

스트레비우스의 제자인 두 명의 8서클 대마법사가 거의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스트레비우스는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을 주었던 두 제자의 마법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제자들의 입에선 비릿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스승님 지금 입을 여시면 마나의 폭발로 뒤지실 테니 듣기만 하시죠. 아니 그냥 말하다 뒤지는 게 더 나으려나? 키헤헤헤.”

“이건…… 개노잼이다.”

생각 이상으로 재미없는 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못 먹는 글이 없는 심해다이버 누렁이.

일반 독자들이 프로연재, 보통연재 글만 읽을 때, 나는 늘 신인연재까지 다 읽는 시고르자브종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글은 삐빅 노잼입니다라는 말만 나온다.

물론 글이 노잼인 게 잘못됐다는 건 결코 아니다. 단지 글이 재미 없을 경우 내 진솔한 피드백이 너무 강렬해질 게 두려운 거지.

“음……. 무엇보다 투 톱 주인공은 진짜 애반데?”

망생님의 글을 끝까지 다 읽으니 마음에 혼돈이 깃든다. 소재도 소재였지만 그 외에도 심각한 문제가 많이 보였으니까.

‘도사와 마법사’에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주인공이 투 톱이라는 점이다.

1화와 2화엔 도사 중심의 서사가 진행됐고 3화엔 난데없이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심지어 1, 2화에 나온 도사와는 전혀 별개의 인물인 마법사 중심으로.

내가 매니저로서 작품 계약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초반 5화. 초반 회차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 찍먹하러 들어온 독자들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편집자들이 보통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글은 1화에서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명확하게 나오고 이어진 2~3화 내에서 주인공의 목적성 그리고 작중 배경이 명확하게 묘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설 속 세계관에서 주인공이 왜 저런 상황에 처했는지, 앞으로 뭘 하고자 하는지 독자들이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으니까.

“우리 망생님 글에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가 않네.”

물론 초반에 잘 진행되던 글이라도 100화 정도 넘어가면서 뒷심이 후달리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글이라도 초반 후킹은 필수적이다.

초반 회차엔 독자들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다는 착각이 들게 하거나, 못해도 독자가 작중 세계관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망생님의 글은 세계관도 난잡한데 거기다 주인공도 둘?

물론 악마의 필력으로 독자 머리끄댕이를 잡고 연재한다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우리 망생님은 그에 해당되시진 않는다.

지금 연재한 3화 분량의 글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악마의 재능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오늘 잘 걸렸네. 아주 어떻게 글을 갈아엎을지 제대로 알려줄게.”

공모전 참여율도 저조해서 심기가 불편했는데, 내 답답한 마음을 진솔한 피드백으로 표출해야겠다.

우리 망생님, 준비되셨나요?

뼈 맞을 준비?

* * *

다음 날 아침.

오늘도 해는 뜨고 출근 시간은 다가왔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BS북으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도보 5분.

하지만 살이 베이는 듯한 혹한의 날씨 때문인지 이 짧은 거리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으으. 이 시간에 누구야?”

출근 시간 5분을 남겨 두고 오늘도 칼출근을 위해 걷는데, 패딩 안에 담긴 핸드폰 진동이 느껴진다. 오른쪽 주머니에 넣은 폰이니 이건 편집자 박정우가 아닌 노원지귀의 폰이다.

“미현 본부장님?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대표님! 공모전 보셨어요? 참가작이 밤새 엄청 늘었어요!

“엥? 갑자기?”

어제 적벽가를 연상케 할 장문의 피드백을 남긴 후 정글북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더 올라올 글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오늘 아침에도 내 글만 쓰고 딱히 확인은 안 했는데.

‘밤사이에 갑자기 늘었다고?’

—대표님이 감평해준 글. 그게 성지글 됐어요. 다들 그거 보고 엄청 몰린 거 같아요!

“그래요? 일단 저 출근길이라 회사 들어가서 톡으로 연락드릴게요.”

짧은 통화를 위해 잠시 주머니에서 뺐던 손이 얼어붙는 기분이다.

“어으으, 개춥네 진짜.”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감각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오늘도 어김없이 낡아 빠진 회사 건물 2층으로 올라왔다.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여 빠르게 출근 지문을 찍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몸을 녹이는 포근한 열기가 온몸에 밀려 들어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정우 매니저 왔어?”

“굿모닝.”

조팟놈은 한결같이 대답이 없다.

그리고 인사 대신 뻘소리를 지껄이겠지.

“어제 정글북에 웃긴 거 올라왔는데 보심?”

‘아뇨’라고 말하고 바로 내 할 일이나 하는 게 내 하루 시작의 루틴. 하지만 조팟이 언급한 게 하필이면 내가 만든 정글북이다.

조팟새끼, 오늘은 좀 궁금하게 하네.

“뭔데요?”

“푸흐흫, 단톡에 링크 올렸으니까 봐보삼. 이거 개 웃김.”

정글북에 딱히 웃길 게 없을 텐데, 조팟놈의 호들갑에 괜스레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

피시를 켜고 조팟놈이 톡방에 남긴 링크를 따라갔는데, 어제 그 글이 나왔다. 내가 정성을 다해 답변을 남긴 바로 그 망생님의 감평 요청 글.

‘……어어어?’

그리고 내가 정성스럽게 답변을 달았던 그 글에 망생님의 댓글이 보인다.

진솔한 피드백 감사하다고.

그리고 연중하겠다는 내용의 댓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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