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내가 하면 되잖아?
“연재 30분 전이에요 작가님. 아뇨! 퇴고 기다리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원고 미리 주시면 예약 등록하고 교체…… 네? 퇴고만 하시면 된다면서요? 예? 아직 2천자요?”
“작가님, 여기 은행 아니라니까요? 대출이 필요하시면 은행에 가세요.”
꽃에는 나비가 앉고 똥엔 파리가 꼬이는 법.
이 간단한 세상의 이치를 판무 매니저들은 종종 잊는다.
‘판무 매니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거지. 작가랑 통화 한번 안 해보고 글 내용만 보고 계약하는 실수.’
소설 계약을 하는 데 글 말고 다른 게 뭔 상관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작가 계약 시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글 내용은 당연히 좋거나 성장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연재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암만 좋은 글이라도 며칠에 한 번 올라오는 글이라면 살아남기 어려우니까.
셋째, 나는 셋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건 작가의 인성이다. 글도 잘 쓰고 연재일을 잘 지켜도 빻은 인성이면 별의별 창의적인 이슈가 끊임없이 터지기 마련이니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니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
그리고 이창윤 매니저와 조팟은 3번째 변수를 고려하지 않기에 늘 저런 고생을 한다.
“아, 이런 미친 새끼! 무슨 폐기물 같은 글을 쓰면서 자꾸 선인세 달라고 지랄이야?”
전화를 끊은 조팟의 발작 버튼이 눌렸다.
폐기물이라 부른 작가를 컨택하고 계약까지 한 게 자기 자신인 건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니 최신 회차만 봐도 그래. ‘아무리 예기해도 시우는 고집을 불엿다. 몸도 마음도 다 낳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 다음날 시우는—’ 아니 나 진짜 맥이려고 이러는 건가?”
최신 회차를 읽던 조팟은 기혈이 뒤틀린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예기, 얘기, 불엿다, 부렸다, 낳지, 낫지, 다음날, 다음 날!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네? 작가 조선족이야? 아니 외국인이 세 달만 한국어 배워도 이것보다 잘하겠다, 시발.”
“진정하세요 파트장님. 저도 은는이가 매일 틀리는 작가님도 있어요. 그러려니 해야지 별수 있겠어요? 편집자들이 교정 다 해주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쓰는 거겠죠. 진짜 이런 날것의 원고를 독자들이 보면 까무러칠 텐데.”
“내 말이! 내가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 쯧.”
오늘은 조팟뿐만이 아니라 이창윤 매니저도 평소보다 날 선 보습을 보였다.
‘오늘이 대망의 ‘세계 최강 공모전’ 첫날이어서 그런 모양이네. 귀여운 것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BS북에서 계약을 하려 했던 작가들 그리고 이미 계약을 한 작가들에게서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계속됐다.
‘정글북 회원 수는 점점 늘고 있네. 5일 만에 1,000명대 진입이라…….’
공모전이 시작된 오늘 정글북의 회원 수는 전 주보다 500명 가까이 늘은 1,137 명.
공모전 발표 전만 해도 300명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이 넘는 비약적인 수치다.
세최공 공모전 참가 작들은 정글북 공개 게시판에 공모전에 참가한 자기 글 링크를 달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누가 공모전을 참가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공모전 작품 링크가 공개되니 참여 작가들의 필명도 필연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글북이 익명의 작가 커뮤니티이지만 이번 공모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어. 신인 작가들은 관심이 필요하거든.’
신인 작가들은 온실 속 연약한 개복치.
그들은 악플에 민감하다.
하지만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
그들은 관심을 받지 않으면 메말라 죽는다.
그렇기에 공모전 참여 게시판을 만들어 그들의 글에 유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야 독자들이 어떤 작품이 공모전에 참여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공모전 참여작들은 확실히 평상시 올라오는 신작들과 비교해 관심작이나 조회수 그리고 추천 비율이 수치가 더 높았다.
‘신인 작가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참여가 생각보다 저조한데?’
지금 시간은 오후 5시.
정글북 카페의 회원 수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공모전 참여 인원 수는 예상했던 기준치에 훨씬 못 미쳤다.
“프하핳! 세계 최고 공모전이라고 하더만 개망했네.”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조팟놈이 파티션 너머에서 낄낄댔다.
“매니저님들 이거 봤음? 세최공 참여작 200명 정도밖에 안 되네.”
“그거 어디서 봐요?”
“정글북 카페 가입하면 볼 수 있어요. 공모전 참여 게시판.”
정회원은 돼야 볼 수 있는 게시판인데.
조팟새끼가 그동안 활동을 열심히 한 모양이다.
“어휴, 쯧. 망생이들 공모전 참가한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받기는 다 받겠네.”
“그러네요. 장려상 50명에 신인상 200명이면 참가한 사람들은 다 받겠네요.”
조팟놈의 말에 이창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팟놈은 다시 조증이 도졌는지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아, 그래도 짜증 나 죽겠네. 이 미친 공모전 모집 요강이 소설피아랑 드래곤 제외한 다른 출판사와 계약된 작품이 아니어야 된다고 하니까.”
“그러니까요. 저 조항만 없었어도 작가들 계약 파기하는 일이 줄었을 건데요. 근데 소설피아는 왜 계약 가능하게 둔 거지?”
“내 말이. 괜히 소설피아와 연관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들고. 괜히 찝찝하네.”
아니야, 그게 아니다.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의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아쉽게도 소설피아는 LGA컴퍼니 혹은 정글북과는 조금도 연관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소설피아와도 계약 체결한 작품도 공모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 이유, 그건 단순하다.
소설피아에선 작가들의 글 교정교열을 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올댓스토리처럼 망해버릴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쫄리기도 하고.’
이번 공모전은 소설피아에 아무런 공지를 하지 않고 진행했다. 소설피아 입장에서는 자기 플랫 폼에서 멋대로 하는 이벤트였기에 언제든 트집을 잡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축장의 소처럼 올댓스토리로 끌려가는 신인 작가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 그렇기에 이번 공모전에서 최대한 소설피아와 척을 지지 않는 선에서 진행해야만 했다.
‘다행히 소설피아에서 별말이 없긴 한데……. 그보다 공모전 참여가 너무 저조해. 해결책이 필요한데…….’
조팟놈의 비웃음처럼 공모전 참여작 수가 너무 작다. 조금 전에 단풍 삼촌이 보내준 공모전 참가작 분석표를 보니 더욱 마음이 불안해졌다.
최소 500명 정도는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대로는 위험해. 첫날에 고작 200명이면…… 2주만 지나도 후루룩 떨어져 나갈 삘인데 이거?’
공모전 참여 작가들을 더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미 각종 SNS에 블로그 게시글 등으로 할 수 있는 홍보는 총동원한 상황.
그렇다고 상금 금액을 더 늘리기엔 무리다. 안정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서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이었으니까.
‘상금을 조금 더 쓴다고 해도 기성들만 더 달라붙을 거야. 신인들을 더 끌어들일 방법이 필요한데…….’
드르륵— 드륵—
‘어? 이건 조회수가 유독 높네?’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정글북 자유시판에 눈에 띄는 게시글이 보인다.
‘도와주세요 작가님들’이라는 제목의 게시글.
공모전 활성화를 위해 품앗이나 홍보를 딱히 막아두진 않았다. 그래서 자유 게시판엔 신인 작가들의 홍보글이 넘쳐났는데 이 게시글만 유독 댓글과 조회수가 높았다.
‘대체 뭐길래? 설마 사기라도 당하셨나?’
불안한 마음에 나는 빠르게 그 게시글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들.
비축 2화 들고 이번 공모전 들어간 신인 작가입니다.
이런 말 하기에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늘 아이디어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쓰니 벌써 글이 막힙니다……. 혼자서는 문제점 파악이 너무 힘드네요.
대가리 깨질 준비하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 글 링크는…….
‘감평 요청 글이구나?’
댓글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괜히 감평 요청 링크 올렸다가 기성이 소재 빼가니 링크 괜히 올리지 말라는 글부터 캐빨이나 전개 부분의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문제는 감평글에서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댓글이었다. 그로 인해 감평글을 요청한 지망생은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게 보인다.
감평이란 상당히 손이 가는 일이다.
편집자들이 월급을 받으며 하는 주된 일 중의 하나가 이거였으니까.
제대로 된 편집자라면 글의 피드백을 주기 전에 다방면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이 글의 재미 요소가 무엇인지, 주인공의 목적성이 뚜렷한지, 전개 속도가 괜찮은지, 캐빨이 괜찮은지 그리고 잘 팔릴 글인지 등.
그런데 정글북은 너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감평을 해주는 이가 망생이인지 작가인지 혹은 기성인지 알 방법이 없다.
천명 작가님처럼 닉네임을 아예 필명으로 대놓고 설정한 게 아니라면.
‘어? 잠깐만?’
정글북에 작가 인증제를 도입해서 작가 인증이 된 작가가 감평을 해줄 수 있는 기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때 문득 떠올랐다.
지망생도 돕고 공모전 참여도 늘릴 방안이.
‘내가 하면 되잖아?’
천명 작가나 사평 작가 등이 후배 작가들을 위해 열심히 카페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본업은 작가다.
다들 여유 시간에 짬을 내 정글북에 들어오는 거였기에 기성 작가들은 다들 자신의 글을 쓰는데 바빴다. 심지어 사평 작가는 투잡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다들 자기가 아는 선에서 간단히 답변해 줄 수 있는 부분에만 답변을 해주는 식의 활동을 했다.
물론 돈도 안 받고 무급으로 해주는 활동이었기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망생들이 원하는 건 매니지 수준의 철저한 피드백이지. 피드백이 가장 필요한 건 기성이 아니라 지망생과 신인 작가들이니까.’
내 자랑 같긴 하지만 솔직히 나보다 글을 빠르게 쓰고 읽는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다.
‘작가에게 피드백을 주는 건 편집자로서 내 일이기도 하지.’
나는 곧장 옥상으로 올라가 전화를 걸었다.
“미현 본부장님, 통화 가능해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다름이 아니라 정글북에서 이런 게시글을 봤거든요.”
권미현 본부장에게 내가 떠올린 감평 시스템 내용을 전달했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공모전에 참여작 대상으로 피드백을 준다고 하면 확실히 감평을 원하는 신인 작가들 사이에선 공모전이 지금보다 더 화자될 것 같긴 해요.
“제 생각도 그래요.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대표님 혼자서 괜찮겠어요? 대표님 글 읽는 속도가 빠른 건 알지만, 매니지 일도 하시고 글도 쓰시면서 혼자 감평까지 하기엔 시간적으로 무리일 것 같은데……. 차라리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
권미현 본부장의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 다른 방안이 떠오른 모양이다.
—노원지귀 작가 혼자 주는 피드백이 아니라 저희 드래곤 편집자들이 함께 피드백을 주는 식으로요.
“저야 고맙지만. 판무팀 매니저님들 지금 일 엄청 많지 않나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드려야죠. 대표님 정도로 속독이 빠르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매니저들에 비해 우리 드래곤 매니저들 다들 상당히 빠르고 일 잘해요. 믿어 보세요.
자신과 팀을 믿어달라는 권미현의 짧은 말이 턱없이 든든하게 다가왔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진행해보자고요. 지금 내용 경영 본부장이랑 디자인 본부장님한테도 공유 부탁드릴게요.”
—현직 스타 작가와 편집자들의 공짜 피드백이라. 생각보다 많이 몰릴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많이 몰려도 되니까 유입만 많아지면 좋겠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이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