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진짜가 나타날 차례다.
12월 9일 화요일.
드래곤 X 정글북 제1회 웹소설 공모전을 결정한 그 다음 날이다.
경영지원 본부에선 우선 글로만 LGA컴퍼니 공식 웹사이트와 정글북 카페에 공모전 공지를 예고했다.
그사이 디자인 본부 직원들이 온종일 총출동해 웹사이트 배너, 팝업, SNS 홍보 디자인 제작을 완료했고, 수요일인 12월 10일이 되어서야 홍보용 디자인을 활요해 본격적인 공모전 홍보를 진행했다.
그리고 오늘은 하루가 더 지난 12월 11일.
내가 기획한 ‘세계 최강 공모전’의 소식이 가장 먼저 나오기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작가방이었다.
—천명 작가님: 우리 매니지에서 재미난 거 하네?
—천명 작가님: https://cafe.junglebook.com/page/contest_2014
—낙수효과/판무: 이게 뭡니까 선생님?
—맹맹이/현로: 공모전인가 본데요?
—맹맹이/현로: 에이 판무만 하는 건가 봐요
—릴리안느/로판: 뭐야아!
—릴리안느/로판: 로판 공모전도 내놔!
천명 작가, 이 좋은 사람.
공모전 홍보가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직원도 아닌데 홍보를 부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따로 세최공에 관해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여하간 고마운 사람이다.
—글물주/현판: 대상 1명 2천
—글물주/현판: 최우수 2명 천
—글물주/현판: 우수상 3명 5백
—글물주/현판: 애미야 상금이 짜다
—사평/다판: 신인들한테는 좋은 기회일지도?
—사평/다판: 장려상하고 신인상 수가 장난 아닌데?
사평 작가님도 티 안 나게 공모전에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하려 애썼다.
—난백(卵白)/무협: 그러게요
—난백(卵白)/무협: 기성들은 많이 안 할 듯?
—낙수효과/판무: 신인들이 많이 하겠군요.
—낙수효과/판무: 장려상 50만 50명.
—낙수효과/판무: 신인상 10만 200명이라.
—난백(卵白)/무협: 이럴 거면 차라리 대상이나 최우수에 밀어주지
—난백(卵白)/무협: 총 상금 합치면 1억인데 장려상 금액만 2천 5백임ㅋㅋㅋ
기성들만 모인 작가방이어서인지 다들 공모전 액수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번 공모전은 최대한 신인 작가들의 발을 묶기 위한 취지다.
그렇기에 대상, 최우수, 우수상보다는 신인들이 더 받게 될 장려상이나 신인상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른 선택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기성 작가들 중에 올댓에서 연재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BS북에선 이미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신인 작가들을 본격적으로 꼬드기는 중이다.
판무의 무덤이라 불리는 올댓스토리 1차 독점으로.
판무 매니저들도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 터다. 하지만 출판사와 계약하는 게 꿈인 신인 작가들을 돕자는 강경진의 감언이설과 인센이란 명분에 귀와 눈이 멀어버린 상황.
그렇기에 BS북 내에서 매니저들의 무지성 컨택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걸 막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거지.’
—천명 작가님: 서운하오 문주? 이런 좋은 소식이 있으면 소속 작가한테는 먼저 말해 주셨어야지?
—사평/다판: 내 말이
—사평/다판: 나도 나름 내부잔데
—사평/다판: 이걸 정글북에서 봐야 쓰나?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해요
감 잡으셨겠지만, 이건 신인
작가님들 대상의 공모전이에요
함께 작가방 활동을 하며 신뢰가 더 쌓인 후, 나는 천명 작가와 사평 작가에게 내 필명 뿐만이 아니라 LGA컴퍼니의 실질적인 대표가 나라는 것 까지 말했다.
그 후로 천명 작가는 우리 셋만 있는 단톡방에서 나를 종종 문주라고 불렀다.
두 분 다 말투나 행동이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지만, 알면 알수록 정말 진국인 사람들이다.
특히 천명 작가와 사평 작가는 임시 작가방으로 만든 구 LGA컴퍼니 사무실에 종종 들려 함께 글을 썼기에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평/다판: 아 진짜 BS북이랑 빨리 계약 해지해버리고 싶네
—사평/다판: 이걸 알고 있으니까 더 짜증 난다니까?
—천명 작가님: 좋은 생각 하시오 사평
—천명 작가님: 문주님께서 다 계획이 있지 않소
—사평/다판: 하…… 알아요
—사평/다판: 답답해서 그렇지
내가 LGA의 대표인 걸 밝히고 사평 작가는 차기작을 BS북이 아닌 LGA와 계약하기로 입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 연재 중인 글이 BS북과 계약이 된 상황이었기에 사평 작가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평 작가님. 정말 대단하시긴 하다. 나 같았으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사평 작가는 코즈일로 계약한 내 글들이 BS북과의 계약에서 풀려날 수 있게 해준 장본인. 사실상 내겐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아직 BS북과 대항할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내 목줄을 풀어준 사평 작가가 당장 BS북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했다면, 나는 그의 계약 해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왔을 터다.
하지만 사평 작가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비록 아직 회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모습처럼 완숙한 필력의 작가는 아니었을지언정, 글을 향한 그의 태도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실한 프로 작가였으니까.
‘계약 파기 문제로 연재 중인 작품에 차질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지.’
연재는 독자들과의 약속이자 작가의 사명이라고 말하던 사평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홀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때였다.
“와 미친! 팀장님, 이거 보셨어요?”
“뭔데?”
‘우리 회사에서 누가 가장 먼저 눈치챌까 했는데…… 너구나?’
김동현 팀장이나 강경진일 거란 예상과 달리 조팟놈이 가장 빨리 알아차린 것 같다.
“이거 공모전이요! 아니 며칠 전부터 모니터링하는 작가들 내서재에 드래곤이 발도장 찍고 가더니만, 쯧.”
“드래곤?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 듣게 좀 말하지?”
“레이블 이름이에요. 얼마 전부터 작가들 내서재에 발자국 남기는 빈도가 점점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레이블 내서재 들어가 봤는데 뭐가 나온지 알아요?”
“왜? 유명한 레이블이야? 나는 처음 듣는데?”
“하…… 직접 보세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은 답답한 듯 그의 자리로 다가가 마우스를 딸칵였다.
“아~ 여기 거기네. 노원지귀 계약한 그 출판사.”
“그게 다가 아니라니까요? 이것 보세요.”
딸칵딸칵— 딸칵—
조팟은 다급한 마음을 대변하듯 마우스를 미친듯이 클릭했고, 모니터 화면엔 정글북 카페 메인 페이지가 떴다.
“……공모전? 정글북 그 작가 커뮤니티잖아? 거기랑 같이하네? 아니…… 상금을 뭘 이렇게 애매하게 했대? 장려상이랑 신인상만 합치면 250명인데?”
“아뇨! 그거 말고요! 팝업 끄고 여기 웹사이트 보세요.”
파티션 너머로 조팟과 김동현 팀장이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슬슬 정답을 향해 가는 모습이다.
‘이제 슬슬 알게 되겠네?’
“조팟아, 대체 뭐길래 이 난리…… 어? 이, 이게 뭐야? LGA가 왜 여기서 나와?”
“LGA가 드래곤이에요. 드래곤이 LGA컴퍼니 판무 레이블이었다고요. 노원지귀 데려간 그 드래곤!”
빙고. 정답입니다.
노기를 띤 조팟의 말에 이창윤 매니저뿐만이 아니라 1팀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술렁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하…… 아니, 어처구니가 없네? 웹툰만 하는 게 아니라 웹소설에도 발을 들였어? 나와 봐.”
조팟의 손에서 마우스를 뺏은 김동현 팀장이 굳은 얼굴로 LGA컴퍼니 홈페이지 구석구석을 뒤지는 모양새다.
많이들 봐두라고.
디자인 본부 직원들이 힘 좀 쓴 거니까.
인센도 줄 생각이란다.
“김동현 팀장님.”
“아, 예. 강 팀장님.”
“저도 지금 확인했습니다. LGA컴퍼니 공모전 관련해서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요.”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맡은 강경진이 김동현 팀장에게 다가왔다. 평소보다 굳어진 표정으로.
* * *
딸칵딸칵— 드르륵— 딸칵—
‘세계 최강 공모전’ 공지를 올리고 난 후로 한 주가 흘렀고, 정글북 카페엔 회원들이 부쩍 늘어났다.
‘659명이라. 반응이 괜찮은데?’
공지를 올리기 전만 해도 300명대였던 회원 수가 일주일 새에 두 배 이상이 늘었다.
카페 가입 회원이 많아지니 확실히 전보다 복작거리는 맛이 있다.
IIiiiiIiIi[1]: 공모전 일정 너무 촉박한 거 아닌가요? 공지 올리고 거의 2주도 안 돼서 시작하네 ㅜㅜ
iiIiIIIIiIII[1]: 그러게요. 공모전 일정을 왜 이렇게 촉박하게 잡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공모전 생기니 좋긴 하네요ㅎㅎ 망생이 입장에서는 다 좋음
iIiiiiI[1]: 로판 공모전은 왜 없냐고오오 (╯︵╰,)
IIiIiiiiiiI[1]: 공모전 시작까지 D―5일! 자까님들 모두 파이팅!!!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속상해하는 작가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번 공모전은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인 12월 22일부터 시작해 1월 3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니까.
총 40일간 진행되는 공모전을 준비하려면 최소 한 달 전부터는 비축을 만들면서 준비를 하는 게 국룰. 하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다.
BS북은 본격적으로 신인 작가들을 1월 중에 데뷔할 수 있도록 계약 진행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공모전을 시작해 올댓스토리 1차 독점 조건으로 계약하게 될 작가들의 계약을 무마시켜야 한다.
간간이 로맨스 작가들의 아우성이 들리긴 했지만, 소설피아는 남성향 소설 플랫폼.
소설피아에 연재하는 작가도 독자도 남성이 대부분이기에 이번 공모전에선 배제시켰다.
‘로맨스는 올댓에 연재하는 게 큰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비록 올댓스토리가 망해버릴 플랫폼이긴 해도 망하기 전 까진 여성향 플랫폼으로써 나름 입지가 있었다. 즉, 로맨스 작가들은 올댓에 가더라도 판무 작가들처럼 피해는 없을 터였다.
“저…… 팀장님. 올댓에서 연재하시기로 계약한 작가님께서 계약 해지하고 싶다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죠?”
“세최공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셔서…… 계약 취소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게 아니면 런칭 일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다고…….”
“……계약 해지는 최대한 막아 주시고 런칭 일정을 뒤로 미루는 쪽으로 작가님 설득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파티션 너머로 판무 1팀 매니저 하나가 강경진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는 건가? 내 분탕질이?’
“예, 작가님. 네에? 갑자기 왜요? 아니 다음 달 말에 바로 런칭하기로 플랫폼 측에도 다 얘기해 뒀는데 갑자기 이러시면…… 아니 공모전 수상이 쉽습니까? 상을 한두 명 주는 것도 아닌데. 자, 작가님! 고작 50만 원, 10만 원 받으려고? 자, 작가님? 작가님!”
“조팟 왜 그래?”
“아, 진짜! 미친 흑화 망생이 새끼 구제해줄라고 했더니만, 주제도 모르고 계약 해지를 한다잖아요!”
우리 2팀에도 슬슬 분탕질의 효과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기성 작가들은 별말 없는데 신인 작가들 사이에서 세최공 관심이 상당한 것 같아요. 올댓에 계약하려고 컨택했던 작가들 지금 답변도 없고, 잠수 타고 난리 났어요.”
“하……. LGA 이 개같은 새끼들.”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김동현 팀장이 관자놀이를 주무를 때마다 블루투스에 연결된 것처럼 내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다들 올댓으로 넘길 작가들 1월에는 런칭 못한다 해도 2월 중에는 넘길 수 있도록 해. 2월로 최대한 다 미뤄.”
‘재밌네. 2월이라고 뭐가 달라질까? 아직 공모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작가들 심리를 잘 모르나봐?’
공모전 기간은 12월 22일부터 1월 30일까지 총 40일간 진행된다. 하지만 작가들은 그 기간이 지나서도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지.
당선작 발표가 2월 24일이니까.
미래에 있을 소설피아 공모전도 마찬가지다.
공모전 기간이 40일간 이라고 하지만, 플랫폼에서 과연 40일간만 볼까?
‘엇비슷한 필력과 성적이라면 당연히 꾸준히 쓰는 작가를 당선시키겠지?’
공모전 기간이 끝나고 심사 결과 발표가 나오는 2월 24일까지 작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서 글을 쓸 거다. 하지만 결과 발표를 2월 24일로 잡은 건 단지 이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2015년 2월 24일.
이날은 소설피아 제1회 공모전 공지가 올라오는 날이니까.
‘다들 올댓 연재는 꿈도 꾸지 말라고. 정글북 공모전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드래곤 X 정글북 공모전의 발표일.
그날은 진짜가 나타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