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미안해. 그게 최선이야.
—공모전? 공모전을 하자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한 그대로에요. 정글북 인지도가 좀 높아질 필요가 있는데, 공모전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줄게요. 옥상이라 길게 통화는 못 할 것 같아서.”
—알겠어요 대표님. 보내주세요.
정글북을 만든 지 2달 경이 흘렀다.
회원 수는 이제 300여 명 대에 도달했지만, 아직은 그리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진 않다.
게다가 정글북 카페에 올라오는 글 내용을 봐서는 신인보다 기성 작가들의 수가 더 많아 보인다.
‘아무래도 소통에 목말랐던 기성들이 작가 커뮤니티를 찾는 데 더 적극적이었을 테지. 그래도 지금은 지망생들과 신인 작가들을 더 끌어모아야 해.’
앞으로 한 달 뒤인 내년 1월이면 투자금 30억의 재물로 아직 준비도 안 된 신인 작가들이 올댓스토리에 쏟아지게 될 테다. 완벽하겐 못 막겠지만, 최대한 모든 힘을 다해 막아야 한다.
좋은 출판사와 계약하는 법, 사기당하지 않는 계약 방법, 신인 작가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등.
나와 천명 작가 그리고 사평 작가가 꾸준히 각자의 경험이 담긴 내용을 올렸다. 하지만 정글북으로의 유입 수가 적어서인지 아직은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떠오른 게 공모전이지.’
어찌 보면 정글북 주최로 여는 웹소설 공모전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터다. 내년인 2015년이면 소설피아에서 본격적으로 첫 공모전을 열게 될 테니까.
“어우, 손이 어는 것 같네. 얼른 내려가자.”
공기가 너무 차가워 마스크를 꼈는데도 코가 얼얼하다. 이제 한겨울이라 그런지 잠시만 밖에 있어도 살이 찢어지는 듯한 추위에 몸이 떨린다.
끼익—
‘……누가 왔나?’
정신이 빠져나갈 것 같은 요즘 같은 추위에 누가 옥상에 오는 건 드문 일이다. 나 역시 LGA 쪽에 급하게 통화할 일이 아니면 엔간해서는 옥상에 오지 않는데?
“하아…… 씨발 판무팀 새끼들 진짜 일 개 느려 터졌네.”
“그러게 말이에요. 지들이 담당하던 글에서 리스트 뽑는 건데 그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시원하게 욕부터 박으며 옥상으로 올라온 놈들이 둘 보였다. 말하는 뽄새를 보니 이번에 BS툰에 새로 입사했다는 매니저들이 확실해 보인다.
담배를 피러 올라온 건지 아니면 뒷땅을 까러 온 건진 모르겠는데, 한 놈은 패딩을 입어도 추위가 느껴지는 이 날씨에 달달 떨면서도 팔을 걷고 있었다. 점인지 낙서인지 뭐를 잔뜩 묻힌 팔뚝에서 왜인지 묘한 기시감이 들다 눈이 번쩍 뜨였다.
‘……어? 파브르?’
거미, 풍뎅이, 나방 등이 덕지덕지 붙은 양아치놈의 팔을 보니 연초쯤에 이지연 본부장이 다니던 웹툰 학원의 강사. 그 양아치 놈이 분명하다.
‘BS툰에 경력직으로 뽑은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파브르였어?’
놈의 면전 앞에서 대놓고 웃었지만, 나는 마스크를 낀 상태. 놈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저기요.”
“……?”
파브르가 설마 날 알아본 건가?
옥상 출입문 옆에 서 있던 놈들을 지나쳐 내려가려는 데, 파브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오랜만에 봐도 한결같이 졸렬하게 생긴 얼굴이다.
“불 있어요?”
“아뇨. 추우면 팔을 내리시지?”
“……뭐요? 하…… 됐습니다.”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도 아니고 불 있어요라니. 강경진이 정말 급하긴 했나 보네. 저런 줘도 안 가질 놈들을 뽑아둔 걸 보니.’
나를 알아보지 못한 파브르 놈과 다른 매니저를 지나쳐 사무실로 내려오는데, 뿌듯한 감정이 밀려온다.
‘역시 직원 뽑는 덴 돈이 최고야.’
강경진이 웹툰 매니저 채용 공고를 올렸을 때 LGA는 묻고 더블로 수준의 월급과 복지로 공고를 수정해 올렸다.
그러니 괜찮은 사람들은 대부분 LGA로 들어오고, 낙오된 떨거지들만 BS툰에 들어 올 수밖에 없었을 터.
그래도 앞으로 좀 더 신중해야겠다.
파브르 놈이 내가 누구인지 알진 못하겠지만,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
* * *
“예에? 그 미친놈이 BS툰에 입사했다고요?”
“네, 달달 떨면서도 팔을 걷어 올리고 있던데 확실히 파브르더라고요.”
“파브르? 미친놈? 누구 말하는 거예요?”
퇴근 후 나와 임원진들은 공모전 진행 관련 회의를 겸해 근처 레스토랑으로 왔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파브르와의 뜻밖의 해후를 말하니 이지연의 티 없이 맑은 얼굴에 언뜻 사악한 미소가 어려 보인다.
“파브르라고 저 웹툰 학원 다닐 때 강사 놈인데, 찝쩍거리던 양아치 놈이었어요. 하…… 진짜 자기가 엄청 잘나간다 뭐다 해서 처음엔 배울 점이라도 있나 해서 조금 믿었었는데.”
이지연은 기가 막히다는 듯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를 향해 수직으로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이력서랑 포폴 보니 진짜 전형적인 입만 산 놈이더라고요. 실력이 없으면 겸손하기라도 하지. 실력도 없고 인성도 빻은 놈이니 BS툰 같은데 입사한 거겠죠.”
“아니……. 지연 본부장님이 이렇게 화내시는 건 처음 보네. 술이라도 한잔 시킬까요?”
눈엔 보이지 않는 붉은 화염이 이지연의 주위로 타오르자 단풍 삼촌이 술을 시키려는 제스쳐를 취했고, 나는 삼촌의 손을 단호히 내렸다.
“술은 무슨 술입니까? 잊지 마세요, 지금 업무에요. 식사하면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야근 수당 다들 챙겨드리는 거 아시죠? 택시비도 따로 챙겨드리고?”
“후……. 아쉽네요.”
이지연 본부장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지만 이게 옳은 선택이다. 이지연은 술만 들어가면 폭주 기관차처럼 돌변하는 알쓰니까.
“어? 그런데 지연 본부장님, 파브르란 사람 이력서를 어떻게 아세요? 학원 다닐 때 파브르가 보여줬었어요?”
생각 이상으로 열이 뻗친 듯한 이지연의 모습에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어갈까 하는 찰라, 권미현이 다시 파브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네? 이지연이 파브르 이력서를 어떻게 봤다는 거지?’
BS툰은 법인 자체가 BS북과 달라서 나도 파브르의 이력서는 못 봤는데? 해커도 아니고.
‘설마…… 단풍 삼촌?’
혹시 단풍 삼촌이 뭘 한 건가라는 생각에 눈을 흘기는 그때 이지연이 말을 이었다.
“파브르 그 새끼. 우리 회사에도 지원했었거든요. 아, 저 진짜 와인 한잔만 하면 안 돼요?”
“안 돼요. 아니…… 그보다 파브르가 지원했었다고요? LGA에?”
“네. 파브르랑 파브르가 자기 인맥이랍시고 자랑하던 몇몇 웹툰 작가들도 지원하고 그랬었어요.”
이지연은 난도질한 스테이크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력서가 형편없는 건 둘째치고 포폴 보니까 수준이 더 형편없더라고요. 그런데 더 대박인 건 뭔지 아세요? 그 미친놈이 자기 포폴에 제 그림을 슬쩍 끼워 넣었더라고요. 그림체도 아예 다른데 그걸 넣을 생각을 하고, 참나.”
파브르.
생각 이상으로 추잡한 또라이 놈이었다.
“아니……. 완전 미친놈 아니에요? 그걸 가만히 두셨어요?”
“그래서 탈락시켰죠.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휴…….”
온전한 자신의 실력으론 그 어느 것 하나 얻어내지 못한 기생충. 그런 놈이 들어간 곳이 BS툰이라니. 권미현 대리는 한숨을 내쉬지만 내 입가엔 미소가 걸린다. 놈을 어떻게 조질까 하는 미소가.
“대표님이 오히려 말 해주셔서 기운 나요. 그런 허접한 놈이 다니는 회사에는 조금도 더 밀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드네요.”
열의를 불태우는 이지연을 보니 나 역시 뿌듯한 감정이다. 뭐가 됐든 이지연은 걱정할 필요 없다. 파브르는 내가 손수 강경진과 원쁠원으로 조져놔 줄 테니까.
“자 그럼 공모전 이야기 시작해 볼까요? 다들 식사 하시면서 들어주세요. 오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글북 활성화를 위해 공모전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활성화 이유는 모두 다 알 테니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제가 보내드린 개요서 다들 확인하셨을 텐데 각 본부별로 의견 있으면 부탁드려요.”
“저부터 말하죠.”
시작은 단풍 삼촌이다.
“우선 신인 작가들을 위해 그리고 정글북 인지도 강화를 위해 공모전을 여는 건 좋습니다. 다만 정글북 단독이 아니라 드래곤과 콜라보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예 정글북과 드래곤이 상호 관계가 있다는 걸 노출하란 말인가요?”
내 물음에 단풍 삼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선 기본적으론 상금 문제 때문입니다. 금액에 따라 상이하지만, 공모전 형태의 상금은 제세공과금을 내게 되어 있어서 드래곤을 끼고 회사 차원에서 상금을 주는 게 여러모로 깔끔합니다.”
장르별 그리고 순위별로 지정한 상금만 주면 끝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세금 관련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이제 드래곤의 이름을 조금 더 알릴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언제까지 BS북 눈치만 볼 수는 없는 거잖아? 어차피 이제는 본격적으로 BS북, 아니 전 출판사에 선전포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맞는 말이다.
실은 나도 어느 정도는 체감하고 있었다.
조금 더 준비를 해야지.
더 조심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그동안 칼을 갈기만 했다.
‘아무리 날카롭게 벼린 칼이어도 썰지 않는 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이제는 칼날을 뽑을 때다.
“좋아요. 그럼 이번 공모전은 정글북과 드래곤과의 콜라보 형식으로 준비 부탁드리죠. 상금 액수는 개요서에 적어둔 금액으로 진행할까 하는데, 어때요?”
“그 정도 금액이면 괜찮죠. LGA컴퍼니 웹사이트와 공식 SNS에 홍보도 바로 진행하면 될 것 같고.”
“홍보 문구만 정해서 알려주세요. 디자인 파트 매니저들한테 홍보 배너 제작해서 경영팀에 전달할게요.”
“아하핫! 감사합니다!”
각 본부의 장들이 모두 모이니 생각도 일 처리도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네, 미현 대리님.”
그때 권미현이 슬쩍 손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이번 공모전은 소설피아에서 진행할 예정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아예 공모전에 참여할 만한 신인 작가들에게 쪽지로 공모전 내용을 공유하는 건 어떤가요?”
작가들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음……. 컨택이 아닌데 쪽지를 보내는 건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계약할 만한 글이 아닌데 쪽지를 받으면 작가들은 괜히 설레하다가 반감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신 내서재에 들어가서 방문 기록만 남기고 오는 정도가 좋겠네요.”
비록 권미현에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은 소설피아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전을 LGA에서 주관한다고 해도 소설피아에 피해를 준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쪽지로 소설피아에 공모전 참여 독려 쪽지를 보냈다가 검열을 당한다면?
작가 본인만 볼 수 있는 쪽지를 소설피아에서 어떻게 보냐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회귀 전 세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설피아 플랫폼 관리 직원이 타플런으로 꼬시는 쪽지를 검열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떠돌았다.
혹은 소설피아 대표가 현경의 고수라 몰래 쪽지를 볼 수 있다는 말도 괴담처럼 나돌았고.
그런데 뭐 어쩌겠어?
돈 있는 놈이, 플랫폼 있는 놈이 까라면 까야지.
괜히 소설피아에서 공모전을 연다고 해서 밉보였다가 CP 밴이라도 당하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다.
‘플랫폼 갑질은 못 버텨. 개같이 센 놈들이니까.’
갑질에도 급이 있다.
BS북 같은 출판사의 갑질은 지금처럼 어떻게 비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플랫폼의 갑질은 넘을 수 없는 벽 그 자체.
나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홀로 그 나라를 뒤바꿔 놓을 수는 없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
나라가 마음에 안 들면 이민을 가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까.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발도장만으로 효과가 있을까요?”
‘미현 대리님, 미안해. 그게 최선이야.’
플랫폼 갑질의 두려움을 모르는 권미현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답답해.
하지만 플랫폼은 나도 쫄리거든.
타노스 같은 놈들이니까.
“신인 작가들은 내서재에 방문 기록만 찍혀 있어도 대부분 확인해 볼 거예요. 그리고 방문 기록 보고 드래곤 내서재에 들어오면 거기엔 LGA컴퍼니 홈페이지 링크랑 드래곤 공식 SNS 링크가 적혀 있으니까요.”
“음…… 알겠어요. 공모전 전까지는 내서재에 최대한 방문 기록 많이 남겨 둘게요.”
미현 대리가 납득하는 표정을 지어 다행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해 볼까?
“그리고 무진 본부장님.”
“예스!”
“무진 본부장님은 홈페이지 링크 타고 들어가면 디자인 파트에서 만들어 준 홍보 디자인 팝업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주세요.”
“오케이!”
“그럼 다들 공모전까지 파이팅입니다!”
이제 우리 드래곤이 한 마리 용처럼 슬슬 날갯짓을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