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43화 (43/201)

#43화 - 회사란 살아있는 생물이다.

평화가 깃드는 살기 좋은 나라.

한국인들에겐 흔히 석유 왕국으로 알려진 브루나이 다루살람에 담긴 뜻이다.

새해에 국왕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면 세뱃돈을 주고 의료비와 주거비 등 형식적으로 내는 소정의 금액을 제외하면 사실상 공짜나 다름이 없는 판타지 소설 속의 이세계 같은 나라.

고작 여기까지가 내 상식선에서 아는 브루나이에 관한 정보였다.

“경영 본부장님. 더 나오는 거 없어요?”

“잠시만요. 거의 다 정리 했어.”

살벌한 외모와 어울리게 전투적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딸칵이던 단풍 삼촌이 취합한 자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 좀 특이한 나라긴 하네. 우선 긍정적인 면부터 보자면 첫째로, K―POP이나 드라마 같은 한류 컨텐츠를 좋아한다고 해.”

“다른 동남아처럼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나라라…….”

“아마 평균 연령층이 20~30대여서 그런 것 같아.”

“엄청 젊네요?”

“이것도 엄청 오른 거야. 1950년도부터 90년대 후반까진 평균 연령이 20대 초반이었고 올해 평균 연령도 아직 20대 후반이니까.”

서울의 평균 연령이 40대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놀라운 차이다.

‘주 소비층의 연령대가 낮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긴 하지.’

연령대가 낮다는 건 그만큼 웹 기반 컨텐츠인 웹소설과 웹툰을 받아들이는 데 저항이 덜하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다음 장점은 이 나라가 돈이 미치도록 많아. 이건…… 이야아!”

“왜요?”

“브루나이 술탄, 그러니까 그 나라 왕이 가지고 있는 고급 차가 7천 대! 금 도금된 개인 제트기! ……미제 쌍간나보다 더 하구만 기래?”

“본부장님 입조심.”

“……죄송. 여하튼 궁궐 뚜껑도 아예 금으로 도금할 정도로 돈이 많은 나라라 하고. 아! 어쩐지이!”

“……?”

플랫폼 지원 사업 요강을 다시 확인하던 단풍 삼촌이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지원 사업 예산 출자는 전액 브루나이 정부에서 하는 거라네. 한국 정부는 기업 지원하는 거고. 한마디로 돈 풀 테니 플랫폼 환경을 조성해달라 이거디.”

“플랫폼 사업……. 진중하게 들어봐야겠군요. 계속 말해주세요 본부장님.”

사업 예산안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

하지만 돈 많은 나라에서는 플렉스가 일상일 터. 고소히 풍기는 돈냄새에 코가 벌렁이니 귀가 절로 기울여진다.

“마지막 장점이 가장 중요한데, 브루나이는 영어가 공용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지.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지만, 영어가 사실상 공용어처럼 쓰이고 있다고 하니까.”

“영어가 공용어나 마찬가지라…….”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같이 아세안 연합에 가입한 인근 동남아 국가뿐만이 아니라 영미권 진출까지 동시에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지.”

내 코에 진동하기 시작한다.

진한 석유 향이. 하지만 모든 일에 장점만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면 단점은? 장점만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인구수가 지나치게 적어. 올해 기준으로 40만이 채 안 넘으니까.”

“40만이면……. 엄청 작긴 작네. 서울에 있는 구 두 개 합친 인구수 정도겠네요?”

국가 전체 인구가 고작 40만.

서울의 구 둘 정도를 합친 작은 인구 중에서 과연 웹소설과 웹툰을 읽을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가 미지수다.

“그래서 만약 브루나이에 플랫폼 사업 진행을 한다면 브루나이 시장 선점은 당연한 거고 플랫폼을 애초부터 최대한 영어화 하는 데 신경 써야 할 거야.”

“그렇긴 하겠네. 고작 40만 인구 만 보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리고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웹소설보단 웹툰화에 중점을 맞춰서 진행해야 할 거고.”

“……저, 이 본부장님? 웹소설을 먼저 밀고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웹소설은 웹툰하고 비교해 작품 수급도 비교적 쉽고 번역만 하면 되잖아요?”

출판 본부 본부장인 권미현이 느끼기엔 웹소설 쪽이 시장을 선점하는 게 더 좋다고 느낀 것 같다.

“아하하,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언어만 말레이어나 영어로 바꾼다고 해서 언어의 장벽을 뚫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번역이 됐으면 언어의 장벽이 깨진 게 아닌가요?”

권미현의 질문에 아주 빵긋빵긋 웃으며 대답을 하는 단풍 삼촌을 보니, 조만간 기강을 잡아야…… 아니 윤선미 미팅부터 일단 더 미뤄야겠다. 너무 빠졌어.

“언어의 장벽이라는 게 비단 같은 언어로 쓰인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언어는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죠. 한국에도 서양 문화 컨텐츠가 많이 유입되었기에 그 장벽이 허물어진 거고요.”

권미현이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자 단풍 삼촌은 살벌한 얼굴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천명 작가님의 ‘호주천마’를 예로 들자면 배경이 호주 아닙니까? 요즘엔 한국에서도 워홀이나 여행으로 호주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작중에 미트파이나 피시앤칩스 같은 게 나와도 쉽게 이해를 하죠. 하지만 십몇 년 전에 그런 글이 나왔다면 독자들은 지금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겁니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망가나 애니 같은 일본의 서브 컬쳐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걸 보시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단풍 삼촌의 말에 권미현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일본 서브컬쳐의 글로벌 진출 시작도 결국 처음엔 만화부터였으니까요.”

“하하,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그렇죠. 단순히 재밌는 글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웹소설은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기보다 빠르게 소비하는데 주점이 맞춰진 컨텐츠죠.”

나도 잠시 권미현처럼 아직 웹월드와 소설피아가 선점하지 않은 웹소설 분야를 먼저 선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하지만 단풍 삼촌의 말처럼 해외 플랫폼 사업을 진행한다면, 확실히 웹툰 쪽에 비중을 더 맞추는 게 옳다는 판단이 선다.

물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예시를 든다면 국가나 문화와 상관없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작품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혹은 그 세계관을 완벽하게 정립시킨 것에 의의가 높은 작품들.

그렇기에 단지 우리 한국인 입맛에 ‘재밌으면 통한다’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해외 웹소설 시장을 개척하긴 어려울 터다.

“좋습니다. 그럼 경영 본부장님은 해외 플랫폼 구축 사업 진행 부탁드릴게요. 아직 일정은 많이 남았죠?”

“신청 서류 접수 기간은 내년 2월까지. 그리고 1차 서류 평가는 3월 중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시간은 적당해……요.”

단풍 삼촌은 워낙 나와 알고 지낸 사이가 일어서인지 나에게 존대하는 걸 상당히 어색해 했다. 그래도 익숙해 져야지. 우리가 구멍 가게를 운영하려는 건 아니니까.

“오케이. 그럼 서류 평가 합격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규모가 있는 사업이기에 우리 LGA컴퍼니 같은 중소 규모의 기업이 얼마나 많이 달려들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돈 냄새가 폴폴 풍기는 데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1차는 서류 평가고, 1차 심사 통과한 기업들의 발표 평가가 4월 중 있을 예정이니까. 우선 1차를 통과해야겠죠?”

“무진 본부장님, 지연 본부장님은 1차 서류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아무래도 석유 맛 좀 봐야겠다.

* * *

11월 마지막 주부터 약 6일간 계속됐던 BS북 웹툰 법인의 인테리어 공사가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오늘은 그로부터 한 주가 더 흐른 12월 8일 월요일이다.

“아니 웃기지 않아요? BS툰이라고 지을 거면 굳이 법인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나? BS북도 다들 병신북이라 부르던데. BS툰은 병신툰이라고 부르겠네.”

“어허이, 조팟아. 우리 긍정적으로 좀 생각하자, 어? 직원 수가 어느 정도 되면 법인을 따로 나눠야 중소기업 혜택 그딴 게 있댄다. 여튼 12월 둘째 주 주간 회의 시작해 보자고.”

BS툰은 이번에 BS북에서 새로 만든 웹툰 법인.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자마자 지난 월요일이었던 12월 1일부터 웹툰 팀 매니저들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요 팀장님. BS툰 저거 괜찮아요? 들어보니 뽑은 사람만 스물인데 경력자는 셋밖에 없데요. 그걸로 통제 가능할까 모르겠네.”

“조팟님아. 그게 뭔 상관이에요? 법인부터가 그냥 다른 회사야, 다른 회사. 신경 좀 끄자 제발? 어?”

“나중에 BS북이랑 뭐 한 뿌리니 같은 회사니 이런 말 하지 마세요?”

“우선 BS툰과 관련된 부분부터 전달할게요. 공통적인 부분이니까.”

김동현 팀장은 조팟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회의를 시작했다.

“전 주에 BS툰에서 요청한 웹툰화 리스트는 다들 내일 오전까지 전달해 줘야 해. 거의들 끝나 가나? 창윤 매니저는 미리 보내줬고 조팟이랑 정우 매니저는 아직 안 줬지?”

“네, 내일까지 드리겠습니다.”

김동현 팀장이 말하는 웹툰화 리스트란, BS북 소설 중에 웹툰화를 하면 괜찮을 것 같은 작품을 요청한 리스트였다.

사실 내가 담당하는 작품들은 모두 웹툰화를 해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강경진이 담당하는 BS툰 따위에 넘기고 싶진 않았기에 최대한 버티는 중이었는데.

‘조팟은 웬일이지? 그냥 귀찮아서 안 넘긴 건가?’

“아니 팀장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또 뭐가아?”

김동현 팀장은 제발 입 좀 싸물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조팟놈의 입은 다물어 질 생각이 없었다.

“위층 놈들이 지들 일을 우리한테 시키는 거잖아요? 아니 웹툰화 어떤 거 할지 안 할지를 지들이 정해야지 그걸 우리가 왜 정해요?”

“뭐가 또 위층 놈들이야? 다 같은 회산데. 그리고 우리가 담당자니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자기 담당 작품은 담당자가 가장 잘 아니까.”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는 말에 조팟은 풍 맞은 사람처럼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니! 아까는 같은 회사 아니니 신경 끄라면서요? 왜 자꾸 말이 바껴요?”

“조팟아.”

“왜요?”

“회사란 살아있는 생물이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유기체지. 오늘의 회사와 내일의 회사는 다르다.”

“회사새끼 안 죽나요?”

“조팟아. 회사 죽으면 너는 살겠냐?”

“왜 못 살아요? 다른 곳 가면 되지!”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찌 됐건 긍정적으로 좀 생각합시다. 아, 내가 이 얘기 전달 안 했나 보네. 자기 담당 작품이 BS툰 통해서 런칭 되면 인센 별도로 지급될 예정입니다. 다들 알아 두세요.”

“얼마요?”

“런칭 달에 30만.”

이어진 인센 소식에 조팟의 광증은 바로 치유됐다.

“런칭 달에 인센 30만 원 바로 꽂힐 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그리고 하나 더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부분이 있어. 올댓 런칭은 1월 중순부터 진행 가능하다고 연락받았어. 올댓 전용 레이블 이름은 플라이라고 하더라. 준비하는 사람 있나?”

‘레이블 이름이…… 플라이?’

훨훨 날 신인 작가를 생각해 붙인 이름이 아니라 파리 새끼라 생각하고 붙인 고약한 이름이 분명하다. 강경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까.

“저요.”

“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으로 혀를 차는 그때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가 동시에 손을 올렸다. 마이너 오브 마이너 플랫폼인 올댓에 벌써 런칭작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몇 푼 안 되는 인센이 좀비 같은 생활을 하는 매니저들을 이리도 의욕적으로 바꿨다는 게 놀랍다. 한 편으론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 다들 언제쯤 런칭할 거 같아?”

“1월 말이요.”

“저도 1월 말입니다.”

“흠……. 그래?”

“왜 물어보세요 팀장님? 설마 저희보다 런칭 먼저 하려고 물어보신 거 아니에요?”

“무, 무슨 소리야. 나는 팀장으로서 일정 확인차 물어본 거지.”

강경진이 올댓에서 30억을 받아오면서 매달 판무 5종을 올댓에 넘기기로 했다. 이미 망해가는 그리고 앞으로 더 망해갈 플랫폼에 신인 작가들을 갈아 넣는다는 게 몹시 불쾌한 일이지만, 이미 인센에 눈이 돌아간 저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정우 매니저는 올댓에 런칭 안 하나?”

“예, 저는 올댓에 작품 넣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인 작가들이라면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뭐……. 각자 뜻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여튼간에 다들 준비 잘 해주고. 그리고 다음 주까지 다들…….”

그렇다고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BS북 내에서 막을 방법이 없는 거지, 밖에서 막아낼 방법이 떠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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