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42화 (42/201)

#42화 - 동남아의 석유 왕국.

강경진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 감도는 소문을 증명하듯 BS북의 30억 투자금 수령 및 웹툰 법인 설립 소식은 회사 대표 메일을 통해 빠르게 공지 됐다.

“……작가님 72화에 갑자기 조폭들이 등장하는데, 너무 뜬금없지 않나요? 예, 72화…… 작가님, 죄송한데 회사가 지금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 소음 때문에 잘 안 들려서…… 예예, 카톡으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담당 작가와의 통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은 조팟은 폰을 책상에 던지고 뼈 꺾이는 우드득 소리를 내며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그 누가 봐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무슨 공사를 평일 내내 해요? 그것도 업무 시간에?”

“조팟아. 오늘까지 4일밖에 안 됐다. 공사를 해야 웹툰 법인이 빨리 자리를 잡지. 좋게 생각하자고.”

뻘소리 말고 닥치라는 의중이 담긴 김동현 팀장의 말에 조팟은 바로 미간을 구겼다.

“웹툰 법인이 우리한테 뭐 득 되는 게 있어요? 법인도 다르니 아예 다른 회사구만? 그리고 합정에 우리 회사 건물처럼 낡아빠진 곳이 어디 있어요? 딱 봐도 급하니까 위층 공실 난 데다 들어가는 거잖아요?”

“조팟아 오늘 하루만 버티면 끝나. 주말까지 공사하고 월욜에 바로 직원들 들어온다니까, 그때까지만 참자고.”

“아오, 진짜. 정우 매니저처럼 그냥 이번 주 연차나 몰아 쓸걸.”

징징대는 조팟의 말에 김동현 팀장이 애잔한 눈빛을 보내며 혀를 찼다.

“조팟, 무슨 소리야? 연차도 없으면서.”

“아니…… 말이 그렇단 거죠. 말이.”

“시끄러우면 이어폰 끼고 일해. 그리고 연차 모자라는 건 월급에서 차감하는 거 알고 있지?”

“어우. 알아요, 알아!”

얼마 주지도 않는 BS북의 연차를 욕하며 조팟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 * *

“미현 본부장님, 이 부분 너무 원패턴 같지 않나요? 천마가 처음 호주로 갔을 때 에보리진을 살수로 만들어서 다니던 부분이랑요.”

“제가 보기에도 원 패턴 같긴 한데, 정파는 중국이랑 아시아 쪽에 계속 있던 반면 사파 세력이 오세아니아 쪽으로 피난해 온 거라서요. 뉴질랜드 마오리족에도 사파 세력이 섞여 들어간 설정이라 비슷한 느낌인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은 살수라고 해도 사용하는 무공 부분에서는 지금보다 뚜렷한 차이가 있으면 좋겠네요. 사용하는 무기도, 외모도, 말투도 전부 너무 비슷해서요. 지금 같은 패턴이면 후속 회차에 이어질 통가, 사모아로 스며 들어가는 무림인들도 비슷한 양상일 것 같거든요.”

지난 월요일이었던 11월 24일.

올댓스토리로부터 투자금 수령을 완료한 BS북, 아니 강경진은 바로 다음 날부터 웹툰 법인 설립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나도 바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BS북 웹툰 법인이 자리를 잡기 전에 우리 LGA컴퍼니는 더 빠르게 격차를 벌려 놔야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구 LGA컴퍼니 사무실로 출근해 화요일부터 금요일인 오늘까지 계속 회사 업무를 돕는 중이다. LGA컴퍼니의 대표로서.

“키위새 내단 빼먹는 파트도 천마가 호주에서 캥거루랑 쿼카 내단 빼먹는 파트랑 너무 겹쳐요. 거기다 키위새는 멸종 위기 보호종이라 개체 수도 적은데, 키위새 보호소도 아니고 시드니 한복판에서 내단이 있는 야생 키위새를 발견한 것도 작위적으로 보이고요. 이 부분도 천명 작가님과 검토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그 부분도 작가님께 다시 확인 요청 드릴게요.”

천명 작가의 ‘호주천마’는 일반적인 현대무협과 그 결이 다르다. 특히 배경이 많이 특이한데, 한국도 중국도 아닌 호주가 메인 무대이기 때문이다.

원래 기획 의도는 피식 웃으며 후루룩 읽는 글이었는데, 천명 작가님의 창의력 그릇이 내 예상 이상으로 너무 넓다.

그렇기에 천명 작가의 글을 담당하는 권미현 본부장은 끝없이 이어지는 뇌절 파티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미현 본부장님.”

“네.”

“컨택 리스트도 거의 다 끝냈으니까, 마무리만 하고 바로 메일로 전달 드릴게요.”

“네, 그것도 확인하고 매니저님들한테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웹소설 작가의 수는 많다.

하지만 매니지의 수 역시 결코 적지 않다.

그렇기에 조금 괜찮다고 느껴지는 글은 10화도 넘어가기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컨택 쪽지를 뿌려대기 일쑤였다.

권미현 본부장 밑으로 들어온 신입 판무 매니저들은 적응을 잘하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속독을 하면서 컨택할 글을 찾는 건 하루 아침에 빠르게 향상되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번 연휴 기간 동안 단순히 컨택할 만한 글을 정리해 신입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왜 이 글을 컨택 후보에 넣었는지 그리고 이 글의 상업적인 경쟁 요소, 주 독자층과 연재 플랫폼 등을 함께 정리해 주었다.

비록 내가 옆에서 권미현을 교육하듯 조언해줄 수는 없었지만,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을 컨택할 생각이었는지 등을 신입들이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후우……. 교육이 가장 힘드네. 그래도 이지연 쪽은 딱히 손 델 일 없어서 다행이야.’

디자인 본부장인 이지연은 권미현과 달리 손이 가지 않았다. LGA에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회사 짬도 있었고 원채 일머리도 좋은 사람이다 보니 부족한 점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맡은 업무를 잘 진행했다.

디자인 본부 산하의 웹툰 본부는 추가 채용을 통해 기존 2 파트에서 3 파트 체재로 변환됐다.

기존 멤버로 구성된 1 파트는 ‘인턴사원 회장님’ 담당. 2 파트는 천명 작가가 종이책으로 출간했던 ‘아미파 무림학관의 1타강사’의 웹툰화. 그리고 이번에 새로 신설된 3 파트는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의 웹툰 제작을 진행 중이다.

‘웹툰 쪽은 상황 봐서 인력을 더 늘려도 되겠어.’

스튜디오 해츨링과의 드라마 판권 계약을 핑계로 뺐어온…… 아니 가져온 코즈일의 웹툰화 판권 중에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경우는 아직 제작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 판권은 가져왔으니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불지파’는 실질적으로 이지연이 속한 웹툰 1파트 에서 진행했으면 하는 게 내 욕심이다.

‘2 파트와 3 파트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지연이 있는 1 파트가 현재로서는 확실히 에이스니까.’

물론 외주를 맡겨 진행한다면 웹툰화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불지파의 경우 웹툰화가 되었을 때 상당히 기대가 되는 글이다.

‘소설 매출은 비슷하지만 웹툰은 역시 액션이 있는 부분이 차이가 클 테니까.’

연재 당시의 내 글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회차별 매출 수는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이 글들을 모두 웹툰화 시켰을 때 나오는 매출 차이는 상당할 거로 예상된다.

웹툰의 경우엔 웹소설과 비교했을 때보다 독자 연령대가 확연히 낮다. 그래서인지 액션이 많은 부분일수록 미리 보기 수익이 더 크다고 하지.

“정우 대표, 그건 어떻게 됐어? 드라마화 진행하는 거? 추가 미팅 일정은 안 잡혔으려나?”

구 LGA 사무실에서 권미현 본부장과 함께 업무 중이던 단풍 삼촌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다.

그리고 나는 저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지.

“경영 본부장님. 이미 말씀드렸죠? 어떻게든 윤선미 씨 보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미팅 오시려면 멀었습니다. 알고 있는 거 그만 물어보시죠?”

“아, 알고 있기는? 깜빡해서 그럽니다, 깜빡해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기억력 좋은 사람.

아이큐가 높은 사람.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

이 모든 게 포함된 사람이 단풍 삼촌이다.

그런데 깜빡했다고? 턱도 없는 소리다.

‘아저씨 아니랄까봐……. 음흉하다, 음흉해.’

단풍 삼촌은 어떻게든 스타 작가 윤선미와 접점을 만들어 보려 애를 쓰는 모양새.

물론 나는 도와줄 생각이 없지. 일에 공사 구분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하여간 윤선미 작가님 덕분에 큰 도움이 되긴 했네.’

스튜디오 해츨링과 미팅을 했던 지난날, 나는 고영호 대표에게 ‘인턴사원 회장님’의 판권 계약 일정을 조금 미뤄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내가 처한 사정을 설명하며 BS북과의 계약이 아닌 LGA컴퍼니와 계약을 할 때까지만.

‘윤선미가 아니었으면 솔직히 말도 못 꺼낼 일이었지.’

아무리 내가 전후 사정을 설명한다고 해도 남들이 보기에 나는 산업 스파이 같이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제작사 대표는 윤선미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고 짧은 고민 후에 내 청을 들어줬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판권 계약은 우리 LGA컴퍼니를 통해서 하기로.

‘벌써 궁금하네. 나중에 스튜디오 해츨링과 판권 계약을 한 게 LGA컴퍼니라는 사실을 강경진이 알게 된다면.’

강경진의 얼굴이 구겨지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짜릿한 기분이다.

“정우 대표. 국가 지원 사업은 계속 알아보고 있는데, 딱히 마땅한 건 없네? 연말이라 그런지 우리가 찾는 분야 뿐만이 아니라 지원 사업 자체가 많이 없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내년 초까지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죠. 계속 모니터링만 해주세요.”

단풍 삼촌은 중소기업 대상의 출판업 지원 혹은 웹툰 제작 지원 위주의 국가 지원 사업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각 정부 소관 부처는 주로 연초에 예산안을 편성한다. 그렇기에 연말인 지금은 애매하게 남은 예산을 처리하려는 식의 공고나 재공고 뿐. 우리가 찾는 마땅한 사업은 딱히 없는 모양이다.

“……어?”

“왜요? 무슨 일이에요?”

별일 아닌 일엔 ‘어 금지’가 국룰인데?

여기선 나도 평사원이 아닌 대표.

단풍 삼촌의 낮게 혀 차는 소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문체부에서 낸 공고인데, 플랫폼 구축 사업이 떴어.”

“플랫폼 구축? 우리가 찾는 건 아니잖아요?”

2014년도인 지금 눈여겨 볼만한 플랫폼은 소설피아와 웹월드 그리고 테일랜드 이렇게 셋뿐이다. 아, 물론 전 판무 1팀 팀장이던 한우석이 이직한 더노벨이 아직 살아 있긴 하다.

‘더노벨은 몇 년만 지나면 개같이 멸망할 플랫폼이니 딱히 신경 쓸 것도 없지.’

여하튼 지금은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웹월드와 테일랜드도 웹소설 플랫폼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

그렇기에 굳이 플랫폼 구축 사업을 알아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왠지 단풍 삼촌은 공고를 더욱 자세히 살피며 눈을 빛냈다….

“그렇지. 우리가 찾는 건 아니긴 한데……. 예산안 규모가 좀 있어서…….”

“얼마짜리길래?”

“백 오십.”

“백 오십?”

“백 오십억.”

“……?”

백 오십억.

BS북이 올댓스토리에 투자받은 금액에 다섯 배가 넘는 금액이다.

예상보다 훨씬 큰 액수에 잠시 얼었던 머리가 꽃밭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못 먹는 감을 탐내 봐야 배탈만 날 일이니까.

“시기가 참…… 애매하긴 하네. 차라리 몇 년 후에 웹소설 시장이 좀 더 활성화된 시기였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면 소설피아랑 다른 플랫폼들이 자리 잡기 전이었어도 좋았을 건데. 춘추전국시대에 플랫폼 사업에 뛰어 들기는—”

“한국이 아니야.”

“……?”

“한국이 아니라고. 해외 기반 플랫폼 구축 사업이야. 여기.”

단풍 삼촌이 슬쩍 나를 향해 모니터 화면을 기울였다. 그리고 화면에 적힌 건 예산 백 오십억짜리의 해외 플랫폼 구축 사업 공고였다.

그것도 소설과 만화 기반 웹 컨텐츠의 플랫폼 사업. 아마도 한국의 웹소설과 웹툰 형태를 염두한 사업으로 보인다.

‘가만…… 생각해보자면…….’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웹툰 플랫폼의 해외 진출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망해가던 한국 만화 사업을 웹툰이란 이름으로 부흥시킨 웹월드와 테일랜드 역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은 상당히 늦어졌으니까.

테일랜드는 작년인 2013년 일본에 ‘테일망가’ 라는 이름으로 웹툰 사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테일웹툰’이란 이름으로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는 기사가 나온 수준이니까.

‘테일랜드의 대항마인 웹월드도 지난 7월이 되어서야 일본 시장에 진출했어.’

웹월드와 테일랜드도 이제야 막 해외 플랫폼 사업에 진출했기에 이들은 웹툰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웹툰이야말로 접근성도 빠르고 확실하게 돈이 되는 사업이니까.

심지어 공고를 살피니 한국 정부와 해외 정부가 함께 진행하는 국책 사업인데, 이 사업이 진행된다면 웹툰뿐만이 아니라 웹소설의 해외 시장 선점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문제는 해외 플랫폼 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나라가 전혀 예상 못 한 이름이란 점이다.

“브루…… 나이?”

동남아의 석유 왕국으로 유명한 나라.

그곳은 브루나이 다루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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