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그럼 잘 받아 갑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굿모닝이요.”
윤선미 작가와의 미팅 다음 날.
평소의 하루처럼 조팟을 제외한 모두가 밝은 인사로 화답했다.
“투고작은 어떻게 됐어요?”
그리고 오늘도 조팟새낀 어김없이 인사도 않고 지 할 말만 한다.
“작가님께서 좀 더 고민해보고 연락 주신대요.”
“흠……. 원래 첫날에 바로 계약 안 하고 생각해본다고 하면 계약 잘 안 되는데. 시간만 버렸네?”
꼽주기가 디폴트인 조팟놈은 내 미팅이 계약으로 바로 성사되지 않은 게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스타작가 작가님: 정우 씨, 1화 원고 썼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빨리 쓰셨네요?
—스타작가 작가님: 배우 생활할 때
이야기여서 그냥 쭉쭉 써지더라구요
—네, 빠르게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조팟의 헛소린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스타작가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아, 스타작가는 어제 만든 윤선미의 필명이다.
어제 나는 윤선미와 계약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BS북이 아닌 LGA컴퍼니와 계약을 했을 뿐이지.
‘내가 퇴사하면 1/3의 확률로 조팟놈이 담당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래선 안 되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BS북에서 퇴사한다면 조팟놈이 스타작가 윤선미를 눈독 들일 게 뻔한 상황이다.
별의별 뻘소리를 놓으며 이창윤 매니저 대신 자기가 적임자라고 할 테다. 거기다 김동현 팀장은 판무 1, 2팀 통합 팀장이 될 거니 작가 관리에는 점점 더 손을 떼고 관리 업무에만 치중할 테고.
“세…… 세상에! 진짜로?! 정우 매니저님이 코즈일 담당자인 것도 놀라운데……. 코즈일 본인이라구요?”
“작가님, 이 부분은 꼭 비밀로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 아니! 노원지귀도 편집자님, 아니 작가님 본인이고?”
“예예. 죄송하지만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서—”
“코즈일 담당 편집자님이랑 계약 못 하면 드래곤에 글 투고할 생각이었단 말이에요! 내가 지금 안 놀라게 생겼어요?”
“…….”
전날 스타작가와의 미팅 자리에서 코즈일과 노원지귀가 모두 나란 사실 그리고 LGA컴퍼니의 실질적인 대표가 나인 것까지도 밝히자 스타작가 윤선미의 입은 한참을 다물어질 줄 몰랐다.
‘배우라 그런지 딕션이 아주 또렷했지…….’
루프탑 바가 윤선미의 가게이기도 했고 어제는 휴무라 가게 내부에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스타작가가 광활한 성량으로 내뱉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마치 뇌리에 박히는 듯했다.
스타작가는 정말 내 팬, 아니 코즈일과 노원지귀의 팬이 맞는 모양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사실을 밝히자 윤선미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의욕이 불타올랐으니까.
“스타작가님, 그런데 지금 하시는 일이 많으신데 작가 생활에 무리는 없으실까요? 웹소설은 다른 문화 콘텐츠보다 소비하는 시간이 빨라서 하루에 한 편, 못해도 한 주에 다섯 편은 써 주셔야 하세요.”
“후훗, 그건 걱정 마요. 아역배우부터 시작해서 이 자리에 어떻게 오래 살아남았는 줄 알아요? 누구보다 독해서예요. 잠도 줄여가면서 쓸 테니까 최소 주에 5화. 그건 걱정 말아요.”
진작 인의 보육원 공식 윤선미 덕후인 단풍 삼촌의 설명을 들었기에, 그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는 대략 파악됐다. 하지만 배우물이 잘 아는 분야라고 해도 글로 쓰는 건 다르기에 내심 걱정되긴 했는데.
‘하루 만에 2화나 보내주다니. 정말 열정이 넘치시는데?’
내가 출판사 매니저일 때 가장 의욕이 넘치는 순간은 작가님의 열정을 공유할 수 있을 때다.
신상 백처럼 따끈따끈한 원고에서 작가의 열정과 열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오……. 좋은데? 아니 너무 좋은데?”
비록 1화는 프롤로그여서 짧긴 했지만, 자신감 없던 무명 배우가 과거로 회귀하는 파트는 오히려 짧아서 더 임팩트가 있다.
그리고 곧 이어진 2화는 바로 오디션 관련 내용.
여기서부턴 스타작가, 아니 배우 윤선미의 실제 경험이 녹여져 있어서인지 마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있다.
띠링— 띠링— 띠링—
살갗에 느껴지는 찌르르한 전율을 느끼며 본격적인 피드백을 진행하려는 그 순간.
카톡이 연신 울려댄다. 편집자 박정우의 카톡이 아닌 노원지귀 박정우의 카톡이.
내가 사용하는 폰은 총 셋.
그중에서 코즈일 신분의 폰은 아예 전원을 꺼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BS북과의 계약을 위해서만 사용한 폰이니까.
그런 이유로 편집자로서의 업무용 폰과 노원지귀 폰만 사용하고 있는데, 온종일 카톡이 울리는 작가방의 알람은 꺼뒀기에 이렇게 진동이 오는 건 LGA컴퍼니 임원진들의 연락이 올 때뿐만이다.
—단풍 삼촌: 야야! 어떻게 됐어!
—단풍 삼촌: 선미 씨랑 미팅 날짜 안 잡았냐고?
—단풍 삼촌: 정우야! 삼촌 급하다! 답변 바람!
—단풍 삼촌: 정우야아!!!!!
—이무진 본부장님
업무 시간입니다
—단풍 삼촌: 아니 정우야…….
—저 대표입니다
호칭은 똑바로
—단풍 삼촌: 아니 대표님…….
—작가님도 꼭 필명으로
불러 주시고요
일하세요 그럼
저 바쁩니다
윤선미와 드래곤과의 계약 사실을 알린 후 단풍 삼촌은 광적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에 사적인 감정을 섞으면 안 되는 일이지.’
사실 어제 미팅 자리에서 스타작가에겐 이미 운을 띄워뒀다. LGA컴퍼니의 경영 본부장이 상당한 팬이라고.
“후훗, 나 아직 안 죽었나 보네? 다음에 회사로 인사드리러 갈게요.”
“최소 10화 분량부터 쌓고 오시죠 작가님. 지금은 우선 초반 부분 설정도 잡아야 하고 1일 1화 쓰시는 것도 적응하는 게 먼저니까요.”
“알겠어요. 앞으로도 빡세게 굴려줘요.”
물론 스타작가의 방문 예정을 단풍 삼촌에겐 알리지 않았다. LGA컴퍼니와 계약을 한 건 배우 윤선미가 아닌 웹소설을 쓰는 스타작가이니까.
나중에 상황을 봐서 단풍 삼촌을 놀래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저…… 정우 매니저! 정우 매니저, 메일! 메일 봤어?”
“아뇨?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놀란 토끼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김동현 팀장이 경기를 떨듯 고함을 질렀다.
나와 우리 2팀뿐만이 아니라 옆 팀 매니저들까지 김동현 팀장을 향해 시선을 돌릴 정도의 데시벨.
‘벌써 연락이 온 건가?’
김동현 팀장이 광역 어그로를 끌며 주의 시선을 모두 사로잡는 이유가 대충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으핫핫핫핫! 아니이! 인턴사원 회장님 드라마화 제안이라니!”
“헐, 대박.”
“와아…….”
역시는 역시다.
어제 미팅 자리에서 스타작가는 말했었다.
내 작품들 중에서 특히 인턴사원 회장님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고.
그리고 몇 달 전 자기 바에 종종 들리는 드라마 제작사 대표에게 요즘 재미있게 보는 소설이라고 슬쩍 운을 띄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제작사 대표가 앉은 자리에서 내 글을 후루룩 읽었다고 하더니만.’
게다가 며칠 전.
그 제작사 대표는 윤선미에게 코즈일 작가 연락처를 아냐고 연락했다고 한다. 그러니 조만간 연락이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빠르네?’
“정우 매니저, 일단 회의실로 가자고.”
“팀장님, 저도 파트장으로서 회의 참석하고 싶습니다만?”
“팀장님, 저도요!”
“어허이! 아직 확정도 안 된 건데, 뭘 그렇게 다 몰려와아?”
회의실로 우르르 이동하는 무리의 앞에 선 김동현 팀장은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양어깨와 콧대는 한없이 솟구쳐 올라가 있다.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 역시 당당한 걸음걸이인 건 마찬가지였고.
“정우 매니저님, 진짜 축하해요!”
“스튜디오 해츨링이라니. 진짜 우리 정우 매니저가 복덩이야, 복덩이! 으허허헛!”
“감사합니다.”
스튜디오 해츨링은 웰메이드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유명한 제작사다. 드라마 판권 계약 제안이 온 것도 엄청난 일인데 그게 스튜디오 해츨링일 줄이야.
“좋은 일이긴 한데. 정우 매니저가 축하 받을 일인가요? 코즈일 작가가 노난 거지.”
“어허이, 조팟! 초 치는 소리 할 거면 나가.”
“무슨 초를 쳐요?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조팟의 뱀심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김동현 팀장의 빠른 커트로 마무리됐다. 그도 그럴 게 웹소설의 드라마화란 흔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현로, 즉 현대로맨스 드라마화 판권만 가뭄에 콩 나듯 팔리는 시기였으니까.
‘현판 장르에서 드라마화가 된 건 2018년은 되어서였지 아마?’
2018년도에 웹드라마로 처음 웹소설 원작 매니지먼트 물이 등장한 후 2019년도에 변호사 물이 공영방송에 처음 등장했을 터다.
‘웹소설 원작 드라마가 처음 방영되려면 앞으로도 훨씬 뒤의 이야기라는 거지.’
그렇기에 이건 BS북뿐만이 아니라 웹소설 출판계 입장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분명했다.
“내가 예전에 로맨스팀 팀장이랑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러더라고 드라마 판권 계약을 해도 실질적으로 드라마화로 제작되는 데는 몇 년이 걸린다고.”
“그렇겠죠. 출연 배우 섭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거기다 촬영을 시작한다고 해도 제작사나 배우 측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엎어지기도 쉽다니까요.”
조팟새낀 마치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듯이 말을 꺼냈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LGA컴퍼니의 경우 원작자인 나와 그림 작가인 이지연의 즉각적이고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예외적인 상황이다.
원래 웹툰 제작만 하더라도 계약이 빠그러지는 경우도 많고, 웹툰 제작이 되는데 1년은 넘어가는 게 대다수이니까.
“그래도 뭐 코즈일 작가 입장에선 손해 볼 거 없어. 계약 조항을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이건 판권 계약이니까.”
김동현 팀장의 말처럼 드라마화 판권만 파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화 판권 계약을 한다고 해서 BS북이 즉각적으로 얻는 이득은 없지. 소문을 내면 원작 홍보가 좀 되긴 하겠지만.’
드라마 제작 발표가 나고 본격적인 상영에 들어가야 BS북과 계약된 내 소설의 매출이 더욱 커지고 BS북의 수익도 커지는 구조일 테다.
“우선 작가님한테 말씀드리고 스튜디오 해츨링 측이랑 미팅 일정 잡아보자고. 메일 내용 보니까 직접 만나 뵙고 미팅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그런데 코즈일 작가 괜찮으려나? 그 뭐냐? 대인기피증인가 그런 거 있다고 하지 않았나?”
BS북과 처음 계약 당시 만들어 냈었던 핑계였다. 내가 코즈일인 걸 밝힐 순 없는 노릇이니까. 아직은.
“네, 그렇긴 한데. 작가님하고 한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그래, 잘 이야기하고 말해줘. 작가님이 정 힘들다고 하면 서면으로 처리하긴 해야겠지만, 스튜디오 해츨링에서 보고 싶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자리 만들 수 있게 작가님 잘 좀 설득해줘 봐.”
“네, 바로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 날씨였기에 나는 옥상 대신 회사 근처 카페로 갔다.
골목 사이에 숨겨진 카페여서인지 BS북 직원들 중에선 나 말고는 찾는 이가 없는 곳이다.
마시멜로가 녹아든 핫초코로 몸에 온기를 가득 채운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팀장님, 작가님이 대면 미팅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불안하다고 하셔서…… 아무래도 제작사하고만 미팅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휴, 나와 주시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작가님은 마음에 들어 하시고?”
“예. 그렇긴 한데……. 회의실 가서 따로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김동현 팀장은 여기서 ‘그렇긴 한데’가 왜 나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하지만’ 같은 부사 뒤에 붙는 말이 진짜 본론이니까.
“왜? 뭐길래 그래?”
소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김동현 팀장이 바로 내게 물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까진 아니더라도 다년간의 회사 짬으로 내 얼굴에서 불안감을 읽은 모양이다.
“그게……. 드라마 판권 계약은 좋은데. 웹툰도 빨리 진행했으면 한다고 해서요.”
“LGA랑? 갑자기 왜?”
“그게…… 죄송합니다. 코즈일 작가 대면 미팅 설득하려고 드라마화 제작 같은 게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기회 왔을 때 빨리 잡아야 한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런데?”
“그 말을 듣더니 웹툰도 제안 왔을 때 안 하면 빠그러지거나 그런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하아……. 그래서 LGA랑 웹툰 제작하고 싶으시대? 이제 몇 달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그치, 고작 몇 달만 더 기다리면 되지.
나도 사실 더 기다릴 생각이었다고.
너랑 강경진 말을 들어주는 척해야 BS북에서의 내 평판이 계속 유지될 테니까.
“예……. 작가님 생각이 워낙 완고해서…….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뿐만이 아니라 불 지르는 파이어맨도 웹툰화를 하자고 LGA 측에서 따로 연락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때문에 아무래도 코즈일 작가가 더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불 지르는 파이어맨도? 아……. 그건 액션도 많아서 웹툰화 되면 진짜 잘 팔릴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니까 이 기회에 가져가려고.
“어쩌죠? 강경진 팀장님께는 제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후우……. 괜찮아. 이건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말고. 강경진 팀장한텐 내가 따로 전달할게.”
“감사합니다, 팀장님.”
담당 작품의 드라마화란 실적이 생겼잖아?
역시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지.
회의실에서 나온 후 나는 바로 노원지귀 폰을 꺼내 이지연에게 톡을 보냈다.
—본부장님, 남성천이랑 불지파
웹툰 계약서 바로 보내주세요.
—이지연 디자인본부장: 계약 해도 돼요?
—네, 계약하고 제작만
먼저 진행해 주세요
—심사 준비는 따로
하지 마시고요
웹툰 런칭은 소설 원작 판권도 LGA컴퍼니로 완전히 넘어왔을 때 해야지.
BS북 배 불려 줄 필욘 없잖아?
‘그럼 잘 받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