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39화 (39/201)

#39화 - 윤선미 프로필 읊어봐.

투고작 작가에게 연락한 이틀 뒤.

작가가 미팅 가능하다고 한 저녁 시간에 맞춰 나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바에서 미팅하는 건 또 처음이네?’

약속 장소 근처에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게다가 장소가 장소인지라 술 한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워낙 골목이 많아서 그런지 약속 장소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어디가 어딘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편집자니임— 박정우 편집자님 맞으세요?”

“?”

까랑까랑한 고라니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니 3층 옥상 비닐 막 사이로 고개를 불쑥 내민 누군가가 틈 사이로 삐죽 내민 손을 흔들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작가인 모양이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가니 루프탑 바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파이톤 판무 2팀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안녕하세요, 윤선미에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일전의 통화론 이름도 필명도 안 알려줬기에, 이제야 작가의 이름이 윤선미인 걸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사무실이 합정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훑은 윤선미 작가는 인사와 함께 건넨 명함을 챙겨 들고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초겨울이 시작된 싸늘한 날씨다.

하지만 루프탑 가장자리는 모두 투명한 비닐막 같은 걸로 막혀 있었고, 거대한 실외용 히터가 군데군데 배치돼 있어서인지 공기는 포근했다.

“바(bar)로 오라고 하셔서 사람들이 많을까 봐 걱정했는데, 한적해서 다행이네요.”

“오늘 영업 안 하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요? 사장님이랑 친분이 있으신가 보군요?”

“잘 알죠. 내 가게니까요.”

아이스 브레이킹 겸 스몰토크로 대화를 시작해나가려 했는데, 그녀의 한마디 말이 나를 다시 얼려 버렸다.

어쩐지 부티가 좀 나는 것 같더라니만.

괜스레 새벽부터 일어나 노가다를 뛰러 간 사랑과평화 작가님이 떠오른다.

“아하, 대표님이셨군요?”

“푸흡.”

“……?”

내 말에 웃을 포인트가 있었던가?

뜬금없이 웃음보가 터져버린 윤선미 작가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눈가를 훔치며 웃음을 멈춘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 죄송해요. 진짜 절 모르시나봐요.”

“윤선미 작가님 아니신가요?”

“맞아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윤선미 작가는 옅은 밤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를 귓가로 넘기며 웃었는데, 잠시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풋풋한 미소였다.

“나름 유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 봐요?”

“……네? 아아!”

코주름을 살짝 좁히며 생긋 웃는 그녀의 표정과 익숙한 말에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닌가 봐요?’ 라는 멘트로 2000년대 초반 안방 극장을 달궜던 국민 배우 윤선미!

단풍 삼촌의 첫사랑 그 윤선미?

“아…… 죄송합니다. 제가 티비를 자주 안 봐서 바로 몰라뵈었네요.”

“아니에요. 제가 배우로 미팅하는 것도 아닌걸요?”

작가들 중에 의사, 변호사, 한의사, 약사, 학교 선생님, 소방관 등 다양한 직종의 본업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웹소설 쓰는 배우? 이건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아니지……. 몇 년 뒤엔 소설 쓰는 아이돌 가수도 생기는데. 배우가 글 쓰는 게 딱히 특이할 건 없지.’

하지만 마음과 달리 눈앞의 사람이 연예인이라는 게 자각되자 당황스러운 감정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미안해요. 절 아예 몰라보는 사람이 오랜만이라. 좀 짓궂었죠?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다 웹소설을 쓰시게 된 건가요?”

“제 올해 나이가 몇인 줄 아세요? 마흔둘이에요. 프로필상 나이는 서른아홉이지만.”

“……?”

처음 봤을 땐 많아 봐야 삼십 대 중반이 최대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그때,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여배우로서 아쉬운 점은, 수명이 짧다는 거예요. 물론 계속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원하는 배역은 맡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난 아줌마긴 해도, 마음은 아직 소녀거든요?”

콧등을 찡긋거리며 뱉은 말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그늘져 보였다.

그렇기에 ‘아니에요, 동안이세요!’ 따위의 입발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내가 감독이 될 수 있고 배우가 될 수도 있고. 배경이 한국이 될 수도 있고 해외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에 쓴 글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소설의 장점이죠. 혼자서도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윤선미가 왜 글을 쓰게 된 건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대체 왜 바텐더물을 쓰는 건가 하는 거다.

“지난번 첫 통화 때는 작품의 수정 방향 관련된 피드백만 짧게 설명드렸었는데요. 한 가지 여쭙고 싶은 점이…… 혹시 왜 이 주제로 글을 쓰시게 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별 건 아니에요. 배우 활동은 사실상 은퇴나 마찬가지고 요즘엔 광고만 주로 찍고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티비를 안 봐서 몰랐네요.

“아무래도 잘 아는 분야에 관해 쓰는 게 쉽지 않을까 해서요. 이태원에 루프탑 바를 차린 것도 내가 술을 좋아해서 차린 거예요. 물론 내가 사장만 하는 거지 바텐더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지식은 좀 있으니까요. 글에 쓴 것처럼 저도 술을 마시면서 치유 받는 일도 종종 있었고요.”

사실을 반영했다라…….

마른침이 삼켜진다.

“이세계 바텐더에서 주인공이 총을 엄청 쏘던데…….”

“그건 제가 사격이 취미여서에요. 아! 그렇다고 소시오패스는 아니에요. 덱스터를 진짜 재미있게 봐서 소시오패스 소재를 넣은 거거든요.”

그렇구나…….

덱스터를 재미있게 보셨구나…….

이제야 미스테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작가와 대화를 하면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그런데요 작가님. 제가 하나 더 궁금한 점이 있는데, 작가님께서 잘 아시는 분야에 관해 쓰시는 거면 연예계 관련 소재를 쓰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네? 그걸 누가 보겠어요?”

“?”

나와 윤선미 작가는 거의 동시에 부릅뜬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당황이 어린 내 눈빛을 읽었는지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방송국 관련 내용은 흔한 소재잖아요. 딱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요. 소설피아나 더노벨에도 연예계 관련 소설은 거의 못 찾아본 것 같은데요?”

모르는 소리다.

내가 회귀하기 전 3대 플랫폼 중 하나인 웹월드에선 아예 판타지 드라마라는 장르를 구분해 판드탭을 따로 만들었었다.

‘그 정도로 연예계물이 인기였는데?’

하지만 윤선미 작가는 이걸 모를 수밖에 없겠지. 지금은 2014년이니까.

“작가님. 연예계물은 대중화가 많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몇 년만 지나도 폭발적인 인기가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래요?”

“네, 방송국 PD물, 연예인 매니저물, 매니저가 배우가 되거나 슈퍼스타의 남편이 되는 소재 혹은 내가 키운 딸이 걸그룹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연예계 관련 소설은 아직 없을 뿐이지 절대 먹히지 않는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연예계 물로 써볼게요.”

어? 너무 시원시원한데?

이제 본격적인 설득 멘트를 꺼내기도 전에 바로 연예계 물로 전향하겠다는 말이 되려 나를 놀라게 했다.

“왜요? 연예계 관련 소재가 괜찮으니 추천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아뇨……. 맞습니다. 다만 연예계물이 지금 유행하는 소재도 아닌데 제 말을 바로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훗, 별말씀을요. 좋은 작품 내는 출판사를 믿어야죠. 그게 제가 BS북에만 투고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였다니 다행이다.

내가 편집자로서 가장 경계하는 작가는 자신의 주관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주관이 없다는 건 생각이 깊지 않다는 뜻이기에 글도 트렌드에만 맞춰 쓰기 급급하니까.

내가 계약을 원하는 작가, 그리고 이끌고 싶은 작가는 비록 필력이나 연출이 매끄럽지 않아도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한 작가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성장성이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

“저, 근데…….”

첫 만남부터 한없이 당당하던 그녀가 쭈뼜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 말하길 보통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나오는 자세라고 한다.

“예, 작가님.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편히 말씀해 주시죠.”

“다른게 아니라. 제가 BS북에만 투고했다고 했잖아요. 좋은 작품 내는 출판사여서 믿는다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코즈일 작가님을 담당해주신 편집자님, 그분과 계약 진행할 수 있을까요? 배우도 마찬가지거든요. 같이 출연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컨디션도, 작품 퀄리티도 변해서요. 소설은 제가 처음이긴 하지만 소설엔 감독, 동료 배우, 스태프들의 역할을 담당 편집자가 모두 맡는다고 생각해서요.”

윤선미 작가의 얼굴엔 미안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가 보기엔 아무래도 내가 코즈일을 담당하는 작가로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코즈일 작가님의 글을 보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쓸 결심을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아니, 실은 꼭 코즈일 작가님을 담당해주셨던 편집자님께 제 글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만약 해당 편집자님께서 많이 바쁘시다면 제 글의 출간 시기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요.”

‘내 팬이었다니. 이건 또 예상 못 했는데?’

아니 내 팬이라기보다 내 글을 담당하는 매니저의 팬인가? 코즈일도 코즈일 담당 편집자도 결국 다 나니까 내 팬이긴 한데.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하지?’

내가 코즈일의 담당 편집자란 걸 밝히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언제까지 BS북에 다닐지 모른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윤선미가 BS북과 계약을 하고 런칭 준비 도중에 내가 퇴사를 하게 된다면, 더 최악의 경우엔 그녀의 글이 연재를 하는 도중에 내가 퇴사를 한다면?

‘교정교열은 다른 매니저들도 비슷하게 한다고 쳐도 윤문의 느낌이 확연히 다를 텐데…….’

내가 다른 매니저들보다 윤문 실력이 더 뛰어나고 아니고를 떠나서, 코즈일의 담당 편집자에게 글을 맡길 생각에 BS북에 투고했다는데.

그녀에게 중도에 담당자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말을 하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런. 대놓고 작가를 빼올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정말 어.쩔.수.가. 없는 상황이잖아?’

아빠가 늘 말하는 인의에 살짝 걸리는 감이 있긴 하다만. 그래도 어쩌겠어?

작가가 나를 원하는데?

“작가님, 죄송하지만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 수 있을까요?”

“쭉 들어가서 왼쪽 코너로 돌면 남자 화장실 있어요.”

“실례하겠습니다.”

화장실 문을 닫은 후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윤선미의 골수팬인 단풍 삼촌에게.

“삼촌, 윤선미 프로필 읊어봐. 인성 위주로.”

아무래도 윤선미를 BS북에 뺏길, 아니 넘겨줄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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