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38화 (38/201)

#38화 - 편집은 신의 일이다.

“정우 매니저……. 괜찮겠어?”

“담당 작가님들 비축도 충분하고, 투고작 제가 담당할게요.”

내게 괜찮겠냐고 묻는 김동현 팀장뿐만이 아니라 이창윤 매니저도 무척 놀란 표정이었고 조팟 역시 감동의…….

‘그럼 그렇지. 조팟새끼.’

진성 싸패 조팟놈은 자기 짐을 덜었다는 듯 광대를 움찔대며 지옥에서 주워온 촌스러운 뿔테 안경을 쓸어 올릴 뿐이다. 매번 명품 안경이라며 발광하지만, 지 쌍판처럼 구려보이는 그 뿔테를.

“뭐, 정우 매니저가 담당하고 싶다면야. 투고작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죠? 내가 메일 쓴 거 보고 따라하면 되는데.”

“네, 참고해서 할게요.”

갔다 치워라 조팟놈아.

니가 하는 인수인계 따위 필요 없으니까.

짐을 덜어 날아갈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조팟놈의 면상에 풀펀치를 날리고 싶지만.

‘내가 삼촌들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욘 없지.’

인의를 지키라는 보훈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긴다.

딸칵— 딸칵딸칵—

‘하……. 1팀 이 새끼들 봐라? 얘들도 양아치네?’

회의가 끝난 후.

호기롭게 투고작 메일과 나스 폴더의 투고작 관리 엑셀 리스트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팀 이 양아치 놈들이 투고작 답변을 단 하나도 보내지 않았네?

투고작 메일에 마지막으로 회신을 한 건 지난 9월 26일. 우리 2팀이 관리하던 시기 조팟놈이 보낸 게 마지막 답변이었다.

10월부터 투고작 담당이었던 1팀이 투고작 회신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아예 의도적인 직무 유기가 분명해 보인다.

‘투고작 관리하기 싫은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선 넘네.’

비단 지들이 해야 할 업무를 넘겼다는 사실보다 애타게 연락을 기다릴 작가들을 방치했다는 사실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BS북 홈페이지와 파이톤의 공식 블로그에는 투고작 회신 기준이 없다. 1팀과 2팀이 분기별로 투고작 업무를 나눠서 하는 건 최대 3달 안에 답변을 주겠다는 뜻.

하지만 작가들이 이 사실을 알 리는 없다.

마냥 메일함만 보면서 기다리고 있겠지.

‘이런 좋좋소와 계약하겠다는 생각으로…….’

암담해진 마음을 억누르고 투고작들을 하나하나 훑어 보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흐음…….”

확실히 투고작이라 그런지 글에 여기저기 구멍이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필력을 떠나 소재 자체가 지나치게 특이하거나 장르 소설에 적합하지 않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중한 원고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를 짓고 지상에 유배된 환웅의 후손 몸에 빙의되었다는 도입부는 신선했으나…….

10월 한 달간 방치된 투고작 수는 27개.

투고작 처리는 분기별 기준이었기에 굳이 지금 당장 처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연락이 먼저 온 투고작 순서대로 빠르게 작가님들께 답변을 보냈다. 그들이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알기에.

—조팟: 정우 매니저님

—조팟: 그거 일일이 다 피드백해줄 필요 없음

—조팟: 그냥 지금 원고로는 계약 어렵다는 내용만 복붙해서 쓰면 됨

—김동현 팀장님: ㅇㅇ걍 복붙해서 끝내

—김동현 팀장님: 괜히 시간 버리지 말고

—괜찮습니다

이대로 진행 할게요

—조팟: 뭐…… 그러던가요

편집자를 업으로 하는 놈들이 저렇게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니. 편집자의 신이 있다면 저런 새끼들은 이미 무간지옥에 있어야 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길게는 한 달을 넘게 기다렸을 작가들에게 주는 피드백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김동현 팀장과 조팟놈의 말이 상당히 거슬린다.

하지만 이미 뼛속까지 게으름과 귀찮음 그리고 오만이 가득 찬 저들에게 충언을 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일 터.

그러니 그냥 보여주려 한다.

같은 투고작이어도 조팟놈이 관리할 때와 내가 관리할 때 얼마나 차이가 날 수 있는지를.

타다닥— 타닥— 타다닥—

호기로운 생각으로 열심히 피드백을 해 나갔지만, 계약 가능해 보이는 작품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당장 계약이 가능한 작품은 0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긴 했지만 막상 원고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더 참담한 수준이다.

거기다 판무 매니저들이 투고작을 꺼려 하는 이유는 우선적으로 지표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도 사람인지라 같은 판무팀에 있다고 해도 좋아하는 장르도, 보는 눈도 다르니까.

본인 취향에 맞는 글이라고 해서 잘 팔리는 글도 아니고.

그렇기에 나도 취향은 모두 내려놓고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작품을 보려 했다. 그럼에도 유료화를 하기엔 대부분 부족한 글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말만 적지 않고 최대한 내 작가로서의 노하우를 피드백에 녹여내려 애썼다. 단 몇 줄의 문장이라도 신인 작가들에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점심시간도 거의 쉬지 않고 투고작 회신 메일을 보내니 벌써 오후 5시 반.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온종일 투고작 회신에만 열을 올렸는데도 계약이 가능한 작품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투고작 수는 단 하나.

상세한 피드백으로 작가들에게 개선 사항과 함께 응원의 말을 보냈지만, 마음이 갑갑하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든 간에 계속된 회신 메일의 주된 내용은 명백한 거절이었으니까.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투고작 파일을 열었다.

휘영청 떠오른 달 두 개가 모두 보름달인 흔치 않은 밤. 행상인 압둘은 쫓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알리파,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달려줘!”

“므에에—”

호기롭게 고향을 떠나 도시에 도착한 지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던 하루였다.

‘잡히면 죽을 거야. 도망쳐야 해, 무조건. 제발 누구라도…… 어? 집?’

도적을 피해 마물의 숲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둠을 홀로 비추는 달빛 아래 신비로운 벽돌집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누구도 마물의 숲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고, 살아 돌아온 자 또한 없었다.

그렇기에 정체불명의 벽돌집은 어쩌면 도적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존재하는 곳일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리파도 슬슬 한계인지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고, 뒤에선 도적들의 고함이 점차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압둘은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쿵쿵쿵!

“살려 주세요! 안에 누구 계세요? 도적에게 쫓기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마지막 투고작의 제목은 ‘이세계 바텐더’.

다른 투고작과 달리 메일 본문엔 아무런 내용 없이 잘 부탁한다는 말과 전화번호만 달랑 남겨져 있는 원고다.

“오……. 울음소리가 좀 이상하다 했더니만. 말이 아니었네?”

달이 두 개 떠있다는 도입부부터 글의 배경이 이세계인 걸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적에 쫓기는 꼬마 행상인을 태우고 도망치는 건 알리파라는 혹이 여러 개 달린 낙타과의 동물이었고.

드르륵— 드륵—

그리고 압둘이라는 이름의 행상인이 숲속에서 우연히 도달한 곳이 바로 ‘문라이트’라는 바(bar) 라는 내용으로 본 내용이 시작됐다.

특출나게 흥미롭다기보단 무난무난한 전개라고 생각되던 와중.

문라이트의 사장인 민규라는 사내가 바에서 나와 압둘을 바 안으로 피신시키고 화려한 총질로 도적들을 모두 쏴 죽였다.

‘어……. 압둘이 주인공이 아니었네? 그런데 총?’

갑자기 등장해 난데없이 총질을 시작한 바텐더는 마녀사냥꾼 수준으로 총알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출신이나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이름이 민규인 걸 보니 한국인이 맞는 것 같은데?’

주인공의 이세계 생활이 몇 년 차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바텐더가 눈 하나 깜빡 않고 도적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에 앞으로의 전개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조금 더 읽어 봐야 알겠는데?’

드르륵—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내가 바를 운영하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다.

물론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게 가장 크다.

하지만 부드러운 선율에 곁들이는 한 잔의 술은 낯선 이와의 만남에서도 쉽게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 때문이다. 마치 편견 없던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근데 마스터, 지금 주신 술은 대체 뭐예요? 제가 부탁한 거긴 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편해지는 술이 있다는 걸 믿진 않았거든요. 근데 이건……. 지금껏 맛본 술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테이블에 엎드리다시피 한 압둘은 홀짝이던 진갈색 칵테일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

“블랙 러시안이란 술이에요. 보드카에 깔루아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죠.”

“……음, 깔루아? 보트카? 칵테일? 그게 무슨 뜻이에요?”

프롤로그를 넘기니 3인칭이던 시점인 1인칭으로 바뀌어 진행됐다.

주인공은 민규가 맞는 모양이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음……. 어어? 음…….”

“정우 매니저, 뭔 일 있어요?”

“아, 아뇨. 그냥 투고작 보고 있었어요.”

뒤로 갈수록 예상 못 한 반전의 반전이 꼬리를 물자 나도 모르게 침음을 흘린 모양이다.

이창윤 매니저에게 머쓱한 표정으로 별일 아니라 말하곤 계속 글을 읽어 나갔다.

‘조금 난해한데? 그렇다고 나쁘진 않고…….’

민규는 알고 보니 미국에 살던 한인 바텐더.

총기 소유가 합법인 주에 살던 주인공 민규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술의 신과 거래를 하게 된다.

바텐더인 민규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술을 대접하고 신의 마법적인 힘으로 자신의 가게 창고 문을 열면 이세계로 연결된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소시오패스?’

총질을 하며 등장한 주인공은 알고 보니 감정이 결여된 소시오패스라는 설정.

신과의 계약 조건도 이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궁극의 술’ 한 잔을 찾아서 건네면 그 대가로 주인공에게 감정을 줄 수 있다는 그런 설정이다. 그런데.

‘전반적인 내용은 힐링물인데?’

작가의 의도는 얼추 파악이 된다.

감정이 결여된 주인공이 각지에서 찾아온 이세계 손님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서로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이세계판 심야식당 같은 내용.

하지만 힐링물이 메인이 되는 내용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인공의 손속에 자비 없는 총질.

소시오패스 설정. 이 두 가지가 가장 걸린다.

주인공 캐릭터가 특이하기에 캐빨로 독자 머리끄댕이를 잡고 끌고 간다면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거의 2화에 한 번꼴로 새로운 등장인물이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구조이기에 캐빨에 독자를 이끌고 갈 충분한 힘이 담겨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잘 다듬는다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글을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일. 그게 바로 편집자가 할 일이지.

“저 투고작 계약하겠습니다.”

“진짜로? 괜찮은 글 있었어?”

내게 묻는 김동현 팀장뿐만이 아니라 조팟과 이창윤 매니저 역시 반신반의 하는 표정이다.

“네, 작가님께 연락드리고 미팅 일정 잡아 보려고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스티븐 킹은 그의 저서에서 말했다.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지만 편집은 신의 일이라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투고 메일 받은 파이톤의 박정우 매니저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리고 나는 신의 일을 이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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