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또 삭제가 되었다면?
삼촌들의 도움으로 LGA컴퍼니의 사무실 이전은 빠르게 끝났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인 10월 6일.
새로운 사무실에서의 본격적인 근무가 시작됐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대표니임!
새로운 사무실 장난 아닌데요? 완전 좋아요!
직원들도 다들 엄청 좋아하구요!
—다행이네요
—삼촌들하고 임의로
옮겨 두긴 했는데
—신티크나 모니터
배치 괜찮나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헐 삼촌들이 해주신
거였어요? 거의 포장 이사 수준인데?
아침부터 이지연의 카톡이 정신없이 울리는 걸 보니 새로 이전한 사무실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그런데 확실히
분위기가 좀 그렇긴 하네요
—아, 무진 본부장님
출근하셨어요?
—어시 분들이
놀랄 만하겠네요
단풍 삼촌의 거대한 덩치를 배려해 그동안은 재택근무로 배려했는데.
아무래도 단풍 삼촌의 얼굴에 다들 얼어붙은 모양이다.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아니ㅋㅋㅋ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원래 비좁은 곳에
있다가 넓은 곳으로 오니까 뭔가 느낌이
묘해서요 ㅋㅋㅋ
아, 그런 거였나?
당연히 단풍 삼촌 얼굴 때문일 줄 알았지.
—다음 주부터는 신입 직원들
입사하기 시작할 테니까
지금처럼 휑하진 않을 거예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지금도 썩 나쁘진 않아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아직 첫날이라 적응이
잘 안 되는 기분이랄까?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그보다 원래 사무실 입주자는 구했어요?
—아뇨 입주자 따로
안 구하려고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엥? 왜요? 큰돈은
아니더라도 매달 나가는 돈이 얼만데! 아깝잖아요!
내 옆집인 기존 LGA컴퍼니 사무실 월세와 관리비를 합치면 대략 70만 원 선.
빈방에 월세만 나간다면 낭비일 따름이지.
—그건 걱정 마요
—따로 쓸 데가 있어 보여서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쓸데요? 설마 제 휴게소로?
지연이 누나 왜 이래?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어째 전보다 더 뻔뻔해진 것 같다.
뭐, 이제 나와 더 친해졌다고 느껴서 그러는 걸 수도 있긴 하겠지만, 여하튼 이지연을 위한 휴게소는 아니다.
—일단은 작가들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려구요
—회사 확장하면 직원
휴게소도 당연히 따로
만들 거니까 그건
너무 걱정 말구요
—이지연 디자인 본부장: 작가들 공간? 설마……
작가님들 통조림 시키는 그런 공간 말하는 거예요?
—통조림까진 아니더라도
드래곤 소속 작가님들이
편하게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작가들의 집필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천명 작가처럼 경제적으로 모든 환경이 풍족한 작가가 있는 반면 노트북 살 돈이 없어 핸드폰으로 글을 쓰거나 피시방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여럿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존 LGA컴퍼니 사무실을 작가들의 집필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작가들에게 집필을 할 공간을 마련해 준다면 그곳에서 작가들끼리의 정보 공유 및 소통도 원활하게 될 테니까.
‘작가들의 소통을 막을 필요는 없지. LGA가 쫄릴 일은 조금도 없을 테니까.’
BS북의 매니저들은 작가들이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표면적인 이유론 사실 검증도 안 된 엉뚱한 정보가 왜곡되어 퍼지는 게 싫다는 거지만, 작가들은 바보가 아니지.
잘못된 정보는 대개 극소수일 뿐.
거기다 머리가 모자란 작가가 아니라면, 진위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엉뚱한 소리는 자체 필터로 알아서 잘 걸러낸다.
출판사 매니저들이 작가들의 소통을 꺼려하는 건 단지 작가들의 정보가 많아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곧 힘이니까.
‘정보를 막아야 작가들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야 고분고분하게 다루기 쉽다고 여기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작가 사무실에서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LGA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비판받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면 될 일이다.
거기다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면 잠시 얼굴 붉히더라도 소통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게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출판사의 방식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리가 잡히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어.’
빈 사무실이 지금 당장은 작가들의 작업실로 사용될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다양하게 사용되는 방안도 괜찮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아카데미 같은 걸 해도 되고.
* * *
LGA컴퍼니가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한 그다음 주 월요일. LGA컴퍼니엔 새로운 직원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하니 갑갑하긴 하네.’
그래도 이전엔 LGA를 담당하는 게 이지연 혼자였다면, 이제는 단풍 삼촌과 권미현도 함께다. 그들 덕분에 마음의 부담이 전처럼 크지는 않다.
신규 직원은 기존 계획보다 좀 더 많이 충원하게 됐다. 신규 채용 직원은 웹툰 본부 소속 여덟, 디자인 본부 소속 디자이너 둘. 각색가 하나, 판무 매니저 둘 그리고 단풍 삼촌의 일을 도울 경영 지원팀 매니저 하나다.
마음 같아선 판무 매니저들을 더 뽑고 싶었지만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인성이 괜찮으면 실력이 미흡했고, 실력이 괜찮다 싶으면 인성이 부족하고, 실력 인성이 다 괜찮은데 작가들하고 통화도 못 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인 경우도 더러 있고.
‘어쩔 수 없지. 조바심 난다고 부족한 사람 뽑았다가는 우리 회사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도 있으니까.’
반면 웹툰 어시들의 경우엔 괜찮은 지원자들이 줄을 이었다. ‘인턴사원 회장님’의 웹툰 흥행은 이미 웹툰 작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기존 계획보다 더 많은 수를 충원하게 된 것도 이 이유다.
거기다 강경진 놈이 BS북에서 웹툰 신입 직원들에게 주기로 한 월급보다 훨씬 높은 연봉이었기에 유능한 직원들을 채가기에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정우 매니저. 잠시만.”
새로 입사했을 직원들을 생각하느라 고민이 많은 오후 시간. 파티션 위로 고개를 불쑥 올리 김동현 팀장이 나를 호출했다.
“다음 주 금요일이랑 그 다음 주 월요일 연차 품의서 올렸던데, 무슨 일 있어? 지난주 금요일에도 연차 쓰고. ……설마?”
내가 올려둔 휴가 품의서를 이제 확인한 듯 하다. 여름 휴가도 안 낸 내가 이번 달에만 휴가를 3일이나 내는 게 궁금한 모양.
‘아니 궁금하다기보단……. 다른 회사 면접 보는 건지 의심하는 눈빛이네.’
평소의 곰 같은 가면 뒤에 숨긴 여우 눈빛을 빛내는 걸 보니 내 이직이 상당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직 걱정은 마세요 팀장님. 이직이 아니라 내 회사 일 때문에 그런 거니까.’
지난주 금요일에 연차를 썼던 건 새로 자리를 옮긴 회사의 업무 보고 및 지시가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다음 주와 다다음 주 연차를 쓰는 이유는.
“여름 휴가도 안 가고 했어서요. 이참에 여행이나 좀 다녀오려고요.”
“그래에? 여행 좋지! 어디로 가는데?”
김동현 팀장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입을 광대까지 찢어가며 활짝 미소 지었다.
“동남아요. 해외 여행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처음 가보려고요.”
“동남아 좋지! 여름 휴가도 안 갔는데 이번에 가서 푹 좀 쉬고 오라고, 아하핫!”
“정우 매니저 그거 알아요? 국제선은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는 게 매너인 거?”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조팟님.”
“알면 다행이고.”
조팟새끼의 개그는 받아주기도 짜증 난다.
하여간 금, 토, 일, 월 3박 4일 동안 동남아 여행 계획을 말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며 슬쩍 흘긴 눈빛에 원했던 모습이 포착됐다.
강경진이 자기 자리에서 나를 살짝 응시하다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좋아. 확실히 들었나 보네.’
강경진이 또 쪽지를 삭제할 확실한 증거 자료.
이번에 확실히 모으러 간다.
* * *
“그아하하!! 간만에 해외 나오니 좋구만! 쓰읍~ 하아. 확실히 공기부터 달라.”
“역시 이직하기 잘했어. BS북 퇴사하니까 팔자가 피네.”
“저도 해외는 일본이랑 대만만 가봤는데. 고마워요 대표님.”
10월 24일 금요일 오후.
LGA컴퍼니의 임직원은 덴파사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10월 말인데도 후끈거리는 게 마치 한국의 여름 날씨 같다.
“다들 들뜬 건 알겠는데,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호칭 각별히 주의해 주세요.”
“그럼요 노원지귀 작가님. 잊지 않겠습니다.”
당부를 부탁한 말에도 이지연은 여전히 들떴는지 느물거리며 속삭였다.
“이무진 본부장님이 호텔까지 가는 버스 준비 해두셨을 테니까 직원들 잘 챙겨 주세요. 저는 지금 소속 작가로서 참여한 거니까요.”
“알겠어요. 그런데 작가님은 해외 처음이 아닌가 봐요? 수속 때부터 되게 익숙해 보이던데?”
보육원에 살던 시절. 최소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에 갔었다. 애들 기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아버지, 구광적 원장님 덕분에.
“네, 뭐. 우선 숙소에 짐 풀죠. 본부별 피티부터 바로 진행할 테니까,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걱정 마세요.”
이번 워크샵의 행선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갑작스럽게 LGA컴퍼니의 워크샵을 진행하게 된 건 새로운 회사로의 이전 그리고 새로운 직원들의 합류 등으로 약간은 어색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단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특징이긴 하지만 이번에 회사를 확장 이전하면서 기존의 멤버보다 새로 입사하게 된 신규 직원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워크샵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다고 직원들의 단합과 그동안 고생한 그리고 앞으로 고생할 직원들만을 위해 해외로 오게 된 건 아니다. 강경진이 양아치 짓을 하는 걸 포착하기 위해서가 사실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코즈일 작가님이 피해 입으신 걸 증명해주시고 저도 BS북에서 불공정 계약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걸 공론화시켜주시면 좋겠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지난 차이나 타운에서의 미팅 때 사랑과평화 작가는 자신이 없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이런 말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즈일 본인과 코즈일 글의 담당자인 내가 쪽지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 자료를 찾는다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으니까.
“흠…….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쪽지를 삭제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면요.”
“천명이 형 알아듣게 좀 말해 봐. 그게 뭔 말이야?”
“예를 들자면 소설피아에 접속한 게 노원 작가님이 확실히 아니게 알리바이를 만들자 이거지. 강경진에겐 건수를 만들어 주고.”
천명 작가의 요지는 간단했다.
소설피아 웹사이트가 어떤 식으로 관리가 되는지는 나도 그리고 그 역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허접한 웹사이트의 관리자라도 해외 IP와 국내 IP 정도 구분은 가능하다는 거지.
따라서 나는 확실한 안전을 위해 워크샵 기간 동안은 회사 PC와 집에 있는 노트북, 폰, 타블렛 등 모든 기기에서 소설피아 아이디를 모두 로그아웃한 상황이다.
그리고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천명 작가와 사평 작가가 전처럼 코즈일에게 쪽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또 삭제가 되었다면?
‘그렇다면 범인은 나를 제외한 BS북으로 한정적이 될 테지.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나 보자고? 아마 못 빠져나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