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들은 적 없다고 했다고요?
마치 내가 신인 작가가 아닌 걸 알고 있다는 말투. 신경이 곤두선다.
‘설마…… 내가 코즈일인 걸 아는 건가? 그래서 내가 작가방에 가입하길 원했던 거고?’
띠링—
생각이 정리될 틈도 없이 천명 작가의 카톡이 이어졌다.
—천명 작가님: 글 솜씨가 장난이 아니시던데 ㅋ
—천명 작가님: 그 필력에 신인인 게 말이 안 되죠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이런 건가?
괜히 놀랐다. 하긴, 내가 코즈일인 걸 아는 이들 중에 입 밖에 꺼낼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나를 가입하고 싶어했던 걸까?
단순히 글을 잘 써서?
아직도 왜 나를 작가방에 가입시키고자 한 건지에 대한 대답이 해결되지 않는다.
—천명 작가님: ㅎㅎ 필력도 필력이지만,
실은 작가님 카페를 봐서요
—천명 작가님: 정글북 카페 노원지귀 작가님이
운영자신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천명 작가님: ㅎㅎ 그거 보고 정말 놀랐어요
—천명 작가님: 저도 작가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직접 만들 생각은 엄두도 못 냈거든요
‘아, 이거였구만? 이제야 이해가 되네.’
천명 작가는 자신도 작가들의 정보 공유와 친목을 위해 작가 카톡방을 운영한다고 했다.
—천명 작가님: 정글북은 아주 저희 작가 모임에서도 핫해요
—천명 작가님: 작가님 글을 안 읽어본 분은 있어도 카페는 모두 다 가입해서 활동 중이니까요 ㅎㅎㅎ
정글북은 작가들의 정보 교류를 위해, 그리고 아직 업계를 잘 모르는 신인 작가들이 사기꾼 출판사에 코 꿰는 일이 없게 하게 위해 만든 커뮤니티. 내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작가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띠링— 띠링— 띠링—
<천명 작가님이 노원지귀님을 초대했습니다.>
—낙수효과/판무: 어서오십시오.
—난백(卵白)/무협: 안녕하세요
—맹맹이/현로: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노원지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글물주/현판: 안녕하세요
—릴리안느/로판: 반가워요~
.
.
.
나를 포함해 총 17명이 있는 작가 카톡방.
내가 입장하자마자 작가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천명 작가는 작가 모임방을 여러 개 운영하는데, 나는 필명이 모두 공개된 톡방에만 가입하기로 했다.
‘첫 만남에 3 할은 감춰야지.’
무협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실력을 숨길 때 흔히 나오는 말로 사회생활에도 요긴하게 적용된다. 평소 모든 것을 보이지 말아야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종종 생기니까.
‘오픈챗방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대부분이 전업 작가라는 천명 작가의 말처럼 작가방은 내 기억 속의 오픈챗방과 비슷한 느낌이다. 필명 뒤에 장르를 구분한 것도 그렇고.
과거 내가 몸담았던 오픈챗방이 떠오르자 다시금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간혹 이상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내가 당한 사기를 가슴 아파하고 그걸 돕기 위해 자기 일처럼 돕던 작가님들의 기억이.
‘어? 뭐야? 사평 작가님?’
작가방 대화상대 목록에서 누가 있나 스크롤을 쭉쭉 내려 훑어보던 그때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사랑과평화/다판’ 으로 되어있는 필명이.
독자들 사이에선 대게 사평으로 불리는 사랑과 평화 작가님은 어두운 중세 배경의 다크 판타지를 숨 막히는 몰입감으로 풀어내시는 작가님이다.
‘아직은 그 시기가 오기 전이지만.’
몇 년 후의 사평 작가님은 마치 각성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엄청난 글을 공장처럼 찍어내기 시작하실 거다.
게다가 사평 작가님을 보고 내가 놀란 이유는 단지 팬심 때문이 아니다. 사평 작가님은 BS북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님이기도 했으니까.
‘BS북 작가님을 여기서 뵐 줄이야…….’
BS북이 웹소설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기에 분명 BS북 소속 작가님이 작가방에 한둘은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긴 했다.
그래도 막상 내가 편집자로 일하는 회사의 소속 작가님을 작가방에서 보니 묘한 기분이다.
이전엔 한우석 팀장이 담당했었고 지금 사평 작가를 담당하는 건 강경진, 그 양아치 놈이어서 더욱 신경 쓰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사평 작가님도 계시네요
—전작들 다 재밌게 읽었어요
—팬입니다!
나름 서글서글하게 건넨 인사말.
하지만 사평 작가는 대답조차 없었다.
—난백(卵白)/무협: 사평님은 투잡이셔서 저녁에 들어오세요 ㅎㅎ
작가방에는 발랄한 작가들이 몇 있고 난백이는 필명의 작가가 그중 하나인 것 같다.
—난백(卵白)/무협: 노원님 근데 정말 신인 작가 맞으세요? 진짜 글 너무 잘 쓰셔서 깜짝 놀랐어요
—맹맹이/현로: 신인… 괴… 굇수우
—글물주/현판: 진짜 갓작가이심
—글물주/현판: 올해가 진짜 글 풍년 같아요
—글물주/현판: 코즈일 이후로 이렇게 글 재미있게 쓰시는 분 처음 본 거 같아요
나를 향한 계속되는 금칠.
더군다나 작가방 작가들이 추앙하는 코즈일 또한 나기에 민망한 기분이다.
—글물주/현판: 코즈일 작가님도 작가방 오면 좋을텐데 싫다고 하시니 쩝……
—난백(卵白)/무협: 어쩔 수 없죠
—난백(卵白)/무협: 작가방이라는 게 생소할 수도 있으니까요
잠깐. 이건 또 뭔 소리지?
내가 싫다고 했다고?
나는 들은 것도 없는데?
—사랑과평화/다판: 노원님 안녕하세요! 일하느라 확인이 늦었네요
—사랑과평화/다판: 제가 가다꾼이라
—사랑과평화/다판: 잠시 쉬는시간 ㅎㅎ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가 나온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어리둥절한 그때.
사평 작가가 등장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이미 그에게서 벗어난 지 오래.
—안녕하세요 사평님
—근데 코즈일이 작가방에
들어오기 싫다고 했다고요?
—코즈일한테 그런 얘기
들은 적이 없어서요
—난백(卵白)/무협: 헉 노원님 코즈일 작가님하고 아시는 사이세요?
—네, 개인적으로
매우 잘 아는 사이입니다
내가 코즈일이고 코즈일이 나니까.
잘 알 수밖에 없지.
—글물주/현판: 대박 ㄷㄷㄷ
—글물주/현판: 갓작가님과 갓작가님이 아시다니
—글물주/현판: 눈부셔이잇!!!
아니 금칠은 이제 됐고.
대체 어떤 새끼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거냐고?
작가방은 혼자 글 쓰기 외로운 작가들끼리 서로 으쌰으쌰 하며 응원의 힘을 보내거나 정보 공유를 하는 순기능이 있다.
반면 지금처럼 근거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도 있는 건 작가방의 명확한 단점이다.
이왕 작가방에 들어온 이상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은 초장에 뿌리채 뽑을 생각이다.
필명 오픈도 안 된 망생이들이 가득한 방에선 근거 없는 정보가 난무하기 때문에 모략질이나 험담 또한 난무한다.
나는 출판계의 판도를 바꾸려는 거지 흑화 망생이들의 신세 한탄 따윌 들어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들어온 첫날부터 이런 말이 나오네?
—사랑과평화/다판: 코즈일 작가님이 들은 적 없다고 했다고요?
—사랑과평화/다판: (사진)
—사랑과평화/다판: (사진)
—사랑과평화/다판: 저는 이렇게 연락 받았거든요
—사랑과평화/다판: 쉬는 시간 끝나서 일단 일 좀 하고 오겠슴다
—맹맹이/현로: 사평님 홧팅!
—릴리안느/로판: 다녀오세요~
‘어…… 이건?’
사평 작가가 작가방에 연달아 올린 스크린샷들.
그 사진들로 모든 게 설명됐다.
사평작가가 작가방에 올린 사진 2장은 각기 다른 2명의 매니저와의 대화 내용. 윗 사진엔 사평 작가의 전 담당자였던 한우석 팀장과의 대화 내용 그리고 아래 사진엔 현 담당자인 강경진과의 대화 내용이었다.
‘……이 새끼들 봐라? 재미난 짓을 했네?’
전임 1팀 팀장이었던 한우석과 새로운 1팀 팀장인 강경진. 둘은 업무 스타일도, 말하는 태도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둘에겐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쓰레기라는 점이지.’
사평 작가가 톡방에 올린 사진을 보면 작가방의 취지를 설명하고 코즈일 작가에게 가입 의사를 확인해달라고 한 말을 한우석과 강경진 둘 다 단칼에 거절한 대화 내용이 찍혀 있었다.
“코즈일 작가요? 아유 말해 뭐해요? 즈일이 저랑 친하죠. 바로 물어볼게요.”
더노벨로 떠난 한우석 팀장.
이 양아치 새낀 마치 나와 자신이 호형호제하는 사이처럼 헛소릴 써놨고.
“하하, 전임 담당자님께도 요청하셨었군요? 걱정 마시죠. 제가 꼭 여쭤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님께서 가입하실지 안 하실지 확답드릴 순 없지만 쪽지 보내신 것도 확인하시라고 반드시 전달 드릴게요.”
그리고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강경진 새끼는 사평 작가에게 걱정 말라며 안심하는 말까지 섞어 가며 내게 연락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쪽지? 소설피아 쪽지?’
내가 전생과 가장 달라진 점 하나를 뽑자면 쪽지를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여러 개를 동시에 연재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젠 다른 출판사와 계약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니까.
드륵— 드르륵—
사평 작가와 강경진의 대화로 유추하자면 사평 작가는 내게 작가방 가입 의사를 묻기 위해 쪽지를 보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피아에 로그인해 쪽지함을 아무리 뒤져봐도 사평 작가에게 온 쪽지는 보이지 않았다.
‘강경진 이 새끼가 설마?’
촉이 온다.
강경진 이 양아치 놈이 무슨 짓을 했을지가.
* * *
“올해 진짜 풍년이네. 무슨 대박 나는 신인 작가들이 이렇게 많아? 코즈일도 그렇고.”
“왜요? 뭐 괜찮은 작품 있어요?”
오늘은 9월 30일 화요일.
어느덧 9월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차며 모니터를 훑는 김동현 팀장의 혀 차는 소리에 여기저기 끼기 좋아하는 조팟새끼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혁명적인 작가 생활 이거 안 봤어? 작가물인데 클리셰적인 작가물이 아니야.”
“혁작생 이미 관심작 해서 보고 있죠. 그거 오베 순위에서 코즈일이랑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제 아예 밟은 거 같던데. 코즈일보다 노원지귀가 훨 나은 듯.”
조팟놈은 마치 내게 들으라는 듯이 말에 강세를 주며 말했다. 코즈일의 담당 매니저인 내 속을 긁으려 하는 모양인가 본데.
‘코즈일도, 노원지귀도 다 나야 이 새끼야.’
코즈일보다 노원지귀의 신작이 낫다는 말로 나를 어떻게든 까고 싶어 안달이 난 꼴 사나운 얼굴이지만, 내게 타격은 0이다.
‘뭐가 위로 올라가든 다 내 글이라고 조팟아.’
“정우 매니저 근데 오늘 어디 가? 옷이 깔끔해? 신발장 보니 구두도 신고 왔던데?”
문득 자리에서 일어선 김동현 팀장이 파티션 위에서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약속 있어서요.”
“약속 누구?”
“친구요.”
“흐음……. 정우 매니저 설마?”
“?”
김동현 팀장의 좁혀진 미간이 무얼 뜻하는지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히지 않는다.
“다른 회사 면접 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어휴 팀장님, 저녁에 면접 보는 회사가 어디 있어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변호하는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되려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있을 수 있지? 왜 없어? 정우 매니저, 잘 들어. 절대 퇴사 안 시켜줄 거야. 사직서 가져오는 순간 바로 파쇄기 행이야. 알지? 우리는 순장이라고! 나가면 배신이야, 배신!”
틈만 나면 다른 회사 면접을 보는 김동현 팀장의 말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대꾸하는 게 더 귀찮다.
“어디 안 갑니다. 그냥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약속 있어서 입은 거예요.”
“정우 매니저! 내가 지켜볼 거야. 명심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정우 매니저! 잊지 마! 팀장보다 일찍 퇴근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어? 그런 회사 많이 없어. 최소 이 바닥에서는. 알지?”
“팀장님 그만 좀 해요. 모양 빠지게.”
“모양이 뭐가 중한데? 정우 매니저! 잘 가~ 재밌게 놀고 내일 봐!”
뒤에서 들려오는 김동현 팀장의 말을 깔끔히 무시한 채 나는 빠르게 회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가볼까.”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것 대신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내려온 나는 자동차 시동을 켜고 내비를 찍었다. 약속 장소는 인천 차이나 타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