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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9화 (29/201)

#29화 - 제 입은 누구보다 무겁습니다.

“그림 작가님하고 각색가님이 코즈일 작가님과 소통을 따로 하셔서요.”

LGA컴퍼니의 각색가는 이지연이다.

마침 내 직원이자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고.

“저희 회사에서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LGA 측에서 코즈일 작가님께 따로 확인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흐음……. 그건 좀 아쉽군요.”

“네, 저도 정말 아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조금도 안타깝지 않다.

살짝 구겨지는 네 얼굴이 재밌을 뿐이지.

“그럼 저희 측에서 먼저 작가님을 만나 뵙고 설득해보는 게 좋겠군요. BS북에서도 따로 웹툰 법인을 진행 중이니 남작가 성형 천재는 저희와 함께 진행하자고요.”

“강 팀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잠자코 나와 강경진의 대화를 듣던 김동현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건 저희 2팀 내부의 문제이고 또 작가님께서 정해야 할 부분인데 1팀 팀장님께서 이런 식으로 저희 2팀 작품에 개입하시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군요.”

대표 백이 있는 강경진은 확실한 성골.

하지만 김동현 팀장 역시 임원진을 제외하고는 BS북에서 가장 경력이 긴 터줏대감이다.

아무리 강경진이 성골이라 하더라도 이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타 팀 팀장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행동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테다.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이걸 먼저 설명을 드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

“아직 공지가 되지 않았지만 웹툰 법인이 생기면 저는 그쪽만 총괄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판무 1팀 팀장 직책을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활처럼 휘어진 강경진의 눈빛이 김동현 팀장에게 닿았다. 김동현 팀장도 그리고 나도 강경진이 보내는 눈빛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1팀을 담당할 새로운 경력자를 채용해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제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께 총괄 팀장 자리를 부탁드릴지요.”

“지금…… 저를 말하시는 겁니까?”

김동현 팀장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경력도, 실적도, 인성도 모두 충족되는 분은 제가 아는 선에선 김동현 팀장님 말곤 없으니까요.”

불신의 눈초리에서 선망을 담은 눈초리로.

김동현 팀장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내가 거절해도 김동현 팀장을 통해 찍어 누를 생각이었구만?’

김동현 팀장을 왜 함께 불렀나 했는데, 이런 식으로 손을 뻗을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대표님께 건의는 드린 상황입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선 살짝 우려하시는 것 같더군요.”

“예? 대체 어떤……?”

“업무량도 그렇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2팀과 1팀의 사이가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고 하던데, 한 팀으로 통합할 수 있을지를요. 아, 물론 이건 김동현 팀장님께서 1, 2팀을 모두 관리하실 의향이 있으실 때만 해당되는 일이긴 하죠.”

“음……. 이런 얘기는 다음에 따로 이야기하심이…….”

김동현 팀장이 나를 힐끗 본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즉시 강경진의 엉덩이를 핥겠다는 요사스러운 눈빛이다.

“하하, 제가 김 팀장님하고 정우 매니저님을 함께 부른 건 따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1, 2팀으로 분할된 판무 팀이 하나의 통합 팀이 되고 파트 형식으로 변하게 되면 파트장의 자리 역시 추가로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물론 이 부분도 대표님과 이야기 마친 부분이죠.”

“…….”

웃음 뒤에 가려진 강경진의 음흉한 눈빛이 이번엔 나를 흘겼다.

“제가 파트장이 된다는 말입니까? 판무 2팀에선 제가 막내입니다만?”

2팀뿐만이 아니라 판무 1, 2팀 전체를 합쳐서도 나는 가장 막내다. 그런데 나를 파트장으로 앉혀 주겠다고? 말끝마다 대표를 들먹이는 걸 보니 대놓고 비선 실세 놀이를 하려는 게 훤히 보인다.

“물론 경력도 중요합니다만. 그래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아니겠습니까? 박정우 매니저님은 파트장 자리에 걸맞은 충분한 인재임이 틀림없고요.”

BS북에 관해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회사 차원에서 상당히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테다. 기존의 경력 위주가 아닌 능력 위주의 인사 고과가 실시된다는 말이니까.

‘십새끼. 여전히 입은 잘 터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이제 BS북은 비선 실세인 강경진의 입김에 따라 직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니까.

“하하, 아직 입사 1년 차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파트장이라는 직책이 놀라울지 모릅니다.”

그래, 놀랍긴 하다 새끼야.

쥐잣만 한 회사에서 왜 정치질을 하냐고? 여기가 국회냐?

“하지만 정우 매니저님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처럼 앞으로도 잘해주신다면 파트장 자리는 제가 대표님께 더 적극 추천해 보겠습니다. 김동현 팀장님도 마찬가지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동현 팀장을 따라 나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강경진 십새끼가 어떤 장난질을 하는지 직접 알려 주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리고 담당 작품을 BS북 웹툰과 계약시키면 이에 따른 인센도 별도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인센이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일지…….”

“런칭 달에 30만 원 지급될 예정입니다.”

뽕을 뽑아가면서 담당 매니저한테 주는 건 30?

30은 내가 잠만 자고 일어나도 벌리는 돈이다 양아치야.

“감사합니다 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두 분 모두 긍정적이셔서 좋군요. 그럼 박정우 매니저님. 코즈일 작가님의 웹툰 계약 관련해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도록 기대해도 될까요?”

사뭇 진지해진 강경진의 표정을 보며 나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죄송하지만 코즈일 작가님께서 BS북과 계약을 하실 수 있다는 부분은 제가 확정 짓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BS북 웹툰 법인이 나오는 그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LGA컴퍼니와의 계약을 막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인력 부족으로 LGA와 지금 당장 계약 진행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강경진 놈이 흡족해하는 표정을 보는 건 내키지 않네.

“하지만 음……. 단지 말로는 코즈일 작가님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건 걱정 말고 이걸 사용하시죠.”

“어…… 이건?”

“제가 별도로 가지고 있는 법인 카드입니다. 정우 매니저님 시간 되실 때 작가님 대접하고 오시죠. 경영지원팀엔 제가 따로 말해둘 테니 영수증은 별도로 안 챙기셔도 됩니다.”

강경진이 건네는 카드를 주워들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BS북은 작가 미팅이 종종 있는 판무팀이나 로맨스팀 같은 경우에도 별도 할당된 법인 카드가 없었으니까.

‘매니저들이 개인 카드로 긁고 영수증을 챙겨오는 좋좋소 같은 행동을 했는데. 성골은 다르긴 다르네?’

누가 낙하산 아니랄까 봐 회사 경비를 지 꼴리는 대로 쓰고 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코즈일 작가님은 제가 맛있는 거 대접하면서 잘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좋네요. 추석 선물도 따로 챙겨 주시고요. 그럼 회의는 마치도록 하지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공짜 밥이지.

오늘은 고기나 씹어야겠다.

마트 가서 장도 좀 보고.

김동현 팀장이 먼저 회의실에서 나갔고 나는 강경진이 문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그에게 슬쩍 다가갔다. 아직 묻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저 팀장님,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정우 매니저님이 궁금한 거라면 얼마든지.”

신났네, 신났어.

나중에 내 글이 LGA를 통해 웹툰화가 될 때 얼마나 표정이 일그러질지 궁금하다.

“웹툰 부서 매니저 초봉은 어느 정도 될까요?”

“그건 왜 묻는 거죠?”

웃음 뒤에 감춰진 강경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내가 산업 스파이가 아닌지 의심하는 눈빛이다. 얼추 사실이긴 하지만 속내를 들킬 수는 없지.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긴 하지만……. 웹툰팀의 입금이 더 높다면 그쪽으로 보직 변경도 가능한지 해서요. 물론 인센 혜택을 주시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담당 작품이 웹툰화가 되는 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닌지라…….”

“하하, 정우 매니저님.”

“예, 팀장님.”

“지금 정우 매니저님은 자기 자리에서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해주면 내년 연봉 협상 때도 섭섭하지 않게 해줄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네, 그렇긴 하지만…….”

개새끼가 마치 아끼는 동생을 대하듯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닥치고 묻는 말에나 답하라고.

내가 궁금한 건 연봉이니까.

“웹툰 담당 매니저님들 기본급도 판무팀이랑 별다를 게 없을 거예요.”

“그림 그리는 분들도 동일한가요?”

내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자 강경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우 매니저님은 아직 회사를 잘 모르는군요. 전국에 그림 그리면서 돈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널렸어요. 그림 그리는 일을 한다고 다른 매니저님들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예, 전 당연히…….”

“하하, 당연히 아니죠. 내가 장담할게요. 신입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죠. BS북 그리고 새로운 웹툰 법인의 신입들은 업무 불문 임금의 차이가 없을 겁니다. 그 후년 연봉 협상 때는 달라질 테지만요.”

그림 작가들도 이런 염전 같은 월급을 줄 생각이라니. 평균 500~600만 원 학비를 내는 전국 미대생들의 통곡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여하튼 오늘 일은 김동현 팀장님과 정우 씨 그리고 저 셋 만의 비밀로 하죠.”

“예, 팀장님. 제 입은 누구보다 무겁습니다.”

* * *

“어이가 없네요. 열정페이도 마지노선이 있지. 130만 원은 선 넘은 거 아니에요?”

“구인 사이트 뒤져보니 다른 웹툰 회사도 최저 임금이긴 하더라고요. 웃긴 건 최저 임금 주면서 회사에 애사심 갖으라는 거죠.”

“어후…… 양아치 놈들.”

코즈일 작가와의 미팅을 핑계로 나는 조기 퇴근을 하고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칼질을 하고 있다. 강경진과의 회의 내용을 전하자 이지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계획을 좀 바꿔 보려구요.”

“어떤 계획이요?”

“BS북에서 채용 공고 올려뒀잖아요. 우리도 채용 공고 올리죠? 실력 있고 유능한 그림 작가들은 우리 쪽에서 먼저 채용 하는 식으로요.”

유능한 인재들이 불지옥으로 가는 걸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월급 130? 그걸 누구 코에 붙여?

월급 적고 좋은 회사?

‘그딴 건 존재하지 않지. 좋은 회사란 돈 많이 주는 회사뿐이니까.’

BS북은 꼴에 업계 탑이다.

머리가 꽃밭인 사회 초년생들이 몰려들고 있을 게 분명할 터.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은 최소 1년은 견딘다. 1년도 짧기는 하지만 그 정도 기간은 돼야 경력으로 쳐주니까.

“어…… 그게 가능할까요? 채용 공고야 올리면 되긴 하지만……. 공간이 부족할 텐데요?”

“BS북 법인 설립이 생각보다 늦어진다고 하니까 LGA가 조금 더 빨리 자리를 잡는 쪽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최대한 빨리 사무실부터 확장 이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이달 말은 3분기인 9월.

즉, 정산을 받는 달이다.

지난 3개월 동안 벌어들인 돈이면 새로 사무실을 구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

“인력 채용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세요?”

“지금 어시분들을 1 파트로 하고 2 파트, 3 파트까지 총 3 파트로 진행하고, 추후 안정화가 되면 팀 체재로 변환하는 걸로 하죠. 각색가도 채용하고요. 언제까지 지연 본부장님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느 단체든 한 팀을 이끄는 수장은 무척 중요하고, 이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팀원들 사이의 분위기가 좋더라도 팀장이 양아치 같은 놈이라면 근묵자흑, 근주자적처럼 그 팀장의 색에 물들 수밖에 없으니까.

“사원 체재로 진행한다는 말이군요? 그건 문제가 없긴 하겠는데……. 저희 웹툰화 가능한 작품이 있나요? 대표님이 미현 대리랑 준비하는 신작을 포함시킨다고 해도 한 파트에서 할 일이 없을 텐데요? 코즈일 작품으로 하시려구요?”

“아뇨, 코즈일 작품은 아직이요. 대신 괜찮은 무협 소설 원작으로 진행 가능할 것 같아요.”

“무협이요?”

“네, 천명 작가라고. 지금 이무진 이사님이 미팅 중이실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대여점 시절 전성기의 풍운아 천명(天命). 그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무협계를 들썩였었다. 진득한 혈향이 묻어나는 무협이 아닌 라노벨 향이 물씬 풍기는 무협 아카데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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