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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28화 (28/201)

#28화 - 회사는 이런 맛에 다니는 거지.

오늘은 9월의 첫 주인 9월 1일 월요일.

이지연과 권미현 그리고 단풍 삼촌까지, LGA컴퍼니의 주축이 될 이들과 도원결의를 보내고 한 주의 시간이 더 흘렀다.

권미현은 바로 전주 금요일까지 BS북을 다니고서도 별도의 휴가 없이 바로 입사를 했다. 도원결의를 마치고 헤어지던 길에 나는 그녀에게 물었었다.

“9월 1일이면 바로 다음 준데, 한 주 정도 쉬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뇨, 바로 출근해야죠.”

“괜찮겠어요?”

“오늘 대표님 그리고 이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더 자극 되더라고요. 그리고…….”

“?”

“저를 뽑아주신 건 제 능력이 아니라 단지 글을 향한 제 태도를 보고 뽑아주신 거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미현 씨,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에요. 제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

당시 권미현은 진심이 담긴 내 말에 고개를 잠시 떨궜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래서 분해요.”

“……?”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없는 사람, 그렇지만 착한 사람.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저도 이사님들처럼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아니 꼭 그렇게 될 거예요.”

BS북에서 권미현은 운영팀 업무만 맡았었다.

하지만 LGA컴퍼니에서 그녀는 편집자 업무까지 총괄을 해야만 한다.

‘역시 잘 뽑았어.’

권미현은 자기 실력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눈치챘겠지.

나는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에겐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불하는 사람이란 걸.

—조팟: 다들 이거 보심?

—김동현 팀장님: 뭐?

—조팟: https://cafe.junglebook.com

—이창윤 매니저님: 아, 저도 이거 담당 작가님이 보내줘서 봤어요

LGA컴퍼니의 청사진을 그리는 그때 판무 2팀 단톡방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역시 다들 현직 편집자라 그런지 소식이 빠르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네?’

익명 아래 소통이 가능한 카톡 오픈 채팅이 출시되는 건 2015년 8월경. 하지만 오픈 채팅의 경우 내가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손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카카오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손가락만 빨며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단풍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작가 커뮤니티 카페를 만들었는데, 그게 벌써부터 작가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 같다.

조팟: 아… 이런 관종 새끼 나올 줄 알았다니까?

이창윤 매니저님: 왜요? 괜찮지 않아요?

이창윤 매니저님: 팁 게시판 들어가니 나름 유용한 정보 많던데요?

조팟: 참나 간결한 문장 쓰는 방법, 시점 헷갈리지 않는 방법, 상황별 연출

조팟: 작가면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망생이들 모아서 훈장질이나 하려는 거지

조팟: 지 자존감 키우려고

조팟: 게다가 이름부터 개듣보 작가구만

이창윤 매니저님: 하긴 노원지귀는 처음 들어보는 필명이긴 하네요

‘조팟놈이 오늘도 귀여운 소리를 하네.’

바로 내 맞은편 자리에서 노원지귀를 씹어대는 조팟놈은 작가들을 위한 웹소설 커뮤니티 ‘정글북’의 운영자인 ‘노원지귀’가 나인 걸 결코 알지 못할 터다.

코즈일은 내가 전생에 썼던 필명이 아니다.

두 번째 삶을 살게 되면서 명탐정 코난, 셜록 홈즈, 김전일처럼 출판계를 좀먹는 사기꾼 놈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 뽑아내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필명이었을 뿐.

‘맘껏 무시해 보라고. 노원지귀가 웹소 판을 앞으로 어떻게 갈아 엎을 지 보여 줄 테니까.’

내 원래 필명은 살던 곳의 지역명을 딴 노원지귀였다. LGA컴퍼니에서 나올 첫 작품은 경건한 마음으로 본 필명인 노원필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소설피아 실검 순위에 노원지귀의 이름이 도배되는 날, 조팟놈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동현 팀장님: 아 뭐야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조팟: 왜요? 무슨 일임?

김동현 팀장님: 출판사 정보 게시판

김동현 팀장님: 뭐 이딴 걸 다 만들어 놨어?

김동현 팀장님: 계약 시 주의사항? ㅡㅡ^

조팟: 소설피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거 보면 개 듣보 작가는 맞는데ㅋㅋㅋ 필명 간 건가?

조팟: 근데 카페 이름부터가 정글북 ㅋㅋ 지옥 같은 네이밍 센스임

조팟은 물론이고 정글북을 살펴보던 김동현 팀장 역시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해는 된다. 매니지의 입장에선 베일에 가려 있던 출판사의 비밀을 조금씩 밝히는 게 달가울 리 없을 테니까.

‘기대하라고. 이건 시작도 아니니까.’

이들이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양아치 중고차 딜러들을 응징하는 유튜브 채널처럼 사기꾼 매니지들의 계약 장난질을 모두 다 까발려 줄 테니까.

정글북은 오로지 작가들의 정보 공유를 위해서 만들어진 커뮤니티. 내가 아무리 유명 작가가 되더라도 그 한계는 분명하지. 힘은 개인이 아닌 무리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개인과 무리의 화력은 비교를 할 수가 없다. 작가 한 명의 목소리는 작을지라도 그 수가 여럿이 된다면 출판사에 부당한 계약을 당하는 작가는 점점 줄어들 테지.

‘내가 당했었던 것처럼.’

조팟놈은 정글북이라는 카페 이름을 비웃었지만 나는 그 이름을 고수할 생각이다.

몽글거리는 단어로 이름을 지었다면 접근성이 더 좋았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출판계라는 곳은 체계적이고 아름다워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야수가 득실거리는 정글 그 자체!

예전에도 커뮤니티를 주로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9할이 신인 작가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글 같은 웹소 판에선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하니까.’

최소 내게 출판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 정우 매니저. 남작가 성형 천재 웹툰화 제안 또 왔는데?”

“그래요?”

옆자리에 앉은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지.

그 제안이 어디서 왔을지.

“LGA컴퍼니네요.”

바로 전 주에 런칭한 인턴사원 회장님 웹툰은 기대 이상의 독자 반응을 내는 중이다.

테일랜드에서 연재하는 신인 웹툰 작가들의 고료는 해당 달에 4주든 5주든 상관없이 평균 월 200만 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하지만 LGA컴퍼니의 대우는 달랐다.

웹소설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코즈일의 글에는 반년 새 이미 팬덤이 가득 붙은 상태였으니까.

거기다 아직 이 시기에는 드문 팀 단위 웹툰 제작으로 만들어 낸 상당한 퀄리티였기 때문인지, 테일랜드는 예외적으로 기본 고료를 월 1,000만 원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다른 신인 웹툰 작가들이 들었다면 시기했을 금액일 테지만 월 1,000만 원의 고료는 내게 별다른 감흥이 없다. 이지연과 어시들 월급을 주고 나면 딱히 남는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다.

‘가격은 어차피 오를 거니까. 광고도 바로 붙여주기로 했고.’

편당 대여는 100원에 소장은 200원으로 코 묻은 돈 같아 보이지만 5주차가 미리 올라와 있는 미리보기는 돈만 내면 미리 볼 수 있는 구조다.

회귀 전 웹툰 미리보기는 편당 일주일 대여가 300원, 해당 회차의 소장은 500원 정도가 평균.

‘즉, 앞으론 지금보다 최소 200~300원 이상 차이가 나게 오를 예정이란 뜻이지.’

게다가 웹툰 고료는 독자 반응에 따라 인상 폭이 크다. 광고 배너와 미리보기 수익을 합치면 고료보다 훨씬 크기에 인턴사원 회장님은 더 걱정할 부분이 없다.

“코즈일 작가가 이번에도 LGA에서 웹툰 진행하시려나?”

“그럴 것 같아요. 바로 작가님께 전달—”

“정우 매니저님 잠시만요.”

“……?”

이창윤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는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의 목소리가.

“네, 팀장님. 하실 말씀이라도?”

내가 팀장이라 부른 사내는 우리 2팀 김동현이 아닌 강경진이다.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야.

네가 접근해 오리란 걸.

“웹툰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김동현 팀장님도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하는데.”

김동현 팀장도 끌어들여?

놈이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된다. 강경진의 말에 소회의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놈은 선교사 같은 무해한 미소로 말을 시작했다.

“바쁘신데 불러서 죄송합니다. 웹툰 관련해서 잠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말씀하시죠.”

대답은 내가 아닌 김동현 팀장의 입에서 나왔다. 강경진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강경진이 이 자리에 김동현 팀장을 데리고 온 의도가 얼추 짐작이 간다.

“저희 BS북에서 웹툰 법인 설립을 진행 중이라고 지난 월례회의 때 말씀드렸었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간단하겠군요. 다름이 아니라 2팀 작품인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의 웹툰화는 자체 제작을 진행했으면 해서요.”

이 새끼 봐라? 매번 이런 식이었겠구나?

BS북에서 고소장을 받은 후 나는 늘 궁금했었다. 강경진이 회사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는지.

“자체 제작이라면……. LGA랑 계약을 하지 말라는 말이십니까?”

“하하, BS북 웹툰 법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씀이죠.”

능글맞게 미소를 건네는 강경진의 말에 김동현 팀장은 얼굴을 구겼다.

“그건 저희가 선택 가능한 부분이 아닐 거 같은데요? 추진이야 할 수 있겠지만 코즈일 작가님이 싫다고 하면 못 하는 거 아닙니까? 무엇보다 웹툰 법인 설립은 아직 멀지 않았습니까? 지난 팀장 미팅 때 듣기론 투자금 받고 나서 법인 설립 절차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아직 기다리는 중이죠. 그래서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드리려는 겁니다.”

BS북의 웹툰 법인이 언제 설립될지도 확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 LGA와의 계약을 보류해달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LGA컴퍼니는 이미 실력을 결과로 입증했고, 웹툰화가 빨리 진행될수록 웹소설의 수익, 즉 판무 2팀의 실적이 올라가게 되는 일이었으니까.

이런 터무니 없는 말을 당당하게 하면서도 강경진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오래도 아닙니다. 웹툰 법인 직원 채용 공고는 이미 올려둔 상태죠. 투자금을 받고 웹툰 제작 진행은 늦어도 내년 2월, 빠르면 1월부턴 바로 가능할 겁니다.”

“강 팀장님. 저희야 돌아가는 상황을 아니까 내년 1, 2월이 길게 안 느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작가님 입장에서는 기다리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코즈일 작가의 웹툰, 이미 수요 웹툰 1위입니다.”

LGA와 계약해서 웹툰화를 바로 진행하면 돈 벌어들이는 게 기정사실인데 이게 뭔 개소리냐는 완곡한 거절의 말이었다.

“김 팀장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죠. 그러니 작가님께서 이 사실을 조금 더 천천히 알면 좋지 않겠습니까?”

“작가님께…… 알리지 말란 말입니까? LGA에서 제안 온 걸?”

‘작가 본인 앞에서 하는 공모라니. 신선하긴 하네.’

LGA컴퍼니는 아직 신규 직원 채용을 시작하지 않았다. 사무실 이전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 공간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지연에게 회사 대표 메일로 제안을 보내라고 시킨 건 강경진의 반응 그리고 현재 BS북의 웹툰 진행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려 한 거였다. 강경진은 어망에 보기 좋게 걸려든 꼴이고.

“하하, 알리지 말라기보단 조금 더 천천히 진행해도 될 일이니까요. 코즈일 작가님의 담당인 정우 매니저님께서 조금 힘 써 주신다면요.”

내가? 내 글을? 널 위해?

지랄이 풍년이다.

“코즈일 작가님께서 현재 LGA에서 담당하는 웹툰을 좋아하시겠지만 우리 BS북에서 만들 웹툰 법인의 결과물을 더 좋아하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랄 노.

그럴 일은 조금도 없다.

“거기다 계약 조건도 부족함 없이 진행해 드릴 테니, 작가님 입장에서도 선택지는 더 다양할수록 좋겠죠.”

마치 작가를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배려하는듯한 말투에 절로 코웃음이 나온다.

“맞는 말입니다. 선택지는 다양할수록 좋죠.

비웃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내뱉은 대답에 강경진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정우 매니저님 아직 코즈일 작가님께 따로 연락드리지 않았죠? LGA에서 연락 왔다는 걸요.”

역시 치졸하다. 이런 놈들이 꼭 확인 필요하다며 남의 카톡 뒤져보지. 씹새끼들.

내가 메일을 확인하던 걸 뒤에서 음침하게 눈여겨보고 있었으면서 확인 사살까지 하려 드네?

“네, 아직 코즈일 작가님께 따로 연락드리지 않았습니다.”

“하하, 정말 다행—”

“그런데 어쩌죠?”

“?”

“코즈일 작가님과 LGA 측은 따로 연락이 가능해서요. 제가 손쓸 방법이 없겠는데요?”

그래, 이거지. 좋은 표정이다.

살짝 구겨지는 강경진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역시 회사는 이런 맛에 다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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